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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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초대 (2)
“일단 주요 동맹국들만 속령 쯤 되는 지위로 수용한다고 쳐도 대체 얼마나 많은 초기예산이 들어갈는지……. 기껏 맞춰놓은 재정적 균형이 일시에 흔들릴 것인데……. 게다가 그 과정이 순탄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캐나다의 영연방 탈퇴건만 해도 영국 정부가 결사반대를 천명한 마당에…….”
거듭 말끝을 흐리며 혼잣말처럼 겨울의 반응을 떠보는 브래넌 의원. 그가 예로 든 캐나다는 미국의 일부가 되었을 때 그나마 긍정적인 영향이 예상되는 유일한 국가였다.
그가 물어봐주기를 원하는 듯 하여, 겨울이 질문했다.
“그렇게 어렵다고 보십니까?”
“뭐, 난 캐나다의 편입도 그리 좋게 보지만은 않아요. 이쪽은 처음부터 정식 주로 편입해야 할 국가지만, 그러자니 난민인구가 골치 아프지요. 그 나라가 태평양 방면의 난민 수용은 거부했을지언정 대서양 방면에서는 아니었거든. 말하자면 겉보기엔 우량주인데, 사실은 대규모의 부실채권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요. 미국의 식량지원이 없었다면 벌써 망했어요.”
태평양에서의 난민 수용만 거부했다는 것이 인종차별을 의미하진 않았다. 감염자 유입 확률이 극도로 높았을 뿐. 겨울이 아는 한, 대서양 방면에서도 초기에만 수용했을 따름이었다.
‘그것만 해도 4백만이 넘어서 문제지.’
이는 캐나다 인구의 1할 이상인 숫자였다. 때문에 미국 수준의 체계적 관리도 불가능해서, 기초적인 물자만 공급하고 나머지는 전적으로 자치에 맡겨두었다고 한다.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 같은 나라는 행정인력을 파견하기도 했다.
마침 의원이 그 점을 지적했다.
“그 동네에서 일어난 에미레이트 사태는 알고 계시지요?”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정확하게는 알-무다쓰디르 에미레이트 사태라고 부른다. 이슬람 원리주의 난민들이 무장단체를 결성하여 추장국(Emirate) 건설을 선포한 사건.
헌데 이들에겐 묘한 현실감각이 있었다. 독립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캐나다 정부 산하의 자치주가 되고자 했던 것. 즉 캐나다가 내세운 기존의 난민정책에 저항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어차피 자치에 맡길 거면 우리를 인정해라, 정도의 온건한 주장.
그러나 실제 종교적 성향은 대외적 온건함과 정 반대였다.
‘말소하거나 지우는 자들…….’
사태를 보도한 CNN의 해설에 따르면, 알-무다쓰디르는 직역하면 옷 입은 자, 의역하면 말소하거나 지우는 자, 개척자, 조정자, 질서의 수호자, 정복자, 말에 뛰어올라 달리는 자 등을 뜻했다. 영어로 옮기면 종교적인 의미의 정화자(Purifier)에 해당한다고.
이들은 다른 난민들에게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를 것을 강요했다. 약탈에 의한 보급물자 독점. 무력과 협박을 곁들인 재분배는 당연히 포교의 수단이었다.
브래넌이 시니컬하게 말했다.
“캐나다 정부가 삽질을 아주 거하게 해주는 바람에, 그곳 분위기는 아직까지도 개판입니다. 참 아쉬워요. 기독교 민병대를 지원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분명히 있었을 것을…….”
끄덕이는 겨울.
“받아들일 경우, 현재의 정책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됐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자 브래넌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중령으로선 남의 이야기가 아닐 텐데요? 당장 힘들어질 곳이 바로 군정청입니다. 예산부족 이전에 인력부족으로 위기를 겪을 거예요. 이쪽에도 영향이 없을 수가 없겠지요.”
“네…….”
“다른 나라들도 각각 까다로운 사정이 있는 건 마찬가지에요. 아, 그렇지. 내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중령은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겨울이 고개를 기울였다.
“한국의 연방 편입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시는 건가요?”
“그렇다기보다…….”
뜸을 들이던 브래넌이 표정과 자세를 고쳤다.
“불쾌하게 들릴지도 모르니 미리 사과드리리다. 내 말은, 만약 한국 정부가 그 국민을 지키기 위하여 중령을 필요로 한다면, 거기에 응할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겨울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무난한 답을 골랐다.
“저는 이미 미국 시민으로서 선서를 했습니다. 지켜야 할 사람들을 지키고 있고요.”
그리고 역으로 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흠, 제대로 설명하자면 많이 복잡해지는데…….”
톡, 톡. 브래넌이 말을 궁리하는 눈치로 탁자를 두드린다.
“사업의 불안정 요소를 미리 확인해봤던 거라고 해둡시다.”
“사업이요?”
“오늘 내가 중령을 초대한 이유 말이외다. 이런, 본격적인 대화는 잠시 미뤄둬야겠군.”
음식을 들고 나타난 부인이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방해했나요?”
“아니오, 아니오.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소. 배가 고파서 피골이 상접할 지경이에요.”
“하여간 과장은.”
눈을 곱게 흘기며 잠발라야를 내려놓는 그녀. 베이컨과 소시지가 풍성하게 들어간 케이준 스타일의 볶음밥에선 기름진 후추 향과 토마토 향, 그리고 닭고기 향이 한 데 뒤섞여 담뿍 올라왔다. 살을 발라낸 새우가 장식처럼 보기 좋게 올라간 모습. 메뉴 선정의 배경엔 아마도 겨울에 대한 배려가 있을 것이었다.
여기에 칠면조 살을 끼운 따끈한 샌드위치와 클램차우더 수프,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식초를 친 코울슬로 샐러드가 곁들여져 나왔다. 음료는 캘리포니아 산 드라이 샴페인이었다.
겨울이 부인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후후. 맛은 보이는 것 이상일 거예요. 우선 우리, 건배할까요?”
TV를 끈 그녀가 와인 잔을 들어보였다. 아이보리색이 섞인 실내조명 아래에서, 잔 속의 샴페인은 노을 지는 강물처럼 반짝였다. 이를 서로 부딪쳐 쨍- 하고 울린 뒤에, 겨울은 한 모금 가볍게 머금어보았다. 청량하면서도 끝 맛이 엷었다. 포도 향으로 미각을 씻어내는 듯 한 감각. 기름진 요리에 잘 어울리겠다 싶다.
부인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 중령님. 혹시 이 샴페인의 비밀을 아시겠어요?”
“……?”
“이거, 파소 로블레스에서 만들어진 거랍니다.”
“아. 정말인가요?”
“작년에 보급품 수색으로 얻은 물건이라더군요. 기호품으로 비축해두었다가, 이젠 굳이 배급으로 나눌 필요가 없어서 방출했다는데……. 운이 좋았어요. 이 자리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축배가 없을 테니.”
“정말로 그렇네요.”
겨울이 미소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작전을 뛰었던 겨울에게도,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 부부에게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샴페인인 것이다.
음식은 만족스러웠다. 요 며칠 심란함에 식사를 소홀히 했던 겨울로서는 무척이나 각별한 맛이었다. 잠발라야는 밥알이 뭉치는 일 없이 반들반들하게 익어, 양파가 달달하게 아삭거리는 식감과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클램차우더 수프도 샐러리 향이 감도는 해물향이 인상적이었다. 전투식량에 같은 메뉴가 포함되어있긴 하지만, 같은 요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격차가 존재했다. 브래넌 부인의 요리 쪽이 보다 부드럽고 담백하다.
전반적으로, 건강한 가정식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시점에서, 부인은 다양한 화제로 대화를 능숙하게 이끌었다. 그러다가 나온 이야기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제가 원래는 동전 수집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 나올 기념주화는 꼭 한 세트 갖고 싶어지더군요. 특히 금화 세트로요.”
“기념주화요?”
“네. 중령님이 워싱턴에 가시는 것과도 관계가 있죠.”
“그거 설마…….”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시네요.”
입을 가리며 웃는 부인.
“짐작하시는 게 맞아요. 방역전쟁의 1차적인 승리를 기념해서, 명예훈장 수훈자들을 새긴 달러 주화(Medal of honor recipients coin program)가 발행될 예정이니까요. 당신과 함께 살아서 훈장을 받는 55인, 그리고 사후에 추서된 분들까지 합쳐서 총 432인이 각인된 433종이라고 하네요. 금화와 일반주화로 나누어 주조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어쩐지 사람 숫자보다 한 종류가 많군요.”
“그렇겠죠. 그 중에 이중수훈자가 한 명 있으니까요.”
“…….”
입을 다문 겨울을 보고 부인이 다시 웃음 지었다.
“각 수훈자들에겐 본인의 얼굴이 들어간 금화를 하나씩 증정한대요. 중령님은 두 개겠군요. 일반 주화 세트도 주어진다고 하고요. 나머지는 경매에 부쳐질 거예요. 사회 환원 차원에서 부자들도 인심을 쓰겠죠. 연방정부 입장에선 나름대로 재원을 마련하는 수단이랍니다.”
“아무리 푼돈이라지만, 우리도 그럴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두 번째의 잔을 비우며 아쉽다는 듯 투덜거리는 브래넌 의원이었다.
“당신, 그런 이유로 오늘 한 중령님을 모신 거 아니었나요?”
“그런 셈이지요. 슬슬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브래넌이 냅킨을 치우고 상체를 등받이에 기댔다.
“중령. 특정 지역에 난민들을 정착시키고, 정부가 지정한 난민지도자를 주지사로 하여 준주를 수립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는 벌써 몇 번 들었을 테지요? 현 시점에선 당신이 가장 유력한 후보자……아니, 사실상 유일한 후보자라는 것도.”
그 이야기인가. 겨울이 끄덕였다.
“네. 기회가 있었습니다.”
“혹시 그 준주로 어느 지역이 가장 유력한지에 대해서도 들었습니까?”
“……아뇨. 그것은 아직.”
멈칫 하는 겨울을 보고 의원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한 번 물어봅시다. 중령이 보기엔 어디가 될 것 같습니까?”
“절반 이상의 확률로 멕시코 국경 이남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티후아나라든가, 시우다드 후아레즈 같은 곳……. 현재의 진격 양상을 볼 때 좀 더 남하한 지점일 수도 있겠네요.”
본토를 회복하고 전선의 병력교체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미군의 남진은 느리게나마 꾸준히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멧돼지 사냥 때에 비해 속도가 다소 느려졌을 뿐. 당연한 일이다.
‘남하하면 남하할수록 방어선이 축소되니까.’
방어선이 축소된다는 것은 곧 병력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뜻이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지는 작전이었다. 멕시코 전역을 탈환하는 본격적인 공세는 해병대 본대의 파나마 상륙, 즉 대륙 분할 작전(컨티넨탈 디바이드)을 기하여 이루어지기로 계획되어 있으므로. 지금은 그 준비단계에 해당했다.
“꽤나 조심스러운 예측이로군요. 당신 정도면 그보다 더 욕심을 낼 법도 한데.”
갸우뚱 하는 브래넌에게, 겨울이 근거를 말했다.
“대륙 분할에 이은 중미지역 점령이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 그 넓은 땅을 그냥 비워두기만 할 순 없습니다. 최소한 중간 거점으로 삼을 곳에는 일정한 인구가 있는 편이 좋겠죠. 육군의 보급조차도 상당부분 민간 운송사업자들에게 위탁하는 상황인데요.”
더불어 본토의 시민들을 위한 완충지대가 되어주기도 할 터이나, 의원 내외 앞에서 굳이 언급할 내용은 아니었다. 말을 안 한다고 모르는 바도 아닐 것이고.
즉 그나마 미국 본토에 가까운 지역을 예로 든 건, 겨울동맹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양호하기 때문이었다.
‘최선의 경우엔 미국 본토 어딘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최선의 경우였다.
“흠. 그렇다면 중령. 샌디에이고 광역권 일부를 나눠받을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브래넌의 제안은 겨울을 살짝 당황하게 만들었다.
“티후아나 북부가 아닙니까?”
“아닙니다. 물론 티후아나가 장차 광역권에 흡수되기야 하겠으나, 내가 지금 말하는 건 기존의 광역권입니다. 도심에 인접한 지역도 포함해서 말이지요.”
의도가 뭘까. 뜸을 들이던 겨울이 재차 질문했다.
“나쁜 뜻으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의원님 개인의 제안으로 보기가 어려운 사안입니다. 어느 정도의 선에서 얼마나 논의된 안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