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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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초대 (4)
드디어 가는구나.
9월 29일의 아침. 집무실의 겨울은 창을 등지고 앉아 명단을 확인했다. 내일 새벽 동부행 수송편에 탑승할 사람들의 목록. 가장 위엔 최상급자인 겨울의 이름이 있었고, 그 아래로 한 개 중대보다 좀 더 많은 숫자의 이름들이 이어졌다.
왜 좀 더 많은가 하면, 민간인 신분의 장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마련한 특별전형 조건을 충족시켜 대학 입학을 허락받은 이들. 이들의 교육비는 절반을 겨울동맹에서 부담해야 한다. 사재출연을 포함하여 어렵게 마련한 재원이었다.
금전적인 지출이 큰 만큼 학생들에게 거는 기대도 무겁다. 선발된 학생들의 웃음에 못내 그늘이 보였던 이유였다. 포트 로버츠 출신 학생들에게 관심을 보일 장학재단이 많겠으나, 본인의 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관심들이었다.
포트 로버츠에 정규 항공편이 취항하지는 않으므로, 학생들은 겨울과 같은 수송기를 타고 라스베이거스 맥카렌 국제공항까지 동행한다. 거기서 통상의 여객 노선으로 환승하는 것이다.
겨울은 거기서 바로 떠나지 않는다. 내일부터 시작될 여정은 D.C 도착을 전후로 여러 도시를 경유하도록 되어있었다. 라스베이거스가 그 첫 번째였다. 병사들이야 관광하듯이 놀면 그만이겠으나, 겨울은 아니었다. 전쟁채권 홍보, 주요 인사들과의 의례적인 만남, 그 외의 행사 참석 등. 개선식 이후에는 뉴욕으로도 간다.
‘약간……부담스럽네.’
호손 시의 이재민들 일부가 라스베이거스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양용빈 상장의 핵공격을 피해 도시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 핵폭발에 의한 방사능 오염은 반감기가 짧고, 정부에서도 방사능 제거 작업을 하고 있으니 수개월 내에 부분적 귀향이 가능해질 것이다.
부담으로 여기는 것은 역시 핵잠수함 장정 9호 추적, 페어 스트라이크 작전에 관한 부분이었다. 공화당 대선후보 크레이머는 그리스의 섬에 이어 또 다른 무언가를 폭로할 예정이라고 밝혔었다.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지. 현재로서는 후보 본인과 그 측근들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
앤이 말했듯, 작전의 모든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겨울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 정권이 진실을 왜곡하여 이득을 본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로인해 개싸움이 벌어진다면, 관련 인물로서 겨울의 이름도 자주 언급될 것이다.
「Platoon- halt!」
조금 앳된 느낌의 힘찬 구령이 닫힌 창을 뚫고 들어왔다. 겨울은 명단을 놓고 몸을 돌렸다. 자그마한 금빛 방울새들이 지저귀는 유실수 너머로 마른 흙빛의 연병장이 보인다.
거기엔 육군 정복을 입은 소년 소녀들이 정렬해있었다. 포트 로버츠 청소년 학군단(JROTC)에 속한 중고등학생들이었다. 주니어 ROTC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다. 역병 이전을 기준으로, 청소년 학군단 생도의 최소 30%가 진짜 학사장교로 성장했다. 장교의 절대수가 부족한 지금은 그 비율이 훨씬 더 높아졌고.
포트 로버츠에서 청소년 학군단에 들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했다. 일단 정복이 멋지다는 이유에서 좋아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장래계획 면에서 보다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학생들도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훈련을 받는 학생들이 존재했다.
‘소대장 생도가 어쩐지 낯익다고 생각했더니…….’
사격 수업을 참관했던 날, 어머니에게 심하게 혼났던 아이가 있었다.
평가판을 들고 앞뒤로 오가며 제식을 평가하는 건 독립대대 알파 중대장인 진석이었다. 출세지향적인 성격에 과시욕도 끼어있으니, 민간인들에게 얼굴을 비출 행사를 사양할 이유가 없었으리라. 알파 중대의 시가지 전술훈련이 어제부로 종료되었기에 시간도 남았을 것이다.
‘출발 전날까지 굴리는 건 역시 좀 부자연스럽지.’
D.C행 인원을 훈련 성과 순으로 선발하겠다곤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루 전에는 확정이 되어야 정상이었다. 병사들이 ‘선의의 거짓말’을 눈치 채면 신임 중대장 입장에서 좋을 게 없다. 덕분에 한껏 들떠 잠을 설친 병사들은, 그럼에도 전혀 피로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지금은 삼삼오오 모여 나이 어린 예비생도들의 분열행진을 구경하고 있다.
이제부터 겨울과의 면담이 예정된 이들은 바로 그 밝은 분위기를 가로질러야 한다. 의도한 건 아니어도 나쁘진 않다. 그 첫 번째 그룹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기다리던 겨울은 문 밖의 발소리들이 노크로 이어지기 전에 말했다.
“들어와요.”
멈칫 했던 기척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셋은, 일전에 싱 소령이 언급한 간부 후보 중 겨울이 만나보겠다고 밝힌 여섯의 절반이다.
“소위 쑨시엔 외 3인, 호출을 받아 왔습니다.”
“쉬어요.”
겨울은 부동자세를 취한 그들의 정면에 앉았다. 책상을 끼고 마주보는 구도.
쑨시엔은 본디 삼합회의 일맥(一脈), 화승화와 수방방 공동의 대변인을 자처했던 중간 간부다(백지선/白紙扇). 일찍이 겨울이 중위였을 때, 벌목 작업현장에서 동맹에 받아들여달라는 편지를 보냈던 것도 쑨시엔이었다. 나머지 둘은 직급 상으론 동일하나 발언권을 위탁하여, 실질적으론 쑨시엔의 서열이 가장 높았다.
“내가 귀관들을 부른 이유는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Yes, sir. 겹쳐지는 목소리들. 한때 깡패였던 것 치고 빡빡하게 군기를 세운 반응들이었다. 욕망이 묻어난다. 일부러 뜸을 들인 겨울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먼저 하나. 여러분 중엔 중대장이 없습니다.”
세 사람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쳤다. 그러나 미미한 수준이었다. 은연중에 바라긴 했을지언정, 큰 기대는 걸지 않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다만 약간의 불안이 뒤따랐다.
“다음.”
겨울이 손가락을 세웠다.
“셋 모두를 소대장으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긴장감이 한층 높아졌다.
“여기서 탈락하는 사람에게는 나중에 다시 기회가 주어질 겁니다. 물론 그때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느냐는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린 일이겠지만요. 딱히 뭔가를 더 하라는 건 아니고, 실망감에 막나가지 말라는 뜻에서 해두는 당부입니다.”
“…….”
사실 당부라기보다는 경고에 가깝다.
“쑨시엔 소위. 류젠차오 소위.”
살짝 밀린 두 사람의 대답이 끊어지는 메아리처럼 들렸다. 합격인가, 불합격인가.
“두 사람이 각각 브라보 중대의 2소대장과 화기소대장입니다. 지휘할 병력은 기존에 맡았던 지원병 소대를 기초로 보강되는 수준일 거고요. 그렇게 됐으니,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류젠차오로부터 절제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체는 안도감이었다. 이 정도면 되었다 하는 생각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쑨시엔 쪽은 큰 내색을 하지 않았으나, 속내는 비슷할 것이다. 한 사람만이라도 뽑히면 다행이라는 각오로 왔을 테니.
이는 이들이 술자리에서 심심찮게 하는 말들을 토대로 내린 판단이었다. 굳이 강영순 노인이 아니더라도, 겨울의 귀를 자처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것이 선별에도 영향을 미쳤고.
혼자 빠지게 된 한 사람, 쉬진룽은 낯빛에 그늘이 졌다.
겨울의 말이 이어진다.
“떠나기 전에 중대 창설까지는 보고 가고 싶었지만……사정이 여의치 않게 됐네요. 내가 없는 동안에는 부대대장 바하다르 싱 소령이 지휘를 맡게 될 겁니다. 추가 훈련이 먼저겠지만요. 돌아왔을 때 충분히 전력화된 중대를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쑨시엔과 류젠차오가 입을 모았다.
겨울이 시선을 돌렸다.
“쉬진룽 소위는 전처럼 지원병 소대를 관리하면 됩니다.”
“예.”
쉬진룽의 안색은 쉬이 밝아지지 않았다. 말이 소위이고 소대이지, 상설편제에 편입되기 전까진 반쪽짜리로 간주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계급장이다. 맨 처음 갓 지원병이 되었을 무렵의 겨울과 같이, 난민 지원병의 대부분은 정식 계급장조차 달지 못한다. 즉 갓 입소한 훈련병들과 동일한 취급이었다.
소위들도 비슷하다. 어디까지나 지원병들을 수월하게 모집하기 위한 광고판으로서 달아준 계급장인지라, 본토 출신 미군 병사들에겐 가짜 간부 취급을 받았다.
자연히 임무를 받을 기회도, 공로를 세울 기회도 적다.
‘안정성도 문제야.’
언제까지 지원병 신분, 또 껍데기뿐인 장교 신분으로 머무를 수 있을 것인가. 만연한 중국 혐오 정서가 이들의 발을 묶어놓았다. 캡스턴 같은 인물은 드문 법이었다.
고정된 급여를 받는다는 점, 그리고 시일이 흐르면 시민권이 확정된다는 점에서 다른 난민들보다 훨씬 나은 입장이긴 하나, 사람은 언제나 아래보다는 위를 보게 마련이었다.
브라보 중대 편성이 확정된 두 사람의 안도감이 여기서 기인했다.
겨울이 책상 위로 헐겁게 깍지를 꼈다.
“전달사항은 여기까지인데……. 혹시 질문이나 건의사항, 그 외에 할 말이 있다면 듣겠습니다. 무엇이든 좋으니 편하게 말해도 괜찮아요.”
“…….”
“없습니까?”
없을 리가 있나. 경직에서 벗어나 시선을 교환하는 셋. 대표는 여전히 쑨시엔이었다.
“우선, 진심으로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가만히 응시하니 신중하게 이어지는 말.
“처음에 저희를 받아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으나, 솔직히 그동안은 다소 겉도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결정을 내려주시니, 비로소 동맹의 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이 듭니다. 믿음에 보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겨울이 차분하게 답했다.
“기대하죠. 난 당신들의 자질이 미군의 평균적인 수준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마음가짐에 따라 충분히 좋은 군인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수준 운운은 빈말이 아니다. 그러나 마냥 칭찬인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미군의 인적자원 수준이 낮아졌으니 뭐…….’
트릭스터를 집중적으로 사냥하고 다녔던 프레벤티브 스캘핑 작전 당시, 구조된 병사 중의 하나는 공수된 보급상자의 암호를 푸느라 애를 먹었노라고 증언했었다. 탄약이 변종들에게 넘어갈까봐, 네 자리 비밀번호를 간단한 사칙연산으로 표기해놓은 탓.
그것은 성인 인구의 1할을 까막눈으로 만들어 놓은 미국 공교육의 민낯인 동시에, 병력 확충을 우선하느라 질적 여과가 허술해진 육군의 현실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역병 이전부터 갱 출신의 사병들이 심심찮게 사고를 치던 군대가 미군이었다.
「킬 팀」의 악명은 나쁜 의미로 전설적이다. 전지에서 민간인 사냥을 다닌 망나니들.
디안젤로 중사가 전 독립중대 병사들의 교육수준에 긍정적인 당혹감을 보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대학 나온 놈들이 뭐 이렇게 많지? 하고.
이런 속내를 모르고 온전한 칭찬으로 들은 셋은 애써 기꺼움을 감추는 눈치였다. 억눌린 기간이 워낙 길었으니 이해가 간다.
“Sir.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뭐죠?”
“혹시 저희가 속하는 중대의 중대장이 그 여자입니까?”
쑨시엔이 누굴 말하는지 알지만, 겨울은 모르는 척 되물었다.
“그 여자?”
“음……. 리아이링 소위 말입니다.”
“아아. 아뇨, 리 소위는 3소대장으로 부임합니다.”
“저희와 같은 중대가 됩니까?”
“다른 중대일 수가 없죠. 이번에 중국계로 편성하는 중대는 브라보 하나뿐이니까요.”
겨울의 대답이 쑨시엔에겐 예상범위 밖이었던 모양이다.
“그렇…습니까? 저희는 중대가 다섯 개나 더 만들어진다고 들었습니다.”
“명목상 ‘증강된 보병대대’라서 나중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지침을 새로 받았는데, 그렇다고 그 많은 중대를 한 번에 다 편성해야 한다는 법은 없죠. 일단 전투중대로는 이번에 둘,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하나를 추가하기로 했네요. 나머지는 상황 봐가면서 조절하고요.”
이건 포스터 대위의 제안이었다. 중국계로 두 개 중대를 채울 거라면, 최소한 창설 시기에는 차이를 두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고. 은근한 서열 갈등을 유도하자는 뜻이었는데, 그 의도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병사들이 원래의 국적에 따라 선을 긋고 어울린다면 대대 전체 분위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됩니다. 사실, 다른 부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종종 발견되는지라…….”
흑인은 흑인끼리, 백인은 백인끼리, 라티노는 라티노끼리 어울려 다니기 시작하면 부대의 통일성이고 뭐고 없어지더라. 그런 경험담이었다.
‘엄밀히 말해 장교들 사이에도 그런 경향이 없잖아 있지.’
이쪽은 장교가 된 경로를 따진다.
겨울은 전공이 압도적이라서 아무도 무시하지 않는 것이고.
쑨시엔이 새로 질문했다.
“그럼 누가 중대장이 됩니까?”
“나도 그걸 고민했는데, 다행히 웨스트포인트 출신 중위 한 명이 파견된다고 하네요. 중대장으로는 처음이지만 소대 지휘경험은 풍부. 생도 시절 성적도 우수. 명백한 해방 작전, 멧돼지 사냥 작전에 연속으로 참가. 표창이력은 없어도 이 정도면 훌륭한 자격이죠.”
“……장교가 부족한 게 아니었습니까?”
“화교 3세입니다. 이름은 개빈 챙. 표정을 보니 나머지는 설명할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사정이야 어쨌든 사관학교까지 나온 고급인력을 얻게 됐으니 만족이다.
다만, 혈통이 화교일 뿐 중국어로는 회화가 곤란하다고 한다.
‘오히려 그 점이 더 좋을 수도 있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
겨울 눈 앞의 셋은 어딘가 모르게 만족스러운 분위기였다. 리아이링이나 페이창룽처럼 사이가 험악한 인물이 상급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듯 하다.
“또 할 말이 있습니까?”
겨울의 물음에 쑨시엔이 자세를 바로했다.
“없습니다.”
“흠……. 나중에라도 뭔가 있으면 보고해요. 이젠 정식 지휘계통상으로도 내가 당신들 상관이니까. 오늘은 여기서 해산. 이만 가 봐요.”
세 사람이 겨울에게 경례했다. 대체할 인물이 마땅치 않아 고르긴 했으나, 당분간은 경과를 지켜봐야 할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