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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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초대 (6)
저건 좀 아니지 않나.
표정이 흐트러지는 겨울의 모습에 여러 사람이 즐거워한다. 그 유쾌한 웃음소리들 가운데, 겨울은 육성으로 듣고 싶었던 그리움 하나를 구분해냈다.
“……앤?”
인상이 많이 달라져서 못 알아볼 뻔 했다. 새까만 정장을 입은 앤은, 비슷한 복장의 통제요원 몇 사람과 더불어 현지 경찰인력을 대동하고 마중을 나온 참이었다. 부대원들이 소란스러운 탓에 거리를 두고 정차한 차량대열을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산뜻하고 투명한 미풍이, 다가오는 그녀의 머릿결을 잔잔하게 흔들었다.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다. 그 미소는 반가움을 감추지 않는 겨울을 보고 한층 더 진해졌다. 다가오는 내내, 점점 빨라지려는 걸음걸이를 힘들게 억누르는 기색이었다.
“겨울.”
살짝 떨리는 이름을 부르고서 잠시 목이 메는 앤. 크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그녀는 손날을 가지런히 하여 겨울에게 경례했다.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겨울 중령.”
“……?”
“알고 계시겠지만, 귀하의 경호와 연락을 담당하게 된 연방수사국의 조안나 깁슨 요원입니다. 순회 일정 간 무언가 요청 사항이 있으시다면 바로 말씀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조치해드리겠습니다. 복귀하시는 날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눈을 깜박이던 겨울은 한 박자 늦게 주변을 의식하고 마주 경례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깁슨 요원.”
이렇게 느린 눈치는 겨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앤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다. 한 손으로 짙은 선글라스를 끌어내린 그녀가 애정을 담아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보는 눈이 많으니 해후는 나중에.”
속삭이는 소리는 바로 앞의 겨울에게 겨우 닿을 만큼 작았다. 잠깐 보인 눈시울이 붉었다. 선글라스를 고쳐 쓴 앤은 몇 걸음 물러나 맞은편의 활주로에 두 번째 수송기가 착륙하기를 기다렸다. 다른 사람들을 등진 채로 볼을 한 번 닦아낸다. 점잖은 체 하지만, 발꿈치를 거듭 들었다 놓는 모습에서 감추려는 속마음이 묻어났다.
“중대! 정렬!”
박진석은 활주로에 내려서자마자, 엔진 소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인상을 썼다.
“야! 니들이 무슨 소풍 나온 초등학생들이야! 어? 빨리빨리 안 움직여?!”
으르렁거리는 품이 숫제 잡아먹을 듯하다. 병사들은 자그맣게 우- 하면서 오와 열을 맞춰 섰다. 겨울은 아무 말 않고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사실 진석이 성을 낼 걸 알면서도 먼저 내린 인원들을 통제하지 않았다. 겨울도, 진석도, 병사들도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입장이었다.
간결하게 인원을 확인한 진석이 겨울에게 이상 없음을 보고했다.
“그렇다네요.”
겨울은 앤을 보았고, 앤은 겨울과 진석을 향해 끄덕였다.
“그럼 이제 이동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이쪽 공항 보안요원의 안내에 따라 터미널에서 환승을 기다려주시고, 201독립대대 알파 중대원 여러분들은 저쪽에서 대기 중인 버스 4대에 소대 별로 나누어 탑승해주시면 되겠습니다. 한겨울 중령님은……저와 함께 가시죠.”
겨울동맹 장학생들이 겨울과 중대원들에게 눈물로 작별을 고했다. 기내에서는 몇 명이 훌쩍였을 뿐이지만, 지금은 예외 없이 울고 있다.
그 광경을 보고 마음이 시큰해졌는지, 병사 하나가 손을 들었다.
“중대장님! 애들한테 용돈 좀 줘도 되겠습니까?”
진석이 성난 표정으로 대꾸했다.
“줘!”
앤이 웃음을 터트린다.
“거기, 잠깐만요. 기다려주세요.”
그녀가 공항 보안요원에게 양해를 구하는 사이, 마음이 동한 중대원들은 각자 지갑을 꺼내 현금을 각출했다. 곳곳에서 곤란해 하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미처 현금을 준비해두지 못한 이들이었다. 겨울도 오백 달러를 내놓았다. 각자 적잖은 돈을 쥐게 된 학생들은, 병사들이 탑승을 마치고 나서도, 버스가 출발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겨울은 별도의 방탄차량에 탑승했다. 안쪽까지 두꺼운 왜건인데, 천장이 앞뒤로 나뉘어 열리도록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중 앞쪽에는…….
“……미니건?”
지붕 안쪽에 붙은 중화기가 겨울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유사시 자동화된 해치를 통해 무장이 개방되는 구조였다. 겉에서 보기엔 평범한 차량이건만, 어지간한 변종집단은 순식간에 갈아버릴 강력한 화력이 내장되어 있는 셈.
“시크릿 서비스가 쓰는 경호 차량하고 비슷한 사양이에요.”
앤이 소리 죽여 설명했다.
“덕분에 운전석에서 뒤쪽 좌석을 보기 어렵죠. 후방 관측은 카메라로 대신하거든요.”
그러면서 겨울의 손에 자신의 손을 부드럽게 겹친다.
“조금 아쉽지만, 도착할 때까지는 이 정도로 참아야겠네요.”
혹시 싫은 건 아니죠? 라고 묻는 그녀에게, 겨울은 손가락을 얽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차량의 앞뒤가 완전히 분리되어있지는 않은지라, 앤은 고개를 숙였다. 표정관리를 하기엔 너무 어려운 기쁨인 모양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건가요?”
잠시 후에 겨울이 묻자, 앤은 심호흡을 하고서 얼굴을 들었다.
“큼. 일정을 소화하려면 먼저 짐부터 내려놔야죠. 숙소는 벨라지오 호텔에서 제공하기로 했어요. 겨울의 방은 스위트로 잡혀있죠. 하루만 묵고 떠날 테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울 거예요. 보안상 미리 점검해봤는데,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도시 전경이 정말 멋지더라고요.”
“으음, 비용이 너무 비싸지 않아요?”
“전혀요. 호텔 측에서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거든요.”
“그건 그것대로 부담스럽네요.”
앤이 키득거렸다. 오늘의 그녀는 웃음이 많았다.
“부담스럽긴요. 당신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 도시에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몰렸는지 알면 그런 말 못할 걸요?”
“…….”
“근 1년간 근근이 적자를 견뎌온 파라다이스의 마피아들 입장에서, 겨울의 방문은 도시 경영의 전환점이나 마찬가지에요. 말하자면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해야겠네요. 축제를 치른 뒤엔 지속적인 관광객의 유입을 기대할 수 있을 거예요.”
라스베이거스의 약점은 방역전선에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세기말에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향락과 도박을 찾을 사람이야 많겠으나, 현실적인 위험부담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앤은 손가락을 접어가며, 겨울에게 혜택을 제공할 때 얻는 이익의 가짓수를 헤아렸다.
“아울러 광고효과도 고려해야 해요. 당신이 머문 방은 프리미엄이 붙을 것이고……. 그래서 호텔 간에 경쟁도 붙었어요. 당신을 머물게 해주면 국방성금으로 얼마를 기부하겠다는 식이었는데, 구체적인 금액까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금액이라고 들었어요. 아마 벨라지오 호텔 측이 가장 높은 금액으로 입찰했겠죠.”
국방부는 돈이 아쉬우니까요. 그게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앤이 말미에 덧붙였다.
터미널을 거치지 않고, 주차장과 연료 보관시설 사이를 통과하여 공항을 빠져나간 차량 대열은 파라다이스 대로를 타고 북상하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공항 부지 반대편, 도로 북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환호성을 질러댔다. 숫자가 어찌나 많은지, 길이 수 킬로미터의 도로변을 꽉 채울 지경이었다.
호텔에 도착한 뒤, 겨울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리기가 무서운데요.”
앤이 맑은 소리로 웃는다.
“익숙해져야 할 거예요. 앞으로 질리도록 경험할 일이니까.”
문이 열리자마자 함성은 거리와 깊이를 모를 소음으로 변했다. 모든 방향이 웅웅 울리는 것만 같다. 직전까지의 웃음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앤은 냉정한 무표정으로 상황을 통제했다. 지시에 따라 저지선을 형성하는 인력은 경찰보다 경찰이 아닌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원래부터 이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던 이들로 보였다. 바로 합법화된 마피아 조직.
도로가 호텔 로비 앞까지 이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차한 지점은 커다란 인공호수의 남쪽 진입로였다. 경호와 홍보 사이에서 갈등한 흔적이 엿보인다. 도로는 미리부터 차량의 진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구름 없는 네바다 사막의 하늘, 햇살에 반짝이는 분수를 배경으로, 가지각색의 환영인파가 열광했다.
“한! 하-안! 사랑해요! 나랑 결혼해줘요!”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외침. 돌아보면,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꽃다발을 흔드는 중이었다. 눈이 마주치고서 무시하기도 애매하여, 겨울은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바깥만큼은 아닐지언정 호텔 로비도 북적였다. 형형색색의 유리공예로 천장을 화려하게 장식한 내부가 인상적이었으나, 차분히 지나갈 여유가 부족했다.
유라가 앓는 소리를 냈다.
“으……. 분명 야간에만 입어도 된다고 했었는데!”
그놈의 호랑이 가죽 케이프 때문이다. 엄한 얼굴의 담당 공보장교를 의식했는지 투덜거림은 한국어로 내뱉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유지하면서.
겨울과 중대는 승강기 앞에서 갈라졌다. 진석이 인사를 남겼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래요. 숙소에서는 다들 좀 풀어주고요.”
“사고만 안 치게끔 관리하겠습니다.”
드러내진 않아도 진석 또한 기분이 어수선할 것이었다.
호텔 직원의 도움을 사양하고 객실에 들어서서야 한 숨 돌리는 겨울. 뒤따라 들어온 앤이 가볍게 쥔 한쪽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고생 많았어요.”
“……너무 재미있어 하는 거 아니에요?”
“큭큭. 들켰나요? 사진……아니, 동영상으로 녹화해두고 싶었는데.”
이렇게 농담을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긴장하고 있는 느낌이다.
조용한 가운데 둘만 남게 되니 조금 어색해지는 분위기. 뒷짐을 진 채 이리저리 눈만 돌리던 앤이 되는대로 주워섬기듯이 하는 말.
“음, 나랑 같이 온 요원들, 그리고 공보처나 유관기관 인력은 맞은편 객실에서 대기할 거예요. 앞으로 방문하는 모든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야간에도 당직이 있으니까,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전달해줘요. 사적으로 외출하는 것도 일단은 보고가 들어가야 할 사안이고…….”
“저기, 앤.”
“네?”
“보고 싶었어요.”
“…….”
잠시 후, 앤이 선글라스를 벗고 긴 숨을 내쉬었다.
“전화로 몇 번 들었던 말인데도……. 이렇게 듣는 건 또 새롭네요. 귀가 간질간질해요.”
선글라스 다리를 괜히 접었다 폈다 하는 그녀. 가만히 바라보던 겨울이 말했다.
“아까는 너무 달라져서 못 알아볼 뻔 했어요.”
“그야, 전엔 조금도 꾸미지 않았었는걸요. 이상한가요?”
“전혀요. 알아보기 힘들 만큼 예뻐졌다는 뜻이었어요.”
“다행이다…….”
직설적인 칭찬에 살짝 얼굴을 붉히며, 앤은 귓바퀴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나, 연습 많이 했거든요. 본격적으로 꾸미는 게 너무 오랜만이어서.”
“예전 모습 그대로였어도 괜찮은데요.”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봐요. 나쁘지 않죠?”
“예. 정말로.”
“큭.”
이제 바라보는 시선이 올곧아진 앤이 진지한 어조로 하는 말.
“쓸 데 없는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미리, 확실하게 말해둘 게 있어요.”
“뭔데요?”
“지금 당장 내 마음에 보답해주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당신이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이 한 순간이라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내겐 그것만큼 싫은 일이 없을 테니까요.”
“…….”
“역시,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거죠?”
초조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입을 다문 겨울에게 앤이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겨울. 나는요, 조바심에 서두르다가 중요한 일을 실패한 경험이 많아요. 돌이켜보면 인간관계에서 특히 그랬던 것 같네요. 당신에게만은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아요. 내게 있어서 당신은……성급하게 구느라 망치기엔 너무도 소중한 인생이거든요.”
“음…….”
“표정 봐요.”
짧게 키득거린 앤이 남은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나의 행복인 것처럼, 내가 당신의 행복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당신이 즐거웠으면 좋겠다고요.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바라는 날이 올 테죠…….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노력해 볼게요.”
“네. 그거면 됐어요. 당신 성격을 감안하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앤의 온화한 낯빛을 눈에 담던 겨울이 그녀를 향해 한 발 다가섰다.
“잠시 실례할게요.”
“앗…….”
겨울은 그녀의 볼에 입 맞춘 뒤 어깨를 당겨 포옹했다. 품 안에 가득 차는 한 사람분의 체온이 좋았다. 앤의 귓가에 대고 겨울이 하는 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네.”
앤도 겨울의 등 뒤로 팔을 둘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