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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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초대 (8)
조찬에서 보게 된 라울 엘즈워스 상사는 의외로 유쾌한 인물이었다. 모두가 인류와 미국의 미래를 위하여 건배할 때, 그는 곡선이 우아한 잔에 콜라를 담아 마셨다. 주변 사람들이 재미있어하자 그도 껄껄 웃었다.
“무알콜 샴페인보다는 콜라가 낫지! 어차피 술을 못 마실 거라면!”
술이 약하다는 게 아니라 종교적 금기를 지킨다는 말이었다.
겨울은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조용한 곁눈질로 그의 동태를 살폈다. 목소리가 커서 대화를 엿듣기에 무리가 없었다. 슬쩍 바깥 방향을 돌아보면, 선글라스를 낀 앤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겨울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몸짓.
‘바로 접근하는 건 너무 노골적이고……. 자연스럽게 말을 섞어볼까.’
장교는 장교끼리, 사병은 사병끼리. 당장은 그렇게 어울리고 있다. 장교인 겨울이 상사의 테이블로 곧장 직진하는 건 영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상사를 경계하라는 앤의 당부가 아예 접점을 만들지 말라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겨울이 주의 깊게 접촉해주면 감시하는 수사국 입장에선 고마울 일이다.
엘즈워스 상사 자체에겐 아직 아무런 혐의가 없었다. 위험한 종교를 믿고 있을 뿐 아직은 깨끗한 인물이다. 그러나 워싱턴으로 가기 전의 경유지 중엔 후기성도교회의 총본산인 솔트레이크 시티가 있었다. FBI는 바로 거기서 모종의 모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만약 겨울이 엘즈워스 상사와 친분을 만들어둔다면, 겨울의 화제성 때문에라도 가족과 친구들을 만난 상사가 그 사실을 반드시 언급할 것이며, 이는 필시 이단 종파 내에서도 따로 구분되는 과격파의 귀에도 들어갈 터였다. 그들이 「불경스러운 연합」 차원에서 어떤 거국적인 계획을 품고 있을 경우, 엘즈워스 상사에게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즉, 쿠데타에 준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겨울이 예상하기로, 빌미만 주어진다면, 증거를 조작하여 「불경스러운 연합」의 주요 간부 전원을 일거에 체포하는 그림도 그려질 법 했다. 나중에 무혐의로 풀어주더라도, 일단 가장 위험한 고비인 대선 전후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에서.
새로 가까워지는 인기척이 겨울의 주의를 일깨웠다.
“여기 주인 있는 자리인가?”
실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 겨울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머트 대령님.”
“기억하는군.”
“어떻게 잊겠습니까?”
겨울의 반문에 대령이 흡족해했다. 그가 좌우를 둘러보았다.
“처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직 못 들었는데…….”
“당연히 앉으셔도 됩니다. 이쪽은 육군특전대의 태너 롱 소령, 그리고 75연대 수색대의 조지 팔머 대위입니다. 인사 나누십시오.”
먼저 합석해있던 둘을 소개해주는 겨울.
“같은 연대 출신이 있으니 더욱 반갑군. 75연대의 레이 에머트다.”
“……처음 뵙겠습니다. 태너 롱입니다.”
“조지 팔머입니다. 대령님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편하게 보내는 시간인지라 서로 격식을 따지는 게 덜하다. 롱 소령은 짧게나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레인저를 조금 얕잡아보는 그린베레로서의 자부심이 원인일 것이었다.
세 사람의 유일한 공통분모로서, 겨울은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어차피 다 실전을 경험한 군인들인지라 물꼬만 터주면 충분했다. 각자의 경험과 무용담만 늘어놓기 시작해도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완만해질 것이었다.
그런 목적에서, 몇 마디쯤 오고간 뒤에 겨울이 지난 일을 언급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혹시라도 뵐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대령님께서 험프백을 추적하느라 그 근처까지 오셨다는 정보를 접했었거든요.”
“나름 비밀 작전이었는데, 어떻게?”
“전 그때 CIA와 함께 움직였으니까요. 물어볼 만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거 막 말해도 되나?”
“이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에머트 대령이 재미있어했다.
“이 정도는 괜찮다, 라……. 귀관이 거물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 하긴, 산타 마가리타에서 그렇게 날뛸 때부터 알아봤지. 죽지만 않는다면 크게 될 미치광이구나, 하고.”
대화의 내용에 롱 소령이 관심을 보였다. 험프백에서 한 번, 산타 마가리타에서 다시 한 번. 묻는 쪽은 산타 마가리타가 먼저였다.
“Sir. 거기서 한 중령과 같이 계셨습니까?”
“그랬지. 내가 작전 책임자였으니까.”
“그거 진짜로 진짜였습니까? 그러니까, 그 뭐냐, 편집의 마술 같은 거 아닙니까? 그날의 교전 영상 말입니다.”
직설적인 질문에서 성격이 나온다. 당사자인 겨울이 있는데도 삼가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딱히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의구심이었으되, 에머트 대령은 슬쩍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 질문 참 여러 번 받는군.”
“당연히 궁금한 사람이 많겠지요.”
“기본적인 예의는 지켰으면 하네만.”
“제가 그린베레 아닙니까.”
“……하여튼.”
대령이 넌더리를 내며 답변했다.
“맹세컨대 꾸밈없는 진실이다. 그저 그 난리를 치고도……한 중령 같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구해낸 게 인간쓰레기 몇 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따름이지.”
짜증을 내는 듯한 목소리는, 그러나 겨울이 듣기엔 일부러 키워 말하는 느낌이었다. 겨울만 다른 테이블에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니다. 이쪽 테이블은 주변의 듣는 귀가 많았다.
에머트가 시선을 겨울에게로 돌렸다.
“귀관도 피곤하겠어. 이런 의심을 꾸준히 받을 테니 말이야.”
“괜찮습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 다 그린베레 같지는 않아서요.”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치니 두 레인저와 그린베레 모두가 실소를 터트린다.
샴페인을 쭉 들이킨 롱 소령은 낮은 도수가 영 성에 안 차는 눈치였다. 허나 이후의 일정이 있는 만큼, 오전에 독한 술을 내어줄 리가 없다.
이 문제를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했다. 종업원이 들고 다니는 샴페인 잔들을 쟁반 째로 빼앗은 것이다. 종업원이 당황하든 말든 그가 알 바 아니었다.
에머트 대령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따가 총질도 해야 하는 걸로 아는데, 취하고서 망신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보지?”
“망신 좀 당하면 어떻습니까? 그런다고 줄 훈장을 안 주지도 않을 텐데.”
“……아주 시원시원하군.”
“걱정 마십쇼. 무슨 계집애도 아니고, 샴페인 따위에 취할 일은 없습니다. 그보다, 험프백을 직접 족치셨다면 그놈에 대해 뭔가 더 아는 게 있으십니까?”
역시 많이 들어본 질문이었던지, 대령은 표정 변화 없이 대답했다.
“언제는 사령부가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해주던가? 난 놈의 혈액과 분비액의 샘플을 확보했을 뿐이야. 연구결과에 대해 특별히 전달받은 건 없어. 그렇다고는 해도, 놈의 능력에 대해서는 다들 짐작 가는 바가 있을 텐데? 다른 사람들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을 여기 셋만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뭘 풀든 답안지를 확인하기 전까진 찝찝해하는 성격인지라.”
“너무 일관성이 없잖나…….”
“꼴리는 대로 사는 거지요.”
겨울이 에머트에게 물었다.
“그 뒤로는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거의 다 쉬었지. 손실이 하도 크다보니, 원래 우리가 받아야 할 임무도 다른 곳으로 가더군. 좀 해괴하고 귀찮은 명령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야.”
“해괴한 명령……인가요?”
“이틀 전이었지. 갑자기 트릭스터를 찾아서 생포해오라는 지시가 내려오지 않겠나? 그것도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알파 트릭스터를 말이야. 보나마나 연구용이겠지만, 트릭스터 생포가 어디 쉬운 일인가? 수틀리면 자폭하거나 자살하는 놈들인데. 자살은 귀관도 한 번 봤지?”
끄덕이는 겨울. 대령은 새크라멘토의 교전기록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겨울이 트릭스터의 자살을 본 건 두 번이지만, 피쿼드 호의 블랙 사이트, 비밀갑판에서 자신의 목 줄기를 잡아 뜯은 트릭스터에 대한 자료는 문서로만 남아있는 기밀이었다.
‘이제 와서 굳이 알파 트릭스터를 찾을 이유가 있을까?’
알파. 강화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단계의 트릭스터. 현재 남미지역에선 전보다 출력이 높은 전파 발생이 관측된다고 들었다. EMP를 터트리고도 살아남은 트릭스터에 대한 목격정보도 있었다. 등급을 분류하자면 델타 혹은 엡실론쯤 될 것이다. 잡는다면 이런 놈들을 잡아야 할 텐데. 한 번 터트린 후 회복하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회복되기까지 육체적인 기능은 얼마나 발휘되는지, 통제능력을 발휘할 순 있는지 등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
겨울의 고민은 여기에 에스더가 관련되어있으리라는 「통찰」 탓이었다. 그러나 같은 보정이 어째서? 라는 의문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시스템적으로 재해석된 ‘막연한 예감’인 셈. 즉 얼마든지 빗나갈 수 있다.
‘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통찰」이……. 그저 시기가 비슷해서인가?’
착각에 지나지 않을 공산에도 불구하고 겨울의 속내엔 미련이 남는다. 「통찰」의 등급이 전보다 훨씬 높기도 했다. 에머트 대령의 질문이 천착하는 겨울을 현실로 끌어냈다.
“표정이 좋지 않군. 뭔가 아는 게 있는가?”
“……아닙니다. 그냥 안 좋은 기억이 하나 떠올라서.”
“흠.”
대령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으나 굳이 더 캐묻진 않았다. 그럴 만한 시대가 못 되었다.
“아, 참. 이거 받으십시오.”
듣고만 있던 팔머 대위가 둘러앉은 이들에게 명함 같은 것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받아든 롱 소령이 앞뒤로 뒤집어보더니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이게 뭐야? 아그네스 농장?”
“안사람의 이름이 아그네스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기억이 나는데요. 나중에 네시…아내와 함께 농장이나 하나 꾸리며 사는 게 꿈이라고요. 전역하려면 멀었지만, 그녀가 상상하던 풍경 그대로의 농장 매물을 찾았다기에 바로 사라고 했습니다.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충분하더군요. 한 번에 인출하기가 곤란해서 일부는 전시채권으로 인수했고요. 거기 주소가 적혀 있으니 훗날 시간 나면 언제든 놀러 오십시오.”
그러자 롱 소령은 떫은 얼굴이 되었다.
“허……. 너 임마, 그러다 훅 간다.”
“예?”
“보통 영화 같은 거 보면 너랑 비슷한 대사 치는 놈들이 가장 먼저 죽잖아. 거 왜 고향으로 돌아가면 결혼할 거라든가, 곧 뒤따라 갈 테니까 먼저 가라든가, 나는 아직 살아있다구 이 니기미 씨부럴 놈들아! 같은 소릴 지껄이는 순둥이들 말이야.”
팔머는 롱 소령의 악담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로 드신 사람은 끝까지 안 죽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딱히 순둥이도 아니고요.”
“어쨌든 불길한 건 피하라는 거지. 거 왜 해병대 애들이 사탕 싫어하는 것처럼.”
“그건 해병대가 나약해서 그렇습니다. 고작 미신 따위가 레인저를 죽일 순 없지요. 그 반대라면 또 몰라도.”
언행이 점잖을지언정 레인저는 결국 레인저였다. 롱 소령은 요것 봐라? 하는 표정을 짓는다. 표면적으로는 해병대를 언급했어도, 팔머 대위가 실제로 겨냥한 건 미신을 직접 언급한 롱 소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발 앞서 반응한 이들이 있었다. 하필 이 말을 듣고 있던 해병 무리였다.
“Sir. 실례지만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겨울은 그들을 바로 알아보았다.
‘일본에서 1년 만에 귀환했다던…….’
변종 천국이 된 일본에서 주일 미 대사관 사람들과 미국 시민들을 보호하며 살아남은 끝에, 버려져있던 여객기를 확보하여 1년 만에 본토로 귀환한 기적의 주인공들. 그러므로 그들은 부대 내 생존자 전원이 최소 수훈십자장, 최대 명예훈장을 받게 됐다.
미국의 역사에서 단일 부대가 이렇게 많은 명예훈장 수훈자를 배출한 건 처음일 것이었다.
악과 깡의 결정체 같은 이들이라 다른 부대의 상급자를 대하는 태도에도 거리낌이 느껴지지 않는다. 팔머 대위는 잠시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곧 태연하게 대꾸했다.
“미신 따위가 레인저를 죽일 순 없다고 했지.”
“그 앞에 말입니다.”
“아, 해병대가 나약하다는 거?”
“…….”
이 사람이 왜 이러지. 바라보던 겨울은 팔머를 향한 에머트 대령의 눈짓을 알아차렸다. 대령이 중재하듯이 나섰다.
“분위기가 안 좋군. 괜히 싸우지들 말고, 누가 강한지 직접 시험해보면 될 것 아닌가.”
같은 레인저라지만 명색이 대령이다. 해병들이 불퉁하게 반응했다.
“어떻게 말씀입니까?”
“흠……. 팔씨름은 어떨까?”
반응이 엇갈렸다. 해병들은 이게 뭔 유치한 장난인가 하는 얼굴들. 그러나 주변은 온통 흥미진진한 기색으로 물든다. 그러나.
“왜, 자신 없나?”
대령의 이 뻔하고 간단한 도발이 해병들을 격분케 했다.
“아닙니다! 자신 있습니다!”
“그럼 대위는?”
“싸움은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팔머의 태연함에 해병들의 투지가 치솟는다.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적어도 겉보기엔 그랬다. 무언의 지시가 있었으므로, 팔머 대위는 처음부터 일부러 져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정말 일부러 진 것인지, 진짜로 힘에 밀려서 진 것인지를 분간하기는 어려웠다. 애초부터 만만찮은 상대였으므로.
아무튼 승리는 해병대 챔피언의 몫이었다. 팽팽한 힘겨루기 끝에 승리를 쟁취한 해병은 한껏 붉어진 얼굴로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전우들을 향하여 포효했다.
“US marine! US marine! Oo-rah!”
“Oo-rah!”
우-라! 우-라! 해병 전우들의 화답이 실내에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이후의 흐름도 기묘했다. 에머트 대령은 아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판을 키워놓았다. 덕분에 품격 있는 조찬 행사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같은 자리에 초대받은 지역 명사들은 구경꾼의 역할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귀관은 지지 마라.”
대령이 겨울에게 조용히 건넨 한 마디였다. 같은 질문 받기가 지긋지긋하다더니, 결국 다 계획된 것이었다. 당연히 대령의 배려이기도 했다. 물론 주워 먹기는 겨울의 능력 나름. 망신을 당해도 겨울의 책임이다.
덕분에 겨울은 몇 사람을 누르고서 라울 엘즈워스 상사와도 한 판 붙었다. 어떻게 거리를 좁힐까 고민하던 참에 잘 된 일이었다. 아슬아슬하도록 보이게끔 이긴 뒤에, 겨울은 짐짓 감탄한 양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힘이 대단하네요, 상사.”
“지고 나서 듣기는 민망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겨울과 악수를 나누었다.
합석하고서 대화를 나눠본 결과, 겨울은 엘즈워스 상사의 종교적 열정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제게 사람들을 구할 소명과 능력과 기회를 주셨으니, 그 거룩하신 뜻을 행하는 제게 어떤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다들 저더러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고 치켜세우곤 합니다만……틀렸습니다. 제가 구한 사람들은 곧 주님께서 구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빛내야 할 것은 오직 높으신 주님의 이름뿐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선이고 죽이는 것이 악이라면, 상사는 분명 선한 인물이었다. 적어도 그로 인해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은 상사의 선함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곱씹어보면, 바람직한 종교는 일정 수준의 선함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겨울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그것이 물 밖으로 치는 헤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면 볼수록……. 좀, 우울하네.’
순수한 신앙으로부터 거듭 에스더를 연상하는 겨울이었다.
전능하고 자애로운 절대자가 정말로 존재하여, 그의 보살핌 아래 행복하기만 하다면, 사람이 굳이 물 밖으로 헤엄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 한없이 인간을 사랑하는 신적 존재가 실제로 있다는 전제 하에서.
여하간 이런 성향 덕분에 상사 가까이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헌신과 업적엔 경의를 표하되, 매양 종교적으로 흐르는 대화를 감당하기는 벅찼던 모양. 어차피 여기 있는 모두가 가장 명예로운 전공으로 빛나는 거인들이다. 따라서 차분히 오래 들어주는 겨울이 상사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기꺼운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