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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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초대 (9)
엘즈워스 상사와 이야기를 끝낸 뒤에도 겨울에겐 혼자 있을 틈이 주어지지 않았다. 명사들뿐만 아니라 명예훈장 수훈자들 또한 겨울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호승심, 흥미, 호감, 경의, 그리고 개인적인 타산 및 합리적인 의심 등. 교차하는 접근들 사이에서 겨울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경험과 생각과 걱정거리들을 들었다. 작게는 개인사로부터 크게는 방역전쟁의 근황에 이르기까지.
인적자원의 고갈도 그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하여 육군 항공대 최고의 헬기 조종사들, 통칭 「나이트 스토커」 연대 소속 수훈자 둘이 한 마디씩 주거니 받거니 했다.
“큰일이야. 부대는 계속 소모되는데 보충이 되질 않아.”
“그렇다고 코스를 갓 졸업한 초짜들을 데려올 순 없잖습니까. 바지에 똥오줌도 안 싸본 애송이들에게 그날 밤 같은 곡예비행을 시켰다간 아까운 헬기만 줄줄이 꼴아 박고 말 겁니다.”
“뭐, 우리가 주 방위군은 아니지.”
여기서 말하는 ‘그날 밤’이란 양용빈 상장의 핵공격 이후 이루어진 야간 구조작전을 의미했다. 이들은 걸어 다니는 레이더, 즉 트릭스터의 관측을 피하고자 지면에 달라붙는 수준의 고속비행을 감행했다고 한다. 산간의 지형 굴곡에 의지해 소음과 비행경로를 은폐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좋았으나, 자칫 사고로 부대가 전멸할 수도 있었던 치명적인 곡예였다. 그런 비행을 하룻밤 사이에 열 번 이상 반복했다고 하니 과연 명예훈장을 받을 법한 공로였다.
‘그래도 특수부대라서 EMP 내성은 확실하게 갖췄었나보네……. 아니었으면 계곡에 숨은 트릭스터 하나만 터져도 위험했을 텐데.’
겨울은 오래된 숲, 세쿼이아가 울창했던 국립공원의 전투를 회상했다. 거기서 겨울의 기병대를 지원한 아파치 공격헬기 편대, 호출부호 해머 폴은 트릭스터의 EMP에 대하여 뛰어난 방어력을 과시했었다. 이후 육군에도 개선된 장비들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몰려서서 듣던 수훈자들이 파일럿들의 대화에 공감했다. 영 비리비리한 놈들이 많아져서 못써먹겠다, 좌표를 제대로 못 보는 소대장이 있더라, 공군의 오인폭격도 눈에 띄게 늘었다 등등. 흐름이 이렇게 되니 공보처에서 파견한 장교들이 은밀하게 끼어들었다.
“곤란합니다. 이 자리에 군인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십시오.”
민간인 유력자들도 있고 방송사에서 파견한 기자들도 있다. 선을 넘을 뻔 한 영웅들이 멋쩍음을 감추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바꾸었다. 쏟아낼 무용담은 얼마든지 많았다. 일본에서 돌아온 해병 하사가 입담 좋게 떠들었다.
“살아남은 좀비새끼들이 막 달려드는데, 하필이면 그때 쿠킹 오프(Cooking off)가 터진 겁니다. 와, 씨발……. 결정적인 순간 총이 지 혼자 지랄발광을 떨면서 탄창을 싹 비워버리니 머릿속도 하얗게 비워지더군요.”
쿠킹 오프란 과열로 인한 기능고장의 하나다. 약실이 달아오른 탓에 방아쇠를 당기지 않아도 탄약이 줄줄이 격발되는 현상. 기후가 덥고 습한 일본에서는 더욱 발생하기 쉬웠을 것이다.
일본을 탈출하던 날에 대한 증언이었으므로, 흥미진진하게 듣던 누군가가 묻는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남으셨소?”
“개머리판으로 패고 대검으로 찌르고 해서 두 놈을 죽였죠. 나머지는 여기 이 친구가 지원사격으로 해결했고요. 그러다가 내 어깨에도 구멍을 내버렸지만.”
지목당한 해병이 불퉁거린다.
“결과적으로 살았으면 된 거 아닙니까. 고맙다고는 못하실망정.”
“그래! 고맙다 이 새끼야! 진짜 고마워! 근데 니가 사격 못하는 건 사실이잖아!”
“아, 쫌!”
사족이 붙은 감사의 말과 억울한 반응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무수한 생사의 고비를 더불어 넘어와서 그런지 관계가 무척 친밀해보였다.
어느 장교가 덧붙였다.
“과열이 확실히 문제는 문제야. 특히 겁 많고 경험 적은 신병들에겐 더더욱 그래. 전투의 양상이 예전과 다르다보니……. 그렇다고 변종들을 상대하는 싸움에서 소총의 연사기능을 제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번에도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나 동조하는 다른 의견들이 이어지진 않았다. 공보처 장교들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들을 지어보인 까닭이었다. 무기체계에 대한 불만 또한 군의 신뢰도를 깎아먹는 요소. 하물며 그 불만이 영웅들의 중대에서 제기된다면 한층 더 그러하다.
겨울도 동의했다. 장교의 말처럼, 예전, 즉 사람과 싸우던 시절에 비교해 전투의 양상이 판이하도록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변종들의 공세는 이쪽을 압도하는 숫자가 기본이니까.’
게다가 그 숫자로 미친 듯이 달려들지 않던가. 인간 이상의 내구성과 인간 이상의 속도. 여기서 만들어지는 복합적인 두려움은, 싸움에 임하는 병사들의 감각을 왜곡시킨다. 체감 상 적아의 거리가 실제보다 짧게 느껴지는 것. 그러므로 그들은 정신없이 연사를 긁어댄다.
헌데 제식 소총(M4)의 단점 중 하나가 빠른 과열이었다.
과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탈레반의 야습에 대응하다가 총열이 터져 낭패를 겪을 뻔했던 사례가 존재했다. 은엄폐를 반복하며 쏘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짧고 격렬하게 마련인 변종들과의 교전에선 훨씬 더 위험성이 높았다.
해병 하사가 언급한 쿠킹 오프도 마찬가지. 이건 주로 장탄수가 많은 지원화기에서 발생하는 문제지만, 소총이라고 해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다.
‘특히 소음기를 결합해 사용한다면 말이지.’
전투 중의 겨울이 병사들의 총기상태에 괜히 주의를 기울이는 게 아니었다.
에머트 대위가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D.C에서 열린다는 무기박람회가 기대되는군.”
겨울도 향후의 일정에 관련하여 통보받은 사항이다.
“육군협회(AUSA)가 주관하는 방역전쟁 엑스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수훈식 다음에 둘러볼 기회가 있을 거라고 하던데, 귀관도 참석하나?”
“예. 물론입니다.”
“거기서 뭔가 개선된 물건들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 개인화기든, 전차든, 장갑차든……. 전선이 안정화된 만큼 주구장창 험비만 찍어낼 필요는 없을 테니. 슬슬 생산라인을 변경할 여유가 생기겠지.”
육군협회 엑스포는 모겔론스 이전부터 신무기 전시회에 가까운 행사였다.
이에 관련해서 이미 겨울에게 명함을 건넨 군수회사 관계자도 있었다. 비록 공식적인 권한은 없을지언정, 유명한 전쟁영웅이 자사의 제품을 높게 평가해줄 경우 실제로 채택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인 까닭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무기회사가 종종 시민들을 상대로 광고를 내기도 한다.
조찬이 무르익을 즈음, 겨울은 많은 사진을 찍고 많은 악수를 나누고 그보다 더 많은 유혹을 받았다. 그 유혹들은 개인적인 것과 공식적인 것으로 나누어졌다.
“5천만 달러요?”
겨울이 사뭇 놀랍다는 듯이 반응하자, 민간군사업체(PMC)의 중역이라는 자가 미소 지었다.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계약금만 5천만 달러입니다. 추후 전역, 혹은 퇴역을 하게 되었을 때 우리 유나이티드 시큐리티 서비스에서 3년간 재직하겠다는 내용으로 계약서를 작성해주신다면, 한 중령님의 계좌에 당장이라도 5천만 달러가 입금될 것입니다.”
중역은 거듭 5천만 달러라는 액수를 강조했다.
‘내가 거절할 거라고 확신하고 지르는 제안인가?’
겨울로선 이런 의혹을 품는 게 당연했다. 귀를 막고 살지 않는 한, 군사업체의 중역쯤 되면 겨울의 성향과 정치적 장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을 텐데…….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이라면 벌써 성공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이런 제목의 기사가 뜰 것이다. 한겨울 중령, PMC로부터 거액의 계약을 제안 받다. 큰 금액일수록 화제가 될 가능성도 높았다.
“그 전에 내가 전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시나요?”
겨울의 질문에 중역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답한다.
“그럼 뭐, 기부한 셈 치지요.”
“…….”
“하하. 너무 노골적으로 말씀드리는 느낌이지만……. 그땐 조금 비싼 광고비를 지출한 셈 치면 됩니다. 우리 회사는 항상 최고의 고객들과 거래하지요. 그리고 당신처럼 신의 사랑을 받는 분께서 쉽게 전사하실 것 같지도 않고 말입니다.”
“신의 사랑이라니…….”
“죽을 뻔한 순간을 몇 번이나 극복하지 않으셨습니까? 행운도 실력입니다.”
“…….”
“구미가 별로 안 당긴다는 표정이시군요.”
“솔직히 그렇네요. 언제가 될지 막연하기도 하고요.”
“흠. 하기야 2백 3십만 달러를 쾌척하신 분이니…….”
2백 3십만 달러는 겨울이 국방성금으로 내놓은 선물 매각금을 뜻했다. 본래는 그보다 많았으나, 중개업체의 수수료와 기타 제반비용을 제하고 남은 것이 그 정도 되었다.
말끝을 흐렸던 중역은 다시 한 번 미소 지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십시오. 당신의 앞날을 감안하더라도 의외로 괜찮은 경력이 될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회사는 최고의 고객들과 거래하거든요. 그 인맥과 경험을 토대로 중령님 본인이 창업을 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난민들의 일자리도 마련해주고, 이쪽 업계에서 그들의 처우도 보장해주는……. 이야, 이거 정말 괜찮군요.”
스스로 감탄하는 그의 모습에, 이번에야말로 겨울은 의혹을 감추지 않았다.
“세상에 설마 경쟁업체가 등장하길 바라는 회사가 있을까 싶네요.”
“이런.”
군사기업의 중역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귀가 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이쪽 사업은 결국 거쳐 가는 관문에 불과하겠지요. 우리는 몇 년 만 견디면 됩니다. 보통 계약 기간이 그 정도 되기도 하고요.”
거쳐 가는 관문이라는 말에서, 겨울은 무슨 맥락인지 이해했다. 돈이든 인맥이든 회사를 경영한 경험이든, 정계에 입문할 밑천을 마련하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공직자가 사기업의 수장을 겸하지 못하는 건 사실. 허나 겨울이 빠진다고 해서 이미 세워진 회사가 그냥 없어지진 않을 터였다.
‘어차피 급할 것도 없지.’
겨울은 판단을 미루기로 했다.
“연락처를 남기시면 생각해보고 전화 드리죠.”
“그렇게 하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중역이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USS 바이스 프레지던트, 클리퍼드 돈 로빈슨. 한국의 직급으로 비유하자면 상무쯤 되는 사람이다.
조찬이 끝난 다음, 영웅들의 중대는 도시의 주요 관광지를 한 번씩 돌아보았다. 물론 짐작했던 대로 단순한 관광과는 거리가 멀었다.
헬기를 타고 도시 전경을 둘러보며, 겨울은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굉장히 인상적인 장벽이네요. 시가지 내 안전대책도 확실하게 마련되어 있고……. 감염 관련해서는 사고가 터지기 어렵겠어요.”
사고가 터지기 어렵다. 지역 유지들이 원했던 게 바로 이 한 마디였다.
“전엔 방역전선 투어도 있었다고 했죠?”
이건 진짜 겨울의 질문이다. 가이드가 끄덕였다.
“예! 경비행기를 타고 서쪽이나 남쪽으로 쭉 날아가서 구경 좀 하다 돌아오는 거지요. 안전지역 상공을 벗어나진 못해도 꽤나 인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귀신의 집이랑 비슷한 상품이었다고 봅니다. 그런 걸 원하시는 분들 덕분에 그동안 굶어죽지 않았지요. 여성분들은 대체로 만족하셨지만, 남성분들은 많이들 실망하시더군요. 하하하!”
헤드셋에 대고 시원하게 웃는 가이드는 민간인임에도 전투복과 흡사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어느 분야에서든 생존주의적인 요소가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디지털 위장 패턴이 들어간 미니스커트가 출시되기도 했다.
도시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 돈 헬기는 이윽고 동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다 왔군요. 잠깐이나마 모시게 되어 기뻤습니다.”
겨울은 가이드에게 작별을 고했다. 돌아가는 길엔 헬기를 타지 않는다.
“엑셀!”
프리시안 품종의 검은 준마는 겨울의 냄새를 맡고 극도로 흥분했다. 고삐를 붙잡고 있던 사람을 뿌리치고 달려오더니, 소변을 흘리며 펄쩍펄쩍 주변을 뛰어다닌다.
기병행진을 위해 먼저 도착해있던 이들이 각자 자신의 말을 몰아왔다. 곤란해하는 겨울을 보고 에머트 대령이 웃는다.
“신기한데? 말이 무슨 개처럼 구는군.”
하긴, 보통 주인은 아닌가. 라는 중얼거림. 동물도 생사고락을 함께한 주인에겐 좀 더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겠는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