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63)
00360
=========================================================================
#화려한 초대 (12)
「떠나간 용사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이었습니다.」
긴 추모식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자연스러운 시선처리와 절제된 음성.
「새까만 죽음의 수위가 위태로운 삶의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 평범한 사람은 누구라도 뒷걸음질을 쳤을 바로 그 순간에, 가장 명예로운 이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숭고하고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묻겠습니다. 이 나라가 진정 신의 뜻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One nation under God, indivisible)라면, 그들의 희생을 어찌 은총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이 어찌 사람이 행하는 구원이 아니라 하겠습니까?」
대통령이 빌려온 표현은 국기에 대한 맹세(pledge allegiance)의 일부였다. 비록 종교적이지만, 익숙함으로 인하여 믿음이 다른 이들의 반감을 최소화할 인용이라고 해야 할까.
동시에 국론을 분열시키는 종교 세력에 대한 호소이기도 하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아름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는 지금 더없이 깊은 상실감을 느낍니다. 그토록 고결한 사람들이 더 이상 같은 세상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슬픔을 슬픔으로 끝내야만 합니까? 그들이 지켜낸 세상에서 살아남은 우리……. 그들에게 앞으로의 모든 시간을 빚진 우리가 이 용사들에 대한 경의로서 하나 되어 그들이 지켜낸 바를 계속해서 이어나간다면, 적어도 그 마음만은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이 묘지에 누운 영웅들에 대한 가장 가치 있는 헌화(獻花)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객석으로부터 고조된 호응이 터졌다. 유가족 중의 한 명이었으며, 대통령은 그에 대한 목례로 말을 잠시 쉬었다. 이 틈에 여기저기서 연단을 향해 간헐적인 기립박수를 보낸다. 거듭 감사를 표하고서, 대통령이 추도를 재개했다.
「고쳐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가 바로 영웅들의 조국입니다. 그러므로 조국을 지키려는 노력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용사들의 묘비에 바쳐질 향기로운 꽃다발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누구의 노력인가는 중요치 않습니다. 피부색과 종교의 차이에 구애받지 않을 견고한 연대가 있을 따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온갖 고난들이 우리에게 험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떠나간 용사들은 각자의 천국에서 미합중국이 부르짖는 응답을 들을 것입니다.」
다시금 갈채가 쏟아졌다.
이 와중에 겨울은 한 순간 치솟았다가 가라앉는 「위기감지」를 느꼈다.
‘저격?……아니면 폭탄?’
어느 쪽이든, 범인은 테러를 시도하기 직전에 제압당한 모양이다. 고개를 돌린 겨울은 시크릿 서비스 요원들로 추정되는 이들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겨울을 비롯한 명예훈장 수훈자들이 앉은 자리 주변에도 경호 인력이 조용히 늘어났다. 겨울은 긴장된 몸을 풀며 가벼운 피로감을 느꼈다. 그렇잖아도 대통령이 쓰러지지 않을까 초조하던 참이었기에.
「명예로운 희생을 기리는 자리에서 새삼스럽게 깨닫건대, 거저 주어지는 구원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묘지에 부는 바람이 대통령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우리는 언제나 자격을 증명해왔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결코 완벽하진 못했으나, 그래도 많은 과오를 극복하려 애쓰며 올바른 가치를 지키고자 싸웠지요. 잘못된 길을 수도 없이 걸었을지언정 바른 길을 찾으려는 열망을 잃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은 노예제에 대한 잘못된 믿음도, 유럽과 아시아를 휩쓴 전체주의의 물결도, 세상을 반분했던 냉전의 대립도, 오늘날 찾아온 종말의 위기조차도 끝끝내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모든 승리가 그저 주어진 구원일 뿐이었습니까?」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들.
「그렇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영웅들이 보여주었듯이, 또 여러분께서 공히 알고 계시듯이, 우리는 스스로의 자유의지와 스스로의 용기와 스스로의 고결함과 스스로의 선택으로써 은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다리고만 있어선 안 됩니다. 바라고만 있어선 안 됩니다. 다른 이들로부터 빼앗을 생각을 해선 안 됩니다……. 영웅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영웅들의 발자취를 쫓읍시다. 어느 누군가에겐 바로 당신이 구원일 것이며, 그 누군가가 언젠가는 다시 다른 누군가……어쩌면 당신의 구원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한, 영웅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한, 이 나라가 명예를 잊지 않는 한, 하나님께선 우리가 하는 일을 좋아하실 것입니다.」
미국 국새에 각인된 문장이 섞여있었다. 객석 일부에서 아까와 같은 기립박수가 일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좌중을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과 함께 국기에 선서하고 싶습니다. 부디 함께해주시겠습니까?」
잠시 기념극장 전체가 어수선해졌다. 겨울도 자리에서 일어나 연단에 걸린 성조기를 향해 선다. 대통령의 기준으로는 측면이었고, 객석에서는 정면에 가까운 좌측이었다. 대통령을 필두로 참석자 모두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나는 미국 국기와 그 국기가 상징하는, 신의 가호 아래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국가, 온 인류를 위한 자유와 정의가 함께하는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온 인류를 위한, 이라는 표현은 기존의 서약에 없는 부분이었다.
‘본래는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liberty and justice for all)……였던가?’
겨울의 주변에서 약간의 술렁임이 지나갔다. 그러나 결코 반감은 아니었다. 아는 바와 다르다보니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당혹감이었을 따름. 원문의 모두는 해석하기에 따라 미국 국민으로 한정될 수도 있고, 인류 전체로 볼 수도 있다. 보통은 전자의 해석이 더 우월하다.
선서를 마친 대통령이 정면으로 돌아섰다.
「고맙습니다, 미국. 그대가 지키는 공화국의 자유와, 그대가 지키는 시민들의 정의에 감사드립니다. 메인에서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50개 주의 밝은 별이 영원토록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떠나간 용사들을 기억하는 우리가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
「이상입니다.」
추도연설이 끝나자 무수한 갈채가 기념극장을 가득 메웠다.
겨울은 연설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대통령의, 혹은 참모진의 고민이 많았겠다고 느꼈다.
‘굳이 50개주의 별을 언급한 건……배타적인 사람들을 달래기 위한 신호였겠지.’
완고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국의 정체성을 너무 건드려도 곤란하지 않겠는가. 이런 성향이든 저런 성향이든, 대통령은 그들 모두를 대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쨌든…….
대통령은 한 시간에 달하는 행사를 무난하게 견뎌냈고, 한 차례의 위기도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 없이 무사히 넘어갔다.
“앤.”
이동하는 시간에, 겨울은 앤에게 물었다.
“방금은 무슨 일이었어요?”
“무슨 일이라뇨?”
“내가 뭘 묻는지 알잖아요.”
시치미를 떼려던 그녀는, 이윽고 주변을 살피고는 한숨을 곁들여 속삭였다.
“어떻게 알았어요?”
“느낌과 분위기로요.”
“정말이지…….”
“혹시 내가 알아선 안 될 사안이라면 무리해서 알려줄 필요는 없어요.”
“으음.”
관자놀이를 누르던 앤이 재차 긴 숨을 내쉬었다.
“대외비이긴 한데, 그보다는 겨울을 괜히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럼 됐어요.”
겨울은 간단히 물러났다. 허나 앤은 스스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눈치를 챘으니 말을 아끼는 게 오히려 독이겠군요. 네.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저격을 시도한 놈들이 있었어요. 「언약의 일곱 군단」 출신으로 추정하는 중이에요.”
“이름을 들어보면 종교단체 같은데, 설마 벌써 배후를 자백했어요?”
“그럴 리가요. 특유의 문신이 있었을 뿐이에요. 이게 위장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지만, 위장이라면 치밀한 위장이겠죠. 겉보기만 흉내 낸 게 아니거든요. 목덜미에 새기는 군번줄 문신 속의 번호와 성경 구절의 대조라든가, 그 외의 상징들의 배치 등, 외부인이 쉽게 알기 어려운 디테일이 정확하게 일치해요. 우리도 잠입수사를 통해 확보한 정보들인걸요.”
“언약의 일곱 군단이라…….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기시감이 느껴지네요. 남부 순방 중에 비슷한 문구를 봤던가 싶기도 하고.”
“봤을 수도 있겠네요. 이놈들이 아니더라도, 신(新)사도 운동(New Apostolic Movement) 쪽 교회들은 유사한 표현을 공유하니까요. 일곱 산의 탈환, 새로운 예언자와 사도의 등장, 성전의 건설과 종말, 교회권력의 지상 통치 등…….”
“전에 말했던 불경스러운 연합의 일부인가요?”
앤이 골치 아픈 표정으로 도리질을 쳤다.
“아뇨. 그들하고는 대립각을 세우는 파벌이에요. 우리가 갈등을 유도하기도 했죠.”
즉 이이제이의 수법을 썼다는 뜻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일부러 내버려둔 것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잠입수사관의 존재를 눈치 챈 모양이네요. 이번 일에 대한 정보가 너무 늦게 흘러나왔어요.”
“그 수사관은 무사하고요?”
“글쎄요. 알아봐야죠. 지금의 난 당신의……명예훈장 수훈자들의 경호 문제가 우선이라서요.”
“수사국도 고생이 많겠네요.”
겨울의 위로에 앤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게요. 역병 이전엔 그래도 꽤나 상식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막상 이런 시대가 되고 나니 중세에나 어울릴 법한 사람들이 자꾸자꾸 튀어나오는군요.”
겨울은 남부에서 어쩌다 접한 선교용 책자의 내용을 떠올렸다. 표지에 일곱 개의 산봉우리가 그려진 책에선 변종의 무리를 요엘의 첫 번째 군대, 기름 부음을 받은 메뚜기 떼 등으로 칭했다. 이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주님의 임재하심 안에서 참된 신앙으로 결속된 두 번째 군대를 결성하여 새로운 사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한편 내부의 경계 대상이던 엘즈워스 상사는 현재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만약에.”
고민하던 겨울이 물었다.
“오늘 암살 시도가 성공했다면……. 그러니까, 대통령께서 사망하셨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잠시 생각에 잠긴 앤은 팔짱을 끼고 손가락으로 상박을 톡톡 두드렸다.
“……정부 기능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거예요.”
정부 존속에 관한 조치는 역병이 처음 확산될 때부터 철저하게 강화되어 왔을 것이었다. 대통령이 죽으면 부통령이, 부통령이 죽으면 하원의장이, 하원의장이 죽으면 그 다음 서열의 승계자가 즉각적으로 정부 수반의 역할을 이어나갈 터였다.
“그러나.”
앤이 부연했다.
“시민들의 불안과 혼란을 완전히 막진 못했겠죠. 그 틈을 기회라고 생각하는 모자란 잡것들도 분명히 있었을 거고요. 아니었으면 애초에 암살 따위 시도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상식적인 선상의 예측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지만요.”
미소에서 쓴맛을 지우는 그녀.
“위험하긴 했어도 사전에 막아냈잖아요? 수사국이든 국토안보부든 가만히 앉아서 놀고 있는 거 아닙니다, 중령님.”
“정보국은요?”
“정보국은……. 잘 모르겠네요.”
이 시점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두 분, 뭔가 흥미로운 대화를 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저도 좀 끼워주시죠.”
겨울이 그를 돌아보았다.
“탤벗 요원?”
“오랜만입니다. D.C에서 뵙자고 했었지요?”
인상 좋은 혼혈 흑인이 반갑게 웃음 짓는다. 겨울과 악수를 나눈 그는 앤을 보더니 와우, 하고 익살스런 놀라움을 표했다.
“설마 깁슨 요원입니까?”
“……네. 반가워요, 탤벗.”
“예. 근데 이거 참, 대단하군요.”
반쯤 농담일지언정,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겨울의 특수화장을 담당했던 기술자의 감탄이었다. 조금 부끄러웠는지 앤이 입을 꾹 다문다.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겨울이 탤벗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에요?”
그저 얼굴 보겠다고 나온 느낌은 아니었다.
“일단은 피자 배달 차 나왔습니다.”
“……피자? 어떤 비유가 아니라, 진짜 피자요?”
아리송하게 고개를 기울이는 겨울의 모습에 탤벗이 짧은 웃음을 터트린다.
“어떻게 그동안 한 번도 주문을 안 하셨습니까? 몇 번을 시키든 무료인데 말입니다. 코왈스키도 주문 내역을 확인하고 섭섭해 하더군요. 아예 잊어버리신 게 아니냐면서.”
“설마 잊었을 리가요. 하지만 아무리 공짜여도 CIA에다가 피자 달라고 하기는 좀……그렇잖아요?”
“요원들의 목숨 값으로 적립하신 마일리지가 있으니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겨울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날 보러 온 진짜 이유는 뭐죠? 외준 건 고맙지만, 이렇게 바쁠 때 중요한 용건도 없이 인사나 하러 왔을 것 같진 않아서요.”
“이런. 왠지 울고 싶어지는군요.”
농담처럼 받아도 아니라곤 하지 않는다. 눈으로 그의 삼가는 시선을 좇은 겨울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앤이……깁슨 요원이 들으면 곤란한 내용인가요?”
“두 분 관계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제 앞에선 애칭으로 편히 부르셔도 됩니다.”
“그럴게요. 아무튼 대답은?”
추궁하는 듯 한 어조에 망설이던 탤벗이 미묘한 고갯짓을 했다.
“공식적으로는 예……라고 해야겠습니다만, 음, 원하신다면 깁슨 요원과 함께 들으셔도 좋습니다. 수사국에 알려진다고 차질이 빚어질 일은 아니니까요.”
“그럼…….”
“자세한 건 호텔로 돌아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겨울은 방탄 차량에 앤과 함께 동승했고, 뒤쪽에 중앙정보국이 보낸 차량이 따라붙었다. 워싱턴 D.C는 일방통행로가 유난히 많은 도시였으나, 군과 경찰이 도로를 통제했기 때문에 차량행렬은 호텔까지 최단경로로 이동할 수 있었다.
CIA 위장 회사의 피자도 정확히 도착 시점에 배달되었다. 한 개 중대 몫이라 배달에 동원된 차량도 많고 차량이 쏟아내는 박스의 숫자도 많았다.
“배달 중에 차량 안에서 굽는 식인지라 이보다 더 따끈할 순 없을 겁니다.”
탤벗의 말에 겨울이 당혹감을 내비쳤다.
“난 이야기를 먼저 나눌 줄 알았는데요.”
“식사를 미룰 만큼 다급한 용건은 아닙니다. 아니면 먹을 때 다른 사람들과 적당히 떨어진 자리를 잡아도 되겠고요.”
“최소한 밥맛 떨어질 일은 아니라는 말이네요?”
“그렇지요.”
전 독립중대원들은 영문 모를 피자 배달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기뻐하는 반응들이었다. 배달을 나온 직원들은 이를 겨울이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으므로 중대원 모두가 겨울에게 한 번씩 인사를 하고 피자를 받아갔다.
“잘 먹을게요, 대장님!”
“감사합니다!”
“작은 대장님 최고!”
“…….”
겨울은 어색한 침묵으로 인사를 받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