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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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초대 (13)
중대원들이 피자에 환호하는 것은 순방 일정 간 워낙 호화로운 식사만 해온 까닭이었다. 생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고급요리의 향연도 좋지만, 예전부터 좋아하던 먹거리에 대한 그리움은 과거에의 향수와도 맞닿아 있는 것이기에.
정 원한다면 호텔의 컨시어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었을 터. 허나 중대원들은 돈을 아끼고자 했다. 모두에게 브래넌 의원의 제안을 전달해둔 탓. 따라서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카지노를 이용한 이가 드물고, 큰돈을 써버린 이는 더더욱 드물었다.
여하간, 즐거워하는 알파중대원들을 본 탤벗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렇게들 좋아하시니 대접하는 입장에서도 꽤나 뿌듯하군요.”
그리곤 겨울과 앤에게도 권한다.
“식기 전에 드시지요. 어떤 취향이라도 만족하시도록 최대한 많은 메뉴를 준비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때 들리는 유라의 아쉬운 목소리.
“어? 하와이안……. 파인애플 피자가 없네.”
피자가 펼쳐진 테이블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그녀는, 끝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눈치였다. 겨울이 고개를 기울였다.
“없는 종류도 있나본데요?”
웃음기를 지운 탤벗이 진지하게 답했다.
“중앙정보국은 피자를 모욕하지 않습니다.”
“…….”
“농담, 농담입니다. 중령님은 마트 같은 곳을 갈 기회가 없으시니 잘 모르시겠군요. 요즘 파인애플이 품귀현상을 빚고 있습니다. 대체 산지에 말썽이 생겼답니다. 본토 외에도 점점 더 많은 섬들을 안전지대로 확보하고 있는 만큼 오래지 않아 해결될 문제지만……. 당장은 그렇습니다.”
겨울은 잠시 유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로 크게 달라진 기색이 없다. 눈이 마주칠 때면 간혹 불투명한 미소를 지어보이긴 했으나, 단지 그 뿐이었다. 고로 보다 큰 걱정거리는 저 바깥 세상에 있었다.
시선을 거둔 겨울이 탤벗에게 묻는다.
“해상운송은 원활한가요?”
“예. 최선을 다한 구축작업에도 불구하고 특수변종 멜빌레이의 개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긴 하나, 일반적인 화물선에도 어군탐지기와 기뢰투사기를 탑재하는 추세인지라 현재로선 큰 위협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원들의 무장 및 훈련도 강화되었고요. 여기에 대해선 딱히 감추는 게 없습니다.”
꽤나 낙관적인 태도였다.
앞서 몇 차례 되새겼던 바와 같이, 변종들의 전투능력 강화는 인류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다. 고로 애당초 무인도여서 역병 확산 이후 상륙한 사람들이 전부였거나, 주민들이 일찌감치 철수 혹은 전멸한 섬들의 변종집단은 미군에게 있어 그리 큰 위협이 안 되었다. 미국 정부는 이런 섬들을 접수하여 플랜테이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탤벗이 언급한 대체 산지의 실체다.
이는 일반 대중에게도 공개되는 내용. 다만 겨울은 정보국 요원에게 그것이 온전한 사실인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그래도……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대응하기가 어려워지겠지.’
바다괴물들은 육지의 괴물들에 비해 견제하기가 어렵다. 숫자는 앞으로도 늘어만 갈 것이다. 위안이라면 이놈들도 어쨌든 특수변종인지라, 일반 변종들처럼 쉽게 번식하진 못한다는 점. 과연 이 세계관의 인류는 때가 늦기 전에 방법을 찾을 수 있을는지.
얼마 전 식중독에 걸린 범고래 떼가 해변으로 밀려왔다는 뉴스도 있었다.
여기서 걱정해봐야 소용이 없을 일이지만.
사색을 끊은 겨울이 딥-디쉬 스타일의 피자를 접시에 덜었다. 풍부한 토핑이 섞인 치즈와 토마토소스는 제 질량에 못 이겨 뭉글뭉글 흘러내릴 정도로 뜨겁고 묵직했다. 잘라낸 단면으로부터 수증기처럼 진한 향이 훅 올라온다. 두꺼운 치즈가 끝도 없이 죽죽 늘어지는 바람에, 겨울은 나이프로 몇 번을 거듭 감아올려야 했다.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치즈와 토마토의 풍미가 입안을 꽉 채우는 듯한 식감이 일품. 한 조각만으로도 한 끼 열량을 채우기에 충분할 느낌이다.
앤은 조금 망설이다가 뉴욕 스타일의 아주 얇은 피자를 골랐다. 그러나 거의 시늉하듯이 한 입 먹고는 그대로 식기를 내려놓았다. 겨울의 접시가 다 비도록 다시 손대는 일이 없었다.
“입맛이 없으십니까?”
탤벗의 질문에 앤이 애매한 태도로 긍정했다.
“그리 당기진 않네요. 천천히 먹죠.”
“흐음. 이 시간이면 제법 허기가 지실 텐데…….”
뭔가 낌새를 챈 것처럼 가만히 바라보던 탤벗은 이윽고 짓궂은 미소를 머금었다.
“아아, 그렇군요. 음, 이해합니다. 하하.”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을 흘기는 앤.
“괜한 소리 말고 용건이나 말씀하십시오, 탤벗 요원.”
“이런. 식후에도 충분한 시간이 남지 않겠습니까?”
짐짓 곤란한 체 하던 CIA 요원이 겨울에게로 눈을 돌렸다.
“두 가지, 한겨울 중령님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드시면서 들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은 가볍게 들을 것이 못 되었다.
“어느 쪽을 먼저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하던 그는 이렇게 물었다.
“중령님. 혹시 페어 스트라이크 작전 중 접촉했던 포인트 찰리 854……그곳의 수장, 구 중국 인민해방군의 시에루 해군중장을 기억하십니까?”
멈칫. 겨울은 대답하기 전에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정장을 입고 귀에 리시버를 낀 요원들이 일정 간격으로 서있었으므로 알파중대원들은 자연히 그 건너편에 있었다. 이쪽에서 오가는 대화는 저들끼리 떠드는 소리에 파묻힐 것이다.
겨울이 접시를 살짝 밀어내며 답했다.
“당연히 기억하죠. 핵심 타겟이었잖아요.”
“그 사람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당황한 겨울처럼, 앤 역시 적잖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시에루 중장? 그녀가 살아있었습니까? 당신들이 신병을 확보하고 있고?”
“신병은 우리 소관이 아니지만, 예. 살아있습니다. 핵 보복이 가해지기 전에 가까스로 만을 벗어났나 봅니다. 이후 연료 부족으로 표류하다가 칼 빈슨 전단에 항복했다더군요.”
겨울은 그날 새벽, 끔찍하게 혼란스러웠던 바다를 곱씹었다. 미 해군이 연안에 기뢰를 잔뜩 부설하는 동안 만에 갇힌 구 인민해방군도 가만히 놀고 있지는 않았다. 기뢰지대를 돌파할 수단으로서 선저에 스티로폼을 가득 채운 화물선을 여러 척 준비해두었던 것이다.
미 해군은 만 입구, 골든게이트 봉쇄에 실패했다. 중과부적. 쏟아져 나오는 배가 많아도 너무 많았을 테니까.
이는 현 시점의 각 정보기관들이 처한 현실 그대로였다. 하나하나는 수월하게 끌 수 있을 불씨들임에도, 너무 많이 흩어져 있어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겨울이 묻는다.
“그 분이 날 보겠다는 이유가 뭔가요? 아니, 이 요청을 왜 전달해주느냐부터 들어야겠네요.”
중장이 단순히 포로로 잡혔을 뿐이라면 굳이 정보국이 나서서 연결해줄 동기가 없잖은가. 끝까지 위장신분으로 속였으니, 좋은 감정을 품었을 리도 만무한데.
‘즉 중장에게 뭔가 쓸모가 있다는 뜻.’
그 쓸모가 과연 무엇일지.
“판단이 참 빠르시군요.”
볼을 긁적이는 탤벗.
“본인이 다 뒤집어쓰겠답니다.”
“설마…….”
CIA 요원은 겨울이 내비치는 의구심을 긍정했다.
“그겁니다. 핵 테러의 주요 공모자로서 법정에 서겠다는 거죠.”
“가능합니까?”
미간에 주름을 잡은 앤의 질문이었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례이옌리에 소장을 비롯한 몇몇 중국군 장성들이 그녀의 혐의를 증언할 예정입니다. 그리고……양용빈 상장의 잔당 소탕은 거의 다 완료되었지요. 생포된 포로들 가운데 일부가 증인 역할을 수락했습니다. 법정에서 필요한 진술을 해주기로 말입니다.”
“…….”
“시에루 중장은 양용빈 상장의 심복으로서 핵 공격을 준비한 사람이자, 양용빈 상장의 죽음 이후 잔당을 이끌어온 지도자가 될 겁니다. 의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짜놓은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충분한 설득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머지는 중장 본인이 자신의 배역을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에 달려있겠죠.”
“이거……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면 후폭풍이 엄청나지 않겠어요? 정보가 새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더라도 만약의 경우라는 게 있잖습니까.”
겨울이 떠올린 우려를 앤이 먼저 말하자, 탤벗이 이에 부연했다.
“그래서 그 부담은 현 정권이 지고 갑니다. 재판 자체는 차기 행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이어지더라도, 증언과 증거를 조작한 건 어디까지나 지금의 맥밀런 행정부인 것이지요.”
대통령은 퇴임한 뒤에도 여차하면 정치적 희생양이 될 각오를 한 셈이었다. 분열된 시민사회를 다시 봉합할 수만 있다면 그쯤은 얼마든지 감수하겠다고.
이번엔 겨울이 질문했다.
“시에루 중장이 이 계획을 쉽게 받아들이던가요?”
“뜻밖이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으나, 처음 제안한 사람이 바로 중장 본인입니다.”
“음…….”
그렇게까지 뜻밖은 아니었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물었던 것이므로. 다만 시에루 중장의 됨됨이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이긴 했다. 그녀의 울타리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그녀가 품었던 포부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 미래였으므로.
앤이 미심쩍어한다.
“무슨 근거로 그걸 믿었죠?”
“사람이 아니라 기계와 약을 믿었습니다.”
거짓말 탐지기나 자백제 같은 수단을 활용했다는 의미였다. 진심으로 희생을 각오한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미국에 엿을 먹이겠다는 악의의 발로인지. 그것만 구분해내면 된다. 계획 자체는 중국계 시민 및 난민들과 연방 정부 모두의 이익이었다.
탤벗이 겨울을 응시했다.
“정 부담스러우시다면 거절하셔도 무방합니다. 서로 속고 속은 사이에 이제 와서 얼굴을 마주하기도 불편하실 테고……그 여자 역시 큰 기대를 거는 눈치는 아니었거든요. 중령님을 못 만난다 한들 갑작스레 태도를 바꾸진 않으리라 봅니다. 그저 의욕을 얼마나 내주는가는 별개의 문제인지라 중령님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고요.”
일이 의도대로 잘 풀린다면 세계관의 미래에 상당한 안정감이 더해질 터였다.
잠시 고민하던 겨울은 첫 번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아요.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빠른 승낙이 의외였던지, 탤벗이 눈을 깜박거렸다.
“어, 하루쯤 시간을 두고 결정하셔도 괜찮습니다.”
“아뇨.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
“그렇습니까?”
“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안 만나면 줄곧 신경 쓰일 것 같네요. 내게 무슨 소릴 할지도 궁금하고요. 사실, 전에 봤을 땐 꽤 괜찮은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되어 유감스러울 정도로요.”
“그러시다면야…….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에 대해선 다시 정식으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죠.”
감사를 표하는 정보국 요원에게 겨울이 다음 용건을 물었다.
“그건 그렇고, 아까 요청사항이 두 가지라고 하셨는데, 남은 하나가 뭔가요?”
탤벗은 길어지는 대화 속에 식어가는 피자를 유감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겨울이 보기엔 망설임을 감추고자 만들어낸 몸짓이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먼저보다 어려워할까. 시선을 의식한 그가 한숨 닮은 심호흡을 하고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본격적으로 말씀을 드리기에 앞서 우선 이것부터 여쭤봐야겠군요. 실례가 될지도 모를 질문이니 미리 사과드리겠습니다.”
“밥맛 떨어질 이야기는 아니라더니, 먹으면서 편히 들을 이야기도 아니었나보네요.”
“하하…….”
멋쩍게 웃은 탤벗이, 또다시 뜸을 들인 끝에, 정말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중령님.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떠셨습니까?”
뭐야 이건. 겨울은 껄끄러운 황당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