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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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초대 (14)
기본적인 예의를 떠나, 병든 시체들이 뛰어다니는 세계에선 금기라고 해도 좋을 질문이었다. 사라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시대인가. 하물며 난민 출신인 겨울이 상대임에야.
앤의 낯빛이 엄하게 굳어졌다.
허나 이유가 있어서 묻는 것일 터였다. 한 순간 불가피하게 바깥세상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렸던 겨울이었으되, 명치 어림이 묵직한 돌에 짓눌리는 불편함은 잠깐 사이에 사라졌다. 착각이다. 생전과 사후의 경계가 이런 식으로 무너지는 경우는 없다. 깊게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숨 한 번으로 속을 침착히 한 겨울이 생각했다.
‘왜 그런 걸 묻느냐는 반문은……무의미하겠구나.’
그 “왜?”에 대한 답은 본격적인 용건이 될 테니까.
지력보정이 겨울에게만 보이는 문자열을 출력했다. 스스로의 배경에 대하여 사전에 확정된 바 없는 사항은, 이러한 순간에 내리는 결정들이 실시간으로 반영되곤 한다.
어차피 종말 이후의 세계에선 생존한 가족이 없는 게 기본이었다. 또한 대부분의 사후가 그러하다. 그것이 가난한 자들의 수요이기에.
“결코 좋았다고는 못하겠네요.”
겨울이 느리게 말했다.
“이런 자리에서 자세한 개인사를 털어놓기는 부담스럽고……. 그 분들을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처지가 슬프지는 않다고만 해두죠. 딱히 그립지도 않고. 이 정도면 대답이 될까요?”
이로써 겨울의 정보가 갱신되었다. 팔짱을 낀 앤의 눈빛에 깊은 안타까움이 스쳤다.
“아, 물론입니다. 곤란한 질문에 답변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긴장을 풀고 안도하는 탤벗에게 앤이 묻는다.
“혹시 겨울의 부모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까?”
“그런 작자들이야 예전부터 많았죠. 남들을 속이는 사기꾼들과 자기 자신조차 속이고 마는 거짓말쟁이들. 결국 누구 하나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이번엔 어떤데요?”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오늘은 다른 이유에서 여쭤봤던 겁니다.”
주고받는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아무래도 겨울이 모르는 사이에 가족을 사칭하는 이들이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유전자 감식이야 미군으로서 당연히 받는 건강검진의 혈액샘플이 있겠거니와, 최근 에스더와 교전을 치른 뒤에 감염여부를 확인하느라 뽑은 피도 있을 것이었다.
비단 겨울만이 아니라, 방역전선의 전사자들 및 실종자들의 혈육을 사칭하는 자들도 어지간히 많지 않겠는가. 난민구역에서 거짓 사실혼을 꾸미려는 시도가 있었듯이.
그러므로 관계당국에겐 일찌감치 일상적인 업무가 되었을 듯 하다.
겨울이 화제를 되돌렸다.
“그럼 이제 진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예.”
주억거린 탤벗이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저는 작전에 참가한 당사자가 아닙니다만, 우리 정보국은 과거 조금 특별한 형태의 비밀작전을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이란의 핵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 계획이었죠.”
“……이란? 사이버 공격?”
부모님과 중동 사이의 간극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
“지금 이게 대체 뭔가 싶겠지만, 일단 좀 더 들어보십시오.”
“…….”
“이 작전의 목표는 정교하게 제작된 악성코드를 이용하여 연구 현황을 감시하고 제어능력을 마비시키는 동시에 핵연료 농축시설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성공했죠. 두 차례에 걸쳐 보복을 받은 데다, 무차별적인 사이버 테러가 횡행할 우려 탓에 2차 공격을 실행하진 않았지만요. 그래도 결과 자체만 놓고 보면 고무적이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무기가 그 가치를 입증했던 것이니까요.”
“그래서요?”
“이후 우린 보다 진보된 형태의 악성코드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이미 한 차례 성공을 거둔 계획인지라 전보다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할당받았지요. 그러던 중에,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터졌습니다.”
점점 모르겠다. 겨울의 안개 같은 표정을 보고, 탤벗은 난처한 미소와 함께 설명을 이어갔다.
“그건 미처 대비하지 못한 또 다른 안보위협이었습니다. 방사능 오염이 북미 서해안까지 확산되는 와중에, 일본정부는 정보공개에 무척이나 비협조적이었죠. 때문에 백악관에선 실태를 파악하고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독자적인 감시체계와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악성코드를 심었군요.”
“맞습니다.”
탤벗이 긍정했다.
“다만 그 대상이 일본에 국한되진 않았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태평양과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발전소 및 기타 핵시설들의 내부 정보를 얻는 것이 목표였죠. 어차피 정보를 빼내는 용도로만 쓰면 들킬 일도 없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되어 흔적을 남기지 않는 코드였던지라……. 이 작전에선 잠재적인 적국과 전통적인 우방국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한국도 포함되어 있었고요.”
“그건, 그러니까.”
맥락을 눈치 챈 겨울의 눈이 가늘어졌다.
“모겔론스 확산 시점에서, 미국이 태평양과 대서양 연안 국가들의 원자력 발전소 전체를 제어할 능력이 있었다는 뜻이에요?”
“결코 전체가 아닙니다.”
혐의의 일부를 조심스럽게 부인하는 탤벗.
“그런 중요 시설들의 전산망은 외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정보국이 유효한 네트워크를 확보하려고 노력하긴 했어도, 모든 원전의 제어권을 손에 넣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역량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고요. 다만…….”
“다만?”
“한국의 경우 진척률이 아주 높은 편에 속했습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일본보다는 낮았지만 말입니다.”
이제야 확실한 그림이 그려진다. 겨울이 물었다.
“그걸로 인해 한국 정부와 마찰이 생겼나보네요?”
“맞습니다.”
“뭐, 국민들보다 원자력 발전소 보호를 우선시하라고 요구하기라도 했어요? 위급한 상황의 전력공급을 무기로 삼아서?”
“…….”
“정말로?”
가장 단순한 짐작이 정곡을 찔렀는지, 탤벗은 잠깐의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듣고 있던 앤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부분적으로는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탤벗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시 백악관에선, 그 많은 원전들을 방치하면 수십 년 내로 전 세계적인 재난이 닥쳐올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측이었지요. 인류가 극복해야 할 위기는 역병만이 아니라고. 유럽 방면은 그나마 변종들이 몰려오기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당장 함락 위기였던 아시아 지역은 사정이 급했습니다. 버티던 한국이 마침내 수도권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 그러니까 전투력을 절반 이상 잃었을 때, 결국 우리 작전의 최종단계가 실행되었습니다.”
연결망을 구축해둔 원자로들의 제어권한을 강탈했다는 말이었다. 전력이 끊어지면 군의 작전수행에도 차질이 빚어질뿐더러, 주요 거점의 유지 및 대피한 국민들의 생존에도 문제가 생긴다. 한국 입장에선 나중을 생각할 필요도 있다. 그렇잖아도 난민 수용에 있어서 일방적인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탤벗은, 자신이 진짜 관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변명처럼 덧붙였다.
“군이 절반이 넘는 전투력을 잃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진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알아요.”
겨울이 수긍했다. 여느 영화나 소설과 달리, 현실에선 어떤 부대가 병력의 2할만 잃어도 궤멸로 간주한다. 즉 미국이 처음부터 잔혹한 요구를 하진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 결정이 아니었다면 대부분의 발전소들이 적절한 조치 없이 버려졌을 겁니다. 자동화된 안전장치들이 있다곤 해도 어디까지나 한 순간 위기를 넘기게 해주는 수준이지, 오랫동안 관리 없이 내버려둬도 좋을 정도는 못 된다고 하더군요. 여러 사고 사례들을 보건대 그 장치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보장도 없었고요.”
“지금 상태는 어떤데요?”
“조치가 완료된 원전들에 한하여, 적어도 몇 년 쯤은 그대로 둬도 괜찮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일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말썽이 생긴 원전이 있다는 듯 한 말투. 사회불안을 염려하여 험프백에 대한 정보조차 대외비로 지정해놓았으니, 마경이 된 원전들에 대한 정보는 그 이상의 기밀로 취급할 터였다.
어쩐지 관련된 소식이 없다 했다.
겨울은 곁가지로 흐르는 사색을 끊고 첫 질문을 되새겼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확인했던 건, 그들의 죽음……혹은 실종에 미국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했던 것이겠구나.’
헌데 이런 비밀을 알려주면서까지 맡기려는 역할은 뭘까.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예요?”
겨울의 온화함에 적잖이 안심하면서도, 정보국 요원은 다시금 다른 말을 꺼낸다.
“이 나라가 원망스럽진 않으십니까?”
“……원망?”
겨울은 뜸을 들인 끝에 답했다.
“그건, 굳이 말하자면 필요악이었다고 봐야겠죠. 결과적으로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고. 잘못한 부분이 없다곤 못하겠는데, 그걸 이제 와서 비난해봐야 무슨 소용이겠어요. 아까 말했듯이……내 부모님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다른 가족들도 그렇고.”
결과적으로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다는 건, 모겔론스가 방사능에 의해 파괴될 시 생성되는 특유의 독소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그 독소가 생태계에 누적될까 두려워 핵무기 사용이 거의 봉인되다시피 한 마당이 아닌가.
방사능 오염의 총량은 덮개가 날아가고 바닥이 녹아내린 원자력 발전소 쪽이 핵무기를 압도한다. 오염 그 자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예외적인 핵탄두들을 제외하면.
고로 당시 이 문제를 매듭짓지 않았을 경우, 이후의 세계가 지금보다 더 양호하게 흘렀어도, 십 수 년이 흐른 뒤엔 결국 거북이처럼 기어온 거대한 종말을 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방사능 탓이든, 독소 탓이든.
그 피해는 가장 먼저 한국 정부가 감당해야 했을 터.
탤벗이 아쉬움을 드러냈다.
“유감스럽군요. 한국 대통령의 생각도 중령님과 같았다면 좋았을 텐데.”
“역시 그쪽인가요.”
“예. 겉으로 드러내진 않습니다만, 비공식적인 수단으로 알아낸 바 미국에 대한 반감이 상당합니다. 당시 미국이 재배치를 요구한 3개 사단과 자재들만 있었어도, 최소 몇 만 명의 국민들을 더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원망을 품고 있습니다.”
“정보국은 그런 대통령이 불온한 계획에 연루되어있을 거라고 보고요?”
“가능성은 있다, 정도입니다.”
“어떻게? 다 망한 나라의 정부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런 계획에 발을 걸치죠?”
“다른 건 몰라도 돈은 꽤 있지요.”
“돈이 많다니……. 더욱 이해가 안 가는데요.”
한국 정부가 겨울의 시간을 샀다는 말을 들었을 적에 벌써 한 번 품었던 의문이었다. 망한 나라도 나라 나름이다. 역병 확산 초기에 무너진 한국은 어떤 나라의 독재자처럼 황금과 달러, 명마를 실어 나를 만 한 여유가 없었을 테니. 탤벗이 그 의문에 답해주었다.
“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돈이 남는 겁니다.”
“……?”
“실익과 인도적 지원을 겸하여, 연방정부는 각국에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국가부채는 가급적 유예나 상계처리를 하고요. 그런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이 각종 자산의 임대 및 인수 자금입니다. 항공기, 선박, 인공위성 같은 것들이요.”
“아…….”
“어쨌든 소유권은 각국 정부, 또는 기업에 있었으니까요. 그 중엔 값비싼 군용기도 끼어있습니다. 한 기에 수천만 달러씩 하는 물건들 말이죠. 물론 한국 정부가 우리의 공중급유 지원을 받아 건져낸 군용기는 원래의 보유수량에 비하면 형편없는 규모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거액이 됩니다. 살아남은 국민들이 원체 적잖습니까. 난민으로 수용된 인구는 미국에서 따로 감당하고 있고요.”
현재 한국정부가 유지하고 있는 땅은 자그마한 도서들이 전부. 거기 남아있을 인구가 대단치는 않을 것이다. 즉 시체를 잘라 팔듯 망국의 유산을 파먹고 있으나, 먹여 살릴 사람의 숫자가 워낙 줄어들었기에 그런 식으로도 돈이 남는다는 뜻.
“여기에 국가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여러 주식과 채권, 연기금의 잔재, 기타 실물자산, 기술특허의 라이센스 비용 등, 그럭저럭 자금을 마련할 수단들이 존재합니다. 향후 몇 년간은 고갈되지 않을 재정을 보유한 거지요.”
“음,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내가 그 분을 슬쩍 떠보면 되는 거로군요.”
“예. 중령님께서 우 대통령과 만날 승마회가 바로 비슷한 입장의 국가 정상들, 혹은 외교관들이 사교적인 회합을 이어가는 자리입니다. 같은 처지에 서로 연대를 이루어 돕고 지내자는 취지까지는 좋은데, 영 수상한 야합이 진행된다는 정보가 입수되어서 말입니다.”
“대통령 한 사람만 어떻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거네요. 실제로 어떤 어두운 모임이 존재하는 거라면, 누가 연루되었는지까지 알아내는 게 최선이겠고.”
“정확합니다.”
여기까지 듣고서, 겨울은 겉으로는 납득하고 속으로는 의아했다.
‘이런 내용을 앤이 들어도 괜찮다고?’
비공식적인 정보 공유일까, 아니면 수사국의 관심을 돌리려고 던지는 모종의 미끼일까.
한편으로는 겨울의 이반(離叛)을 막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한 목적이 아니었나, 싶은 「통찰」도 스친다. 혹여 겨울이 누군가로부터 ‘부모’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듣고 분개하지는 않을까. 겨울의 속을 모르는 정보국으로서는 충분히 품을 법한 우려였다. 명예훈장 이중수훈자가 테러에 가담하는 것만 한 악몽도 드물다.
탤벗이 겨울을 불렀다.
“중령님. 다시 실례가 될 질문입니다만…….”
“또요? 실례 좀 그만해요.”
짐짓 눈을 찌푸리는 겨울을 보고 앤이 짧게 실소했다. 탤벗 역시 쓴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농담이었어요. 하도 심각해보여서.”
더불어 부모의 죽음에 진심으로 개의치 않음을 내비친 것이기도 하다. 상심했다면 어찌 가벼운 말이 나오겠는가. 겨울은 차분히 손짓했다.
“말씀해보세요.”
“제가 오늘 들려드린 사실을 우 대통령으로부터 다시 듣게 되었을 때……음, 커트 리로서 활동하던 시절과 같은 수준의 연기가 가능하시겠습니까?”
이게 왜 실례가 되나 생각한 겨울은, 곧 속뜻을 읽고 살짝 끄덕였다.
“슬퍼하긴 힘들겠지만 화를 내는 정도라면야, 얼마든지.”
생전의 부모를 떠올리면 된다. 감정은 두고 말과 행동만 꾸며도 될 것이었다.
아까부터 겨울의 기분을 신경 쓰던 앤은 지금의 말이 가슴에 얹힌 눈치. 돌이켜보건대, 그녀에겐 프로파일러 경력이 있었다.
“그렇군요.”
탤벗도 버거워한다. 그는 겨울에게 목숨을 빚진 사람이었다.
“어렵게 여기진 마십시오. 결국 그날 한 번입니다.”
“그날 한 번?”
“우 대통령이 살 수 있었던 한 중령님의 유일한 시간이니까요. 뭔가 계획이 있고 거기에 중령님을 끌어들일 작정이라면 성급하게나마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상은 부탁하지 않을 거고요?”
“중령님의 시간은 비싸잖습니까.”
어깨의 힘을 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시간을 빼앗으면 빼앗을수록 국방부가 싫어할 것이다. 겨울과의 식사에 수십만, 수백만 달러를 기부한 사람들이 있으므로. 방역전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아까의 추측에 한층 더 무게가 실렸다. 정보국은 오늘의 두 번째 부탁에 큰 무게를 두고 있지 않으리라고.
“궁금한 게 있는데요. 브래넌 의원님도 시험의 일부였나요?”
겨울의 질문을 받은 탤벗이 어정쩡하게 웃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감이 좋으시군요. 저희가 그분께 도움을 받았습니다. 시험보다는 선물이라고 여겨주십시오.”
예전은 아마도 코왈스키 건을 말하는 것 같다.
이에 마침 잊고 있던 것이 하나 더 떠올라, 겨울은 품속에서 반지를 꺼냈다.
“참, 또 잊을 뻔 했네요. 갈 때 이거 가져가요.”
“뭡니까, 그건?”
“커트 리의 결혼반지요.”
“허……. 그걸 여태 갖고 계셨습니까?”
말하는 탤벗도 지켜보는 앤도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겨울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게 어디선가 모르게 나왔길래, D.C에서 만나자던 말이 기억나서 챙겨왔어요. 사소한 거지만 정보국 자산이니 돌려드릴게요.”
탤벗이 손을 내저었다.
“됐습니다. 그냥 기념품 삼아 가지십시오.”
“기념품? 반지를요?”
“뭐 어떻습니까. 정말 프로포즈할 때 써도 되겠지요. 거기 얽힌 사연을 듣고 싫어할 여자는 없을 겁니다. 최소한 그냥 돈 주고 산 물건보다야 의미가 깊지 않겠습니까?”
프로포즈라. 겨울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하며 반지를 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