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68)
00365
=========================================================================
#轍鮒之急 (4)
여기 외로운 물고기가 있다.
이 물고기는 평생을 혼탁한 물속에서 살았다.
천종훈이라는 이름이 있었으되 그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를 낳은 부모조차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야, 너, 저기. 자식을 부르는 말이 매양 그런 식이었기에.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조차도 서로 알지 못한다. 연락처가 있어도 실제로 연락을 하기가 어색했다. 부모와 자식은 그런 관계였다.
형제라도 있었다면 조금 더 나았을 텐데, 재혼에 재혼을 거듭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기대하긴 어려운 것이었다.
가상현실 기반의 공교육은 친구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이 가난한 자들의 교육체계가 탄생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은, 그것이 뭐가 나쁘겠느냐고 생각했다.
사후보험의 설계자들은 완성될 트리니티 엔진을 믿었다. 마음을 얻은 인공지능은 모든 인류에게 가장 완전한 친구, 동료, 스승, 그리고 가족이 되어 주리라고.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미성년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나는 것보다는, 한없이 완벽에 가까운 가상인격들과 긍정적인 교류를 거치며 성장하는 편이, 보다 성숙한 인격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다음. 정책의 결정권자들은 인공지능의 완성 여부에 관심이 없었다. 다만 효율성을 따졌다.
그깟 친구 좀 없으면 어떤가. 어차피 사회인이 되고 나면 대체로 소원해질 관계가 아니던가. 결과적으로, 잃는 건 기껏 예외적인 몇 명에 불과하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은 인간관계도 별 볼 일 없는 법. 사회의 정점에 오른 특별한 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정치는 그렇게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었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친구가 없는 가상현실 속엔 학교폭력도 없다.
또한 전 국민에게 최저의 비용으로 수준 높은 교육을 보장할 수 있다. 사람을 대하는 법은, 감각동기화에 기초하여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체험함으로서 학습하도록 하면 그만이다.
그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커리큘럼으로 구축하는 건 교육당국의 몫이었다. 당국은 대단히 객관적인 기준으로 과거를 재구축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심리학, 철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자들이 최선을 다하여 내놓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을 받고도 뭔가 모자란 아이들은, 원래 그 정도가 한계일 것이라 여겼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교육을 실시했는데도 그 모양이라면,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이러한 교육으로부터, 종훈은 채워지지 않는 어떤 공허함을 얻었다.
성인이 되어, 일터에서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없었다. 애초에 사람을 만날 기회가 드문 자리이거니와, 가끔씩 대면하는 이들에게 종훈은 사람이기 이전에 업무상의 기능일 뿐이었다. 인간이 노동으로 상품화되는 사회에서 하찮은 남자는 언제나 그의 직책으로 불렸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이란, 본인에게조차 낯설어지곤 하는 호적상의 정보에 지나지 않았다.
탁류(濁流)에서 살아가는 삶이 대개 이런 식이었다.
혼탁하여 눈앞만 겨우 보이는 물살을 끊임없이 헤쳐 나가야 한다. 잠시라도 헤엄을 쉬면 목적지로부터 그만큼 멀어진다. 목적지는 사후가 약속하는 맑은 웅덩이. 그 웅덩이가 어떠한지는 생전의 꿈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 꿈속에서도 종훈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다. 오히려 가상공간에서 쓰는 SALHAE라는 닉네임이 더 익숙했다.
왜냐하면, 생전에 꾸는 꿈은 대개 앞서 간 사람들에게 주어진 그들만의 사후였으므로. 질적, 양적으로 그만한 가상현실을 생전에 누리는 경우는 드물다.
처음엔 그런 꿈이라도 상관없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어떤가. 즐거우면 그만인걸.
그가 가장 좋아하는 건 한겨울의 꿈이었다. 다른 많은 사후를 꿈꾸었어도 채워질 줄 모르던 공허함이, 차가운 청량감에 씻겨 나가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종훈은 허락된 꿈속에서 소년의 모든 감각을 공유했다. 비록 스스로의 의사로 말하거나 행동하지는 못할지언정, 소년의 말이 자신의 말 같았고 소년의 행동이 자신의 행동 같았다. 그 말과 행동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에, 자신의 뜻과 다르다는 사실이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유라를 사랑하게 되기 전까지는.
유라가 눈에 밟히기 시작하고서부터, 종훈은 전보다 더한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고자 할 때 겨울은 시선을 돌렸고, 그가 그녀에게 말을 걸고자 할 때 겨울은 입을 다물었다. 유라와 맺는 모든 관계에서 종훈은 감각을 공유할 뿐인 타인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꿈은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사무치는 순간들이었다.
그리하여 천종훈은 자신이 한겨울이기를 바라게 되었다.
허나 생각해보면, 종훈은 겨울을 대신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삶을 체험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격차를 온전히 느끼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종훈은 겨울처럼 말하지 못하고 겨울처럼 생각하지 못하고 겨울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깨달은 바, 자신이 겨울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유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것이었다. 이유라라는 가상인격의 일부는, 아무리 적은 비중일지라도, 분명 겨울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을 테니까.
있는 그대로의 이유라를 바라는 마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녀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오직 겨울의 사후에서만 사람일 수 있었다. 즉 종훈이 사랑하는 사람은 한겨울의 이유라인 것이다. 천종훈의 이유라는 가짜일 수밖에 없다.
설령 유라가 변치 않더라도 종훈 자신이 다시 문제였다.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
스스로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남의 사후나 훔치고 싶어 하는 모자란 인간이었다.
이러한 결론은 겨울을 만난 이후에 비로소 굳어진 것이다.
겨울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한겨울이 될 수 없어요.”
실로 그러하다.
남은 미련으로 계속해서 소년의 사후를 꿈꾸며, 종훈은 더욱 확실하게 자각했다.
‘내 사후는 이렇게 아름답지 않겠지. 난 죽어서도 한겨울이 될 수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사후는 그 길이만큼의 불만족일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가 도달할 웅덩이는 겨울의 호수만큼 넓지도, 맑지도 못할 텐데. 체감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 겨울의 사후를 꿈꾸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만족했을 웅덩이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한 줌의 빗물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지극히 높다.
하물며 그 웅덩이엔 이유라가 없지 않겠는가.
시간이 흐르면 이 마음도 희미해질 날이 올지 모른다.
허나 그때까지는 대체 무엇에 위로받으며 살아가야 할지. 당장 오늘이 버거운 마당에. 종훈은 이미 지친지 오래였다. 그날까지 견뎌낼 재간이 아무래도 없다.
게다가 유라를 잊을 날이 정말로 오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아주 드물게, 마치 어떤 정신병과 같이, 평생을 가는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것이 있다지 않나.
그리하여 종훈은 겨울에게 주는 별로 삶의 미련을 조금씩 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이 유라를 밀어냈다.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겨울의 말에 유라가 다행이라고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며, 종훈은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유라가 감추려는 감정을 알기에 슬프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형언하기 어려운 후련함과 해방감이 더 컸다. 적어도 삶을 끝내려는 사람이 느낄 법한 어두운 감정은 희박했다.
종훈은 또한 SALHAE로서 이렇게 곱씹었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였어.’
죽고자 결심하고 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컨대, 어둠 속에 별 하나 뿐인 소년의 입장이라든가. 마치 전에 없던 감각기관 하나가 새롭게 생긴 듯 한 기분이었다.
겨울은 앤을 사랑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 진지한 태도는 종훈이 유라를 아끼는 마음보다 더 무거운 것이었다. 그런 겨울에게 계속해서 유라와의 관계를 기대할 순 없다. 그래선 안 되는 일이다. 따라서 종훈은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기로 했고, 이는 그나마 남아있던 미련의 끝을 의미했다. 아울러 제멋대로 욕망을 투사했던 지난날에 깊은 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미안했다. 유라를 밀어내며, 겨울은 분명 종훈을 떠올렸을 것이다. 겨울로서는 당연한 일인데도 못내 부담이 있었을 터.
그러므로 종훈은 겨울에게 사과와 고마움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은 다른 욕심도 있지만…….’
이 욕심을 챙기는 게 겨울에게 새로운 부담을 더해주는 꼴이 될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종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직접 찾아가기까지 한 마당이다. 또한 이제껏 보내던 별들이 끊어지는 건 그 자체로 어두운 징후이기도 했다. 따라서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주는 편이 겨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일 터이다.
애초에 대단한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망설이던 종훈이 편지의 첫 줄을 썼다.
“안녕, 겨울. 나 종훈이야…….”
이제 그는 물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물을 벗어나 살아남으려면 물고기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야 할 테지만, 종훈은 그저 물고기인 채로 그리하리라 마음먹었다.
#자기살해
겨울은 하나 뿐인 별빛 아래에서 새로 수신한 편지를 읽었다. 덕지덕지 붙은 보안검사기록은 무언가 중요한 것이 첨부된 메일의 특징이었다.
「안녕, 겨울. 나 종훈이야. 천종훈. SALHAE라고 하면 더 알기 쉬울까? 전에 한 번 면회하러 갔었는데.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 넌 나와 달리 기억력이 좋은 것 같으니까. 네가 말했었잖아. 사람은 어지간해선 잘 잊지 않는다고.」
그렇다. 잊지 않았다.
「제대로 편지를 쓰는 게 처음이라 어색하다. 난 인간이 멍청멍청해서 글재주도 별로 없거든. 그러니 뭔가 이상하고 안 맞아도 그냥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이래봬도 일주일 내내 고치고 고친 편지라서 말이지. 아주 많이 고민하고 적는 글이야.」
“…….”
「우선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유족도 아닌 내가 막무가내로 찾아갔을 때, 그렇게 찾아간 내가 유라랑 어떻게 좀 해달라고 질질 짰을 때, 그걸 보는 넌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냐.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거 진짜로 창피하고 못할 짓이었더라.」
사람이 변했다. 이어질 내용을 알 것 같아, 겨울은 나머지를 읽기가 싫어졌다. 그러나 읽지 않고 지우지도 못할 노릇이었다.
「미안. 진짜로 미안. 그 부탁을 하면서, 난 네 입장 같은 건 눈곱만큼도 배려하지 않았어.」
「지금은 달라. 다 내려놓기로 작정하니까 겨우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고. 이거 참,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네. 유라를 아직도 좋아하긴 하지만, 내 인연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난 애초부터 불가능한 걸 바랐던 거지. 사랑받아봐야 내가 아닌 넌데.」
「아무튼 그래. 네가 유라를 거절하는 걸 보고, 아, 이제 끝내야겠구나 싶더라.」
「오해하지 마. 절대로 원망하는 건 아냐. 굳이 말하자면 시원섭섭? 하다고 해야겠지. 이미 말했듯이, 안 될 거라는 걸 벌써부터 알고 있었걸랑.」
「그리고 고맙다. 네 사후를 공유하면서 깨달았어. 아등바등 살아봤자, 내 사후는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닐 것이라고. 네 사후를 경험해서 더욱 그렇긴 하지만, 아예 몰랐으면 그쪽이 오히려 더 슬펐을 거라고 생각해. 뭐가 부족한 줄도 모르고, 그저 그게 내가 바라던 거라고 믿으면서, 지금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현재랑 똑같은 사후를 살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만 정리하려고 해.」
「죽으려고.」
「음, 이렇게 쓰니까 어째 어감이 좀 이상하다?」
「지금껏 자살하고 싶었던 적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마음이 가벼운 건 처음이야. 예전엔 매번 우울하고 슬프기만 했었거든. 지금은 막, 해방감? 굉장히 자유로워진 기분을 느껴. 약간 서글프기는 해도, 오늘까지 참아온 것들 보다는 훨씬 낫지.」
…….
「부탁이 있어.」
「내 이름을 기억해줘.」
「죽는 것 자체는 후련한데, 한 사람쯤 내 이름을 기억해주면 좋을 것 같더라. 그게 너라면 더 좋겠고. 사실 요 몇 년간 너 말곤 이름 밝히고 대화를 한 사람이 없었어. 아마 부모님도 내 이름을 잊었을 걸? 난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너는 착한 애니까 이것도 신경 쓰이겠지. 그러니 다시 말할게. 나는 지금 우울하지 않아.」
「마지막 선물로, 그리고 사과의 의미로, 네게 내 계좌의 잔액을 전부 다 넘긴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나름 도움이 될 거라고 봐.」
「추신.」
「언젠가 앤의 손가락에 그 반지를 끼워주는 날이 오기를 바랄게.^^」
「그럼 이만 줄인다.」
「천종훈이.」
겨울의 시선은 마지막 줄에 오래 머물렀다. 이후 나지막이 쉬는 한숨.
첨부된 별은 되돌려 보낼 수 없었다.
이것 때문은 아니지만, 사후보험 약관대출은 오늘 자로 완전히 정리되었다. 즉, 오늘부터는 「종말 이후」의 죽음이 완전한 폐기로 이어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없지만, 겨울은 이제 더 이상의 상실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여력도 바닥났거니와,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가능한 만큼은 행복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종훈의 당부처럼.
그러자면 스물여덟 번째의 종말은 논외다.
이는 곧 정신적인 의미의 생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