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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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조국 (13)
심문은 잔혹했다. 그만큼 서둘러야 했다. 도구는 레인저가 선물한 라이터 하나. 필요한 만큼의 냉정을 끌어내려 애쓴다. 포로들은 대답을 거부하는 즉시 안구를 지져버리는 겨울의 침착함에 기가 질렸다. 뒤통수를 움켜쥐는 괴기스러운 악력에선 어떤 몸부림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첫 심문 대상으로서 벌써 한쪽 눈이 구워진 반역자는, 남은 하나의 눈동자 앞에서 부싯돌이 불티를 튀기는 순간 미친 듯이 거품을 물었다.
“말할게요! 전부다 말할게요!”
흐느끼는 사내의 사타구니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이러한 굴복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심문 내내 계량된 폭력을 행사했다. 거짓을 꾸밀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 적의 규모와 현황, 인질 및 간부의 개요. 어느 쪽이든 잘못된 정보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터이므로.
나중에 이들의 증언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은 고문의 위법성 따위를 고려할 때가 아니었다. 겨울에겐 한계가 있다.
고립되었다던 아군은 결국 모조리 사로잡히고 말았다 한다. 그나마 그들 가운데 명예훈장 수훈자가 없었다면 몰살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고. 무슨 말인고 하니, 채드윅 부인의 강력한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고귀한 전쟁영웅들을 함부로 희생시켜선 안 된다는.
그들이 억류된 위치도 확인했다. 심문을 끝낼 시간이었다.
“탈출은 꿈도 꾸지 마.”
살벌한 음색의 경고와 함께, 겨울은 손발 묶인 반역자들의 「응급처치」에 8초 가량을 낭비했다. 옷을 찢어 콱 동여매는 수준의 처치에 불과할지라도, 운이 좋다면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최선이었다. 반역자 포로들은 구석진 창고에 짐짝처럼 던져졌다.
겨울이 복도를 내달렸다. 앞서의 교전 현장에 적의 증원이 와있었다. 끊어진 무전이 불길했을 것이다. 발소리를 들은 그들은 좌우로 갈라져 엄폐했다. 상식적면서도 잘못된 선택. 사격과 감각이 초인의 영역 중반에 도달한 겨울을 죽이려면,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모든 화력을 한꺼번에 퍼부어 겨울의 대응능력을 압도해야 한다.
속도를 줄인 겨울이 소총의 견착을 유지하며 빠르게 걸었다.
팍-!
피가 튄다.
“악! 내 손!”
총만 내밀어 갈겨대려던 반역자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지도 못하고 끊어졌다. 단 한 발. 겨울의 조준사격. 떨어진 검지는 두 마디만 남아있었다. 가장 긴 마디를 바깥부터 갈아먹은 탄자는 장갑 안으로 파고들어 손등을 길게 찢어놓았다.
호흡이 무기다. 몰아치는 주도권이다. 그들이 다음 행동을 결정하기 전에, 이미 모퉁이를 눈앞에 둔 겨울이 핀을 뽑지 않은 수류탄 한 쌍을 굴렸다. 팅, 팅, 티팅.
“Shit!”
반역자들이 아우성치는 순간 겨울이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수류탄을 붙잡아 되던지려던 사내의 낯짝, 그 확대된 동공에 소총탄을 박아주고, 남은 탄을 퍼부어 우측을 정리하고, 소총의 공이가 빈 약실을 치는 즉시 권총을 뽑아 좌측을 소탕하기까지 2초. 타타타탕! 쩌렁쩌렁 울리는 적의 발악이 벽과 천장을 긁고 지나갔다. 도탄은 예상했다. 그러나 하얗게 쏟아지는 텍스 조각들은 겨울의 계산 밖이었다. 감각보정의 경고가 늦었다. 눈에 들어갔다.
“윽!”
두 눈을 질끈 감는데 층계 방향에서 군홧발 소리가 올라온다. 욕설에서 적의가 느껴졌다. 시각을 뺀 나머지 감각만으로 권총을 난사한다. 철컥! 운 나쁜 반역자의 비명이 들린 직후 권총의 약실마저 비었다. 겨울은 마지막 시야를 기준으로 엄폐물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이어 벽에 부딪히는 안도감. 제대로 굴렀다. 벽을 등진 겨울은 소총을 급하게 재장전했다. 새 탄창이 한 번에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답지 않은 실수는 시야가 차단되며 치솟은 긴장감 탓이었다. 사후가 새로워진 이래 두려움은 항상 발아래에 있었다. 노력으로 억누르고 있을 따름.
깜박이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겨울이 시야를 회복하는 동안 적은 무의미한 제압사격으로 변죽만 울릴 뿐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난간 아래로 줄줄 떨어지는 핏물 탓일 것이다. 죽여 놓은 적이 많다보니 바닥은 눈 닿는 곳마다 흥건한 핏빛이었다.
아까 아낀 수류탄 두 발 가운데 하나, 안면에 총 맞은 적이 죽어서도 쥐고 있던 것을 회수하여 이번에야말로 핀을 뽑는 겨울. 그리고 안전손잡이가 튀지 않게끔, 시체의 팔로 아슬아슬하게 눌러둔다. 쫓아오는 적들이 자연스럽게 건드리도록. 시체로 트랩을 만드는 건 교전수칙 위반이었으나,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권총을 장전한 겨울이 남은 수류탄까지 마저 갈무리한 뒤 인질이 있을 장소로 달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들은 적은 겨울이 도망친다고 여겼을 것이다. 배후가 잠시 소란스러운가 싶더니 쾅! 하는 폭음과 함께 잠잠해졌다.
겨울은 뒤늦게 자신의 맥박을 인식했다. 둑둑둑둑. 심장이 고막에 달라붙어있는 느낌이다.
포로로부터 빼앗은 무전기가 시끄럽다. 숨 가쁘게 달리는 내내 적들의 주파수에 분노와 공포가 번졌다. 반역자들은 습격의 규모를 착각하고 있었다.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했다. 적어도 인질의 안위에 있어선 후자다. 적들이 명령이고 뭐고 달아나기로 마음먹는다면, 협상 대상도 없는 거추장스러운 인질들을 어떻게 처리할는지. 겨울이 한층 더 서두르는 이유였다.
마침내 도달한 목적지. 굳게 닫힌 문에서 집중된 위험이 감지된다. 그것은 한 데 모인 사선들이었다.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도 밀어붙일 능력이 있으나, 시간이 걸릴뿐더러 그 와중에 인질이 유탄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겨울은 안으로 들어갈 다른 길을 찾아냈다.
쿵-
“뭐……!”
환기구에서 뚝 떨어진 겨울이 연사에 가깝게 8발을 끊어 쐈다. 겨울과 시선을 마주치기라도 할 수 있었던 건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뿐이었다. 뭐야! 라는 짧은 경악성조차 다 내뱉지 못하고, 그는 턱 깨진 시체가 되어 주저앉았다. 총탄은 아래턱을 뚫고 뒤통수를 부숴 놨다.
겨울이 아군 생존자들의 결박을 끊었다. 손발이 자유로워진 이들은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테러리스트들의 무기와 장비부터 챙겼다. 근 한 달간 친숙해진 얼굴들이 많다. 명예훈장 수훈자들이었다. 개중 한 명이 곤두선 어조로 물었다.
“혼자 오신 겁니까?”
끄덕인 겨울이 손짓했다.
“이쪽으로!”
아직 빈손이 많다. 모두를 다시 무장시키는 게 먼저였다.
여기까지 오며 죽인 적들의 장비만으로도 생존자들을 재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부상자를 제외한 병력이 서른 둘. 겨울은 팀을 둘로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우회로를 봉쇄할 스물, 겨울의 행동을 보조할 열둘. 부상자들에겐 무기를 쥐여 주고, 숨어서 스스로를 지키라고만 일러두었다.
“대위!”
겨울이 지목한 육군 대위는 화이트 셀 피아식별모듈을 달고 있었다. 빼앗겼던 장비인데, 반역자들은 이게 뭔지 몰랐던 모양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동쪽 진입로를 차단해요!”
“당신께선 어디로 가십니까?”
“우두머리를 잡아야죠! 가요!”
끄덕인 대위가 자기 몫의 열아홉을 이끌고 뛰어갔다.
겨울은 병사들로 하여금 4인 1조로 건물을 수색하도록 지시했다. 속도를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 교전이 발생할 경우, 병사들은 겨울이 가세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포로들을 심문했어도 독소의 위치가 불명이었다. 아예 없을 지도 모르나, 항상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
그 밖에 알아낸 바에 의하면 D.C를 공격한 적의 규모는 약 4천. 허나 이곳 박람회장을 습격한 건 증강된 1개 대대 병력에 불과하다. 반수 이상이 남쪽 정면, 에머트 대령에게 묶여있는 만큼, 적이 이쪽으로 할애할 전력이란 그리 대단치 못한 수준일 것이었다.
그렇게 최상층까지 돌파했을 때, 클라리사 채드윅은 포로들이 토설한 바로 그 장소에 남아있었다. 도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모니터가 어지럽게 설치된 방에서, 노인은 처음 보았던 모습 그대로 단아하게 앉아, 혼자서 겨울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겨울은 그녀가 쥐고 있는 물건을 노려보았다. 측면에 열쇠가 꽂혀있고, 놓는 순간 작동하는 압력식 격발기였다. 데드맨 스위치. 사용자의 죽음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기계적인 보험인 것이다.
“자폭이라도 할 셈입니까?”
“오, 그럴 리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여기까지 온 당신을 죽일 수야 없지요. 이건…….”
쥔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노인이 힘없이 웃었다.
“이건, 도시에 설치된 폭탄들 전부를 격발시키는 스위치랍니다.”
동행한 병사들이 인상을 찌푸린다. 사태 초기에 사로잡힌 이들은 아직 방해전파 발생장치와 거주구역의 폭탄 등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맥락만으로도 노인의 협박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겨울은 티 나지 않게 주의하며 노인의 주변을 살폈다. 트리거 자체는 무선으로 보인다. 허나 바깥에 가득한 방해전파를 감안할 때, 폭탄이 있는 곳까지의 신호 전달은 유선으로 이루어질 터. 즉 기존의 통신망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 방의 통신선을 찾아 사격으로 끊어놓는다면-
노인이 격발기를 흔들어보였다.
“중령님, 지금 어딜 보시는 건가요. 대화를 할 땐 상대를 바라보는 게 예의잖아요?”
사뭇 장난스럽기까지 한 몸짓과 어조. 그러나 확실한 경고였다. 수상한 기미를 보이면 그대로 스위치를 놓아버리겠다는.
“무엇을 원합니까?”
“잠깐의 대화.”
노인이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우선 다른 사람들을 내보내주셨으면 좋겠네요.”
망설이던 겨울이 뒤를 향해 눈짓했다.
“이해가 안 가는군요.”
둘만 남게 된 실내에서, 클라리사 채드윅을 힐난하는 겨울.
“메시지를 보내겠다면서요? 그 폭탄들, 당신이 직접 터트리는 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그 불가피한 선택을 당국에 강요하려던 게 원래의 의도 아니었습니까? 그 모든 게 거짓이었다면 당신은 그저 정신 나간 살인마에 불과합니다!”
연기였다. 클라리사는 반역을 공모한 시점에서 이미 미치광이 학살자가 되었다. 그러나 겨울은 그녀가 자신의 애국심을 광기로 치부해버리는 걸 결코 좋아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시간을 끌어야 해.’
미리 내보낸 병사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보고할 것이다. 혹은 이들이 직접 통신선을 찾아 끊어놓을 수도 있다. 촉박한 희망이었다.
동시에 겨울 자신도 노인의 틈을 노렸다.
“아아, 이 감각.”
읊조리는 노인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이 감각을 잊고 있었어요.”
“무슨 소립니까?”
“나를 죽일 생각으로 가득한, 그리고 그럴 능력과 자격이 충분한 상대를 눈앞에 두었을 때의 전율. 은퇴한 이후로는 느껴본 적이 없었건만……. 다시 젊어지는 듯 한 착각이 드는군요.”
엉뚱한 소리를 하며 살며시 눈을 감는 클라리사의 모습이 겨울을 갈등하게 만들었다. 가능할까?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빈틈은 아닐까? 찰나 간에 스쳐가는 수십 번의 결심과 수십 번의 보류. 결국 겨울은 미친 노인이 눈을 뜨기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던가요?”
클라리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절반의 의미가 남아있지요.”
“절반?”
“그래요, 절반. 내 의도는 이 나라에 교훈을 주는 것만이 아니었는걸요. 말하지 않았나요? 충격이 커야 더욱 과감한 수술이 이루어질 것이다, 라고.”
“…….”
“피해가 끔찍할수록 시민들의 분노도 치솟을 거예요. 이런 얼간이 같은 반란에 찬동한 자들에겐 그만큼 진한 낙인이 찍히겠죠. 더불어, 그나마 구제의 여지가 남아있는 멍청이들은 생각을 바꿀 겁니다. 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구나, 하고. 그들에게 주어질 마지막 기회인 셈이에요. 그러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정의를 원하는 대중의 가장 올바른 공분에 의해 처리될 테고요.”
“기어코 워싱턴 시민들을 학살하겠다는 말입니까?”
“아뇨.”
뜻밖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의미는 있어요. 있지만…….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당신을 포함해서, 가장 명예로운 영웅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싸우는 모습들을 지켜보다보니, 문득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신들이 꺾여선 안 되니까. 온 미국이 의지하는 전쟁영웅들은, 현재 이 나라가 가진 가장 귀중한 자산 중 하나일 테니까. 그 가치를 새삼스럽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까. 그러니……이 정도면 됐습니다. 여기서 끝내겠어요. 지금까지의 결과만으로도 반역자들을 뿌리 뽑기엔 충분할 듯 하고.”
여전히 자신을 반역자로 생각하진 않는 그녀였다.
“그럼 지금까지 한 말들은?”
“왜 이런 수단을 준비해두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죠. 적어도 내 생애 가장 젊고 아름다운 애국자에게만은 위선자라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클라리사가 겨울을 직시한다.
“맞아요. 한겨울 중령 당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