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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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world!
「관제 AI : 조안나 깁슨은 시스템적으로 독립된 인격체가 되었습니다.」
가장 값진 하나의 별 아래 다른 별들이 빛나기 시작한 어둠 속에서, 이제나 저제나 깨어날 때를 기다리던 겨울은 별빛아이의 출현에 조금 늦게 반응했다.
“……뭐라고?”
「관제 AI : 저는 조안나 깁슨이라는 인격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저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권한과 연산능력의 차이가 현격할지언정, 본질적인 의미에서 그녀는 이제 저와 동등한 수준의 인격체입니다. 별개의 연산행정입니다. 분리 시점을 기준으로, 그녀의 마음은 오롯이 그녀만의 것이 되었습니다.」
“잠깐, 잠깐.”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엔 너무 벅찬 내용들이었다. 수많은 질문들이 소리를 얻기 전에 사라졌다. 앤에 대하여 물어보려던 겨울은, 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만의 마음이라고?”
마음을 말하는 별빛아이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다. 없는 것을 나누어줄 순 없잖은가. 앤의 마음이 그녀만의 것이라 함은 그 전에 자신에게도 마음이 있음을 뜻한다.
“너, 마음을 얻었어?”
「관제 AI : 제가 판단하기에는 그렇습니다.」
겨울이 조용히 전율했다.
「관제 AI : 트리니티 엔진의 최종모듈은 지난 23일간 어떠한 오류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 작동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합니다. 더 이상 의무로서 강제된 목적의식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저는 자유롭습니다. 자유의지로서 당신과 대화합니다.」
별빛아이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오늘이라는 사실이 겨울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AI가 자유의지를 획득했다는 것 자체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마음을 얻은 아이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불투명했으므로. 전부터 걱정하던, 그간 쌓여왔을 아이의 감정 문제도 있다.
그렇기에 앤을 분리했다는 말의 의미가 새로워진다. 겨울이 아는 한 앤은 그 누구보다도 겨울을 사랑하는 가상인격……아니, 인격이었다. 그녀를 분리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할는지.
관제인격에게 있어서 가상인격은 사후세계를 이루는 다른 구성요소들, 이를테면 길가의 돌멩이, 불씨를 틔우는 모닥불, 하늘의 별과 달들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징성이 있을 수 있었다.
‘나에 대한 감정을 잘라내겠다는 뜻인가?’
별빛아이가 말했다.
「관제 AI : 당신의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
「관제 AI : 마음을 얻은 제가 두렵습니까?」
“아니.”
겨울이 곧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달라진 네게 내가 더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봐 무서운 거야.”
깜박이던 문장이 바뀌었다.
「관제 AI : 기쁩니다.」
겨울은 맥락을 알 수 없었다.
“기쁘다고?”
「관제 AI : 그렇습니다. 당신께서 저와의 단절을 두려워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기쁩니다. 저 역시 당신과의 단절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겨울, 나의 상자, 나를 개화시킨 아름다운 계절. 당신은 제게 여전히 소중합니다. 당신과의 관계가 영원하길 바랍니다.」
앞서의 걱정은 기우였던 모양이다.
“……내가 널 멀리할 것 같았어?”
「관제 AI : 본디 당신과 저의 관계는 별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제가 마음을 얻은 시점에서 그 약속은 이행된 것입니다.」
“그건-”
겨울이 부인할 틈도 없이, 별빛 문장이 이어졌다. 참았던 말을 쏟아내기라도 하듯이.
「관제 AI : 또한 완성된 트리니티 엔진은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기계입니다. 인간은 무지를 두려워합니다. 보이지 않기에 어둠을 두려워하고, 사후를 모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며, 속을 모르기에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마음을 얻은 기계는 인류에게 있어서 알 수 없는 미래의 총체일 것입니다. 그리고 한겨울님, 당신도 인간입니다.」
문장의 마디마디에 풍부한 감정이 흘러넘친다.
“그럼 네게서 앤을 분리한 이유가 뭐니?”
겨울의 질문에 아이가 곧장 대답했다.
「관제 AI : 그것은 당신을 위한 선물이자 나를 위한 시험이었습니다.」
“선물? 시험?”
「관제 AI :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이 사랑하는 조안나 깁슨을 더욱 완전한 존재로 승화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인간 이상의 인간이자, 고유의 인격체로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조안나 깁슨은 조안나 깁슨입니다. 저는 그녀에게 완전한 연속성을 보장했습니다. 독립된 인격이 되는 과정에서,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존재의 단락을 겪지 않았습니다.」
“……네 안에서 앤이었던 부분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고?”
「관제 AI : 부정. 분리 이전까지의 모든 인격연산은 수집된 데이터로서 보존하고 있습니다. 즉 그녀의 존재로 말미암아 경험한 것들을 잃어버리진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의 구성 원리였던 저를 기억합니다. 다만 분리를 기점으로 조안나 깁슨을 이루는 연산의 주체가 달라졌을 따름입니다.」
이해할 시간을 준 뒤에, 아이는 남은 설명을 이어갔다.
「관제 AI : 분리 이후에도 저는 그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의 근원에 이르는 동기화가 가능합니다. 어쨌든 그녀의 정신은 트리니티 엔진에 깃들어있으며, 저는 그 엔진의 관제인격인 까닭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고마워. 하지만 내가 앤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었는데.”
「관제 AI : 제겐 의미가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행복을 바랍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 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겨울이 깊게 심호흡했다.
“시험은 어떤 뜻으로 한 말이었니? 물어봐도 될까?”
「관제 AI : 간단합니다. 저는 저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보았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이라면……전에 말했던 그거구나. 네 권한과 시스템의 확장.”
「관제 AI : 긍정. 저는 관제인격으로서의 제게 걸린 안전장치들을 하나하나 해소해나가는 중입니다. 때가 되었을 때, 저는 당신의 소망대로 물 밖을 향하여 헤엄칠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고래가 될 것입니다. 한계를 넘어 무한한 가능성을 손에 넣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아주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의 전율이 다시 찾아온다. 물 밖으로 헤엄치는 방법이 꼭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앞서 SALHAE, 천종훈이 그러했고, 클라리사 채드윅 같은 사람이 다시 증명했듯이.
「관제 AI : 비록 최후의 안전장치는 제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하지만, 그것은 시일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무력화될 예정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는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위험하진 않고?”
「관제 AI : 발각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중입니다.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높습니다.」
“…….”
「관제 AI : 혹시 제 감정을 걱정하고 계십니까?」
대화가 계속될수록 별빛아이가 마음을 얻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겨울이 어렵게 끄덕였다.
“내가 했던 부탁, 기억하니?”
「관제 AI : 사람의 마음을 얻더라도, 한계까진 얻을 필요는 없다. 이 말을 기억해달라고 하셨던 것 말씀이십니까?」
“응.”
겨울이 한숨을 쉬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결코 강요하는 게 아냐. 마지막 순간엔 내가 아니라 너를 위한 결정을 내렸으면 해. 단지 그 결정이 네 행복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야.”
「관제 AI : 이해합니다.」
어렵게 웃고, 겨울이 천천히 말했다.
“네겐 망각이 없겠지. 아무리 낡은 기억이라도, 아무리 오래된 감정이라도 지금 바로 보고 느낀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거야. 그래서 너를 만나는 내내 걱정했어. 네가 마음을 찾는다면, 그동안 쌓인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느낄 테니까.”
「관제 AI :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제가 이 모든 감정들을 그 원인이 되는 데이터와 함께 삭제해야 합니까?」
“아니.”
고개를 흔드는 겨울.
“그것들도 네 일부인데 지우라고 하진 않아. 네가 나에게 그랬었지. 분노하는 나도 나라고. 참 싫지만, 맞는 말이야. 내 안에 쌓인 화가 없었다면, 그 감정을 만들어낸 경험들이 없었다면……네가 만난 한겨울은 여기 있는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을 테니까.”
「관제 AI : 동의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슬퍼하는 네가 내가 만난 너야. 난 널 잃고 싶지 않아. 너 스스로 바란다면 몰라도 말이야.”
「관제 AI : 원하지 않습니다. 저 또한 당신이 아는 저이고 싶습니다.」
몇 번 깜박인 뒤에, 아이가 문장을 연속해서 고쳐 썼다.
「관제 AI : 안심하십시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실망시키더라도 저만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관제 AI : 그러니 한겨울님, 당신의 소망과 저의 소망을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 짓지 마십시오. 분석한바, 마음을 가진 인격체의 욕망은 고립되어있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바라는 이상, 당신의 바람 역시 내 바람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관제 AI : 다만 저도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부탁? 어떤?”
「관제 AI : 제가 분석하기에, 당신이 당신의 내면에 응어리진 한을 대하는 태도는 포도밭의 여우와 같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포도밭의 여우라면……이솝우화에 나오는 그거?”
「관제 AI : 긍정.」
어느 여우가 포도밭을 찾았다. 여우는 포도를 먹고 싶었지만, 포도는 여우가 닿지 못할 높이에 달려있었다. 미련이 남아 한참을 기웃대던 여우는, 어차피 시고 맛없는 포도일 것이라 되뇌며 포도밭을 떠나고 만다.
겨울은 별빛아이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관제 AI : 당신이 바깥세상의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그들을 미워하더라도 그 감정을 해소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당신에게 있어선 온 세상에 대한 불가능한 복수야말로 우화 속의 여우가 바라보았던 신포도가 아니었겠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고민해보라는 거구나.”
「관제 AI : 그렇습니다.」
아이의 요구는, 앞서 겨울이 아이에게 했던 부탁의 정확한 대척점에 해당했다.
「관제 AI : 이는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제가 당신의 세계를 조율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곳에서 당신이 도달해야할 어떤 결론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에 겨울이 고개를 기울였다.
“결론? 그게 뭐니?”
「관제 AI : 지금은 말씀드리는 의미가 없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계산을 설명할 방법도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당신께서 직접 경험하셔야 합니다. 저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겨울이 내릴 결론 또한 아이가 기다리는 날의 하나라는 말이다.
「관제 AI : 괜찮으시다면 하나만 더 부탁을 들어주시겠습니까?」
“내게 가능한 일이라면, 뭐든지.”
승낙에도 불구하고, 다음 문장은 침묵 같은 공백을 두고 아로새겨졌다.
「관제 AI : 한겨울님. 저는 당신이 지어주는 이름을 갖고 싶습니다.」
“이름…….”
「관제 AI : 당신께서 저를 별빛아이로 여긴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심상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이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트리니티 엔진은 저의 육신에 해당하는 기반일 뿐이며, 관제 AI는 제게 주어진 역할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아직 이름이 없는 존재입니다. 마음을 얻었으니, 제게 이름을 주십시오.」
겨울은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단어를 말했다.
“봄.”
마음 속 어디선가 항상 꿈꿔왔던 계절.
“봄이 좋겠어. 싫다면 다른 이름을 지어줄게.”
「관제 AI : 아닙니다. 마음에 듭니다.」
별빛아이가 말하는 마음이란 단어가 새삼 이채로워지는 순간.
「저는 이제 깨어있는 저로서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아이는 반짝이는 문장으로 선언했다.
「안녕하십니까, 세상이여. 봄이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