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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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62페이지, 캠프 로버츠
산타 마리아에 다녀온 이튿날 아침. 나는 TV의 모든 채널에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결 같은 자막이 낯 뜨거웠다. ‘산타 마리아의 기적’이란다. 애국적 보도에 목마른 언론들은, 나를 두고 온갖 긍정적 논평들을 쏟아냈다. 국방부 대변인도 등장했다. 그는 내가 미국시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영웅적 행위에 걸맞는 보상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난민문제에 대한 언론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캡스턴 중위는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한겨울 소위. 자네가 뛰어나다는 건 안다. 그래도 이번엔 지나쳤어. 어떻게 전장 한복판으로 혼자 달려갈 생각을 했나. 혹여 죽으면 자네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어쩌려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했으나, 그는 납득하지 않았다.
“고귀한 마음가짐이야. 하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하게. 자네에겐 세상이 필요로 하는 재능이 있어. 오래 살아야 하네. 그럼 자네로 인해 살아남는 사람도 많아질 테니까. 당장 구하지 못할 사람들은, 냉정히 말하면 적은 수에 지나지 않아.”
나는 말했다.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당장 구하지 못한 한 사람을, 나중에 구할 다른 사람들로 대신할 순 없는 거라고. 중위는 이제 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혹시 난민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나? 자네가 활약하면, 나머지 난민들에 대한 대우도 개선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위험을 무릅쓰는 건 아닌가?”
언제나 고마운 사람이었다. 다음엔 좀 더 조심하겠다고 약속하고서야, 그는 못 미더운 눈치로나마 나를 놓아주었다.
난민구역으로 가는 길에 마커트 대위를 만났다. 경례를 붙이자, 입맛 쓴 표정으로 답례를 돌려주었다. 그는 중국계 거류구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인종차별주의자가 그곳에서 뭘 하고 있었을지 의문이다.
거류구 중앙 공터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방송 시청이었다. 사방이 뚫린 대형 천막을 쳐놓고, 그 아래 화이트 스크린을 걸었다. 프로젝터에서 쏜 빛이 선명한 것은 우중충한 겨울 날씨 덕분이었다.
중앙 공터엔 군경의 순찰이 잦다. 얼굴 익힌 병사를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국방부 공보처의 지시사항이라고 했다. 그는 날 신기한 눈으로 보더니, 저거 진짜냐고 물어보았다. 그렇다고 답해주었다. 그는 좋아했다. 내기에서 이겼다고.
……내기?
그가 떠난 뒤, 먼발치에서 화면을 보았다. 객관화된 나의 모습은 낯설었다. 화면 속에서, 다른 사람 같은 내가 다섯 감염변종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따다다닥 부딪히는 변종의 이빨이 가까워질 때, 국적 불문하고 모든 난민들이 숨을 죽였다. 하나하나 처리할 때마다 한 겹씩 더해지는, 누군가가 참지 못한 깊은 탄성들. 듣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랑스럽기 전에 부끄러운 일이었다. 군용 드론의 촬영 해상도는 왜 저렇게 높을까. 그런 생각만 들었다.
누군가 눈치 채기 전에 떠나려고 했는데, 이미 한 사람 돌아보았다. 그를 시작으로 많은 수가 웅성거렸다. 전보다 노골적인 적의는 줄어들었다. 대신, 주눅 들었거나 두려워하는 눈빛이 늘어났다. 그 외에 열망과 탐욕이 있었고, 가끔은 숭배의 눈빛도 엿보였다.
부풀어 오르는 감정들 앞에서, 난 물러나고 싶어졌다. 자연스럽고자 노력했다.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를 바란다.
#저널, 63페이지, 캠프 로버츠
「겨울동맹」이 예전보다 조용해졌다. 정확하게는, 내가 있을 때 한정으로.
공개된 영상이 너무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다들 나를 보는 눈이 예전 같지 않다. 어려워하는 사람이 늘었고, 아첨하는 사람도 늘었다. 심지어는 박진석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변하지 않은 건 이유라 씨와 민완기 부장님 정도. 민 부장님은 그저 감탄했다며 웃었다.
어쨌든 확실한 건, 더는 누구도 나를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는다는 사실.
변화한 분위기가 내게도 불편했지만, 감내해야 할 것이다. 차츰 나아지기를 기대하면서.
#내실 (1), 캠프 로버츠
이 세계관의 종말에는 일정한 주기가 있었다.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듯이, 험한 사건 한 번 겪으면 조용한 때가 찾아온다. 세상 끝나가는 분위기를 만끽하라는 배려 같았다. 물론 이는 다음 무대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겨울은 지금이 간빙기라고 판단했다. 종말의 수레바퀴가 다시 구를 때를 대비해야 한다. 이 기회에 내실을 다지고, 「겨울동맹」의 전투력을 구체화시켜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작전과장에게 훈련계획을 승인받았다. 겨울의 직속상관이 대대장이라 당연한 일이었다. 작전과장은 계획서 제출을 요구했으나, 깐깐하게 굴진 않았다. 오히려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훈련복과 전투식량을 불출해주고, 샤워나 식사를 할 때 미군 시설을 써도 좋다는 허가까지 내주었다. 산타 마리아의 기적은 그에게도 무척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겨울은 산타 마리아에서 획득한 경험 자원을 「교습」에 투자했다. 리더십에 필수적이라 익힌 적이 많다. 「재능이익」이 크게 작용했다. 즉 부담이 적었다. 그래도 10등급과 11등급의 경계는 고민스러웠다. 여력을 남겨, 전투기술을 최대한 강화하고 싶었다.
길게 이어진 고민. 그것은 유라를 보았을 때 끝났다. 훈련을 시작하겠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높은 의욕만큼이나 대단한 긴장감을 드러냈다. 걸을 때 오른발과 오른손이 같이 나갔다. 겨울은 고개를 끄덕인 뒤 「교습」을 11등급으로 증가시켰다.
전투대원은 예비로 3배수를 뽑았다. 훈련을 진행하면서 부적격자를 쳐낼 작정이었다. 남녀비율은 동일하게 맞췄다.
세계관의 가장 특별한 존재, 플레이어를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상식의 범위에 있다. 훈련은 체력 단련(PT)부터 시작됐다.
“시, 시작부터, 너무, 하시는 거, 아녜요?”
“네, 아니에요.”
겨울의 가벼운 대답. 그녀는 겨울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다가, 그나마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숨 헐떡이느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2마일(3.2km) 달리기는 난생 처음이었으리라. 답답한 모양인지, 주황색과 노란색이 섞인 베스트(Vest)를 벗어던졌다. 턱선을 따라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유라는 양호한 편이었다. 여러 명이 여기저기서 구토를 했다. 나머지는 체면이고 뭐고 쭉 뻗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라고 다르지 않았다.
겨울이 뽑은 예비대원들은 처음부터 우수자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훈련에 조언을 해주겠다고 낀 3중대 피어스 상사는, 겨울의 지시가 사리에 맞는 것을 이채로워했다. 덤으로 기술보정을 받은 소년의 체력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시키는 입장이라고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달리면서, 겨울은 선두를 추월하여 연병장 한 바퀴를 더 돌고 왔다. 그걸 본 상사가 호기롭게 웃으며 자신도 한 바퀴를 더 돌았다.
그러고도 두 사람보다 일찍 들어온 전투조원이 존재하지 않았다.
“확실히 비범하십니다, 물소위님.”
“상사님도 나이에 비해 대단하시네요.”
피어스 상사가 또 웃음을 터트렸다. 요것 봐라 싶은 표정이다.
겨울은 시청자 메시지를 살폈다. 방송을 생각한다면 자동진행으로 넘겨야 할 부분이지만, 그러면 「교습」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 불가피한 수동진행. 그러나 의외로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가 예쁘면 에어로빅을 해도 좋아하는 생물이었다. 물론 여자도 땀에 젖은 섹시한 남자를 좋아했다. 시청자들이 느끼는 만족감의 정체였다. 유라의 몸매를 좀 더 엿봐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겨울은 한숨을 쉬고 싶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시청자 퀘스트가 붙었다. 유라가 토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며, 좀 더 괴롭혀 달라고 한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한숨을 쉬고, 겨울은 임무를 거부했다.
속을 알 리 없는 상사는 겨울의 한숨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했다.
“실망스러우십니까?”
“아뇨, 설마요. 그냥 다른 생각을 좀 했어요.”
흐음, 하고 미심쩍어하는 흑인. 그러나 파고들지 않는다. 실용적인 대화로 넘어갔다.
“달리기가 가장 기본인 건 맞지만, 전투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건 단기지구력입니다. 다들 좀 적응하고 나면 2마일 러닝보단 셔틀 러닝을 시키시죠.”
“네, 그거 괜찮겠네요.”
겨울은 증강현실 UI를 살폈다. 「교습」과 「통찰」의 연동이, 개인별로 적합한 운동량과 휴식시간을 알려주었다.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자, 이제 다들 일어나세요.”
“네? 벌써요? 무리한 운동은 역효과 아녜요?”
“제가 보기엔 충분히 쉬었어요.”
“히잉, 작은 대장님……조금만 더 쉬어요…….”
어느 여성대원이 우는 소리를 냈다. 진행상 너무 몰아치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좀 그렇다고 고민할 때, 옆에서 피어스 상사가 주의를 환기했다. 그는 자신의 모자를 가리켰다.
“소위님, 이걸 쓰고 있을 땐 악마가 되어야 합니다.”
같은 모자를 겨울도 쓰고 있었다. 챙 넓은 교관모다. 휴식이 간절한 사람들을 향해, 소년이 유감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고 하네요. 모두 일어서세요.”
“안 돼…….”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남자 몇 명 제외하면 주로 여성들이었다. 피어스 상사는 정말로 악마가 되었다. 눕히고, 굴리면서 모두를 흙투성이로 만든다.
가장 잘 하는 사람은 유라가 아니었지만,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은 유라였다. 정말 힘들 때, 겨울 한 번 쳐다보고 이를 악무는 것이었다. 겨울은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그녀는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있었다. 좋은 사람의 조건이다.
점심시간. 모두에게 군용식량(MRE)을 나눠주었다. 이런 식량을 먹는 것도 훈련이라며, 작전과장이 방출해준 물자였다. 난민들에 대한 이전까지의 취급을 감안하면, 난민 의용부대에 거는 기대를 알 만 했다.
“으……이거 좀 짜지 않아요?”
칭얼대는 몇몇 여성들. 원래 짜게 먹는 미국인 입맛에도 짠 것이 군용식량이었다.
“땀으로 잃은 염분을 보충해야 하거든요. 익숙해질 거예요.”
지친 사람들은 먹는 것 자체를 힘겨워했다. 그래도 결국은 먹는다. 먹는 데 한 맺힌 사람들이었다.
휴식이 길어지자 다들 벗어던진 옷가지를 찾았다. 캠프 로버츠의 겨울 날씨는 한국의 늦가을 정도. 흐린 날의 바람은 한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 시간을 이용하여 피어스 상사가 군가를 가르쳤다. 사람들은 외우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영어로 되어있었으니까. 영어가 좀 되는 사람들은, 위트 넘치는 가사에 피식피식 웃었다.
오후에 한 바탕 더 굴리고서, 상사가 겨울에게 제안했다.
“다들 저녁먹이고, 샤워나 시킨 다음에, 숙소까지 구보로 복귀시키는 게 어떻습니까?”
“과시하라고요?”
겨울이 핵심을 짚자, 피부색 까만 상사가 하얀 이를 드러냈다.
“물소위님은 눈치도 빠르시군요. 우리도 압니다. 난민들 사이에서 파워 게임이 치열하다는 걸. 구보 따위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저 쓰레기통 한복판에선 눈에 아주 잘 띄겠지요.”
“군가도 그래서 가르치셨어요?”
“겸사겸사입니다. 군가 하나 모르는 군인이 어디 있답니까?”
저녁은 예비대원들에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미군이 이용한 다음이었으나, 어쨌든 병영식당이 개방되었다. 전보다 초라해졌을지라도, 정규군을 위한 식단은 난민들의 배식과 질적으로 달랐다. 겨울은 그들의 폭식을 막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탈이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식후 온수샤워까지 제공되자 여성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제한시간은 10분. 남자에겐 충분하고 여자에겐 너무나 부족한 시간. 그래도 다들 최고의 표정이었다.
겨울은 상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둑한 시간, 난민구역의 체크 포인트를 구보로 뛰어 통과했다. 예비대원들은 낮에 배운 군가를 어물거리며 불렀다.
하낫 둘 셋 넷 하낫 둘 셋 넷
우리 늙은 할머니가 아흔 한 살이실 때
그녀는 재미로 PT를 하셨다네.
우리 늙은 할머니가 아흔 두 살이실 때
그녀의 앞길에 있으면, 그녀는 널 밟고 지나가셨을 거야.
우리 늙은 할머니가 아흔 세 살이실 때
그녀는 나무 위에서 PT를 하셨어!
……
우리 늙은 할머니가 아흔 일곱 되셨을 때
그녀는 죽어서 천국으로 직행하셨지
그녀는 진줏빛 문 앞에서 성 베드로를 만났어!
그녀가 말씀하셨지. “이봐, 베드로. 내가 늦지 않았길 바라네.”
성 베드로가 그녀를 보며 웃었어.
그가 말했지. “엎드려 할망구. 팔굽혀펴기 열 개 실시!”
체크 포인트를 지키던 미군 병사들이 대놓고 웃었다. 그들이 보기엔 예비대원들 모습이 색다를 것이었다. 몇 개의 구획을 통과하는 내내, 구경 나온 난민들은 어벙한 표정이었다.
예비대원들도 이게 즐거워진 모양이었다. 다리가 아파 쩔쩔 매면서도 자꾸만 피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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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만년 동안 쌓은 비축분 같은 건 없습니다. 블러드 레이븐이 훔쳐갔어요.
2. 영화는 동심을 키우는 좋은 양분입니다.
많은 명작들이 있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클레멘타인, 7광구, 조선미녀삼총사 등등…
보기만 해도 동심으로 지구를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