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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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14)
이튿날의 백악관은 오전부터 북적였다. 동시에 물밑의 긴장감도 높아졌는데, 정권교체 전에 테러가 터진다면 바로 오늘이 될 거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테러는 이데올로기적 폭력이다. 피와 초연으로 이루는 프로파간다다. 그래서 테러리스트들은 신념이 뚜렷할수록 상징적인 날짜와 장소와 인물들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다. 오늘의 백악관은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장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장수여식엔 대통령 당선인인 크레이머까지 참석했다. 2차 대전 이래 겨울 외엔 전례가 없었던 명예훈장 이중수훈자가 한꺼번에 일곱 명이나 새로 탄생하는 날. 이 역사적인 자리에 빠질 순 없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다 할 위협은 없나…….’
대기실에 있는 내내 겨울은 감각의 변화를 헤아렸다. 적어도 백악관이 폭발할 일은 없을 듯하다.
그래도 잠깐 동안은 마음을 놓지 못했었다. 다름 아닌 「독성저항」 탓이었다. 시험해볼 기회가 없었지만, 만약 「독성저항」이 네크로톡신에 대한 면역이나 저항력을 부여한다면, 네크로톡신을 이용한 테러는 더 이상 겨울의 「생존감각」을 자극하지 못한다. 재능 강화가 감각보정의 퇴보를 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허나 곰곰이 숙고해본 다음에는 그렇게까지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겨울 자신이 독소에서 자유롭더라도, 다른 사람들 모두가 이성을 잃은 식인종이 되어버린다면 그것 역시 겨울에 대한 위협이자 위기로 간주될 테니까.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감각보정 자체가 무력화되지는 않는 셈이다.
마침내 겨울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준비된 훈장은 한 쌍의 수훈십자장이었으되 그 의전만큼은 명예훈장 수훈자와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대통령이 청중에게 수훈자를 소개할 때, 보통은 전공을 설명하기에 앞서 수훈자 개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향, 가족, 삶, 신념, 인품 등. 그러나 겨울은 이번이 세 번째였으므로 그런 과정이 생략되었다. 말하려면 고역일 것이다. 겨울을 모를 사람이 있기나 할는지. 어떻게 싸우고 누구를 구했는가 만으로도 요구되는 시간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연단에 선 대통령이 객석을 향해 말했다.
“한겨울 중령은 뛰어난 통찰력으로 수사당국을 도와 네크로톡신 제조시설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중령이 아니었더라도 결국은 찾아냈겠지만, 시급을 다투는 상황에서 촌각이나마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일분일초에 수많은 사람들의 안전이 걸려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겨울이 없었어도 결국 찾아냈으리라는 말은 필시 수사당국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일 터였다. 살아있는 변종이 검문소를 통과하고 네크로톡신이 무기화되는 동안, FBI를 위시한 수사기관들은 뭘 하고 있었느냐는 불만.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여론이 남부지역에서 강하다는 점이었다. 반란세력이 도시 한복판에서 독소를 양산했다는 사실에 기겁을 한 주민들이 많았다. 따라서 사전에 막지 못했다고 비난을 하는 무리가 있기는 하나, 연방정부에 대한 전체적인 지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아졌다. 주민들이 보기에 반역자들은 순수한 악 그 자체였고, 주 정부는 연방정부보다도 무능했다.
차기 대통령 입장에선 유익하기 짝이 없는 인식 변화였다.
맥밀런의 말이 이어졌다.
“거리로 나간 중령은 허위정보에 흔들린 시민들을 진정시키고, 사태가 끝날 때까지 안전한 곳에서 정부를 믿으며 기다리도록 설득했습니다. 군경과 협력하여 반역자들의 수괴, 클라리사 채드윅의 소재를 파악한 뒤에는 육군 무기 박람회장에서 벌어진 전투에 가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니언 역에 매복해있던 다섯 명의 저격수를 단신으로 사살하기도 했지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영웅적인 전과였으나-”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일 것인데, 사살한 적의 수와 교전을 벌인 장소, 각 교전의 의의, 구한 사람들의 이름 등을 하나하나 나열하는 동안 지루해하는 청중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호텔 만다린 오리엔탈에서 고립되어있던 명사들과 아군을 구조한 부분까지 설명한 뒤에, 대통령은 겨울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음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무척이나 어렵고 숭고한 싸움이었다고 강조했다. 듣는 겨울은 그가 역설한 숭고함이 낯간지러웠다. 그저 앤을 살리려고 필사적이었던 건데…….
“그토록 경이로운 헌신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한겨울 중령에게 명예훈장을 걸어줄 수 없습니다. 중령 스스로가 어떤 잘못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컨벤션 센터에서, 중령은 사로잡은 적을 고문했지요. 포로가 된 아군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백을 두고, 대통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압니다. 납득하기 어려우시겠지요. 적은 다수의 전차와 장갑차를 탈취했고, 우리의 영웅들은 그들의 진격을 육탄으로 저지해야만 했습니다. 중과부적의 촉박한 열세 속에서 달리 무슨 방법이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행동하면 좋았겠습니까?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중령이 죄를 저질렀다고 말할 사람은 드물 것이며, 강하게 비난할 사람은 더더욱 드물 것입니다.”
조용히 동조하는 청중.
“고백하자면, 여러분께서 그러셨듯이, 저는 한 중령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까지 짊어질 필요 없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요. 그러나 중령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설득하려는 모든 관계자들에게,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의 과오를 재확인시켜주었습니다. 피치 못할 일이어도 잘못은 잘못이라고. 그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저는 이를 전해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세속적인 명예에 얽매이지 않는 그 양심과 신념이야말로 진실로 명예로운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객석에 앉은 이들 가운데 겨울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은 몇몇이 그렇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박수를 친다. 진심인지 연기인지 모르겠으나 크레이머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잠시나마 취재진의 카메라 일부가 그에게 초점을 맞췄다. 시종일관 엄숙해야할 식장에 때 아닌 웃음이 흐른다. 맥밀런 대통령 역시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비록 명예훈장을 수여할 순 없을지라도, 한 중령이 그 누구보다 명예로운 사람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온 미국이 알고 있지요. 따라서 저는 그 명예를 한 쌍의 수훈십자장으로 기리고자 합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갈채가 쏟아졌다. 한 자리에서 하나의 공적으로 두 개의 십자장을 받는 건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다. 십자장의 격이 명예훈장 바로 밑이니, 말 그대로 명예훈장에 준하는 명예였다.
훈장을 달아줄 때, 악수를 나누는 틈에 대통령이 자그맣게 말했다.
“실은 이것마저 안 받겠다고 할까봐 걱정했다네.”
겨울은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신경 쓰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대통령은 이를 가벼운 농담으로 받았다.
“자랑스러워해도 좋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국의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든 것이니. 한 순간이나마 세계 최고의 권력을 휘둘렀다고 봐도 되겠지.”
수여식은 이후로 이어지는 만찬까지 별 탈 없이 끝났다.
크리스마스가 일요일이었으므로 대체휴일을 포함한 연휴는 월요일까지 계속되었다. 덕분에 겨울은 화요일까지 앤을 만나지 못했다. 테러에 대한 우려로 연휴 내내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며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그녀가, 업무에서 해방되자 스무 시간 넘게 기절하다시피 잠들어버린 까닭이다.
심지어 그렇게 잠든 장소가 FBI 본부의 휴게실이었다. 집에 갈 엄두조차 안 났다는 뜻. 잠깐씩 통화를 하긴 했으나, 그 나흘은 겨울에게도 편치 않은 시간이었다. 자꾸만 주의가 산만해지는 것을 막기 힘들었다. 누가 말을 걸면 되묻기 일쑤여서, 그 딱딱한 진석에게 어디 아프냐는 걱정을 들었을 정도다. 겨울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내가 못 견디겠는데…….’
부대 재배치까지 앞으로 3, 4개월쯤 남아있긴 하나, 반란을 진압한 날부터 벌써 두 달을 끌어온 고민이 몇 달쯤 더 흐른다고 끝날 것 같진 않았다. 그냥 모든 생각을 놓아버릴까 하는 충동이 반복해서 드는 이유였다. 딱 한 번만 이기적으로 굴자고. 천종훈은, SALHAE는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경우였을 뿐이라고.
도움이 된 것은 때때로 앤이 전송하는 사진들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있어요.」
그녀가 첨부한 문자의 내용.
「겨울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불분명해서 답답하고 괴로워지는 순간들. 한 부분에 집중하면 다른 부분이 흐려지기를 반복하죠. 아무리 골몰해도 내가 원하는 만큼 선명한 상을 그려낼 순 없어요. 왜냐면 그 선명함의 기준이 현실에 있는 당신이니까.」
「결국 한 번 시작된 답답함은 사진이라도 봐야 비로소 해소되곤 해요. 그러지 않으면 다른 모든 생각들을 잡아먹어버리죠.」
「당신도 그럴 것을 알아요.」
그래서 사진을 보낸다는 의미였다.
그녀의 말은 정확했다.
1월 20일, 크레이머는 정식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당선인은 오른손을 들고 제 말을 반복하여 서약해주시기 바랍니다.”
취임식에서, 겨울은 연방 대법원장의 말을 육성으로 들을 수 있을 만큼 근접한 위치에 앉아있었다. 연단 바로 뒤에 마련된 귀빈석의 가장 앞줄. 그것도 취임선언과 연설이 진행되는 내내 대통령과 한 화면에 들어갈 정도로 중심에 가까운 자리. 보통은 거액의 선거자금을 내놓은 핵심 후원자나 집권당의 중진, 또는 장관급 공직자에게 내줬어야 할 의자였다.
그러나 크레이머는 선거자금 대부분을 자신의 돈으로 충당했으며, 집권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도 못했고, 누구 눈치를 보는 성격도 아니었으므로 겨울을 끌어다 앉혀놓았다. 여러 차례 사양했더니 본인이 직접 행차하여 데리고 오지 않겠는가. 겨울은 카메라 앞에서 난감한 속을 감추었다. 원래는 경비임무가 주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헌데 밤에는 취임기념연회에까지 참석해야 한다. 부대 운용이야 중대장인 진석이 알아서 할 테지만.
크레이머가 영부인이 받쳐 든 성경에 왼손을 얹고 오른손을 들어 대법원장을 따라 서약했다.
“저 에드거 알렉산더 크레이머는 엄숙히 선서합니다. 저는 미국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하게 이행할 것이며, 최선을 다하여 미합중국의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하며 지켜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선서를 끝내자 의장대가 축포를 쏘고, 대법원장이 크레이머에게 악수를 청했다.
“축하드립니다, 대통령 각하. 부디 이 나라를 훌륭하게 이끌어주십시오.”
크레이머는 웃는 얼굴로 여유롭게 인사를 받았다. 연단 아래 운집한 시민들의 갈채와 환호는 몇 분에 걸쳐 계속되었으며, 그동안은 겨울도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러지 않으면 부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전임자인 맥밀런 대통령은 후련함 반 착잡함 반인 얼굴로 크레이머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내용은 함성에 파묻혀 겨울로서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이어 크레이머는 취임연설을 위해 연단에 섰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아랑곳없이 이 나라의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는 자리에 나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있었기에 제가 많은 역경을 딛고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맥밀런 대통령을 비롯한 전대 대통령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훌륭한 지도력이 오늘의 미국을 가능케 했습니다. 여러분께서 남기신 정치적 유산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손을 펼쳐 겨울을 가리켰다. 카메라 수십 대가 거의 동시에 초점을 바꾸었다.
“아울러 한겨울 중령. 참혹한 반란이 이 도시를 휩쓸었던 날, 당신이 살려주었던 이 목숨을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최대한 가치 있게 사용하겠습니다. 당신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아있으니, 나 또한 귀관의 헌신을 본받아 온 힘을 다하여 국가와 시민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함께 싸워나갑시다. 우리는 앞으로도 더불어 승리할 것입니다. 당신의 등 뒤엔 언제나 나와 시민들의 지원이 있을 것을 약속하는 바입니다.”
시민들의 환호가 다시 한 번 끓어오른다. 겨울은 어렵게 미소 지었다. 절제된 웃음으로 비춰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