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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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의 바람 (5)
5월 3일, 훈련지역엔 1인치의 눈이 내렸다.
겨울은 부러진 나무와 전복된 장갑차 앞에 서서 하얀 입김을 뿜어냈다. 분리된 낙하산은 근처의 다른 나무에 걸려 차가운 바람에 너울거리는 중이다. 현재 시각 오전 7시. 태양이 이미 능선을 넘었음에도 기온은 아직까지 어는 점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산악 특유의 칼바람 탓에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언저리까지 내려갔다.
뽀드득, 뽀드득. 밤에 쌓인 눈은 새벽 내내 얼어 조금 단단한 느낌으로 발에 밟혔다. 사고현장을 한 바퀴 돌아본 겨울이 뒷짐 지고 서있는 러시아 장교에게 물었다.
“구쉬킨 소령. 계곡 쪽 구조작업은 어떻게 되었답니까?”
알렉세이 빅토로비치 구쉬킨이라는 이름의 공수군 소령은 마뜩찮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친 녀석은 없다는 통보입니다. 그저 계곡에 끼어서 기동이 불가능해졌을 뿐이죠.”
“다행이네요.”
“일단은 그렇지만, 미국 놈들이 좀 더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앞으로 계속 이런 식이라면 언젠가는 사망자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겨울도 시민권 보유자인데, 구쉬킨 소령은 겨울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미국의 흉을 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함께 훈련을 뛰는 입장에서 이해할만한 불만이기도 했다. 공수강하 훈련이 개시된 이후 지금 같은 사고가 빈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만 해도 두 건이다.
겨울은 장갑차 안쪽을 살폈다. 약간의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후송된 병사들 중에 뇌진탕 환자가 있었으니, 필시 그가 머리를 부딪친 흔적일 터. 그밖에는 골절환자가 다수다. 생명에 지장은 없으나 전투수행은 불가능했다. 실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봐야한다.
이 장갑차는 바람에 휩쓸려 예정된 착륙지점을 벗어났다. 거리상으로는 많이 멀어진 게 아니었으나, 이런 산악지대에선 상대적으로 안전한 착륙지점 자체가 좁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곧바로 위험해진다는 게 문제였다.
머릿속에서 거친 낙하과정을 재구성해보는 건 겨울에게 꽤나 쉬운 일이었다.
‘아래쪽 장갑판에 긁히고 패인 흔적이 있으니까……. 일단 완충 매트부터 터졌겠구나.’
하늘에서 장갑차를 집어던지려면 지면에 닿는 순간의 충격을 흡수해줄 공기 매트가 필수였다. 그러나 이 장갑차는 하필 곧게 자란 상록수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그 매트부터 찢어져버렸을 것이다. 콰지직, 쿵. 나무는 부러지고, 장갑차는 뒤집어진 채로 땅과 충돌. 그 결과가 눈앞의 현장이다. 낙하산에 의해 감속된 상태라 해도 13톤짜리 쇳덩어리인 것이다. 빠진 포탑은 저편에 따로 나뒹굴었다.
“제 말 들으셨습니까?”
구쉬킨 소령의 채근에 겨울이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더 나은 물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죠.”
“방향제어가 잘 안 되잖습니까.”
“글쎄요. 이건 그냥 낙하산을 이용한 공수의 한계 같은데요. 손실률도 예상보다는 양호한 수준이고……. 뭔가를 더 달면 항공수송 자체가 불가능해질걸요?”
보조 로켓이 달린 낙하산은 무게가 2톤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게보다 문제가 되는 것이 부피였다. 미국과 러시아가 기술합작을 했는데도 그렇다. 장갑차의 크기를 줄이지도 못할 노릇이었다. 본말전도니까.
“그럼 낙하산 말고 원자력 비행선을 쓰면 됩니다.”
겨울은 이제야 구쉬킨을 돌아보았다.
“그 이야기는 이미 윗선에서 끝난 걸로 아는데요.”
“작전은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계획을 바꿔달라고 건의할 수도 있는 거지요. 화력공백이 우려될 경우 한 척을 더 투입하면 그만입니다.”
“화력공백만 문제가 아니잖아요.”
살짝 눈을 찌푸리는 겨울.
공수부대는 모든 구성요소가 다 가벼워야 하는 특성상 포병화력이 부족하다. 그 공백을 메워주기로 한 것이 바로 패트릭 헨리 급 2번함이었다. 겨울의 이름이 붙은 그 비행선이다. 예전에 상상했던 것과 달리 제로 그라운드 진공이 단시간에 치고 빠지는 작전으로 계획된 덕분에, 한 척만으로도 충분한 감제(瞰制) 및 화력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당연히 이를 병력 수송에도 쓰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그 시간 동안 화력공백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행선 자체가 강습에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많아서 기각되었다.
‘애초에 기낭(氣囊)이 항공모함보다 더 큰 비행선인데 계류시설 없이 안정적인 착륙이 가능할 리가…….’
현수막이나 매다는 일반적인 비행선이라면 모를까, 표면적이 어마어마한 패트릭 헨리 급은 착륙에 전용 계류시설이 필요하다.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까닭. 하물며 착륙예정지는 바람이 강한 고지대였다.
닻을 추가한다면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적어도 닻 두 개를 쓰는 쌍묘박이어야 하고, 한 쌍의 닻과 인양기를 추가한다는 전제 하에 160톤가량의 적재중량을 낭비하게 된다.
그걸 감수하고 개장한다 쳐도 그 체급에 신속하게 착륙하기는 어렵다. 그 시간 동안 공격에 노출되기 쉽다는 뜻이다. 거기에 압도적인 크기로 인한 압도적인 시인성(視認性). 야간 강하를 하더라도, 지상에 내려온 비행선은 아주 많은 변종들의 이목을 끌 터였다.
단점을 꼽자면 이외에도 얼마든지 많았다.
결정적으로, 비행선엔 에스더가 탑승한다. 비행선이 공중에 머물러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보다 넓은 범위에서 전파를 수집할 수 있어야 하니까. 에스더의 도움을 받은 공중포대는 변종들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위치가 확인된 모든 트릭스터들에게 직격탄을 날려줄 것이다. 곧바로 죽이기보다는 이용하는 편이 더 낫겠지만. 시작부터 트릭스터를 몰살시켰다간 변종들의 동태를 살피기도 어려워진다.
때로는 무질서한 적을 상대하기가 더 까다로운 경우도 있는 법이다.
겨울이 말을 아끼는 건 구쉬킨 소령도 이러한 사정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소령은 부하들이 다치는 걸 보기가 달갑지 않은 것이다.
겨울은 뭔가를 더 말하려는 소령을 향해 손을 들어보였다.
“정 건의를 하고 싶다면 정식 명령계통을 따라요. 나한테 이러지 말고.”
구쉬킨은 떫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눈치로 미루어 건의를 했는데도 묵살당한 모양이다. 그래서 겨울에게 아쉬운 소리를 늘어놓은 것이고.
‘이제 보니 그게 시험이었단 말이지.’
카프라로프 소장이 겨울에게 당시 소장이었던 로저스 중장의 진급 이야기를 꺼냈던 배경에는, 그게 실제로 필요하다는 이유 외에도 겨울의 능력을 확인해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로저스가 중장을 달고서부터 겨울에게 친근하게 구는 러시아 장교들의 수가 부쩍 늘어났다. 카프라로프 소장의 태도도 전보다 더 살가워졌다. 겨울을 막후의 실력자쯤으로 간주하는 분위기.
그 와중에 구쉬킨은 겨울에게조차 까탈스럽게 구는 몇 안 되는 러시아 장교 중 하나였다.
그가 말했다.
“전 다른 곳을 보러 가보겠습니다.”
“뭔가 보완할 점이 보이면 알려줘요.”
“그러려고 온 겁니다.”
소령이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자리를 뜨자, 이번엔 잠자코 지켜보던 진석이 불만을 쏟아냈다.
“뭡니까? 저 싸가지 없는 태도는.”
“병사들이 다쳐서 그런 거잖아요. 이런 손실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보다야 낫죠.”
“그래도 기본적인 예의라는 게 있습니다. 저한텐 개떡같이 굴어도 좋지만 작은 대장님께는 아닙니다. 우리 부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안 됩니까? 우리 쪽으로 오고 싶어 안달 난 놈들도 많습니다.”
“조금만 참아요. 조언을 받는 것도 잠깐일 테니.”
현 시점에선 독립대대만이 아니라 작전에 참가할 미군 전체가 러시아 장교단의 조언 및 평가를 받고 있다. 전차와 장갑차에 사람을 태운 채로 낙하산 강습을 시키는 나라는 역병 이전이나 이후나 러시아가 유일했다. 강하 즉시 교전을 시작할 능력을 보유한 것이다. 미군은 그 기술과 암묵지를 습득하고 발전시키는 중이었다.
“이번엔 강하에서 집결까지 얼마나 뒤쳐졌어요?”
겨울이 묻자 진석이 한숨을 쉬었다.
“러시아 애들보다 21분이나 늦었습니다.”
“한숨 쉬지 마요. 이번이 겨우 세 번째인데, 벌써부터 숙련자들을 따라잡으면 이상하죠.”
“이런 지형에서 강하하는 건 러시아 애들도 생소하다고 하잖습니까.”
“그래도요. 경험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죠.”
“…….”
“가끔은 병사들 칭찬도 해주고 그래요.”
“그건 대대장님 역할로 남겨두는 편이 좋습니다.”
대답이 하도 단호하여 겨울은 곤란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후 독립대대는 기본적인 기동훈련을 실시했다. 이는 새로 배치된 장비들의 성능 시험을 겸하는 것이기도 했다. 공수전차든 장갑차든, 러시아제를 그대로 갖다 쓰는 게 아닌 까닭에 아직 개량의 여지가 남아있었다.
장갑차의 탑승감은 썩 좋지 못했다. 성능은 성능대로 갖추면서 무게를 줄이다보니 내부 인원의 편의성은 우선순위가 낮아진 탓. 화생방 보호의를 입은 병사들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장갑차엔 외부 공기의 유입을 막는 양압 장치가 달려있었으나, 하차전투가 불가피하므로 보호의 착용은 필수였다. 역병에 처음으로 맞섰던 중국은 핵과 생화학무기를 아낌없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모겔론스의 발원지 인근엔 약간의 방사능과 더불어 고농도의 네크로톡신이 잔류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겨울은 생각했다.
‘그나마 탄저병 걱정이라도 덜었으니 다행이지.’
탄저균 내성 변종의 식별코드는 앤스락스 로지(Anthrax Rosie)였다. 이는 영국의 동요(Ring a Ring o’ Rosie)에서 따온 이름으로, 이 동요가 흑사병이 돌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도시전설에 기초한 작명이었다.
미국은 그간 앤스락스 로지의 상륙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탄저균 백신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병사들에게만 접종하기에도 생산량이 모자랐으므로. 한 사람이 완벽한 면역을 획득하려면 1년 반에 걸쳐 10개의 백신을 소모해야 한다. 그나마도 이후 매년 추가접종을 받아야만 면역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반면 탄저균은 흙 속에서 한 세기를 버텨낸다.
그런 이유에서, 겨울의 독립대대를 비롯해 제로 그라운드에 강하할 모든 장병들에겐 집중적인 백신 접종이 이루어졌다. 투여량을 늘려 접종기간을 단축한 것이다.
풀어놓을 트릭스터에게도 면역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조금 우습다.
트릭스터가 그러하듯, 앤스락스 로지도 재감염을 통해 면역을 확산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면역을 얻은 변종이 다른 변종을 물면 물린 쪽도 면역을 획득하는 식. 모르긴 몰라도 어느 특수부대 하나가 한 발 앞서 중국 대륙에 다녀오지 않았을까?
혹은 러시아가 벌써 확보하고 있었다거나.
겨울은 이번 작전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했다.
정오 무렵, 훈련을 마친 독립대대는 산맥의 서쪽 사면을 타고 내려와 소도시 리드빌 어귀에 이르렀다.
그런데 주둔지를 목전에 두었을 때, 한 무리의 시위대가 독립대대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당혹스러워진 겨울이 해치를 열고 상체를 내밀었다. 시위대는 이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군은 자연을 파괴하지 마라! 군은 자연을 파괴하지 마라!」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군사훈련을 당장 중지해라!」
난감한 상황이었다. 대대는 속절없이 멈춰 섰다. 군이 어떤 식으로든 일반 시민에게 손을 대는 건, 합당한 명령을 받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계엄령은 해제된 지 오래다. 겨울이 망설이고 있으려니, 시내 방향에서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다. 순찰차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크 카운티의 보안관도 등장했다. 하차한 겨울을 본 그는 모자의 챙을 붙잡고 목을 까딱거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버크하트입니다.”
“한겨울입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보시다시피, 자연경관을 망치는 군사훈련을 저지하기 위한 시위라는군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리송한 겨울의 반응에, 보안관이 어깨를 으쓱인다.
“저도 방금 오면서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거랍니다. 주지사께서 직접 전화하셨더군요. 아울러 중령님께는 미리 막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게 미안하실 일은 아니지만, 그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고 싶네요.”
“저도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못 들었습니다. 뭔가 정치적인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확인하는 대로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우선은 주둔지로 들어가실 수 있게끔 길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시위대는 소리 높여 고함을 질러댔으나, 경찰의 통제엔 의외로 순순히 따라주었다. 다들 어딘가 몸을 사리는 느낌. 군을 가로막은 시위대에겐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습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