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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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의 바람 (6)
유감스럽게도, 이번 시위에 대해서는 앤 역시 아는 바가 없었다.
「채피 주지사가 부대를 방문할 예정이라고요?」
질문을 받은 겨울이 긍정했다.
“그렇다던데요. 직접 연락을 받은 건 아니지만.”
「흠…….」
뜸들이던 앤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순한 방송 욕심이 아니라면 정말 뭔가 귀찮은 배경이 있는 거로군요.」
“뭐, 오면 알게 되겠죠.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현 시점에서 겨울 개인이나 독립대대에 대한 음해는 있기 어렵다. 물어뜯으려는 쪽이 오히려 피투성이가 될 것이기 때문.
그러므로 십중팔구는 제로 그라운드 진공에 관련된 다툼일 것인데, 크레이머 행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감안할 때 진공계획 자체가 좌초될 확률은 희박했다.
크레이머는 방역전쟁의 항구적인 해결을 바란다. 그것도 자신의 첫 임기 내에. 그렇게 되면 두 번째 임기는 첫 번째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율 속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그가 바라는 대로 재설계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였다.
앤이 묻는다.
「동맹 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요?」
“그쪽은 괜찮아요.”
「겨울과 가까운 사람들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돈은 사람을 변하게 만들어요.」
“알아요. 그래도 당장은 괜찮아요. 확인했으니.”
「확인이라……. 혹시 정보국?」
“네. 그렇게 됐어요.”
가벼운 말에, 앤은 앓는 소리를 냈다. 수화기 너머로도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쪽에 맡겨도 괜찮을지 미심쩍네요. 비리를 적당히 묻어놨다가 나중에 약점으로 쓸 지도 모르잖아요? 폭로하겠다면서. 겨울동맹으로 들어가는 예산과 기부금을 두고두고 뜯어내려는 속셈일 수도 있죠.」
“그건 그러네요.”
겨울은 순순히 수긍했다.
“만약을 위한 보험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가급적이면 다른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는 편이 좋아요. 정보국이 최근 무리하게 자금을 운용한 정황을 포착했거든요. 러시아에서의 공작에 공식적으로 보고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투입한 게 분명해요. 정보국 입장에선 미래가 걸린 문제였을 테니까요.」
미국 남쪽에 핵을 보유한 가상적국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정보국의 존재가치가 확실해진다. 따라서 정보국은 이번 작전의 성사에 사활을 걸었을 터. 앤의 지적은 그런 뜻이었다.
「비공식적으로 소모한 자금은 비공식적인 수단으로 채워 넣어야 돼요. 적발을 피하려면 불가피한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겨울동맹은 괜찮은 숙주예요. 벌써부터 기부금 총액이 연간 예산을 웃돌고 있잖아요.」
언제나처럼 훌륭한 통찰력이었다. 실제로 백산호가 관리하던 어느 재벌의 비자금 건이 있지 않았던가. 겨울에게는 3할을 빼낼 수 있다고 했으나, 그마저도 줄여서 말한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또한 백산호가 정보국이 캐낸 돈줄의 전부일 리도 없었다. 정보국은 예전부터 검은 돈의 흐름에 민감했을 터이므로.
대안은 있었다.
“외부감사를 받으려고요.”
겨울의 말.
“정기와 부정기로 나눠서 매년 최소 두 번씩 의뢰하면 누구라도 자금을 유용하기 어렵겠죠. 내가 바라지 않는 이상에야……. 지출은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수수료가 아깝다는 말이 나오겠지만, 신뢰도로 보상받을 테니 결코 손해는 아니라고 봐요. 난 동맹보다는 다른 단체들이 걱정스럽네요.”
난민단체의 대다수는 맥밀런 전 대통령의 불길한 예언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겨울이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기껏해야 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편지로 주의를 당부하는 정도. 그들이 겨울의 충고를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의문이었다.
혹은 질투를 할 수도 있겠다. 유명세에 힘입어 기부금을 잔뜩 받는 주제에, 기본 예산으로만 단체를 운영해야 하는 자신들의 형편도 모르면서 잘난 척 간섭한다는 식으로. 평범한 난민들과, 그들을 이끄는 입장일 누군가는 겨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나중에 독이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만에 하나 부정이 불거진 뒤에 편지가 유출될 경우, 그들이 한겨울 중령의 충고를 무시했다는 식으로 보도될 것이 뻔했다. 겨울이야 반사이익을 얻겠으나, 결코 바라는 바는 아니다.
하다못해 보고 들은 바를 있는 그대로 전할 수만 있어도 꽤 나으련만.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크레이머가 함정을 팠다는 식으로 노골적인 글을 전할 순 없었다. 이게 새어나가면 1차적으로는 백악관이 된서리를 맞고, 2차적으로는 겨울이 후폭풍을 맞게 된다.
전 대통령의 조언이라고 밝혀버리면 그땐 맥밀런의 사정이 난처해질 터.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일 진 몰라도, 겨울로선 고르기 어려울 선택지였다.
“무거운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죠.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울이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앤. 나랑 결혼하기로 한 거, 부모님께는 말씀드렸어요?”
앤이 웃음을 터트린다.
「뭐예요, 갑자기.」
“이것도 중요한 일이잖아요.”
「그야 뭐…….」
“아무튼, 대답은?”
「아직 안 알려드렸어요. 두 분이 비밀을 지켜주실 것 같지도 않고. 하루도 안 지나서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걸요? 그 다음날엔 뉴스에서 보게 될 테고요.」
“알려지면 어때요.”
「진심이에요?」
“나는 둘째 치고 앤이 귀찮아지겠지만, 언젠가는 치러야 할 홍역이잖아요. 쓸 데 없이 유명해서 미안해요. 괜히 당신을 힘들게 하네요.”
앤은 다시 한 번 가볍게 키득거렸다.
「농담이 늘었어요.」
그녀는 잠시 생각한 뒤에 싫다고 말했다.
「함께 찾아가서 부모님을 놀라게 해드리고 싶어요. 당신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궁금하거든요. 항상 내게 남자 고르는 안목이 없다고 하셨는데.」
“자그마한 복수네요?”
「한편으로는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게 싫기도 해요. 현장파견은 엄두도 못 내겠죠.」
“어느 쪽이 더 중요한 이유인데요?”
「당연히 앞쪽이죠.」
이번엔 겨울이 웃었다.
그리고 영내에 사이렌이 울렸다. 앤이 딱딱하게 물었다.
「거기 무슨 일 있어요?」
“모르겠어요. 일단 끊어요. 확인 되는대로 연락할게요.”
「조심해요.」
인사를 나누고 통화를 종료한 겨울은 전투준비를 갖추며 무전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보고는 금방 들어왔다. 당직사령은 비상을 건 이유를 설명했다.
“침입자?”
「예. 22시 37분, 순찰조가 철조망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주둔지 전체를 봉쇄하고 영내를 수색하는 중입니다.」
“침입 규모는요?”
「발자국으로 미루어 한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나도 수색에 합류하죠.”
「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암살시도 때문이라면 괜찮아요.”
「그게 아닙니다. 침입자를 구속했답니다.」
“……잠깐만요. 벌써 잡았다고요?”
황당해진 겨울이 되물었다.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하고서 고작 3분쯤 흘렀을 뿐이다. 이쯤 되면 극도로 운이 좋았거나, 침입자가 굉장히 무능하거나, 혹은 애초부터 침입자에게 숨을 마음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겨울은 마지막 추측에 무게를 두었다. 그렇잖아도 낮에 시위가 벌어지지 않았던가. 시위대는 경찰의 통제에 따르면서도 주둔지를 쉽게 떠나지 않았다.
잠시 후 추가 보고가 올라왔다. 침입자는 무기를 휴대하지 않은 민간인이라고. 추측이 반쯤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저 겨울을 실물로 보고 싶은 팬의 소행일 공산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엔 때가 너무 공교롭다.
「당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냥 경찰에 넘길까요?」
당직사령, 중국계 미국인인 브라보 중대장의 음성에 난감함이 묻어났다.
“아뇨. 일단 붙잡아둬요.”
겨울이 지시했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
정말로 시위대의 한 사람이라면, 혹은 그 시위를 유도한 누군가가 보낸 사람이라면 이야기를 들어볼 가치가 있다. 내일 오겠다는 주지사가 진실을 알려준다는 보장이 없는 까닭.
앤에게 상황이 종료되었으니 안심하라는 문자를 보내고서, 겨울은 무장을 갖추고 숙소를 나섰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입구에 이미 경찰이 와있었다. 리드빌이 워낙 작은 도시인데다, 보안관 사무실에서 주둔지에 이르는 길이 고작 1마일도 되지 않았으니까. 경찰 또한 낮의 시위로 신경이 곤두서있었을 것이기도 하다. 겨울은 그들이 그 자리에서 기다리도록 요청했다.
“드디어! 한겨울 중령님!”
붙잡혀있던 사람이 반갑게 소리쳤다. 벌떡 일어나려는 그녀를 병사들이 힘으로 주저앉혔다.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겨울을 만난 미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가만히 바라보던 겨울이 한쪽 무릎을 꿇어 침입자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겨울을 마주보았다. 겉과 속이 다른 게 사람이라지만, 인상 자체는 순한 흑인 여성이었다. 조명에 반짝이는 귀걸이가 눈에 띈다. 입고 있는 구스다운 패딩 역시 밝고 강렬한 붉은 색이었다. 애초에 잡힐 작정으로 들어왔다는 또 하나의 증거였다. 마약중독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맨 정신으로 벌인 일이다.
겨울이 입을 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위니 멀드로요!”
“그럼, 멀드로 양.”
“위니라고 불러주세요!”
“……좋습니다, 위니. 군부대에 무단으로 침입한 게 큰 잘못이라는 건 알고 계시지요?”
“네. 벌을 받을 건 각오했습니다.”
침입자가 순교자 같은 표정을 지었다. 겨울은 짧게 한숨지었다.
“각오하셔도 곤란한 일입니다만……. 저와의 대화가 목적이었나요?”
“맞아요. 저는 중령님께 우리 「인류를 위한 미국 시민들의 행동」을 지지해달라는 부탁을 드리러 왔어요.”
「인류를 위한 미국 시민들의 행동」이라는 건, 어조로 미루어 멀드로가 속한 시민단체의 이름인 모양이다. 겨울은 슬쩍 떠보는 질문을 던졌다.
“자연을 파괴하지 말라는 것 말입니까?”
멀드로는 얼른 고개를 젓는다.
“그건 맛보기를 보여준 것에 불과해요.”
“맛보기? 저한테요?”
“그럴 리가요! 당연히 크레이머한테죠! 만약 말도 안 되는 정책을 강행한다면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하겠다는 선전포고 같은 거였어요! 그렇게 되기 전에 좋게 해결하자는 신호를 보낸 거죠!”
겨울은 상체를 슬쩍 뒤로 물렸다. 침이 튀었기 때문이다. 멀드로는 열성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낮에는 훈련을 방해해서 죄송했습니다, 중령님. 하지만 크레이머 대통령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아신다면 분명 저희를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는 해적들의 정권을 인정하려 하고 있다고요!”
짐작 가는 바가 없다. 매일 꼼꼼하게 신문을 읽고 저녁마다 뉴스를 챙겨보는 겨울이 모르는 일이라면, 출처가 의심스러운 게 정상이었다.
“해적들의 정권이라는 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멀드로는 자랑스러운 기색으로 답했다.
“저희가 입수한 정보죠! 크레이머 행정부의 새로운 대외정책이요!”
“…….”
“중령님도 아시겠지만, 예전엔 해적이 참 많았잖아요?”
“그랬지요.”
“그 해적들이 여러 섬을 불법적으로 점령하고서 원래 있던 주민과 난민들을 억압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크레이머는 그런 해적들이 세운 정부를 인정해줄 계획이에요! 뭐라더라……. 그렇지! 그들이 공해상의 질서유지와 세계의 이익에 기여하고, 민주주의를 수용하며, 더 이상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인류존속의 대의를 위해 과거의 잘못은 묻지 않겠다! 요약하면 그런 내용이었어요! 그게 말이 되나요? 앞으로도 범죄자들의 손에 무고한 사람들을 맡겨두겠다니! 불쌍한 주민들은 노예처럼 부려질 거예요!”
성토는 겨울이 끼어들 틈도 없이 계속됐다.
“게다가! 그 섬들이 원래 어느 나라 영토였는지도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해요! 그래선 안 되는 일 아닌가요? 이건 미국이 다른 나라들의 주권을 무시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어요! 어떤 땅이든 점령한 자의 것이다! 이런 의미죠!”
이 말을 듣고, 겨울은 이 정보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멕시코를 비롯한 중미 지역의 취급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놀라울 것도 없이, 멀드로는 크레이머 행정부가 러시아와 제3국의 영토를 건 거래를 했다는 사실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 거래에 겨울이 참가한 훈련이 포함된다는 것마저도.
‘정보를 흘린 게 누굴까.’
겨울은 고민했다. 누가 흘렸든 간에, 지금 이 상황은 그 사람이 바란 바가 절대로 아닐 터였다. 역효과만 볼 테니까.
이런 생각을 모르는 멀드로는 처음의 순수함으로 요구했다.
“중령님. 우리를 도와주세요!”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간단해요! 러시아와의 합동 훈련을 거부하시고, 우리를 공개적으로 지지해주세요!”
조금도 간단하지 않은 일이었다. 겨울이 달래듯이 말했다.
“위니. 당신의 말을 무작정 믿을 수도 없을뿐더러, 전부 진실이라 해도 제겐 불가능한 요구들입니다.”
“어째서요? 당신은 한겨울 중령이잖아요?”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겨울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네. 저는 한겨울이고, 중령입니다. 군인이죠. 군인은 명령에 따라야합니다.”
“그래도, 당신은 한겨울 중령이잖아요.”
두 번째다. 겨울을 뭔가 특별한 존재처럼 부르는 말투가.
멀드로의 얼굴에 혼란이 떠올랐다.
“한겨울 중령은 당연히 우리 편이어야 하는데…….”
겨울은 무릎을 짚으며 일어섰다.
“아무래도 당신 머릿속에 있는 저와 여기 있는 저 사이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제게는 한계가 있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도와드리지 못해 유감입니다. 이 분, 보안관에게 모셔다드려요.”
마지막은 병사들에 대한 지시였다. 지목당한 병사 두 명은 손이 허리 뒤로 결박된 멀드로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 실망한 시민운동가는, 겨울을 바라보며 배신자라고 중얼거렸다. 자신감 없는 목소리. 본인이 내뱉은 단어에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