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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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의 바람 (8)
6월 26일 새벽, 겨울은 해발 3만 5천 피트 상공의 수송기 안에서 회중시계를 보고 있었다. 조명 옅은 화물칸의 정적 속, 톱니가 째깍거리며 돌아가는 와중에 평시보다 크게 울리는 숨소리가 섞였다. 강하를 앞두고 착용한 산소호흡기 때문이다. 단시간에 최소 수천 미터를 낙하하는 고고도 강하에선 먼저 순수한 산소를 호흡하여 혈중 질소농도를 떨어뜨리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감압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
삐익-
전자음과 함께 내부조명의 색채가 바뀌었다. 강하를 앞두고 화물칸 압력 조절을 시작한다는 신호였다. 겨울은 침을 삼켜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을 지웠다. 곧 후방 개폐구가 열릴 것이다. 붉게 물든 기내에서 대대 참모들이 낙하산 무더기를 올린 지휘장갑차에 탑승했다. 겨울도 그 뒤를 따랐다. 좌석에 앉아 벨트로 몸을 고정시킨다. 그리고 다시 시계를 보며 때를 기다렸다.
약 3분 후.
발과 등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이 한층 강해졌다. 유압모터 구동음이 들린다. 더불어 진해지는 바람소리. 장갑차 내부가 웅웅 울렸다. 이미 수십 차례의 강하 훈련으로 익숙해진 일이다. 시계를 갈무리한 겨울이 속으로 수를 헤아렸다. 셋, 둘, 하나.
덜컹! 고정 장치가 풀리면서 장갑차는 수송칸의 레일을 따라 미끄러졌다. 거친 진동 끝에 찾아온 건 갑작스러운 무중력. 이런 데 약한 통신장교 에반스가 숨을 삼키는 모습이 보인다. 고질적인 멀미와 긴장 탓에 처음 몇 번은 구토를 쏟아냈었다.
무리도 아니다. 장갑차 내부는 협소하다. 비좁은 공간에 갇힌 채 고공에서 던져지는 처지. 신경이 곤두서지 않는 쪽이 비정상이었다.
러시아 공수군도 좋은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들이 훈련받은 종래의 방식에서는, 기갑차량을 낙하산으로 공수할 땐 수송기에서 이탈하는 즉시 낙하산이 펼쳐져야 한다.
그러나 제로 그라운드 진공에 적용되는 방식은 달랐다. 일정 시간 자유낙하로 떨어지다가, 특정 고도에 도달하고서야 낙하산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를 HALO라 부르며, 기갑차량 강하에 적용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들었다.
겨울은 외부 관찰 카메라가 잡아낸 고고도의 야경을 보며 생각했다.
‘데브그루는 비슷한 경험이 있다던데.’
미국 최정예 특수부대답게, 그들은 보트에 탑승한 채로 이런 식의 강하를 성공시킨 적이 있었다. 강하지점이 해상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전반적인 조건은 유사하다.
바꿔 말하면, 이토록 특이한 강하에 숙달된 독립대대는 이제 특수부대라고 불릴 최소한의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었다. 특수부대의 기준은 전투력이 아니니까.
남은 건 실전경험 뿐이다.
미군 지휘부도 그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독립대대 투입은 사실상 대통령의 독단이었으되, 기왕 파병할 병력이라면 어중간한 상태로 보내지는 않는다.
지금, 멕시코 중부고원의 남쪽 하늘을 내려다보게 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겨울이 말했다.
“아름답지 않아요?!”
참모들 대부분은 겨울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 오직 부대대장 싱 소령만이 겨울과 같은 풍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경치입니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당겨져 있긴 했으나 모범적인 여유였다. 그가 하필 아내를 언급하는 바람에, 겨울도 앤을 떠올리며 외부 관측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달과 별이 비추는 난층운(亂層雲)의 지평선은 좌우로 35도쯤 기울어진 상태였다. 중력을 느낄 수가 없어서 체감하기 어렵지만, 장갑차가 그만큼 기운 채로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의미였다.
강하 개시로부터 약 1분 후, 드디어 낙하산이 작동했다.
갑작스러운 압력이 탑승인원 모두를 찍어 눌렀다. 겨울도 찰나의 호흡곤란을 느꼈다. 낙하산에 매달린 장갑차가 진자처럼 흔들렸다. 요동이 가라앉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로부터 다시 5분쯤 지나, 장갑차가 마침내 지면에 내려앉았다.
쿵-!
교전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2시 방향, 거리 80, 쏴!」
차장의 외침과 동시에 무인포탑이 회전했다. 쾅쾅쾅쾅! 묵직한 총성이 차체를 때렸다. 장갑 위로 탄피 구르는 소리도 선명하다. 겨울이 콘솔로 포수의 화면을 공유했다. 수풀에서 튀어나온 변종들이 갈가리 찢겨나갔다.
캬아아아악-!
눈으로 듣는 굶주린 외침들. 비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낙하산들을 발견했는지, 헐벗은 산 곳곳에서 변종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러나 결코 반갑진 않은 광경. 그리 큰 위협은 아니었다.
변종집단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나웠으나,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통제력을 발휘하는 개체가 없다기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강하하는 기갑차량들을 어찌 상대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에 가깝다. 이런 식의 강습은 트릭스터에게조차 낯선 것일 터. 안다고 해도 대응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 언제 어디서 강습이 이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뻥!
포성이 울리고 폭발이 뒤따랐다. 막 낙하산을 분리한 공수전차가 근거리에 고폭탄을 갈긴 것이다. 자동장전장치 덕분에 연사 속도가 빨랐고, 교전거리가 가깝다보니 조준은 금방이었다. 밤이 번뜩이는 자리마다 죽음이 뿌려졌다. 전차는 피와 살을 뒤집어쓴 채 거칠게 움직였다. 질량에 치인 변종들이 무한궤도 아래로 깔려 들어갔다.
겨울이 무전기를 잡았다.
“각 단차! 교전보다는 집결을 우선시해요! 우측 언덕을 타고 남하합니다! 그 아래의 하천과 이쪽의 비포장로를 경계로 화력을 집중할 것! 자잘한 적은 무시하고 지나가요!”
공수용 장갑차와 전차의 장갑은 다른 기갑차량에 비해 매우 얇은 편이지만, 그렇다 해도 평범한 변종들이 손톱으로 뜯어낼 정도는 아니다. 총탄 정도는 거뜬히 막아낼 방어력이었다.
전술지도를 확인하는 겨울. 좌표를 보니 집결지점으로부터 북으로 1.3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이었다. 트릭스터의 전파방해는 약하게 잡혔다. 교활한 놈이 멀리서 관망하고 있다는 뜻이다. 녀석의 입장에서 거리를 속이기엔 위험부담이 크다. 지형에 굴곡이 반복되는 환경 상 이쪽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야 하니까.
‘이제 곧 살아있는 포탄들이 쏟아지겠지.’
내산성 코팅이 장갑차의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방호해주진 못했다. 게다가 데들러는 인화성 변종도 있다. 코팅은 불에 약하다. 방어력을 믿고 못박혀있어선 안 되는 이유. 당연한 이야기지만, 산성아기들은 움직이는 표적에 대해 명중률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청색신호, 쏴요!”
겨울의 말에 따라 지휘장갑차에서 신호탄이 발사되었다. 몇 킬로미터 범위에서는 충분히 보일 법한 조명이었다. 각 중대에서 쏘아 올리는 신호탄들이 그 뒤를 이었다. 혹시라도 엉뚱한 위치에 낙하한 차량이 있다면 빛을 보고 찾아올 것이다. 변종들도 모여들 테지만, 기갑차량의 속도를 따라잡긴 어렵다. 본격적인 숫자가 들이칠 때쯤이면 겨울 지휘하의 병력은 이미 그 자리를 이탈한 뒤일 터였다.
구조를 요청하는 신호는 아직까지 올라온 게 없다. 그간의 훈련이 성과를 거두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계가 다수인 독립대대 브라보 중대는 산 마테오 소솔라라는 이름의 마을에 집결했다. 일본계가 다수인 찰리 중대와 구 한국군 출신이 다수인 델타 중대는 좀 더 남쪽에 있는 다른 마을에서 1차 집결을 완료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알파 중대는 서쪽으로 4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자력으로 합류할 예정이었다. 가장 위험한 위치를 가장 신뢰하는 병력에게 맡긴 셈.
서로 다른 위치에 강하한 부대들이 약 80킬로미터에 걸쳐 합류를 거듭하며 덩치를 불려, 변종들의 번식 거점 하나를 파괴하고, 종래엔 오악사카 국제공항을 확보한 레인저 중대를 지원하는 것이 이번 임무의 목표였다.
무전상의 잡음이 많아졌다. 다만 강도는 오히려 약해졌고, 또한 간헐적이었다. 트릭스터는 전파추적 미사일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12시, 10시 방향에 변종집단 다수!」
겨울은 즉각적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뚫어요! 한쪽으로 유도하려는 수작이니까! 잠시도 멈추지 말아요!”
우회하거나 정지하면 그거야말로 교활한 녀석이 노리는 바다.
“데이비드 액추얼로부터 모든 유닛에게! 지금부터 1분간 무선침묵! 긴급 상황만 보고!”
교신을 막는 겨울. 약 삼십초 후, 총성과 포성이 이어진 끝에 기갑차량의 대열과 변종집단의 물결이 격돌했다. 지휘장갑차 역시 몸을 던지는 변종들을 제압사격과 질량으로 짓이기고 지나갔다. 겨울을 비롯한 탑승인원들은 불쾌한 관성을 느낄 수 있었다. 터덩, 텅! 퀘에에엑! 운 좋게 올라탄 녀석들이 상면 장갑을 두들겨댔다. 사지가 멀쩡한 하나, 숨을 헐떡이며 상체만 달라붙은 하나. 무인포탑의 관측 카메라가 누렇게 변색된 치아로 가득해졌다. 렌즈를 핥는 새까만 혀. 감염돌기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일 지경이다. 그리고-
퍼억!
변종의 머리가 박살났다. 뇌수와 체액이 뿌려져 렌즈를 흐렸으나, 상황을 파악하긴 어렵지 않았다. 다른 장갑차에서 사격을 가한 것이다. 각 단차는 서로를 향해 소구경 사격을 퍼부어 거머리 같은 역병들을 긁어냈다.
직후 2시 방향의 하늘로부터 일그러진 아기들이 무더기로 쇄도했다. 그러나 경로가 살짝 어긋났다. 이쪽이 변종집단을 상대로 교전거리를 확보하지도, 우회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겨울의 예상이 맞았다.
‘이쪽을 직접 관측할 수 없는 위치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무전이 가능한데도 침묵을 지시한 이유였다.
산성과 인화성의 아기들이 기를 쓰고 방향을 바꾸려했다. 하지만 브라보 중대는 겨울의 지시대로 도로를 벗어나 조금 더 높은 언덕의 분수령을 달리는 중이었다. 타격지점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탓에, 병든 아기들은 대부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엉뚱한 위치에서 퍼억 퍽 파열했다. 깨져나가는 얼굴마다 고통과 분노로 물들어있었다.
그렇게 돌파한 다음, 브라보 중대는 옛 멕시코의 1350번 국도가 하천과 만나는 지점에서 멈춰 섰다. 알파 중대를 제외한 나머지 병력이 나타난 건 그로부터 십여 분이 흐른 다음의 일이었다. 이제 알파 중대의 합류만 남았다.
“각 중대는 계획대로 방어선을 구축할 것.”
새로운 지시를 전달하고서, 겨울은 상면 장갑의 해치를 열고 상체를 내밀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강화된 시각을 저해하기에 부족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겨울의 시선이 어느 바위 하나에 고정되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돌이었으되, 겨울의 감각보정을 미묘하게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데이비드 액추얼이 데이비드 2-1-브라보에. 3시 방향에 있는 바위를 한 번 밟아 봐요.”
해당 차량은 겨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다시 한 번 확인하고서야 움직였다. 장갑차가 가까워지자, 바위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순식간에 돌의 질감을 지닌 괴물의 모습으로 바뀌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장갑차의 급가속에 짓밟히고 만다.
끼아아아아-
핏물이 터졌다. 비명을 내지르는 놈의 사지가 잠깐 사이에 다채로운 색과 질감을 내보였다. 놀라운 신축성을 지닌 부속지가 사방의 땅을 채찍처럼 때려댔다. 고여 있던 빗물이 요란하게 튀어 오른다. 부속지 표면에서 무수한 감염돌기들이 자글자글 들끓었다.
특수변종, 위퍼의 실물이다.
이 교전은 처음 상대하는 변종이 있다는 점에서도 제로 그라운드 진공의 사전준비로 적합했다.
‘방심하면 나도 위험하겠는데…….’
겨울의 감각에조차 잡힐 듯 말 듯 한 존재감. 멜빌레이처럼 제한적인 수준이 아니라, 보다 제대로 된 「기척차단」을 보유한 게 틀림없었다. 감각보정에 의한 감지를 무력화하는 특성. 강화종 위퍼 쯤 되면 주위를 제대로 살피는 것 말곤 다른 방법이 없을 듯하다. 수상해 보이는 지형지물에 한 발씩 총탄을 박으면서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위퍼에 의한 감염은 잠복기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했다. 긴 부속지로 사각에서 스치듯 감염시킨 다음, 내부로부터의 감염확산을 기다리는 유형의 괴물.
모든 병력이 사전에 교육을 받긴 했으나, 공세적인 병력 운용에서 하차전투는 지양하는 편이 낫겠다.
이쪽 전선에 배치된 병사들도 편한 싸움을 치르는 건 아니었다.
장갑차 안쪽에서 작전장교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정면과 3시 방향에서 적의 움직임이 관측됩니다!”
겨울이 아래로 외쳤다.
“보고 있어요! 작전대로니까 다들 동요하지 말고 대기하라고 전해요!”
무전상의 잡음이 아까보다 무거워졌다.
현재 독립대대는 작은 강을 등지고 있었는데, 본래 강을 가로질렀을 다리는 중간이 끊어진 상태였다. 의도적인 파괴의 흔적이다. 원흉은 아마도 하나 이상의 그럼블. 이는 교활한 것들이 교각의 중요성을 학습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즉 트릭스터에겐 독립대대가 끊어진 다리 앞에서 발이 묶인 것처럼 보일 터였다.
‘와라.’
이 위치의 독립대대를 공격하려면, 변종들도 원래의 거점에서 기어 나와야 한다. 특히 산성과 인화성 아기가 집중된 고지들이 중요했다. 그럼블이 아기를 투척한다고 해도, 경로 상에 다른 언덕이 없어야 독립대대를 치명적인 활강의 사정권에 둘 수 있으니.
잠시 후, 변종들의 배후에서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새로운 낙하산들이 보였다. 독립대대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강하. 대대가 벌인 교전의 소음이 주위의 변종을 빨아들여, 연대 급 부대가 소리 없이 강하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함정의 마지막 장치로서 알파 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은 방향을 틀어막다시피 하면서.
이로써 길게 늘어진 변종들의 행렬은 포위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해치를 닫고 내려온 겨울이 무전기를 들었다.
“전 차량, 사격개시! 보이는 대로 다 쏴버려요!”
독립대대는 여기서 버티기만 하면 된다. 조이는 건 숫자와 화력이 월등한 러시아 공수군의 몫이고, 다 조인 후엔 공군이 폭격으로 마무리 지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