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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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의 바람 (10)
독립대대가 최종 목적지인 오악사카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레인저 중대는 공항 본관 및 견인포가 방열된 주차장만을 요새화해놓은 상태였다. 활주로까지 방어선을 구축하기엔 병력이 모자랐던 탓이다. 황무지 같은 폐허에서 외로웠던 그들은 지원군의 도착을 반갑게 맞이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가벼운 경례를 받고서, 겨울은 레인저 중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사흘간 잘 부탁해요, 대위.”
“별말씀을.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바로 상황보고를 받으시겠습니까?”
중대장, 그라프 대위의 태도에 다급함은 없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뭔가가 있진 않은 모양새라, 겨울은 고개를 저었다. 두 개 연대나 되는 공수군 대열은 아직 다 들어오지도 못했다.
“아뇨. 같은 일 두 번 하게 만들긴 싫으니, 내가 공수군 쪽 장교들을 챙겨서 상황실로 가는 편이 낫겠네요. 어디로 가면 되죠?”
대위는 본관의 정면을 가리켰다.
“저 안쪽입니다. 입구에서 보이는 대로 붙잡고 물어보십시오.”
“그렇군요. 그럼 우선…….”
겨울이 말끝을 흐리며 참모들을 돌아보았다.
“포스터.”
“네.”
“같이 가서 시설과 물자부터 둘러봐요. 기존 정보와 차이가 있는지.”
“알겠습니다.”
이후 임시로 중대별 경계구역을 할당한 겨울은, 브라보 중대 2소대의 1호차를 찾았다. 간밤의 교전에서 바위로 위장하고 있던 위퍼를 밟아 죽인 차량이었다. 비 개인 하늘 아래, 하차해서 몸을 풀고 있던 인원들이 대대장의 접근에 긴장했다. 그 중엔 소대장인 쑨시엔도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Sir?”
“편하게 있어요. 장갑차 상태를 살펴보러 온 거니까.”
“어,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만…….”
“이거 말예요, 이거.”
겨울이 손가락으로 장갑차 겉면의 긁힌 자국을 가리켰다. 죽어가는 위퍼의 발악이 남긴 흔적. 미친 듯이 휘두른 부속지에 어느 정도의 힘이 실려 있었을지 궁금했다. 겨울은 장갑 낀 손으로 흠집 생긴 차체를 쓸어보았다. 위퍼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이미 서면으로 접했으나, 아무리 많은 자료를 접한들 직접 보는 것만 못한 법이었다.
‘흠. 예상보다 깊게 패였네.’
재질이 철보다 무른 알루미늄 합금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깊다. 벌레가 갉고 지나간 자국을 닮았다. 그럼블의 주먹질엔 한참 못 미치는 위력이지만, 트릭스터의 채찍질보다는 훨씬 더 강력하다. 애초에 톱니처럼 변형된 감염돌기가 줄지어 나있으니, 약하면 오히려 이상할 노릇. 신형 전투복의 기본적인 방탄성능으로는 막아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위퍼가 장갑차를 어떻게 해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 증거로, 깊은 자국은 몇 줄기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그저 처절한 핏자국에 지나지 않았다. 감염쐐기라고 부르는 편이 어울릴 변형 감염돌기들이 장갑판과의 충돌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나갔을 것이다. 아마도 처음 한 두 번 안에.
관찰을 끝낸 겨울은, 여전히 어수선한 진입로를 보며 쑨시엔과 병사들에게 물었다.
“다들 첫 실전을 치른 소감이 어때요? 남기로 한 거, 후회되진 않아요?”
“아닙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즉각적인 이구동성에 희미하게 웃고 마는 겨울.
일찍이 합동훈련에 돌입하기 전, 겨울은 이들에게도 제로 그라운드 진공에서 빠질 기회를 주었다. 본디 전출을 시켜도 무방할 만큼의 경력을 쌓은 구 독립중대, 현 알파 중대 구성원들의 의사만 확인하려 했었으나, 숙고해본 결과 그게 무척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겨울은 이렇게 생각했다.
‘나에 대한 불신이 생겨선 안 돼.’
위험한 임무를 앞두고 알파 중대 인원들에게만 전출의사를 물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중대 인원들은 겨울이 예전부터 함께 해온 부하들만 편애한다는 식으로 해석할 게 뻔했다. 혹은 한국계만 아낀다거나. 가뜩이나 중대간의 감정이 미묘한 상황에서, 유일한 연결고리인 겨울에 대한 의심이 번졌다간 독립대대 전체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겨울의 웃음이 불안했던지, 쑨시엔이 새롭게 역설했다.
“정말입니다!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비로소 진짜 군인이 된 느낌입니다!”
긴장한 눈치를 보니, 떠나도 좋다는 제안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걸러내기로 보였나?’
경계할 만도 한 게, 이들을 대신할 인력은 얼마든지 많았다. 난민구역에선 입대야말로 신분상승의 첩경으로 여겨지니까. 하물며 독립대대는 모든 이들이 동경하는 울타리다. 관계의 울타리에 민감한 중국인들의 생리상, 겨울의 의도를 곡해했을 가능성은 지극히 높았다.
워싱턴에서 생긴 알파 중대의 빈자리를 현지 인력으로 충원하는 걸 보고 신경을 더욱 곤두세웠을 개연성도 있겠다. 좋은 건 전부 미국인들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진실은, 그저 사정이 여의치 않았을 뿐이건만.
“혹시 아까의 전투에서 저희에게 뭔가 부족함이 있었습니까?”
뜸을 들이던 쑨시엔의 질문이 겨울의 추측에 무게를 실었다. 겨울은 자연스러운 온화함을 만들어 그를 안심시켰다.
“설마요. 첫 실전 치고 다들 무척 양호했어요. 지휘관으로서 만족스럽네요.”
“제가 말을 바로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바람에…….”
“무슨 소리예요 그건?”
“그, 바위 흉내를 내고 있던 괴물 말입니다. 당신께선 곧바로 간파하시고 밟아보라고 하셨던 건데, 전 위장에 특화된 괴물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잠시 헤매지 않았습니까.”
“아아.”
그걸 여태까지 신경 쓰고 있었던가. 겨울이 쓴웃음을 삼켰다.
“개의치 말아요. 그 말만 듣고서는 누구라도 헤맸을 걸요?”
“하지만-”
“쑨시엔. 난 군인으로서의 당신에게 만족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날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 믿어요. 당신도 자기 자신이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길 바랄 테고요. 최소한 내 부하로서는. 그렇죠?”
툭툭. 상급자로서 어깨를 두드려주는 겨울. 이는 위로이자 당부이며 어두운 지난날의 습관으로 말미암아 날 실망시키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새사람이 된다면 거두겠으되, 백지선 시절의 버릇은 철저하게 버려야 할 거라고. 그러지 않으면 가차 없이 쳐내겠노라고.
‘기왕 있는 두려움이라면 좋은 쪽으로 이용하는 편이 낫겠지.’
겨울의 생각이었다. 호의만으로는 바꾸지 못할 사람도 있는 것이다. 중국계 특유의 꽌시에서도 무턱대고 내주는 사람은 등쳐먹기 좋은 호구에 지나지 않는다.
쑨시엔이 마른침을 삼켰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요. 나도 믿음으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하죠. 지켜볼게요.”
겨울이 눈길을 돌리자, 병사들은 저마다 결의가 굳은 얼굴들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게 너무 지나쳐서 어색해 보이는 경우도 있었으나, 겨울은 티를 내지 않고 한 사람씩 짧게 격려해주었다. 언젠가 한 번 되새겼듯이, 거짓에서 시작되는 진실도 있는 법이기에.
이후로 브라보 중대의 다른 소대들을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반응들이 대체로 다 비슷했다. 그나마 1소대장 왕커차이는 얽매일 과거가 없는 까닭에 긴장이 좀 덜했다. 중국계 2세로서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중대장 개빈 챙 역시 1소대장이 가장 신뢰할 만 하다고 밝혔다.
그는 부하들 가운데 깡패 출신이 많다는 점이 못내 마음에 안 드는 기색이었다.
“처음엔 솔직히 적응하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편견을 품고 봐서 그런지 몰라도, 항상 어떤 거리감이 느껴지더군요. 그렇다고 동포 운운하면서 친해지려는 수작질에 어울려주기도 싫었고……. 뭐, 지금은 괜찮습니다. 중대장으로서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지요.”
그래도 불만이 썩 크지 않은 것은, 애초에 미군 또한 병력자원의 수준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는 역병이 번지기 한참 전부터 이어져온 문제였다. 중동에선 미군 병사들이 재미 삼아 민간인 사냥을 즐겼을 정도. 그 유명한 킬 팀 사건이다.
한편, 겨울의 물음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사람은 3소대장인 리아이링이었다.
그녀는 겨울을 똑바로 바라보며 강한 어조로 못 박았다.
“당신께선 제게 내 사람이 되라고 하셨었죠. 아버지와 제 과거를 버리고서.”
“…….”
“그 말씀이 진심이었다면, 다시는 이런 질문을 하지 마세요. 이건 ‘내 사람’을 다루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냥 쓰세요. 가라는 곳으로 가고 하라는 일을 하고 죽이라는 놈들을 죽이겠습니다. 어떠한 의문도 없이. 그 대가로 전 당신의 그늘 아래 당신께서 허락하시는 것들을 가질 겁니다. 그건 제 몫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습니다.”
“그러다 내가 소위를 소모품처럼 써버린다면?”
“당신께서 그럴 인간이라고 생각했으면, 애초에 당신의 사람이 되지도 않았겠죠.”
겨울은 그녀의 눈에서 야망을 읽어냈다.
일본계가 다수인 찰리 중대의 기류는 브라보 중대와 또 달랐다. 그 공기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질서에 속한 데서 오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드디어 치른 첫 실전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통과의례를 치렀다는 느낌. 불확실한 죽음의 가능성보다는, 당장 조직에서 빠지거나 일탈행동을 하는 쪽을 더 두려워하는 병사들이 대다수였다. 누군가 나서서 자기 의견을 밝히길 기대하기 어렵다보니, 겨울은 언제든 개인면담을 요청해도 좋다고 알려두었다.
마지막으로 구 한국군 출신이 대다수인 델타 중대는 이제야 확실하게 겨울을 인정하는 눈치였다. 우중영 대통령이 고르고 고른 인력인지라 작전에서 빠지길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러했다. 이쪽도 다른 중대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면담 기회를 열어둔 겨울이었지만,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어쨌든 겨울은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오해가 있든, 다른 사정이 있든, 선택은 각자의 몫이었다.
“Sir.”
공수군 연대장들을 챙겨 브리핑을 받으러 가는 길에, 싱 소령이 겨울에게 장검을 건네주었다. 거추장스러워 장갑차 공구함에 결속해두었던 물건이다.
“아, 고마워요. 잊고 있었네요.”
겨울은 웃으며 칼을 받아 패용했다. 공수작전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검을 휴대하기로 한 이유는, 싱 소령이 측근이라는 사실을 알파 중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대 전체에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
‘시각적인 공통점이 보이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
기우일지도 모르나, 군에서의 상하관계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였다. 겨울은 병사들이 생소한 종교를 지닌 부대대장을 은연중에 경시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부대대장이라는 직위 자체가 평소엔 대대장의 존재감에 가려지기 쉬웠으므로.
레인저 중대장의 브리핑은 예상대로 별 내용이 없었다.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어도 상관없고요. 이전에 주둔하던 대대가 어쩌다 전멸했는지,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습니까?”
겨울의 질문을 받은 레인저 그라프 대위는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처음엔 무척 긴장하고 있었습니다만, 지금껏 변변한 공격 한 번 받지 않아서 의아하던 차입니다. 변종들도 각개격파가 이익이라는 건 잘 알 테니, 수작을 부리려면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부렸겠지요. 사흘간 경계만 철저히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위퍼의 매복은 확인했나요?”
“물론입니다. 의심스러운 지형지물은 다 한 번씩 갈겨봤습니다. 공항은 안팎으로 깨끗합니다. 하수도에도 트랩과 무인 포탑을 깔아놨고요.”
“…….”
지도와 항공사진을 번갈아 살피며 고심하던 겨울이 한 지점을 짚었다.
“여기 이 부근은 이상하게 멀쩡하군요. 이유가 있습니까?”
“아아, 거긴 성모승천 대성당이 있는 구획입니다. 그 위쪽으로는 산토도밍고 대성당도 멀쩡하지요. 다른 건 다 박살내도 중요한 문화유산까지 건드리진 않으려나봅니다.”
겨울도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오악사카 중심가의 대성당은 공항으로부터 5킬로미터나 떨어져있었다. 행군으로 한 시간이 걸릴 거리. 그저 하도 단서가 없어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다.
그라프 대위가 제안했다.
“남아있는 흔적들을 직접 둘러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겨울이 돌아보자 다비도프 대령이 공수군을 대표하여 동의했다.
“그럽시다. 방어진지와 경계선도 돌아볼 겸.”
겨울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