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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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의 바람 (11)
레인저 도착 이전에 증발한 대대급 병력은 공항 곳곳에 혈흔과 탄흔만을 남겨두었다. 시체라고는 작은 살점이나 뼛조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의 것이든 변종의 것이든. 사라진 장병들은 역병의 새로운 숙주가 되었거나, 죄다 변종들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터.
과거의 변종들은 골수를 뽑아낸 뼈라도 남겨두었지만, 근래엔 그것마저 집어삼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강화된 위산으로 전부 다 녹여버리는 것이다.
헌터나 위퍼 같은 변종의 출현을 감안하면 당연한 변화였다.
그러나 그 덕분에 이곳을 휩쓸었던 공격의 윤곽을 더듬기는 어려워졌다.
“스캠퍼.”
다른 장교들이 겨울을 돌아보았다. 겨울은 흩어진 핏자국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강화종 스캠퍼가 있었네요. 특수변종 중에 몸집이 왜소하면서 민첩한 놈 말입니다. 이 출혈량과 범위, 뿌려진 형태를 볼 때, 상대적으로 작고 가벼운 변종을 팔에 매달고 몸부림친 흔적이에요. 대략 이쯤에서…….”
죽음이 지나간 자리를 어림잡는 겨울.
“……물린 다음, 몸싸움을 벌이다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군요. 피가 튄 반경이 줄어들었잖아요. 동시에 한쪽으로 치우치면서 분포밀도가 높아졌어요. 출혈부위의 높이가 낮아졌다는 뜻입니다. 보다 둥근, 하지만 주변으로 자잘한 방울이 많이 튄 형태의 혈흔이 유독 한 지점에 집중된 걸로도 확인 가능해요. 엉덩방아를 찧은 충격이 원인이죠. 방향이 몰린 건 반대쪽으로는 본인의 몸에 막혔기 때문일 거고요.”
“강화종이라는 건 어떻게 알아보셨소?”
절제된 흥미를 드러내는 217 연대장에게 겨울이 자신의 소매를 잡아보였다.
“평범한 녀석의 이빨은 신형 전투복에 안 박힙니다. 동물로 치면 평균적인 사냥개 수준이거든요. 미성체 일반변종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역시 같은 이유였고요.”
“흠. 제조사가 주장하는 카탈로그 스펙을 그대로 믿기가 찜찜했는데, 중령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실전에서 검증된 모양이구려.”
“예. 아무튼 피가 쓸린 자국들은 뒤로 물러나려고 발로 밀어대느라 만들어졌을 것이고……. 결국 떨쳐내긴 했네요. 몸을 돌려 손을 짚고 일어나려다가, 재차 달려든 스캠퍼에게 뒷덜미를 물렸어요. 그리고 다시 넘어지면서 죽는 순간까지 몸부림을 친 위치가 여깁니다.”
겨울이 새롭게 선 자리에서 발을 찍었다. 검붉게 메마른 웅덩이의 중심이었다. 반보 뒤엔 같은 색채의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럴 듯 하오. 혹시 양친 가운데 한 분께서 경찰이셨소?”
331 연대장 다비도프 대령의 질문에 겨울은 멈칫 했다가 아니라고 답했다.
“그냥 경험으로 체득한 겁니다.”
“그거야말로 놀랍군.”
대령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리며, 겨울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시선 닿는 곳마다 죽음의 발자취들이 가득했다. 공항 건물의 중심, 이곳에서 공격당한 병력이 한둘이 아닌 듯 하다.
겨울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가 안 가네요.”
“뭐가 말이오?”
“다수의 스캠퍼가 경계망을 뚫었다는 건 알겠습니다. 놈들은 단독행동을 하지 않으니까요. 한 개체뿐이었으면 여기까지 밀릴 리도 없고, 벽에 남은 탄흔 또한 다른 변종들을 상대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낮게 형성되어 있어요.”
“그런데?”
“외곽 방어선의 교전 흔적과 이곳 사이의 간격이 지나치게 넓습니다. 그 사이에 있는 흔적들이 너무 적어요.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밀려났다기보다, 안팎에서 서로 다른 전투가 벌어진 것 같은…….”
“공간적인 간격만큼이나 시간적인 간격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변종들의 습격이 두 번에 걸쳐 이루어졌고, 첫 교전에서 외곽 방어선을 포기한 병력이 여기서 전열을 재정비했을 수도 있잖소? 중간에 남은 혈흔은 아마 부상자들이 흘린 것들일 테지.”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만, 이곳의 교전흔적이 너무 중구난방이라 석연치가 않습니다. 바깥의 적을 맞아 싸웠다고 보기엔 엉뚱한 방향으로 발사된 탄환이 너무 많네요. 건물 전후의 유리가 절반 넘게 멀쩡하다는 점도 이상합니다. 변종들은 보통 공격전면을 넓게 잡으니까요.”
밀집해서 좁은 전면으로 몰려와봐야 기관총과 유탄에 갈려나갈 따름이다. 소수라도 어떻게든 방어선에 뛰어드는 것이 우선이므로, 통제력을 갖춘 개체가 있을 경우 변종들은 최대한 넓은 전면과 많은 방향에서 낮은 밀도로 밀려든다. 화력 집중을 어렵게 하고, 집중의 효과도 저해하는 것이다.
이번엔 그라프 대위가 물었다.
“그럼 내부로부터 시작된 공격이 있었을 거란 말씀이십니까?”
“높은 확률로요.”
“잠복기를 거친 감염폭발……은 설득력이 없군요.”
대위가 추측을 번복하며 고심했다. 위퍼에 의한 감염이라면 잠복기가 있으니 영내에서 발생한 교전을 설명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감염된 사람 다수가 스캠퍼로 변이된 것까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대위는 자신 없는 태도로 말했다.
“새로운 특성을 획득한 위퍼가 매복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놈에게 감염되면 무조건 스캠퍼가 탄생한다거나.”
겨울은 부정적이었다.
“글쎄요. 그래도 사람의 몸을 기초로 변형되는 건데 질량을 무시하긴 어렵지 않겠어요? 일정 시간을 두고 서서히 바뀌는 거라면 가능하겠지만, 이 현장엔 안 어울리는 이야기네요.”
“그건 그렇군요.”
쉽게 물러나는 대위를 보고, 이번엔 217 연대장 브루실로프가 의견을 제시했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면서.
“놈들이 땅굴을 팠다면 앞뒤가 맞아떨어지는군.”
그러자 다비도프 대령이 눈을 찌푸렸다.
“자네 농담하나? 이 아래는 몽땅 철근 콘크리트일 텐데? 그럼블 따위를 구겨 넣어서 어떻게 파헤친다고 쳐도 소음은? 진동은? 여기 주둔했던 병력이 모두 귀가 먹기라도 했을까?”
“그거야 뭐…….”
겨울이 끼어들었다.
“확인해볼 가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조심해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요. 겸사겸사 위퍼가 위장했을 법한 지형지물도 다시 한 번 점검해보고요.”
“음, 한 중령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다비도프가 어깨를 으쓱였다. 말리진 않겠다는 제스처.
그러나 이런 논의가 무색하게, 땅굴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 병사들이 바닥을 일일이 두드리며 두 번이나 살폈어도 수확이 없었던 것. 위퍼도 찾지 못했다. 놈들은 피부의 색과 질감을 바꾸고 골격을 비틀어 바위나 흙무더기, 수풀, 커다란 나무줄기 등의 흉내를 내곤 하는데, 공항은 그런 게 있으면 이상한 장소였다.
그렇게 살피고 다니던 겨울은 어느 벽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구석진 곳, 줄기줄기 금이 간 벽에는 오래 전에 한 번 보았던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눈이 없고 코가 긴 캐릭터가 벽 위로 얼굴만 반쯤 내밀어 이쪽을 엿보는 그림이다.
그 옆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킬로이 다녀감.(Kilroy was here.)」
겨울은 희미하게 웃었다. 높게 쓰느라 글씨가 엉망인가보다. 아타스카데로 정신병원에서 같은 낙서를 보았을 땐, 동행한 제프리와 소대원들에게 킬로이라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었다.
그러나 오래 웃지는 못했다.
그 아래의 다른 낙서들과 해묵은 핏자국들 때문이었다.
‘아니, 낙서라기보다는…….’
공포와 절망의 기록에 가깝다. 신을 향한 절규가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적혀있었다. 비록 멕시코식 스페인어로 쓰여 있긴 했으나, 겨울이 보정 없이도 알아볼 만한 문장들이 많았다.
「신이시여, 저를 구해주소서!(¡Que Dios se apiade de mí!)」
좌에서 우로, 길게 보이는 모든 벽들이 한결같은 모습이다. 누군가는 십자가를 그렸고, 누군가는 그 위에 붉은 X표를 그어 놨다. 신을 저주하는 문장을 곁들여서.
겨울이 벽을 마주보는 자리엔 거친 스키드 마크가 남아있었다. 무슨 이유에서든, 여기까지 차를 몰고 들어와 벽을 들이받은 것이다. 모겔론스 확산 초기에 있었던 일이라고 가정해보면, 봉쇄된 공항으로 들어오려는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역병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로 떠나기 위하여. 출입이 통제된 공항에서 여객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보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이 뒤집어졌을까.
혹은 멕시코가 몰락한 이후의 일일 수도 있었다. 변종들을 뚫고, 비행기를 찾아 탈출하려던 이들의 몸부림이 남긴 결과물이라거나.
상상을 접고 다시 벽을 보면, 스산한 느낌이 든다.
잘그락. 떨어진 콘크리트 부스러기들이 단단한 군홧발에 으깨지는 소리. 겨울이 고개를 돌렸다. 다가온 사람은 통신병을 동반한 레인저 중대장이었다.
“다 둘러보셨습니까?”
“일단은요.”
“역시 별 것 없지요?”
“그러네요.”
겨울의 긍정에, 그라프 대위가 미미하게 안심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단서가 있었다면 저희가 놓쳤을 리 없지요.”
“레인저니까요.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당신들의 능력을 의심했던 건 아니에요. 그저 신중을 기하고 싶었을 뿐이죠.”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당연한 절차였다고 생각합니다.”
대위가 가슴을 폈다.
철조망 박는 소리를 제외하면 적막하기 짝이 없었던 낮을 거쳐, 해질 무렵이 되자 오악사카 시가지엔 다시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겨울은 보온병을 들고 경계임무 중인 간부와 병사들을 찾았다.
“이렇게 덥고 습한 날 뜨거운 음료입니까?”
질린 기색으로 묻는 알파 중대 1소대장 송정훈 소위에게, 겨울이 빙그레 웃어보였다.
“보온병에 꼭 뜨거운 것만 넣으란 법은 없잖아요? 오후 내내 냉동실에 넣어놨던 메즈칼이래요.”
“메즈칼?”
“술이요. 이곳 특산물.”
송 소위가 반색하며 잔을 받아들었다. 같은 단차의 병사들도 한껏 기대감을 드러낸다.
메즈칼은 용설란 줄기를 재료로 만드는 증류주다. 원산지까지 와서 맛도 보지 않고 가면 섭섭하지 않겠느냐는 게 레인저와 공수군 지휘부의 한결같은 의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임무 중이다. 겨울은 정말로 맛만 보여줄 작정이었다.
“많이는 안 줄 거예요. 독한 술이니까.”
“아…….”
“술 냄새 풍기면 박 대위가 화낼걸요?”
실망하는 진석을 떠올리곤 시무룩해지는 정훈에게, 겨울은 딱 반 홉 가량의 베네바 메즈칼을 따라주었다. 잔의 크기가 크다보니 더욱 적어보이는 양. 정훈은 아쉬운 티를 많이 내며 단숨에 꿀꺽 삼켰다. 크으- 하고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어지간히 독하긴 한 모양.
잔이 병사들에게도 돌아간 뒤에, 정훈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날씨가 꼭 한국의 장마철 같습니다.”
“그리워요?”
“뭐 좋은 거라고 그립기까지 하겠습니까. 이젠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야죠.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이 아련함에 대꾸할 말이 마땅치 않았던 겨울은 다른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
겨울이 철조망 바깥에 흩어진 돌들을 가리켰다.
“저거 보여요?”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저 콘크리트 조각들.”
“아아. 저게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위퍼가 없다는 건 낮에 확인했는데요.”
“……여기 있어요. 가까이에서 보고 올 테니.”
보온병을 내려놓은 겨울은, 장갑차를 위해 터놓은 출입구를 통해 공항 옆의 공터로 나아갔다. 방음림(防音林)을 싹 제거한 농경지엔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킬로이?’
밭고랑에 떨어져있는 콘크리트 파편엔 킬로이의 일부가 그러져있었다. 겨울은 가까운 파편들을 발로 모아 얼개를 맞춰보았다. 그림이 완성된다. 다른 낙서들과 핏자국도 보였다. 뚫어져라 바라보던 겨울이 발걸음을 돌렸다.
잠시 후, 공항 안으로 들어온 겨울은 거리를 두고 예의 그 금이 간 벽과 마주했다. 만반의 태세를 갖춘 레인저 한 개 소대를 동반하고서.
“저게 그겁니까?”
긴장한 소대장의 질문에, 겨울은 이렇게 답했다.
“지금부터 알아보면 되죠.”
철컥. 소총을 고쳐든 겨울이 벽을 조준하여 한 탄창을 자동사격으로 긁었다. 카카카카카캉! 실내이기에 더욱 날카롭게 울리는 총성.
그 결과, 구멍 뚫린 벽에서 변색된 피가 흘러내렸다.
붉게 물든 킬로이가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