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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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혹은 황혼 (2)
8월 셋째 주 목요일. 겨울은 제로 그라운드 진공, 작전명 「포효하는 폭풍(Roaring storm)」을 내년 1월 중에 개시한다고 통보 받았다. 언론에도 이 사실이 대대적으로 공표되었다. 다만 구체적인 날짜는 여전히 미정이다. 보조 작전의 진행 경과와 현지의 기상조건 등을 지켜본 뒤에야 비로소 확정지을 수 있을 사안이었다.
그래도 강하 과정의 시인성(視認性)을 낮추고자 월광이 적은 날을 고를 터이므로, 겨울이 생각하기엔 필시 삭(朔)이 끼어있는 1월 말경이 될 것 같았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28일 자정 전후가 유력하다. 그때의 밤은 말 그대로 새까만 어둠일 테니. 강하 도중 사고가 발생할 확률도 덩달아 올라가겠으나, 그 위험을 감수하는 쪽이 보다 옳은 선택이다.
‘가장 좋은 결과는 본격적인 교전이 벌어지기 전에 철수하는 거니까.’
강하가 은밀하고 조용하게 성공한다는 전제 하에, 구 중국군의 탄도탄 기지 수색을 빠르게 끝내기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교활한 것들은, 그 교활함 때문에라도 이쪽의 규모와 상세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지 않을 터. 그 높은 지능으로 축차투입과 축차소모의 폐해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런즉 강하를 감행한 시점으로부터 여명이 밝아오기까지, 적어도 수 시간가량은 산발적인 탐색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멕시코 중부고원에 강하했을 때도 비슷했다. 우발적으로 발생한 첫 교전 이후, 그 일대의 변종들이 일단은 몸을 사리지 않았던가. 칠흑 같은 밤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갑세력은 트릭스터를 신중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로저스 중장 이하 합동임무부대 지휘관들이 도출한 결론엔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험한 지형이 인간에게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게 아니다. 트릭스터 입장에서도 아무렇게나 움직이다간 전파가 닿지 않을 굴곡이 많았다. 즉 대규모 변종 집단을 통솔하자면 교활한 것들의 활동범위도 제한된다. 자연히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개체의 숫자도 적어지고, 이는 어둠을 꿰뚫어보는 전파시야의 강점이 상당 부분 상쇄됨을 의미했다. 공중기갑강습의 전모를 파악하는 시점은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옛 중국군 기지 수색이 여명 이전에 완료될 것인가 하는 점.
표면적으로는 탄도탄 기지이지만, 미국에서도 한때 탄도탄 기지였던 곳을 다른 용도로 전용하거나 확장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하물며 그곳이 중국의 군사기지라면야. 자료를 보면, 미국이 그곳을 탄도탄 기지로 분류한 근거는 90년대에 입수한 첩보였다. 그 뒤로 약 20년간, 해당 기지가 어떤 변화를 겪었을 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아는 바가 없었다.
항복한 중국군 장성과 고위관료들 가운데 뭐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리라 믿었건만…….
국토안보부의 「종말 문서」가 유출되었을 즈음만 해도, 모겔론스가 중국군의 생물병기였다는 가설은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했다.
그러나 크레이머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 그리고 시에루 중장의 사형이 집행된 이래, 그 가설은 어느 샌가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되어있었다. 정부의 방침이 방침이거니와, 몇 가지 정황증거들이 추가로 발견된 탓도 있었다. 해당 시설 근처에 사상교화를 위한 강제수용소가 존재했다고. 그곳에 수용된 티베트 불순분자들을 생체실험의 제물로 희생시킨 것 아니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사형수의 장기를 내다 파는 나라에선 충분히 벌어졌을 법한 일. 물론 추가적인 물증은 아직 제시된 바 없다.
여기까지 곱씹은 겨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진실로 그렇다면, 크레이머는 겨울이 우려하던 행보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원죄에 의거한 증오와 차별. 탁류에 휩쓸려 바깥세상으로 가는 지름길. 그것은 한편으로 인류의 존속을 위한 최선의 조치로서 정당화된다. 그게 단순한 명분에 불과했다면 또 모르겠으되, 부분적으로 사실이기도 하여 더욱 난감해지는 겨울이었다.
똑, 똑, 똑.
절제된 노크 소리가 겨울의 주의를 환기했다. 허벅지 위에서 둥근 잠을 자던 스페인 국왕이 귀를 쫑긋거리며 깨어났다. 짖지는 않고, 몸을 긴장시킨 채로 문을 바라본다. 죽다 만 것들에게 쫓겨 다니던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일 터이다. 그 머리를 쓰다듬으며, 겨울이 문 쪽으로 목소리를 키웠다.
“문 열려있어요.”
들어오는 이는 두 명이다. 장연철과 민완기.
“어휴, 이 동네는 한여름에도 밤이 쌀쌀하군요.”
장연철의 엄살을 듣고, 겨울은 리모컨으로 벽난로를 작동시켰다. 가짜 장작 아래 가스불이 들어온다. 딱, 딱 거리는 소리와 장작 타는 냄새가 가짜 치곤 그럴듯하다. 겨울이 고갯짓으로 불가를 가리켰다.
“앉아서 불 좀 쬐세요.”
“그럼 사양하지 않고.”
두 사람의 부장은 난롯가 양쪽의 의자를 차지했다. 코를 움찔거리며 낯선 이들과 겨울을 번갈아 응시하던 닥스훈트는, 위협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몸을 느슨히 하며 다시금 원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그래도 눈을 감지는 않고, 하품을 쩍 하면서도 깬 채로 분위기를 살폈다.
“어떻게, 오늘 하루 잘들 보내셨어요?”
겨울이 묻자, 민완기는 그저 빙그레 웃었고, 장연철은 열심히 끄덕였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습니다. 원래부터 안전지역이었던 곳은 역시 다르군요. 역병 이전이랑 비교해서 달라진 게 없는 느낌입니다.”
이곳은 리드빌에서 가까운 스키 리조트였다. 여름엔 코스를 골프장으로 바꾸어 개장한다. 그밖에도 번지 점프 시설이나 카트 경주장, 승마장, 쇼핑몰과 레스토랑 등을 운영했다. 겨울이 앤과의 데이트에서 느꼈던 것을 똑같이 느끼지 않았을지.
장연철과 민완기를 비롯한 동맹 사람들 다수가 여기로 피서를 올 수 있었던 건, 콜로라도 주지사 ‘라지 채프’ 채피가 겨울과의 약속을 지킨 덕분이었다. 대외적으로는 군인가족 초청행사로 발표했다. 난민들에 대한 대접이 너무 후한 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꽤 괜찮은 명명이었다.
독립대대 입장에선 기대하지도 않았던 여름휴가.
장병들은 일단 기뻐하긴 했다.
그러나 그 기쁨을 드러내는 정도가 결코 크지는 않았다.
장연철도 그 점을 지적했다.
“작은 대장님도 뵙고 다른 사람들도 만나고 해서 저는 진짜 좋았는데, 박 대위는 표정이 썩 밝지 않더군요. 그 밖에도 어째 다들 맥이 빠진 듯한 분위기가…….”
겨울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만도 하죠. 이 고생이 끝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직도 거의 반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걸요. 기운을 차리려면 조금 더 시일이 필요할 거예요.”
특히 진석은 더하다. 저질러놓은 일이 있다 보니, 하루라도 빨리 책임을 다하고 싶은 마음뿐일 터이기에. 겨울에게 당분간 중대장직을 계속 맡겠다고 대답했을 당시에도, 그 당분간이 이토록 길어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솔직히 기다림에 지쳐가기는 나도 마찬가지고.’
유감스럽게도 오늘은 앤이 찾아올 수 없었다. 쿠데타 이후로 상당한 시일이 경과했으나, 이 넓은 대륙 어딘가엔 아직까지 화재를 꿈꾸는 불씨가 도사리고 있는 모양.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회중시계를 짤각대는 겨울에게 민완기가 물었다.
“역시 실력이 부족한 겁니까?”
겨울이 아리송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가 부연하는 말.
“사람들 앞에선 달리 말하기야 했습니다마는, 독립대대가 특수부대로 지정되었을 때부터 이건 좀 무리가 심하다 싶었지요. 혹시 그 때문에 작전이 지연되고 있는 건 아닙니까?”
겨울은 곤란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진 않아요.”
“정말입니까?”
“네, 정말로요. 그림이 좋게 나온다는 이유에서 우리 독립대대를 보내려는 건 사실이더라도, 단지 그 이유만으로 작전 결행을 늦출 만큼 위쪽이 정신줄을 놓지는 않았어요. 변종들을 추위로 소모시키려다보니 자연스럽게 날짜가 미뤄진 거죠. 이 작전의 실패는 현 정권에게 재앙이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겨울을 보내려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한겨울 중령이 갔는데도 실패했다!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라는 식의 사후대응을 염두에 두고서. 터무니없는 소리라도, 겨울을 비정상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나름대로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민완기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적어도 그 부분에선 보도된 내용을 믿어도 좋다는 말씀이시군요.”
“대체로 그래요.”
제로 그라운드의 소재지인 티베트 고원은 세계의 지붕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이지만, 그 고도에 비해서는 추위가 혹독하지 않은 편이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고도에 비해서는 온난하다는 소리. 강하 예정지점의 최저기온은 영하 17도 언저리까지 떨어진다. 고지대 특유의 바람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아래라고 봐야 했다.
변종들이 그 추위를 견디는 건 나름의 월동준비 덕분이다.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놈들은 동족을 잡아먹는 한이 있어도 자신들을 살찌우는데 힘쓴다. 피하지방이 보온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겉으로 노출되는 부위에도 모종의 변화가 일어난다. 연구자들은 피부에 형성되는 조직의 특성이 극지방의 생물 일부에게서 발견되는 결빙저항단백질과 유사하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겨울에도 춥지 않은 지역에 고립된 변종집단에겐 이러한 특성이 없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최소 한 번 이상의 적응과정을 거치거나, 특성을 전파하는 특수변종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허나 어느 한쪽만으로는 진짜배기 혹한에 맞서기 어렵다.
다시 말해, 어떻게든 열량을 소모시킨다면 놈들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물러나서 대사억제에 돌입하거나, 아니면 더 많은 동족을 섭식해서 활동성을 유지하거나.’
유라시아에도 험프백처럼 열량 확보에 특화된 개체가 존재하지만, 그런 놈들이 아무리 초목을 뜯어먹고 다닌들 만물이 얼어붙는 계절엔 한계가 있게 마련이었다.
러시아군이 기동만으로 변종집단을 몰살시킨 사례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미심쩍어하던 민완기가 다시 물었다.
“흐음. 허면, 대장님께서 보시기엔 독립대대의 수준이 어떠합니까?”
짧게 골몰한 겨울이 간결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모자라진 않네요.”
최선은 아닐지라도 모자라지는 않다. 현재의 독립대대에 대한 겨울의 평가였다. 객관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러 특수부대들의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온 겨울이거니와, 속으론 여전히 독립대대를 보내기 싫은 마음이 남아있으므로.
여기엔 「교습」의 영향도 있었다. 어느 순간 어떤 식의 교련이 가장 효과적일지를 알려주는 직관 보정. 이것이 훈련의 성과를 높이는 데 유의미한 도움이 되었다.
겨울 자신을 포함하여 계산할 경우엔 차선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훈련 기간이 길어져서 다행이지.’
혼자 하는 생각이었다.
“모자라진 않다, 라…….”
읊조린 민완기가 빙그레 웃었다.
“예상보다 후한 평가라서 기쁘군요.”
이 말에 속으로 갸우뚱 하는 겨울.
“기쁘시다고요?”
“당연하지요. 이런 일로 빈말을 하실 분은 아니시니, 독립대대는 실제로 작은 대장님의 기준을 충족할 만큼 성장한 것일 테고, 당신께서 생환할 확률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니 저로서도 기쁠 수밖에요. 당신을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을뿐더러, 대장님께서 안 계시는 동맹은 제게 별로 재미없는 곳이 될 겁니다. 최소한 지금보다는 말이지요.”
민완기의 눈매가 온화하게 휘어진다.
동맹의 방향성과는 별개로, 사람과 사람들의 무대가 다 무너진 뒤에 처음부터 쌓아올리는 일이 무척이나 재미있다고 밝혔던 사람이다. 따라서 지금 이렇게 말할 동기는 충분했다. 만약 겨울 이외의 누군가가 동맹의 중심인물이었다면, 민완기는 거기에 맞춰 지금과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웃는 일은 드물었을지라도.
서로 알 만큼 알 사이인 장연철은 나이든 부장의 속뜻을 읽고도 이제 와서 따로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겨울이 연철에게 물었다.
“함께 온 사람들은 어때 보였어요? 다들 기대만큼 기뻐했으면 좋겠는데.”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이런 경험을 다시는 하지 못할 겨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니까요. 기뻐하지 않을 리가 없죠. 원래의 국적을 떠나서, 다들 대장님께 굉장히 고마워하는 중입니다.”
“그런 것 치고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표정인데요?”
“음, 그게…….”
난처하게 머리를 긁던 장연철이 망설임 끝에 조심스레 말했다.
“당장 뭔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만, 중국계 난민들이 너무 맹목적인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맹목적?”
“음, 조금 과장하자면, 꼭 옛날 북한 사람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 뒤로 장연철의 설명이 조금 더 이어졌다. 적합한 표현을 찾느라 미간을 좁히는 여백이 많긴 했지만, 어쨌든 겨울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시에루 중장의 유산……인가.’
연철이 증언하기를, 전에도 그런 기미가 있긴 했으나 보다 급격하게 바뀐 것은 시에루 중장의 재판이 생중계된 시점 이후라고 했다. 그녀는 법정 진술에서 옛 모국의 정권을 악의적으로 대변하고, 정신 나간 민족주의자 겸 전체주의자 흉내를 냄으로써 미국 내의 중국계 2세 및 중국계 난민들과 분명한 선을 그어놓았다. 즉 그들을 테러세력에게 이용당한 또 다른 희생자로 만든 것이다.
「기존의 지도부로부터 숭고한 사명을 계승한 군부가 민간인들보다 우선적으로 탈출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중화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은 응당 조국을 위한 복수에 목숨을 바쳤어야 한다.」
…….
「우리가 고결한 의거를 감행했을 때 이에 호응하여 미 제국주의자들의 압제에 맞서지 않은 모든 중국인들은 더러운 배신자나 다름없다.」
그녀의 연기는 미국이 원했던 수준을 훨씬 더 능가했다. 그녀 자신부터가 바라는 바였으므로.
결국 배신감을 느낀 중국계 난민들이 무의식중에 자신들의 새로운 정체성을 쌓아갈 기반으로서 겨울동맹에 대한 믿음이 절실해졌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겨울은 생각에 잠겼다. 특유의 어수룩한 친화력으로 서로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원만하게 중재하는 역할을 맡다보니, 이런 면에선 장연철이 민완기보다 민감할 수도 있었다.
민완기가 평했다.
“저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봅니다.”
“사람에겐 한계가 있으니, 새로운 시작을 위해 과거를 다 내다 버리자면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도 신통찮게 마련입니다. 과거는 곧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성이니까요. 정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뭔가를 해낼 리가 없지요. 그래서 사람만으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람들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긍정적이라고요?”
“예.”
“어째서요?”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사람 같질 않으니까요. 긍정적인 의미로 말입니다.”
민완기는 흐뭇한 눈으로 겨울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