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30)
00427
=========================================================================
#여명, 혹은 황혼 (7)
칼바람이 매서운 영하의 밤에 활동성을 유지하는 변종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잠든 무리의 눈과 귀 역할을 맡은 놈들만 순찰을 돌 듯 배회할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군대에 의한 조직적인 살상은 조용하게 이루어졌다.
소음기로 억제된 총성은 채 삼십 미터도 가지 않아 바람결에 파묻혔다.
반면 교전거리는 평균적으로 백 미터에 달했다. 야간투시경이 제공하는 시야 속에서 표적을 조준하는 적외선 레이저들이 수도 없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군데군데 쌓인 눈이 안개처럼 흩날릴 때마다 선명해지는 광선들. 변종들은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다.
잠정적인 방어선이 형성되자 통신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노출의 우려 없이 교신을 하려면 유선망 구축이 필수적이었다. 그 외에 지향성 전파를 주고받기 위한 안테나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는 지휘 장갑차에도 탑재되어있는 것이었는데, 전파가 샐 염려가 없다는 건 장점이지만, 송수신 각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통신에 지장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었다.
‘감수할만한 단점이지.’
생각한 겨울이 간질거리는 감각에 뒤를 돌아보았다. 백칠십 미터 거리에서 낯선 발자국들을 보고 코를 킁킁거리는 변종이 셋이었다.
보다 가까이에 알파 중대 1소대가 있었으되, 누굴 시키기보다는 직접 사살하는 편이 빠르겠다. 겨울이 소총을 조준했다. 참모들이 움찔하는 찰나에 세 번 끊어 방아쇠를 당기는 겨울.
툭, 툭, 툭. 튀어나간 탄피들이 눈 속으로 푹푹 박혀 들어갔다.
초연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방독면 때문이다. 반동도 조금 둔하게 느껴졌다. 경량화에 힘썼다지만, 화생방 방호복이 추위까지 견디게 만들었으니 두껍지 않을 수가 없었다.
“Sir.”
통신장교 에반스가 겨울을 불렀다.
“브라보 3 알파의 보고입니다. 뭔가 이상한 변종을 사살했는데, 직접 확인해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군요.”
“이상한 변종?”
겨울이 고개를 기울였다. 브라보 중대 3소대가 있을 방향을 흘낏 쳐다보면서.
“기존에 관측된 적 없는 특수변종인가요?”
“확인해달라는 걸 보면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교전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은?”
“없답니다. 적어도 전투를 목적으로 탄생한 괴물은 아니라는 뜻이겠죠.”
이 말을 듣고 겨울은 미간을 좁혔다. 여기서 갑자기 미지의 특수변종인가, 하고. 케식이나 카간 같은 놈들이 튀어나왔으면 조용한 전투도 끝장이었겠으나, 지휘관으로선 그래도 아예 모르는 변수가 튀어나오는 것보다야 나았다.
“내가 한 번 가보죠……. 에반스는 나를 따라오고, 소령은 여기 남아서 전체적인 상황을 조율해줘요.”
싱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변종에 대한 통찰력은 겨울보다 나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
도착은 금방이었다.
장갑차에서 내린 겨울이 브라보 중대 3소대와 접촉했다. 소대장 리아이링이 긴장한 기색으로 겨울을 맞았다.
“내가 확인해야 할 놈은 어디 있죠?”
겨울이 묻자, 그녀가 한쪽으로 손짓했다.
“여깁니다.”
이윽고 보게 된 현장은 무척이나 기묘했다. 변종들이 주변의 눈을 일부러 치운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너덜거리는 변종의 유해가 다섯. 넷은 평범한 변종이었지만, 남은 하나는 불어터진 밀가루 반죽처럼 살이 쪘다. 뚱뚱한 변종은 하늘을 보고 누운 채로 땅에 파묻혀 상체의 절반과 얼굴만 밖으로 내놓은 상태였다. 피부엔 끈적하고 두꺼운 점액질이 번들거렸고, 입가엔 토사물이 넘친 흔적이 남아있었다. 탄흔은 가슴에 찍혀있다.
그 외에 어디서 주워 모았는지 석면 플레이트나 나무판자 따위가 흩어져있기도 했다.
‘비막이로 삼았던 물건들인가?……. 점액질이야 추위를 견디고자 분비된 부동액 같은 것이라 치고, 토사물 쪽은 뭐지? 죽고 나서 구토를 하는 경우는 드문데.’
의문을 해소해준 건 역시 처음 발견한 리아이링이었다. 그녀는 한껏 역겨워하며 증언했다.
“이 괴물, 다른 변종들이 토해내는 것을 받아먹고 있더군요.”
“그래요?”
“예. 스스로는 움직이기도 힘들어 보이는 놈을 굳이 먹여주는 걸 보고, 변종들에게 있어서 뭔가 중요한 역할을 맡은 개체일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스스로는 움직이기도 힘들다…….”
겨울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최근 며칠 사이에 비대한 몸을 묻은 거라면 언 땅이 부서진 조각들이라도 흩어져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파묻힌 몸뚱이 주위는 균일하고 단단하게 굳어있었다. 토사물을 먹이러 온 변종들의 발에 다져져 그대로 얼어붙은 모양새다.
즉, 이 괴물은 한동안 움직인 적이 없다.
그것이 아예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면 어떨까.
“일단 이놈, 밖으로 파내 봐요.”
헬멧 카메라에 다 녹화되었을 테니 현장보존은 필요 없다. 겨울의 지시에 리아이링이 소총수 한 개 팀을 지목했다. 해당 분대의 나머지 절반은 주변 경계를 맡았다.
그러나 언 땅에 하는 삽질이 쉬울 리가 없었다. 먼저 곡괭이로 부수고서 야전삽을 박아야 한다. 곡괭이질의 소음도 신경 써야 했다. 오래 걸릴 것을 직감한 겨울이 한 병사로부터 삽을 넘겨받았다. 얼어붙은 땅을 순수한 힘으로만 벗겨낸다. 우르륵 갈라지는 흙덩이들을 걷어내길 수차례. 겨울은 몇 호흡 만에 특수변종의 대부분을 노출시켰다.
전부가 아니라 대부분으로 그친 것은, 점차로 가늘게 갈라지며 땅속으로 파고드는 괴물의 팔다리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뭐지?’
겨울이 눈을 찌푸렸다. 손과 발이 있어야 할 자리엔 배배 꼬인 실 같은 것들이 이어져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삽날로 찍어서 끊으니 미세하게나마 점액과 피가 묻어나온다. 질긴 근섬유가 중심을 이루었다.
섬뜩한 예감이 든 겨울은 주변의 땅을 무서운 기세로 파헤쳤다. 역병이 내린 뿌리는 일정한 깊이에서 수평적으로 뻗어나갔다. 아무리 파도 그 끝을 찾을 순 없었다. 지켜보던 병사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만 보여도 알기 쉬운 표정들이었다.
“에반스.”
삽을 놓은 겨울이 굳은 얼굴로 지시했다.
“각 중대에 이 상황을 전달해요. 무작위로 위치를 정해서 발밑을 확인해보라고. 사령부에도 새로운 특수변종을 발견했다고 알리고, 이 좌표로 샘플 운반용 드론을 보내달라고 요청해요. 드론 유도는 맡길게요.”
“알겠습니다.”
에반스가 황급히 뛰어갔다. 사령부와의 교신은 지향성 안테나를 써야 하는 까닭.
그러나 겨울의 짐작이 옳다면 더 이상의 전파노출 방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건 아마, 신경다발로 이루어진 연락망 같은 거겠지.’
유라시아는 미주 이상으로 광활하다. 이 넓은 대륙에서, 변종들은 방향을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상은 했었다. 언제고 트릭스터와 유사한 능력을 갖춘 특수변종이 나타나긴 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식이리라곤…….
“하하.”
겨울은 그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공중포대 겸 통제본부로서 작전지역 상공에 정지한 거대 비행선, 패트릭 헨리 급 2번함 「겨울 한」은, 그 압도적인 크기에도 불구하고 육안으로는 잘 관측되지 않았다. 기낭과 선체에 새까만 도료를 도포한 까닭이었다.
이 비행선 내부엔 자그마한 실험구역이 존재했다. 본디 병사들이 낯선 화학작용제에 노출되었을 경우 그 성분을 확인할 목적으로 준비한 간이시설이었으되, 「뿌리」의 구성을 살피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현미경과 시료를 갖추고 있고, 담당자는 CDC에서 파견한 박사급 연구원이었으니까. 여기서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본국으로 데이터를 보낼 수도 있었다.
겨울은 지휘 장갑차 안에서 원격회의에 참석했다.
“결론적으로, 이게 진짜 놈들의 연락망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로군요.”
화면 속 지휘관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거나 짧은 한숨들을 내쉬었다.
「그렇다.」
로저스 중장이 기계적인 태도로 긍정했다.
「조금 전, 티베트 고원과 중국 서남부 일대에서 변종들의 대규모 움직임이 포착된 것도 동일한 맥락이겠지. 모든 집단의 이동경로가 정확하게 이쪽을 향하고 있다.」
적어도 해당 범위 내에선 예의 그 뿌리를 닮은 신경망이 연결되어있으리라는 방증이었다. 방식이 방식인지라 퍼지는 속도가 느릴 것 같기는 했다.
순찰을 돌던 놈들이 주기적으로 이상 없음을 알리고 있었다면, 그 연락이 동시다발적으로 끊어진 시점에서 교활한 것들이 뭔가 눈치를 채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런즉 이쪽의 규모를 대충이라도 짐작하고 대대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혹은 그 뿌리 자체에 압력의 변화나 진동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을 수도 있고.
「그 대부분은 시간상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 어렵겠지만, 일출까지 이곳에 도달할 숫자만으로도 최대 십만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불을 지른 틈에 꽤 많은 수를 이쪽으로 밀어 넣었던 모양이야. 앞으로 대략 두 시간이면 그 선두집단을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을 듯 하군.」
양은 곧 질이다. 거기 끼어있을 특수변종들을 제외해도 무시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공수군 217연대 브루실로프 대령이 투덜거렸다.
「젠장. 트릭스터를 풀어놓은 건 유선망 깔던 놈들한테 무선망까지 던져준 격이었군요.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어?」
즈베레프 소장이 대꾸했다.
「저 지저분한 신경다발이 과연 시베리아의 동토까지 뚫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만약 가능하다고 한다면 트릭스터가 없었어도 언젠가는 러시아 본토까지 위험해졌겠지. 놈들이 더 이상 길을 헤매지 않는다면 우리 쪽 방역전선은 그날부로 끝장이야. 억 단위로 몰려오는 꼴을 보게 될 테니까.」
결과적으로, 러시아로서는 미국과의 거래에 응한 게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말이었다.
‘네크로톡신도 문제고.’
리코라드카와 체르노보그. 러시아 지역에 출몰하는, 방사능에 오염된 변종들. 놈들로 인해 러시아 방역전선의 네크로톡신 농도는 나날이 조금씩 올라가기만 하고 있다. 일선에 투입된 부대를 교체하는 주기도 점차로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전선을 축소해야 할 날이 온다.
「너무 걱정하진 말도록.」
로저스 중장이 말했다.
「최악의 경우엔 계획대로 핵을 쓰겠다. 어차피 이곳은 우리의 땅이 아니니까.」
중장에겐 판단에 따라 제한된 숫자의 핵포탄을 사용할 권한이 주어져있었다. 핵 치고는 위력이 낮은 전술핵으로 고작 다섯 발 뿐이지만, 어쨌든 핵은 핵이었다.
중국의 몰락이 증명하듯이, 밀집된 변종집단에 대한 핵 투발은 엄청난 양의 독소를 발생시킨다. 리코라드카나 체르노보그가 흘리는 양은 여기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수준.
독소가 생태계에 누적되었을 때의 악영향을 우려하는 미국 정부로서는 기나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일 것이었다. 이곳이 해안선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이라는 사실을 감안했을 터.
겨울은 정말로 버섯구름을 보게 되는 지경까지 몰리지 않기를 바랐다.
「탄도탄 기지 수색은 얼마나 진행되었습니까?」
즈베레프 소장의 질문이었다. 로저스 중장이 건조하게 답했다.
「아직은 입구의 방폭문을 뚫는 중이오. 시설 진입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
즈베레프 소장이 입맛을 다셨다. 딱히 실망한 기색은 아니었다. 수색조가 들어간 뒤로 이제 겨우 20분 남짓 흘렀을 따름, 핵공격은 물론이고 각종 침투와 파괴공작에 대비해 만들어졌을 방폭문이 그토록 쉽게 뚫릴 리가 없다.
겨울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운이 좋다면 열려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초 역병이 확산되었다는 것은 보관되어있던 장소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유출이 있었다는 의미. 그러므로 문이 열린 채 방치되었기를 기대해 봐도 좋겠다고 여겼었다.
「흠…….」
로저스 중장이 갑자기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뭐라고 하는지 불분명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미루어, 선내 통신으로 그에게 전언이 온 듯 했다.
「우리의 레이디가 새롭게 전달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는군.」
레이디는 황보 에스더에게 부여된 호출부호였다.
「그녀가 직접 말입니까?」
살짝 당황한 다비도프 대령이 묻자 로저스 중장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