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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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낙원 (4)
예고를 받은 뒤로 며칠 지나지 않아, 겨울은 자신의 대령 진급이 확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미러 합동 비상대응체계를 구축하기 전에 미리 필요한 교육을 이수하라는 내용이었다. 국방부가 수립한 현지임관(Field promotion) 장교 자격보수 프로그램에 따라, 펜실베이니아 주 칼라일의 육군전쟁대학에서 6개월간 강화 교육을 마치고 나면 비로소 계급장을 바꿔 달게 되는 것이다.
군 내부에서나 통하는 기준이긴 하지만, 그땐 학력 상으로도 학사에 상당하는 자격을 인정받게 된다. 과거 D.C의 국립전쟁대학에서 합동고급교육과정(JPME)을 수료하기도 했거니와, 장교로서 쌓아온 실전경험들은 교육을 대신하기에 충분하다. 서훈이력은 여기서도 가산점이었다.
이미 고졸 학력으로 이등병부터 시작해서 대장까지 진급한 존 베시 전(前) 합참의장 같은 사례가 있기 때문에, 겨울이 딱히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 건 아니었다.
서부의 현지 언론들은 장차 만들어질 비상대응체계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911로 공수부대를 호출할 수 있게 되다!』
『연방정부의 비상대응체계 구상이 서부 3개주 주택 시세와 거래량에 미치는 영향 분석.』
『득인가, 실인가? 일부 학자들의 우려 속에서 절대다수의 주민들은 환영하는 분위기.』
『또 한 번의 위기는 없어야 한다. 크레이머 행정부의 과감한 결정.』
표제만 보더라도 전반적으로 지지를 표명한 언론들이 많다.
다만 실제로 읽어보면, 주정부에 대한 연방정부의 간섭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진 않았다. 유사시 구역 책임자가 해당 지역의 치안행정까지 장악하도록 되어있는데, 이는 사실상 상설화된 계엄조치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여기선 당연히 겨울의 이름도 언급되었다. 201독립대대의 새로운 주둔지를 유치하기 위해 서부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독립대대의 인지도나 신뢰도가 대응체계를 구성할 다른 부대들보다 높은 편이고, 주민들이 체감하는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보니 자연히 지역 의원들에게도 예민한 사안으로 떠올랐다는 분석.
이에 관해 자주 언급되는 사람들 중엔 탈튼 브래넌 의원도 끼어있었다. 과거의 거래를 토대로 샌디에이고 시민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라고.
“…….”
겨울은 오랜만에 보는 그 이름을 눈여겨보았다. 이상할 만큼 친절한 제안을 건넬 당시 여기까지 정확히 내다본 건 아니었겠지만, 노회한 정치인답게 이득을 예감하긴 했을 것이다.
구독자들의 관심이 많기 때문일까? 겨울의 향후 행보에 대해 다루는 기사도 많았다.
「현 시점에서 대령 진급이 확정된 그는, 이후 평균적인 경력만 쌓더라도 서른이 되기 전에 준장 내지 소장까지 올라갈 확률이 높다. 많은 이들이 그의 정계진출 가능성을 점치지만, 만약 그가 계속해서 군에 남기를 선택한다면 군 내부에서는 대단히 견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된다. 장성으로서만 30년 이상을 복무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설마 계급정년에 걸릴 일은 없을 테니.」
「……최초 임관일로부터의 복무기간(YCS)을 기준으로 한겨울 중령의 은퇴연령은 만 58세지만, 관계법령에 의거 국방부 장관 명령으로 만 66세, 대통령령으로는 만 68세까지 연장될 수 있다. 한 중령은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지지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사람일 것이므로, 복무기간이 연장될 가능성은 지극히 높다…….」
「……군인으로서의 전문성과 정치인으로서의 전문성이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한겨울 중령이 군인의 길을 고집하는 데서 얻을 이익은 상당하다 하겠다. 출신성분상 대권 도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검토해볼만한 견해였다. 어쨌든 겨울에겐 미래가 주어졌으니까. 난민들의 처우개선은 물론이거니와, 앤과의 삶을 설계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언제까지고 겨울 자신으로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 미래에서 질박한 현실감을 느끼긴 힘들었다.
‘이래서야, 그 봄이 오기는 올까.’
겨울이 생각하는 봄은 앤이 편지에서 말했던 봄이다.
「그 봄이 반드시 올 것을 믿어요. 우리가 나눌 수 없는 하나로서 맞이할 첫 번째 봄이.」
제로 그라운드로 떠나는 겨울에게 위안이 되었던 글귀. 편지는 이제 접힌 부분이 닳기 시작했다. 이 편지를 받을 때만 해도 막연히, 돌아오면 바로 결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FBI 부국장으로서 정해진 휴가조차 다 못 채우고 복귀한 앤이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휴가나 휴직을 요청할 수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봐야 한다. 미국 사회는 당분간 여러모로 시끄러울 것이다.
단순히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것 자체는 쉽다. 관할 시청이나 카운티 사무소를 찾아 담당자 앞에서 서약을 하고, 소정의 수수료를 낸 뒤 결혼증명서를 발급받으면 끝이므로. 필요한 건 딱 한 나절 가량의 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래봐야 부부로서 함께 지내기 어렵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게 없는 것이다. 책임감 강한 앤은 부국장으로서 D.C와 현장을 오가야 할 테고, 겨울은 겨울대로 받아야 할 교육과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으니까. 더욱이 앤과 자신에게 결혼식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겨울이 자신의 책임을 방폐하는 일 따위는 있을 수가 없다.
‘어쩐지 체한 것처럼 답답해지는데…….’
겨울의 한숨은 예전부터 습관 같은 것이었지만, 요즘 들어선 그 횟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었다. 사실상 최후의 전투를 끝내고 왔어도 마음이 영 가볍지 못하다.
똑똑.
정중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겨울의 주의를 환기했다.
“들어와요.”
문틈이 햇빛으로 갈라진다. 들어오는 건 부대대장인 싱 소령이었다. 겨울의 시선은 그가 휴대한 서류철에 머물렀다.
“그건가요?”
“예. 최종적으로 확정된 명단을 첨부했습니다.”
소령이 겨울에게 서류를 건넸다.
명단을 살핀 겨울의 감상.
“추가 의병전역자가 서른하나……. 객관적으로는 적고, 주관적으로는 많네요.”
방사능 중독 증상으로 인해 의병전역이 불가피한 장병들의 명단. 대대 전체에서 31인이니 결코 많다고 하기 어려우나, 보다 직접적인 부상이나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먼저 전역 판정을 받은 인원들도 있고 해서 전체적인 손실은 상당한 편이었다.
싱 소령이 위로했다.
“그래도 전략핵까지 쓴 작전에서 복귀한 것 치고는 피해가 적은 편이라는 평가입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뭐, 어쩔 수 없는 거긴 한데…….”
명단을 넘기던 겨울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다행히 박 대위는 전역자 명단에 없군요.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진 모르겠지만.”
진석은 복귀 이래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서 방사능 중독을 우려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검사 결과 이는 스트레스성 탈모로 밝혀졌다. 소견서에선 역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 등으로 인해 당분간 직무수행이 어렵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하기야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타입이니 그럴 법도 했다.
여기에 또 화가 난 진석은 자신의 머리를 몽땅 다 밀어버렸다. 병사들은 중대장이 실망을 너무 많이 해서 저렇게 되었다고 수군거렸다. 그걸 듣고, 예전부터 차기 중대장으로 정해져있던 유라는 자기도 탈모가 생길까봐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진석을 더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겨울은 유라의 승진과 보직변경이 포함된 인사명령서에 서명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싱 소령이 묻는다.
“당신께선 좀 어떠십니까?”
“뭐가요?”
“건강 말입니다.”
겨울이 어깨를 으쓱였다.
“당장 큰 이상은 없지만, 앞으로 자주 검사를 받으라고 하더라고요.”
이는 대대 구성원 대부분이 들은 말이기도 했다. 의병전역 처분을 받지 않았더라도, 핵이 작렬하는 전장을 경험한 이상 한평생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안심하려면 적어도 2, 3년은 무사히 보내야 한다.
겨울은 화제를 바꾸었다.
“그나저나, 결원을 보충하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던데……. 미안하지만, 내가 없는 동안 소령이 신경을 써줬으면 해요. 소령은 그래도 우리 대대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잖아요.”
독립대대 전체에서 생긴 결원을 합치면 거의 한 개 중대 규모는 된다. 헌데 새롭게 정해진 방침에 따르면, 앞으로 합류할 인적자원은 더 이상 난민출신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이전부터 출신성분이 다양했던 간부들이야 그렇다 쳐도, 일반 병사들까지 그렇게 뽑는 건 대대의 최초 창설 의도와 상반되는 것이다. 대대의 전신인 독립중대는 어디까지나 난민들을 병력자원으로 활용하고자 만들었던 부대이니.
‘어떻게 보면 이게 정상이긴 하지…….’
시작이 어떠했든, 독립대대는 이제 엄연한 특수부대였다. 출신을 불문하고 우수한 자원을 받아들이는 쪽이 더 자연스러웠다.
다만 동맹을 비롯한 난민사회 내에서는 이러한 조치에 어떠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돌고 있었다. 독립대대, 나아가 겨울의 이미지를 난민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과정의 일환이라는 말이었다. 혹자는 새로운 형태의 화이트 워싱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애초에 독립대대를 특수부대로 지정했던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인 포석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있었다.
싱 소령이 천천히 끄덕였다.
“뭘 걱정하시는지 압니다. 알파 중대는 좀 덜한데, 나머지 중대들 사이에선 이런저런 불만들이 나오는 모양이더군요.”
“아무래도 지금까진 중대마다 출신성분상의 통일감이 강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불만이 안 나올 순 없겠죠. 그러나 부대 성격상 불가피한 변화이고, 난민 출신 지원병 모집이 중단되는 건 아니며, 남은 장병들의 장래 면에서도 이런 변화가 유리하다는 점을 숙지시켜줘요.”
“이미 신경 쓰고 있습니다. 자리를 비우신 사이에 별 일 없도록 관리하겠습니다.”
싱 소령이라면 오랫동안 함께 싸운 사람이니 병사들이 부외자로 여기지 않을 터. 겨울이 이런 당부를 해두기에 적합했다.
사실 겨울도 그런 의심이 없지는 않다.
포트 로버츠 사령은 진즉에 다른 인물로 교체되었다. 자리를 비운지가 1년이 넘는 마당에 아직까지 대행으로 남겨두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노릇.
겨울을 쓸 곳이 워낙 많아 빚어진 일이고, 또 한직에 방치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처분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겨울이 난민들로부터 장기간 유리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쯤 되면 정책담당자의 성향에 따라서는 다른 구상을 품어볼 여지가 충분했다.
그럼에도 겨울이 장교로서 병사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싱 소령이 시간을 확인했다.
“조금 일찍 출발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한 시간 후로 예정된 미러 양국의 합동영결식 이야기였다.
일찍 간다면 겨울과 대화를 원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죠. 시내의 새로운 거주지도 둘러볼 겸.”
장례식부터가 어두울 수밖에 없는 행사이거니와, 러시아 장교들과 대면하게 될 거라는 부분에서 CIA의 부탁을 떠올린 겨울은 조금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샌디에이고 시내와 근교엔 겨울동맹 명의로 구입하거나 임대계약을 체결한 거주지가 존재했다. 겨울이 떠나있는 동안에도 브래넌이 제안한 거래가 정상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장연철은 백산호의 활동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예전에 안 좋은 일도 있었고 해서 솔직히 못미더운 마음이 있었는데, 굉장히 성실하게 일을 처리해주시더군요.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수준이어서 놀랐습니다.”
배경을 모르니 당연한 평가였다.
사업보고 차원에서 기지를 방문했을 때, 그간 정보국이 사람을 어찌 다루었는지, 백산호는 겨울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겨울은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흐르는 풍경 속에서 간혹 가로수에 묶인 노란 리본들이 스쳐지나갔다. 미국에서 집 앞의 나무에 묶어두는 노란 리본은, 그 집에 전장으로 떠난 군인이 있음을 뜻하는 오래된 상징이었다. 겨울이 본 매듭 중에는 영영 풀리지 않을 것들이 섞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