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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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낙원 (7)
난민법인이 받는 지원의 총량은 해당 법인이 미국의 안보와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수용한계 역시 마찬가지. 지도자가 겨울일뿐더러, 배출한 군인들 중에서도 수훈자가 수두룩한 겨울동맹은 다른 법인들에 비해 수용 가능 인원이 독보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이러한 수용한계는 일반 난민과 군인들을 구분하여 적용한다. 각각 정해진 한계 내에서 다른 법인으로 얼마든지 옮겨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다섯 소위가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솔직히 꼭 등록을 해놔야 하나 싶습니다.”
스스로를 이던 블랑이라 밝힌 프랑스 출신 소위의 말.
“난민법인에 이름을 올려둔다고 해서 제가 이득을 보는 건 없잖습니까. 어차피 저는 이미 시민권자고, 제가 계속해서 복무하는 한 제 아내도 영주권자로 취급받을 테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난민법인은 어디까지나 예산과 행정소요를 절약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강구된 것. 쉽게 말해 돈을 줄 테니 나머지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제도다. 즉 그 법인의 간부들이 금전적인 이득을 취할 방법은 공금을 횡령하는 것뿐이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난민법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겨울은 슬쩍 떠보듯이 물었다.
“그래도 법인에 속해있으면 전역 후에 일자리를 만들어준다거나 해서 이런저런 도움을 줄 텐데요? 슬슬 군축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군축. 최근 언론에서 곧잘 다루는 화두다. 아무리 맥밀런 행정부를 거친 미국이라도 천만에 달하는 육군을 오랫동안 유지하기란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 방역전쟁이 햇수로 4년차에 접어들었으니 전시국채 판매가 슬슬 한계를 보이고 있을 것이다.
한편 장병들의 귀환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
‘여유는 충분하지.’
파나마 지협엔 남북으로 구 본토 봉쇄선을 능가하는 강력한 요새선이 구축되고 있다. 에스더의 부재로 인해 중미지역의 전황은 예전만큼 좋지 못하지만, 멕시코 중남부를 차지한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군사력을 투사하기 시작하면 미군의 부담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었다.
블랑 소위가 고개를 저었다.
“일자리……. 그것도 비리의 온상입니다.”
“이를테면?”
“짐작하실 텐데요. 난민법인에서 퇴역 사병이나 장교에게 줄 일자리라는 게 뻔하잖습니까. 법인을 통해 고용된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이 일하는 현장의 현장감독 정도죠. 아니면 법인 소유의 자산이나 사업장 관리를 맡기거나.”
유라가 만났던 이와 다르게, 블랑은 겨울을 상대로 뭔가 감출 생각이 전혀 없는 눈치였다.
“자리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으니 그걸 분배하는 과정에서 뒷거래를 하게 되는 건 필연입니다. 왜냐면, 일단 자리를 꿰찬 다음에는 손해를 순식간에 벌충할 수 있으니까요.”
“노동자들에게 돈을 받고 있다는 거네요.”
“좋게 말하면 수수료, 나쁘게 말하면 뇌물입니다.”
법인을 통해 고용되는 노동자 수에도 쿼터가 정해져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겨울동맹이야 그 제한이 거의 없는 수준이지만.’
더불어 동맹에서 노동자를 구하려는 기관과 기업들도 많다. 평판이 좋기 때문이다. 일하다가 달아나는 경우가 없었다는 이유에서. 반면, 다른 법인이 보낸 노동자들 중엔 난민구역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겨울이 보기에, 이 차이는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의 간극이었다.
가르시아라는 이름의 다른 장교가 끼어들었다.
“이제 계급별 최소 복무기간이 정상화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좀 불안하긴 합니다. 중위 진급이 확정되었다곤 해도, 앞으로 얼마나 군인 신분을 누릴 수 있을는지…….”
군축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군인 신분을 누린다는 표현에서 기본적인 인식이 묻어난다.
계급별 최소 복무기간(Minimum time in grade)이란, 다음 진급을 위해 현재 계급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해야하는 최소한의 기간을 뜻한다. 예컨대 중위가 되기 위해선 소위로서 18개월 이상을 복무해야 하고, 대위가 되기 위해선 중위로서 2년 이상을 복무해야 한다는 식.
이는 본디 국방부 훈령으로 정해진 사항이었다. 그러나 방역전쟁이 시작되면서 한시적으로 최소 복무기간을 축소, 또는 무시하는 특별훈령이 발효된 바 있다.
이게 겨울에게도 해당사항이 있느냐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훈장마다 등급을 매겨 서훈이력을 복무기간에 가산하기로 한 별도의 법령 덕분이다.
‘동성무공훈장이 6개월에 은성이 1년, 근무공로훈장이 2년, 수훈십자장이 3년…….’
여기에 명예훈장은 예전부터 그 자체로 특진을 보장하는 훈장이었다.
부대마크가 다른 둘 중 한 명이 생소한 억양으로 묻는다.
“장교부족으로 그렇게 어려움을 겪었는데, 설마 우리를 간단히 잘라내겠습니까?”
돔브로프스카. 이름을 보니 폴란드계인 모양이다.
가르시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시는 말씀. 군축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지만, 그걸 감안해도 소위나 중위 같은 하급 장교들에겐 큰 가치가 없습니다. 진짜로 중요한 건 고급 장교들이죠. 국방부 장관 명령 한 번이면 우린 전부 다 군복을 벗어야 합니다.”
이는 방역전쟁 전시임관 특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는 겨울에게 시선을 돌렸다.
“Sir. 당신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체로 동의해요. 소위는 너무 많고, 중위도 그렇죠.”
“역시.”
다섯 소위는 겨울의 말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명성이 명성이니만큼, 그저 혼자 하는 생각이 아니라 어떤 근거가 있을 거라고 믿는 분위기였다. 겨울은 굳이 그 착각을 지적하지 않았다. 하든 말든 차이가 없는 착각이었기 때문이다. 군축은 기정사실이라고 봐야 한다.
다시 블랑 소위가 입을 열었다.
“마치 개미지옥으로 빠져드는 기분입니다. 군인으로서의 전망은 어둡고, 군정청은 난민법인의 부정을 뻔히 알 텐데도 감사를 난민들 자신의 손에 맡겨둘 뿐이고……. 그렇다고 상황을 모르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언제 한 번 크게 터지겠다 싶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저희를 받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소속이 다른 둘도 용건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테이블이 처음처럼 조용해졌다. 식사는 아까부터 뒷전이었다. 진지하게 들어주는 입장에서, 겨울의 식판도 대화를 시작할 즈음에 비해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시간상 일어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제대로 식사를 마치기는 글러먹은 셈.
겨울이 식판을 살짝 밀고 깍지를 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어요.”
“그게 무엇입니까?”
“첫째. 처음에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밝혔듯이, 내겐 모두를 받아줄 능력이 없어요. 여러분은 고작 다섯이지만, 지금 이 자리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사람은……언뜻 봐도 세 자릿수는 되어 보이네요. 여러분들과 저 사람들 사이에 운 이외의 차이가 있을까요?”
“…….”
“다음으로, 난 여러분이 어떤 사람들인지 몰라요.”
사실 먼저 말한 것보단 이게 더 중요한 문제였다.
“알아볼 방법은 있어요. 하지만 그게 다 빚입니다. 언젠가는 갚아야 하죠. 그리고, 이렇게 다가오는 사람 전부를 그런 식으로 검증하기는 무리고요.”
블랑 소위의 낯빛에 순간적인 억울함이 스쳤다. 입이 열렸다가 말없이 닫히기를 몇 번. 그는 결국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의미한 낭비였다. 이 자리에선 결국 믿어달라는 말 이외에 다른 증거를 댈 수 없는 처지이므로.
나머지 넷도 비슷했다.
적어도 성급한 사람들은 아니네. 생각한 겨울이 말을 이었다.
“겨울동맹은……이런 식으로 언급할 때마다 이름 때문에 조금 부끄럽긴 한데, 아무튼 동맹은 내가 성립 단계에서부터 관여한 단체예요. 지금까지 사람을 쓰는 데 신중을 기해왔죠.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자체감사에 외부감사를 더해 투명성을 제고했고요.”
추가로 CIA의 도움도 받았지만, 여기선 언급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민간인 사찰에 해당하는 행위였으니까. 대상이 미국 시민은 아닌데다 비상시국에 만들어진 법령이 있어 불법까지는 아니었으나, 사실이 알려지면 비판을 받게 될 여지가 충분했다.
“블랑 소위.”
“예.”
“당신의 예상대로, 난민법인들의 부정은 조만간 큰 화가 되어 돌아올 거예요. 그건 거의 확실하죠. 난 동맹이 거기에 휩쓸리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있는 법인에서 그냥 빠져나올까요? 일단 나부터 살아야 하니까?”
블랑이 식탁 위로 꽈악 주먹을 쥔다.
“법인에 아직까지 이름을 올려둔 건……저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 나오는 지원금이, 누군가에게는 하루하루 연명하는 데 필요한 식사와 잠자리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제가 하루를 더 버틸 때마다 그 사람은 하루를 더 먹고 하루를 더 춥지 않게 자겠지요.”
반면 동맹으로 등록을 옮기면 지원금이 나오는 경로만 달라질 뿐이었다. 거주지가 멀리 떨어져있다 해도 법인의 현지 사무소를 개설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겨울로선 이 또한 단점이었다.
‘내 눈에서 너무 벗어나있게 돼.’
외부감사 비용도 늘어나겠고, 현재와 같은 강한 유대감도 기대하기 어렵다. 겨울이 동맹에 바라는 이상성을 성취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건 어때요?”
블랑의 말이 더 이어지기 전에, 겨울은 아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제안을 꺼냈다.
“당신들이 난민 지도자 심사를 받는 거예요.”
“……저희가 직접 말입니까?”
“예.”
겨울이 궁리하기로는 가장 나은 선택지였다.
“폭발이 임박한 지금, 당신들을 비롯해 처음 알아가야 할 사람들 다수를 동맹에 받아주긴 힘들지만……. 가라앉을 배에서 옮겨 탈 새로운 배를 제공해주는 것쯤은 가능하겠는데요.”
“…….”
“심사를 담당하는 게 군정청, 그 결과를 승인하는 건 하원의원들로 구성된 난민지도자 위원회였던가요? 군정청 쪽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고, 위원회 쪽도 연락을 부탁해볼만한 분이 몇몇 계시거든요.”
성공할 확률은 높았다.
‘예산 집행항목을 분리할 뿐이지, 총액이 늘어나는 건 아니니까.’
정책은 예산의 지배를 받는다. 예산상의 부담이 없는 이상, 겨울과 인연이 있는 정계인사들은 전쟁영웅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줄 것이었다. 오히려 달갑게 여길 가능성마저 있다. 경중을 떠나, 겨울에게 빚을 지울 기회가 그리 자주 오는 건 아니므로.
돔브로프스카 소위가 그 부분을 지적했다.
“Sir. 결국 그것도 일종의 빚이 아닙니까? 당신께선 조금 전 빚을 지고 싶지 않다고 하셨었습니다만…….”
겨울은 가볍게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 빚을 누구에게 지느냐의 차이라고 해두죠.”
정보국 관계자가 이 말을 들었다면 조금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때요.”
회중시계를 확인한 겨울이 다섯 소위의 의사를 물었다.
“여러분만 떳떳하다면 내 제안에 따라서 손해 볼 건 없다고 보는데요.”
시선을 주고받던 프랑스계와 폴란드계 장교들이 각각 한 사람씩 대답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탁드려도 괜찮을지요?”
겨울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려운 사람 놀리는 취미는 없어요. 안 해줄 거면 뭐 하러 말을 꺼냈겠어요?”
온화한 답변을 듣고서야 굳어있던 몸을 이완시키는 소위들.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부탁 하나만 하죠.”
겨울의 말에 긴장감이 다시 비등한다. 폴란드계의 보박 소위가 말끝을 흐렸다.
“부탁이라면 어떤……?”
“어려운 거 아니니까 어깨에 힘 빼요.”
그리고 겨울은 고갯짓으로 이 테이블에 집중된 시선들을 의식시켰다.
“당신들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데, 내가 일일이 이야기를 들어주자니 너무 힘들 것 같아서요. 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앤이랑 통화할 시간마저 줄어들 까봐 걱정인 겨울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오간 이야기를 당신들만 알고 있진 말라는 소리에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예! 물론입니다. 의견을 취합해서 한 번에 말씀드리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나중에 다시 대화하죠.”
겨울은 소위들에게 자신의 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