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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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실 (5), 캠프 로버츠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겨울이 말했다.
“왜 「겨울동맹」이 여러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러자 강영순 노인이 흐뭇하게 웃는다. 수첩에 자신의 만족감을 적어 내려갔다.
「설마 이런 질문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문답무용으로 쫓겨나거나, 아무 이유 없이 받아들여지거나. 어디를 가더라도,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까지는 모두 전자였습니다만.」
읽기 쉬운 맥락이었다.
“후자를 예상하셨다면 장연철 부장님 탓이겠네요.”
노인이 펜을 고쳐 잡는다. 정갈한 동작이라 느려 보이는데, 막상 문장 완성되는 속도가 놀라울 만큼 빨랐다.
「결코 나쁘게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장연철 님 같은 착한 분들 덕분이었지요. 그 중에서도 연철 님은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어요.」
「다만 가끔은, 배려가 너무 깊으셨을 뿐이지요.」
장애인을 대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장연철 본인의 입으로 말했었다. 자립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라고. 그것은 주위 환경이 적대적이어서, 사람들이 빼앗으려고만 들어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불가능하다는 투가 아니었다.
“이해합니다. 착한 사람이 나쁜 세상에서 살면 그렇게 되기 쉽거든요.”
겨울의 말에 그녀가 다시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겨울 님을 따르는 게 단지 용기 때문만은 아니었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부끄럽네요. 아무튼, 처음 질문의 답을 주시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강영순 노인.
「그동안 숱한 문전박대를 경험하면서, 기회만 주어진다면 말해보리라 생각한 것들이 많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도 많은 고민을 했지요.」
「우리들 각각이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구실보다, 겨울동맹과 지도자 한겨울 님이 얻을 수 있는 조직 차원의 이점들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조금 길어지더라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의외였다. 각자의 경력과 기술, 인성 같은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사실 노인이 말한 조직 차원의 이점에 대해서는, 겨울도 이미 생각해놓은 바가 있었다. 막연한 정의감만으로 장애인 수용을 검토한 건 아니었기에. 겨울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제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쓰셔도 돼요.”
고마운 미소를 머금고, 노인은 생각 깊은 글귀를 한 줄씩 정성스럽게 늘려나간다. 마침내 채운 첫 번째 장은 이런 내용이었다.
「첫째는 순화된 평판입니다.」
「다른 단체의 많은 사람들이 한겨울 님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트리는 중입니다. 가장 흔한 건 인간백정이라는 평가지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는 살인사건들이 귀하의 소행으로 둔갑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만나기 전까진, 저조차도 조금 걱정했습니다. 장연철 님이 아무리 아니라고 하셨어도요. 지금 겨울동맹에 의탁한 사람들도 반쯤은 공포감에 기댄 것이 아닐까요?」
「우리를 받아주신다면 그런 평판이 제법 가라앉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겨울동맹에 가담하길 망설이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유감스럽지만, 장애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모두에겐 이렇게 보이겠지요. 겨울동맹은 저렇게 쓸모없는 사람들을 거두어 주었다고. 한겨울 님은 불쌍한 사람들을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소열제 유비는 인정과 인덕으로 촉한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세요.」
연륜이 묻어나는 고아한 필치였다. 또한 예상했던 내용이 절반쯤 들어가 있었다. 읽으면서, 겨울이 묻는다.
“삼국지를 좋아하시나 봐요?”
노인은 자신의 입을 가리킨 뒤 한 문장 적었다.
「형편상, 사람보다 책이 더 편한 삶이었던지라.」
“아.”
고개를 끄덕이고, 겨울은 수첩을 노인에게 돌려주었다. 노인이 곧바로 두 번째 장을 적기 시작했다. 많이 고민했다는 게 빈말은 아니었다. 적는 내내, 망설이거나 고치는 경우가 없었다.
「둘째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가 아직 살아있는 것은, 장연철 님 같이 착한 분들의 도움 덕분이었답니다. 즉 우리는 겨울동맹을 여러 단체의 착한 이들과 연결 짓는 가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알면 터전을 바꿀 분들도 계시겠지요. 다른 단체들이 썩 좋은 곳은 아니잖습니까. 착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들 계실 겁니다.」
「옮기지 않을 분들도, 겨울동맹에 호의를 품으시겠지요.」
「결국 첫째로 말씀드린 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크게 다르지 않아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겨울은 이미 마음을 굳혔지만, 곱게 늙은 노인이 어디까지 생각했는지 궁금했다. 다 읽은 수첩을 돌려주자 노인은 세 번째 페이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우리 장애인들의 눈과 귀입니다.」
「이건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겨울 님께서는 지금 부담을 느끼고 계시진 않은지요?」
「겨울동맹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성장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입니다. 빠른 성장에는 부작용이 있게 마련입니다. 언제나 사람들이 문제지요.」
「겨울동맹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알 수 없게 되실 겁니다. 누구를 믿고 누구를 걸러야 할지도요. 반드시 여일 같은 자가 나타나 겨울 님의 의심을 부추길 것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권고입니다. 우리 장애인들을 통해 정보를 얻으세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습니다. 아무리 선량한 비장애인이라도, 장애인을 완전히 대등하게 대하기 어려워합니다. 장애인은 항상, 어느 정도는 고립되어 있습니다. 비장애인들과 쉽게 뭉치지 못한답니다. 이 점을 이용하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겨울은 다 읽고서 생각했다. 열일곱 명의 장애인이 무사히 살아남은 것은, 단순히 착한 사람들의 도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여일이 누군가요?”
노인이 답변을 적었다.
「손권의 의심을 부추겨 권세를 얻은 간신배랍니다.」
“장애인 분들이라고 여일이 되지 말라는 법 있나요?”
그러자 필기 대신 고개를 흔들어 대답 삼는 노인이었다. 겨울이 미소를 지어냈다.
“솔직하시네요.”
강영순 노인이 마주 웃는다. 겨울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제 각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듣고 싶네요. 이야기도 조금 나눠보고 싶고.”
고개 끄덕인 노인은 장애인 공동체의 신상명세를 내밀었다. 미리 적어서 가지고 온 것이었다. 겨울은 빼곡한 내용을 꼼꼼하게 읽었다. 강영순 노인이 본 인격적 장단점까지 적혀있었다.
몇 명이 쓸 만 한 경력과 기술을 지녔다. 다양한 중장비를 11년간 다룬 소아마비 환자는 제법 인상적이었다. 영어교사와 전기기술자도 끼어있다. 세계관 배경 상,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사람도 몇 명 있긴 했다. 예를 들면 프로그래머 같은.
강영순 노인의 수화를 보고 장애인들이 다가왔다. 눈 먼 사람은 다른 이가 끌어왔다. 겨울은 그들에게 간단한 질문 몇 가지 해본 뒤에, 최종 승낙했다.
“좋습니다.”
환해지는 얼굴들을 향해, 겨울이 재차 미소를 만들었다.
“「겨울동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연철을 불렀다.
“이 분들 자리 잡게 도와주세요. 자리라던가, 침구라던가. 소개도 좀 해주시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그는 장애인들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새로운 가족들을 열성적으로 이끌고 간다. 그 모습에, 「겨울동맹」 사람들이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그 중엔 박진석도 있었다. 몇 마디 대화 끝에, 사정을 알았는지 표정이 나빠진다. 곧장 겨울을 향해 다가왔다.
그는 혼자 오지 않았다. 몇 걸음 떨어진 두 사람이 함께였다. 예비 전투조장으로서, 진석이 벌써 만들어놓은 무리의 일원들이다. 유라 때와 달리 전원이 적정 연령의 군필자들로만 구성되었다. 겨울에겐 사후승인을 받았다. 어차피 전투조장이 될 것이니, 그 정도 권리는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겨울은 수용범위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진석 씨. 어쩐 일이세요?”
“방금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애인들을 받아주기로 하셨다는 거, 사실입니까?”
“네, 사실인데요.”
여상스레 한 대답이 진석을 자극한 모양이다. 청년은 우울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많습니다.”
한숨을 쉬는 진석.
“저 사람들은 짐 덩어립니다. 장애인들을 받을 여유가 있으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사람들을 대신 받으셔야죠. 우리 동맹은 규모에 비해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비정상적으로 적잖습니까. 건장한 남자로만 열일곱을 받으면 전투조 하나를 꾸리고도 남습니다.”
“그건 그러네요.”
“대장님은 정말 착하고 대단하시지만, 종종 지나치게 이상적이십니다. 저도 장애인들을 돕고 싶어요. 실제로 도울 기회가 생기면 도울 겁니다. 개인으로서 말이죠.”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겨울의 눈치를 살핀다. 어린 지도자에게서 별다른 반감이 보이지 않자, 남은 말을 마저 내놓았다.
“대장님은 방금 개인으로서 저 사람들을 도와준 게 아닙니다. 동맹 모두에게 부담을 지운 거예요. 공사를 구분하셔야죠. 양심은 개인적인 만족일 뿐입니다.”
“개인적인 만족이 아니에요.”
진석의 얼굴에 의혹이 떠오른다. 겨울이 차분하게 말했다.
“난 「겨울동맹」의 대표자로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동맹 전체의 이익을 고려했어요.”
“그 이익이 뭔지 설명할 수 있으십니까?”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을래요.”
“……어째섭니까?”
“절차를 지키지 않으셔서요.”
“절차요?”
“네. 절차. 전투조에 관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직접 말씀하셔도 돼요. 예비라고는 해도 조만간 전투조장이 되실 테니까.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일은 두 분 부장님을 거치셔야죠. 그게 그분들 역할이잖아요.”
진석은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겨울이 마저 말했다.
“그동안 가입심사를 진행한 것도 부장님들이고, 오늘 장애인 공동체를 소개해준 사람도 장연철 부장님이셨어요. 다른 동맹원들도 제게 할 말 있으면 부장님들을 먼저 찾아요. 그런데 진석 씨는 다르시네요. 지금 행동이 월권이라는 생각은 안 드세요?”
누가 확실하게 정한 규칙은 아니다. 그러나 동맹의 규모가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정착된 불문율이었다. 직함만 던져주었을 뿐인데, 사람들 스스로 규칙과 질서를 확장해나갔다. 인간의 사회성이다.
‘부장님들의 역할도 있었겠지. 특히 민완기 부장님.’
그렇지 않았다면, 쓸데없는 서열과 강요, 불필요한 절차가 많이 붙었을 것이다.
불문율을 공공연하게 만드는 것은 겨울의 역할이다.
진석이 우물거렸다.
“그 분들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알아요. 아직 모든 게 어색할 때잖아요. 다음엔 주의하세요.”
미소가 필요할 때였다. 겨울은 익숙하게 만들었다.
자연스러운 온화함이 진석을 안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맥 빠진 걸음으로 물러났다. 지켜보던 두 사람이 위로해주는 듯 보인다.
규범은 그들 입을 통해 퍼져나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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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소설엔 착한 독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이었다…
흰콩님이 나쁜 독자들만 보냈다고 화내시겠어요.
그래도 나만 당할 순 없지.
가서 다음 편 내놓으라고 많이 괴롭혀주시기 바랍니다.
아, 추천은 누르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