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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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낙원 (11)
보수교육을 받는 동안, 독립대대의 간부들은 인근의 골프장을 종종 이용하곤 했다. 전쟁대학과 육군 박물관(Heritage center) 사이의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이 골프장은, 육군 복지단(MWR)이 운영하는 시설인지라 비용 면에서 큰 부담이 없었다.
강화된 보안면에서도 그러했다.
장교들은 주말마다 찾아오는 한가한 시간을 거부하지 않았다. 경쟁에 시달리느라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니와, 겨울과 함께 잘 관리된 그린과 페어웨이를 거니는 것 자체를 일종의 보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팽팽하게 당겨지기만 하는 실은 언젠가 끊어지고 만다.
골프 실력이 별로인 겨울도 그런 점을 알고서 일부러 어울려주는 입장이었다.
‘요즘 사회 분위기가 신경이 쓰이기도 할 테고.’
부하 장교들이라고 눈과 귀가 없겠는가. 요즘의 세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쯤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들의 생명줄이 바로 겨울이니, 지휘관이자 지도자로서의 겨울에겐 그들을 안심시켜줘야 할 책임이 있었다. 지휘관은 눈앞에 불발탄이 박혀 연기를 피워올리는 상황이라도 침착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법이다.
“저희들 이야기를 직접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많이 위안이 됩니다. 동기부여도 되고요.”
이는 알파 중대 송정훈 소위의 말이었다.
“어떤 면에선 특권이기도 하죠.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하도 그런 시선들을 받다보니 저 자신을 잃어버릴까봐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자신을 잃다니?”
“그 왜, 있잖습니까. 호가호위?……아니면 교만? 이라고 해야 하나?”
“아하.”
“사소한 대화를 주고받다가도 ‘아차! 방금 나 좀 밥맛없었나?’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자꾸 전쟁영웅이라고 띄워줘서 더 하고요……. 저만 재수 없는 인간이 되는 거면 그래도 괜찮지만, 대장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건……어휴. 상상만 해도 저를 두들겨 패고 싶은 충동이 듭니다.”
“항시 그런 마음가짐이면 큰 걱정은 없겠는데요.”
겨울이 미소를 짓자, 송정훈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에이, 아닙니다. 이유라 중위님이 아니었으면 실수를 해도 벌써 몇 번은 더 했을 겁니다.”
“그래요?”
“예. 예전부터 그래왔긴 한데, 아랫사람들이 주눅 드는 일 없게끔 좋게 좋게 관리를 잘 하시니까요. 출신 가리지 않고 가깝게 지내면서도 상급자로서 할 말은 다 하시는 걸 보면 참 보통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당신께서 직접 고르신 사람답다고나 할까…….”
“어쩐지 자화자찬 같네요.”
“네? 무슨…….”
“그렇잖아요. 송 소위도 결국 내가 임명한 사람인걸.”
반쯤 놀리는 듯한 겨울의 말에 송정훈이 허둥거렸다.
“아니, 저는 그……. 원래 이유라 중위의 땜빵으로 장교노릇을 시작한 거였고…….”
송정훈의 임관은 이유라의 부상이 계기였다. 아이들린 지열발전소 방어전에서 뇌진탕을 입은 이유라가 해상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자, 숙련병 가운데 하나였던 송정훈이 임시 직책진급으로 소위로서 소대장을 맡았던 것. 그 이후 지금까지 쭉 같은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겨울은 다시 미소를 만들었다.
“계기가 무엇이었든, 소위가 무능한 사람이었으면 한 개 소대를 계속 맡겨두었을 리가 없잖아요. 동성훈장까지 받은 사람이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요?”
“훈장이야 포효하는 폭풍 작전에 참가한 장교라면 대부분 하나씩 다 받은 거잖습니까.”
“자격이 있으니까 준거죠. 지나친 겸손도 보기 안 좋아요.”
“으……. 들뜨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이렇게 띄워주시면 곤란합니다.”
송정훈이 난처해하는 와중에 멀리서부터 헬기 엔진소리가 가까워졌다. 겨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군 시설이 지척이라 종종 헬기들이 지나다니곤 했기 때문이다. 골프장에도 헬기 착륙장이 설치되어 있었고. 지금처럼 머리 위를 통과할 때도 있다.
“아, 바람!”
그린 가장자리에서 막 자세를 잡던 찰리 중대의 타타라가 인상을 찌푸린다. 근처엔 소총을 휴대한 채 경계를 서듯 지켜보는 히로노부 소위가 있었다.
어느 정도는 테러 위협을 의식한 조치. 허나 그 전에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민간인들조차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시대였다. 공개 휴대(오픈 캐리)가 보편화된 이후 경찰의 과잉진압이 증가하는 문제가 생겼지만, 전체적인 범죄율은 오히려 소폭 감소했다. 과거 총기 규제가 강력했던 캘리포니아가 그렇지 않은 주들에 비해 높은 범죄율을 기록했던 것과 같은 이치였다.
바람이 잦아든 뒤로도 송정훈은 맥락 무관하게 이유라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던 겨울이 갑작스럽게 유라를 불렀다.
“이 중위!”
“네?”
“여기 송 소위가 이 중위 칭찬을 엄청나게 하네요? 당신이 차기 중대장이라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대요!”
송정훈이 허둥거린다.
“으아아……. 아니, Sir, 왜 갑자기…….”
그러면서 조금 떨어져 있는 유라의 눈치를 살핀다.
“흐-음.”
한 손을 허리에 짚고 삐딱하게 선 유라는, 골프 클럽을 어깨에 척 올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나 아부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아부 아닙니다!”
유라 본인이 아닌 겨울에게 한 말이 아부일 리가 있나. 건너 건너 전해질 것을 걱정했을 수는 있겠으나, 송정훈은 그렇게까지 치밀한 성격이 못 되었다. 그리고 유라가 그것을 모를 리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겨울에게 어울려, 선선한 봄날의 오전에 목덜미까지 땀이 나도록 당황한 송정훈을 놀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른 장교들 또한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렸다.
이것이 요즘 들어 독립대대 장교들 사이의 일상적인 분위기였다.
이를 두고 유라는 겨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대장님이 전보다 밝아지셔서 좋아요.”
그리고 덧붙이기를-
“안심했어요. 그래도 전보다는 마음이 좀 편하신 거구나……하고.”
이를 들은 겨울이 그렇게 보이느냐고 묻자, 유라는 웃으며 앤을 언급했다.
“그분께 전해주세요. 독립대대와 동맹의 모두를 대신해서 감사드린다고. 그리고, 대장님과 더불어 한 평생 행복하시기를 바란다고…….”
겨울은 고맙다고 답했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로 고마운 마음씀씀이였다.
따악-
회상에 잠겨있던 겨울을 경쾌한 타격음이 일깨웠다. 하늘을 대각선으로 쭉 가로지르는 공. 뚝 떨어지는 위치가 좋다. 왕커차이가 주먹을 불끈 쥐었고, 같은 팀인 브라보 중대 소대장들이 환호를 보냈다. 알파, 찰리, 델타 소속 소대장들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중국계가 대부분인 브라보 중대 간부들은 골프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게 저들에겐 동경의 대상이었을 테니까.’
민완기에게 듣기로, 중국에서 골프는 부르주아적 유흥으로서 금기로 여겨졌다 한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녹색 아편’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고.
그럼에도 골프는 중국인들이 동경하는 유흥이었다. 혼탁한 사회에서는 금기를 어기는 것이 특권처럼 여겨지는 까닭. 공직자와 재벌들이 앞장섰고, 사다리 위의 삶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독립대대의 중국계 간부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배경을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을지언정, 과거의 영향이 아예 사라질 순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좋은 의미로 많이 바뀌었지. 정말로……. 여차하면 잘라낼 작정이었는데.’
처음 받아들일 때 범죄 경력이 있는 간부들이 과연 나쁜 버릇을 버릴 수 있을까, 라는 경계를 품었던 겨울이다.
그럼에도 기회를 주었던 건, 탁하게 흐르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잘못이 온전히 그 사람만의 책임인 경우는 드물다고 믿고 있을뿐더러, 미군부터가 범죄자들을 병력자원으로 활용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번 곱씹었듯이, 이 나라에선 죄 값을 치른 범죄자를 경찰로 임명하기도 한다. 자신부터가 범죄자였으니 범죄자들의 생각을 잘 알 거라는 논리에서였다.
당연히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들도 있지만, 그 사고의 비율은 사전에 제기된 우려에 비해선 낮은 편이었다. 그저 그 낮은 비율의 사고가 무척 심각했을 뿐.
달리 말해, 그들에게 주어진 자리가 그들을 교화시켰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겨울은 이렇게 생각했다.
‘존경을 받기 때문에 존경 받을 행동을 하게 되는 거겠지.’
사람은 곧 관계다.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이상, 경험해본 적 없는 자부심을 느끼고 나면 누구든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법이었다. 그것이 성공하는가와는 별개로, 스스로 바라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군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예우는 충분히 그것을 가능케 하는 수준이다.
하물며 소속이 겨울의 독립대대라면야.
“Sir! 차례입니다!”
겨울을 부르는 건 리아이링이다. 동료들과 더불어 이 시간을 계산 없이 즐기는 모습이 이채롭다. 때때로 내비치는 독기 역시 과거보다는 무뎌진 그녀였다.
출신 조직 문제로 사이가 나빴던 쑨시엔이나 류젠차오 등과도 곧잘 어울린다. 원래의 출신에 대한 소속감보다 독립대대라는 동질감 쪽이 더 강해졌다는 방증이었다.
겨울이 자신의 클럽을 쑥 뽑는데, 전쟁대학 방향에서 헬기가 날아왔다. 이번에도 머리 위를 통과해 지나가는가 싶더니 속도를 줄여 골프장 한 가운데 착륙한다.
동시에 대학이 있는 북서쪽에선 어렴풋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골프채를 놓은 소대장들이 자연스럽게 습격에 대응하기 좋은 자리들을 잡는다. 사복 차림일지언정 전투경험까지 벗어놓고 온 건 아니었다.
이윽고 헬기가 착륙한 클럽하우스 방향으로부터 일군의 경찰들이 접근했다. 전투복을 입고 자동화기로 무장한 그들은, 대대 장교들의 경계를 받고 있음을 깨달았는지 총을 등 뒤로 멘 채 느리게 걸어왔다. 선두의 인솔자가 겨울을 향해 경례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Sir. 주 경찰 소속 스테판 메이너드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배지를 보여준다. 겨울이 마주 경례했다.
“반갑습니다, 메이너드 경감(Captain). 헌데 여긴 무슨 일로 오셨는지.”
겨울은 계급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 미국 경찰은 군과 같은 계급을 쓰지만, 주 경찰의 경감이 군의 대위와 정확하게 대응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 주 경찰의 최고 책임자는 총경(Colonel/대령) 계급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일개 대령으로 취급할 순 없었다. 실질적으로는 주 정부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인사였다.
‘이런 주 경찰에서 경감쯤 되는 인물이 일선에 나섰다면……. 카운티 몇 개를 커버할 정도의 경찰 병력이 통째로 움직이는 상황인가?’
비상대응체계의 핵심 관계자인 겨울은 이런 사항을 꼼꼼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메이너드 경감이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고서 답했다.
“1030시경, 주 경찰 공식 계정으로 육군전쟁대학 어딘가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부하장교들의 긴장감이 올라간다. 겨울은 놀라움 없이 반문했다.
“폭탄을?”
“예. 급조폭발물의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더군요. 표적이 누구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만약 이게 장난이 아니라면 한 중령님을 노렸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신변 보호를 위해 저희가 출동한 거고요. 처음엔 숙소로 갔는데, 여기 계시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이상하네요.”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반문하는 경감 앞에서, 겨울은 넷 워리어 단말을 꺼내보였다.
“내 비상연락망으로는 어떤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거든요.”
역병에 대비한 연락망은 이런 상황에서도 유효해야 정상이었다.
유라를 위시한 독립대대 간부들이 총구를 살짝 들어올렸다. 그것만으로도 경감을 당황하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어, 잠시……. 연락망에 대해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긴급사태다보니 각 기관별로 정보공유가 원활하지 못한 면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일부러 연락을 지연시킨 건 아니고요?”
“……음.”
겨울의 질문을 받은 경감이 잠시 고민하다가 떫은 표정으로 애매하게 끄덕인다.
“그랬을 수도……있겠지요.”
현장 인력이라면 경험이 없는 게 이상한 문제. 겨울이 지적한 건 같은 영역을 담당하는 부서가 다수일 때 빚어지는 관할권 다툼의 가능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