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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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낙원 (13)
폭탄의 위력은 약한 편이었다. 군용 플라스틱 폭약(C4)으로 환산한다면 대략 1.5파운드(680그램) 정도. 그래도 수류탄 서너 개에 해당하는 화력이라 경시할 순 없지만, 보다 중요한 건 실질적인 살상효율이었다.
수류탄이 고작 일이백 그램 안팎의 화약으로 넓은 유효범위를 보여주는 것은, 잘게 쪼개진 강철 외피가 파편이 되어 박히는 덕분이다. 종류에 따라선 내부에 수천 개의 작은 쇠구슬들을 입혀 놓은 것도 있었다. 크기가 작은 상처들이라도 깊이가 깊으면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하다.
달리 말해, 폭발 그 자체만으로는 테러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볼 베어링을 바르지도, 쇠못을 박아놓지도 않았어.’
겨울이 테러리스트의 진의를 의심하는 이유였다.
조사 결과, 기숙사에서 터진 폭탄엔 살상효율 증대를 위한 조치가 무엇 하나 행해지지 않았다. 하다못해 13년의 보스턴 마라톤 테러에서도 압력솥 안에 베어링과 못을 채워 터트렸건만. 경찰의 수색을 농락한 범인이 이 부분에서만 허술했으리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늦은 시간, 앤은 겨울에게 메신저를 통해 수사 진행상황을 공유해주었다.
「Anne : 폭발 현장에서 이런 것이 발견되었어요.」
그녀가 전송한 수십 장의 사진들은 까맣게 박살난 무언가의 잔해를 모아놓은 것이었다.
「Anne : 폭탄 운반에 사용된 수제 RC 카의 잔해예요.」
텐트 안의 야전침대에 앉아 사진을 넘겨보던 겨울이 자판을 눌러 질문을 보냈다.
「RC 카라면 폭발 당시 범인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뜻인가요? 장애물이 많은 환경이니, 원활하게 조종을 하려면 300미터 이내에 있었어야 할 텐데.」
「Anne : 그렇진 않아요. 17번 증거품을 봐요.」
열일곱 번째 사진엔 반 이상 녹아내린 칩셋이 찍혀있었다. 모퉁이의 형상이 남아있었으니 망정이지, 그것마저 뭉개졌다면 이게 칩이었는지 뭐였는지 알아보기조차 불가능했을 터였다.
「Anne : 그건 와이파이 칩셋이에요.」
「이런. 원격으로 조종했다는 말이군요.」
「Anne : 네. 범인은 IP 카메라를 해킹하여 수색 상황을 엿보다가, 수색 팀이 지나간 후에 RC 카를 돌입시킨 것 같아요. 차체에도 캠을 설치한 흔적이 있고요. 폭탄은 차체 위에 테이프로 둘둘 감아 고정시켰던 모양이고…….」
「추적은?」
「Anne : 아직까진 성과가 없네요.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유능한 해커가 개입한 게 분명해요.」
「그럼 막다른 길인가요?」
「Anne : 글쎄요. 우선은 모터의 거래내역을 조사하는 중이에요. 범인은 RC 카에 독일제 저소음 모터를 집어넣었는데, 이건 재작년에 수입과 제조가 중단된 물건이거든요. 결정적인 단서는 아니어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죠. 요주의 인물들의 최근 행적과 대조해보면 뭔가 걸리는 게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겨울이 다시 문자를 보낸다.
「뭔가 부자연스럽지 않아요?」
「Anne : 부자연스러운 부분이야 많지만, 특히 어떤 면에서요?」
「경찰의 움직임을 감시할 능력은 있으면서 내가 자리를 비운 사실은 몰랐다는 점이요.」
폭발은 겨울이 머무는 숙소의 복도에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언론은 테러의 표적이 겨울이었다고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지만, 정말로 겨울을 죽일 셈이었으면 사전에 경고를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죽거나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처음부터 인명손실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고 봐야 자연스럽겠지.’
앤은 일단 겨울의 심증을 긍정했다.
「Anne :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목적이 따로 있는 음모일 확률이 높죠.」
그러나, 하고 덧붙이는 말.
「Anne : 지금으로선 심증에 지나지 않아요. 어쩌면 이 테러가 일종의 예고이자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고요. 이런 유형의 테러를 저지르는 연놈들은 구역질나는 욕망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대중에게 관심을 받는 데서 느끼는 만족감,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데서 느끼는 자기 존재의 격상……. 혹은, 명성 높은 전쟁영웅을 지배하는 데서 오는 쾌감.」
「지배?」
「Anne : 누군가의 생사를 좌우하는 건 근원적인 차원의 지배라고 할 수 있죠. 겨울도 알잖아요.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온다. 그 명제가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성립한다는 거.」
겨울로선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관점이었다.
‘하기야 팬에게 살해당한 유명인이 한둘은 아니지.’
한겨울이라는 사람을 손에 넣었다는 착각. 그 착각을 즐길법한 정신 상태라면 누구든 용의선상에 오를 자격이 있다.
「Anne : 내 말은」
앤의 발신이 이어졌다.
「Anne : 정황이 그럴듯하다는 이유로 사고를 가둬두지는 말자는 뜻이에요. 확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둬야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던 사건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러네요.」
수긍하고서, 겨울은 소리 작게 틀어놓은 TV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판을 두드렸다.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을 것을.」
뉴스 캐스터는 이 순간에도 양용빈 주의자들의 위험성을 전하는 중이었다. 붉은 바탕의 자막으로는 「속보 : 한겨울 중령, 다친 곳은 없는 것으로 전해져」라고 떠있었고.
여기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을지는 짐작조차 어렵다.
앤이 공유한 정보는 아직 언론에 풀리지 않았다.
넷 워리어 단말이 진동한다.
「Anne : 거기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사람이 원래 그런 걸요. 진실이 빠르게 밝혀지기를, 그리고 그 진실이 우리가 바라는 내용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Anne : 어쨌든 겨울이 무사하기만 하면 최악의 사태는 피하는 셈이에요.」
「Anne : 그러니 눈 좀 붙여요, 내 사랑. 시간이 늦었어요.」
앤의 염려는 언제나처럼 상냥했다. 겨울은 불현 듯 그녀의 향기가 그리워졌다. 이 시간까지 사무실에 있을 모습이 선하다. 어쩌면 백악관이거나, 백악관으로 가는 길일지도 몰랐다. 크레이머는 분명 이 사건의 경과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므로.
「당신은요? 퇴근도 못했을 텐데.」
「Anne : 나는 괜찮아요. :)」
더 물어봐야 소용없을 일이었다.
겨울은 전등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신체적으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혼자만의 어둠 속에서 연산가속으로 흐르기를 기다리는 밤이다. 겨울은 꿈을 꾸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요즘처럼 아쉬울 때가 없었다.
기다림 끝에 처음으로 돌아온 감각은 촉각이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볼을 쓰다듬고 있었다. 겨울은 조금 놀라서 눈을 떴다. 「생존감각」이 있으니 적대적인 접근일 리는 없지만-
“이런. 깨워버렸네요.”
눈앞에 한껏 미소를 머금은 앤의 모습이 보인다.
“앤?”
“서프라-이즈!”
머리맡에 꿇어앉아있던 그녀는, 막 상체를 일으킨 겨울을 와락 끌어안았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겨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깊은 호흡을 반복하는 그녀. 스읍- 들이쉬었다가 길게 내쉬는 숨결이 옷을 통과하여 따뜻하게 번진다. 사랑하는 사람의 향기가 그리웠던 건 겨울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던가보다.
머릿속에 의문이 맴돌았지만, 겨울도 일단은 앤의 향기를 만끽했다.
몇 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질문을 꺼내는 겨울.
“어떻게 된 거예요?”
앤은 겨울의 허벅지에 걸터앉은 채로 답했다.
“현장을 살펴보러 왔죠. 수사체계도 확실하게 장악할 겸.”
“FBI 부국장이 직접?”
“이상할 것 없잖아요. 법무장관도 움직이는 마당에.”
그리고 그녀는 겨울의 입술을 훔쳤다. 아랫입술을 살짝살짝 빨아들이다가,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잇새로 촉촉하게 젖은 혀를 밀어 넣는다. 회를 거듭할수록 진해지는 맛이었다.
“후우-”
한참을 탐닉한 앤이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은데…….”
“…….”
겨울도 동감이었다.
그러나 시간도 시간이지만, 이런 야전텐트에서 사랑을 나눌 순 없는 노릇이다. 누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까. 두 사람이 연인인 게 밝혀져도 여전히 비난 받을 스캔들이었다.
겨울로부터 떨어진 앤이 다짐하듯이 말했다.
“그래도 기회가 있을 거예요. 적어도 내일까진 여기서 머무를 거니까.”
“바쁘지 않겠어요?”
“아무리 바빠도 30분을 못 만들려고요.”
“……30분?”
고개를 기울이는 겨울에게, 앤은 장난을 치는 악동처럼 웃어보였다.
“네, 30분. 가끔은 색다른 경험도 좋잖아요?”
겨울은 앤의 이런 모습이 싫지 않았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밝아지기는 그녀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연인간의 신뢰이기도 하다. 이 사람이라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줄 거라는 믿음. 어느 쪽이든 겨울에겐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그럼, 이따가 봐요.”
앤은 짧은 재회 끝에 가까운 약속을 남기고 떠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은 그녀의 얼굴을 아침 뉴스에서 볼 수 있었다. 침착하면서도 당당한 모습. 조금 전까지 보여주었던 달콤함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현장 생중계 영상에 FBI 부국장 조안나 깁슨이라는 자막이 떠오른다. 통제선 바깥에서 뒤따르며 아우성치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녀는 잠시 발걸음을 늦추며 돌아섰다.
「배후에 양용빈 주의자가 있을 것이 확실하지 않느냐고요? 현 시점에서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당신에게 기자로서의 자부심이 있다면 경솔한 판단을 삼가십시오. 아니면 말고, 라는 식의 무책임한 보도는 수사에 혼선을 끼칠뿐더러 사회 전반에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 시킵니다.」
그러자 어느 기자가 악을 쓰듯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가 마이크에 잡혔다.
「그럼 범인에게 다른 동기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앤은 오연하게 끄덕였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하는 중입니다.」
이에 기자가 다시 소리친다.
「정황증거가 이토록 명백한데 다른 증거가 필요하단 말입니까?! 혹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닙니까?!」
그들. 기자가 말하는 그들은 당연히 중국계 시민들을 의미한다.
즉, 그들 전체를 양용빈 주의자들과 한통속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재차 말씀드립니다. 범인의 동기와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게 말씀드리죠. 이 나라는 단 한 번도 테러에 굴복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추적할 것입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또 일 년이 걸리든 십년이 걸리든, 테러의 배후가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겠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서, 그녀는 선언하듯 덧붙였다.
「이 싸움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있습니다.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겨울은 새삼스럽게 앤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여운이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수사의 경과에 관해 추가적인 언급이 없는 것을 빌미로, 이날 오후부터 몇몇 언론이 수사당국의 무능함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수사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졌던 보스턴 테러 당시에도 범인의 정보가 공개되기까지 이틀은 걸렸건만.
어느 뉴스 채널은 앤의 말 중 일부를 악의적으로 편집해서 반복적으로 송출하기도 했다.
「현 시점에서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뒤늦게 뉴스를 접한 사람의 눈엔 이러한 보도가 어떻게 보이겠는가.
한편, 펜실베이니아 곳곳에서 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치고, 이에 따라 수상해 보이는 인물들이 연달아 체포되었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에 기초하여 체포한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차이나포비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관들, 4년 임기제로 선출되어 인지도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보안관들이 이런 흐름을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