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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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낙원 (14)
이튿날, 필라델피아 차이나타운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누군가 밤새 양용빈을 찬양하는 내용의 인쇄물을 살포한 것이다. 거기엔 ‘양용빈 장군의 신념’이 체계적으로 녹아있었다. 불특정다수의 익명성과 악의적인 집단지성이 결합해 만들어낸 그 사상이다.
앤은 인쇄물의 내용이 영문이라는 점을 수상하게 여겼다.
휴식 시간의 길지 않은 통화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게,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는 중국계 시민 중 70%는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거든요. ‘깨어있는 동포들’의 행동을 촉구하고 싶었다면 당연히 중국어를 썼어야죠.」
앤의 말처럼, 중국계 시민들은 영어를 모르는 인구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그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순 없지만…….’
미국은 공식적인 공용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이민자들이 모여 출신국가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거주지는 그밖에도 얼마든지 존재했다. 코리아타운이 그렇고, 유럽계 공동체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사용인구가 많은 스페인어는 제2의 공용어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어 사용자들에 대한 이미지는 예전부터 썩 좋지 않은 편이었다. 차이나타운 이외의 장소에서조차 당연하다는 듯 중국어로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알아듣든 말든 안중에도 없는 듯한 태도로.
겨울은 그들의 폐쇄성을 곱씹었다.
한편으로는 지나간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투입될 당시, 중간 기착지로 잠시 거쳤던 엔젤 아일랜드의 옛 이민국 사무소. 겨울과 앤은 그 앞의 차이나 만(China cove)에서 피쿼드 호로 향하는 잠수함을 탔었다.
옛 이민국 사무소는 사적지로 지정된 건물답게 내부에 이런저런 읽을거리들이 많았다. 그 대부분은 중국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반백년 이상 시행되었던 「중국인 배척법」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국계 공동체들의 폐쇄성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을까. 피해의식과 적개심은 공동체의 폐쇄성을 강화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폐쇄성은 지속적인 부조화와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폐쇄성으로 인해 갈등이 빚어지고, 갈등으로 인해 다시 폐쇄성이 견고해지는 악순환.
겨울이 생각하는 탁류의 단적인 예시다. 한 번 혼탁해진 물이 스스로 맑아지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선을 넘어선 이후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지난 세기의 편견이 현 시점에서 새로운 불씨를 더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을 닮았으나 사람은 아닌 것들과의 전쟁은 그 악순환을 끊어버리기에 부족했다. 다만 박제된 소년에게 잠시 사람을 넘어서는 꿈을 꿀 기회를 주었을 뿐.
이제 소년이 아니게 된 겨울은 오래 꾸었던 꿈으로부터 깨어나는 중이다.
‘아니, 내려놓는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씁쓸한 여운은 여전하다.
앤은 이번 사건의 배후가 앞선 테러와 동일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RC카 대신 다수의 드론을 썼다 뿐이지, 수법 자체는 먼젓번의 테러와 일치해요. 와이파이 칩셋도 같은 제품을 사용했고, 클라우드 망의 흔적을 지운 기술도 비슷하죠. 인쇄물에선 어떤 단서도 확인할 수 없었고요. 굉장히 치밀한 놈이에요. 놈인지 놈들인지.」
“이번에도 추적이 어렵다는 뜻이네요.”
「네.」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많은 피가 흐를 거예요. 난 당신이 거기에 상처입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황으로 미루어, 겨울은 결국 불씨를 튀길 부싯돌로 이용당한 것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자고는 했어도, 이제 와서 범인의 동기를 의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난 당신이 더 걱정이에요. 경솔하게 떠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됐어요, 그런 시답잖은 놈들은.」
앤은 겨울의 걱정에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날 백날 물어뜯어봐야 이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게 고작인데, 그마저도 쉬울 리가 없죠. 내가 강등당하면 국장님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테니.」
“국장님의 계획?”
「연말의 선거에 상원의원으로 출마하라는 제안을 받으셨나 봐요. 본인도 장차 대선가도에 진출하고픈 욕심이 있는 모양이고. 뭐, 국장님 정도면 그만한 야망을 품을 법한 인물이긴 해요. 쿠데타 진압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데다, 우선 사람이 괜찮으니까요.」
“아…….”
「그런 상황에서 자기가 지명한 부국장을 반년도 지나지 않아 해임하는 건 악수일 수밖에요. 기존의 강인한 리더십이라는 이미지에 상처를 입는 셈인걸요. 선거를 앞두고 여론에 휘둘렸다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에요. 게다가 난 페어 스트라이크 건으로 훈장까지 받은 사람이고요.」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을지언정 FBI 내부에서만큼은 영웅으로 인정받는 앤이다. 그런 앤을 잘라내느니, 국장 입장에선 차라리 의원 출마를 미루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요.”
「그럼 욕이나 한바탕 해주고 나오면 그만이죠. 애초에 원해서 앉은 자리도 아닌걸. 겨울도 알잖아요? 내가 되고 싶었던 건 당신의 아내이지, FBI 부국장 같은 게 아니었다는 거.」
“…….”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너스레를 들으며, 겨울은 어색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 이렇게 가볍게 말하고는 있어도, 정말 그렇게 되면 그녀에겐 무척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겨울이 손쓸 수 없는 현재에 아쉬움을 느끼듯이. 달리 맡을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에서 부국장 자리를 받아들였던 앤이니까. 그녀의 태도는 겨울을 안심시키려는 배려였다.
「아, 이만 가봐야겠어요.」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겨울이 그녀를 불렀다.
“앤.”
「네?」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죠?”
큭큭.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는데, 내가 더 많이 사랑해요. 나중에 봐요.」
전화가 끊어졌다.
통화의 가벼움과 달리, 사태는 점점 심각하게 흘러갔다. 일군의 무장한 시민들이 차이나타운을 포위한 것이다. 여기엔 정규군에 필적하는 장비를 갖춘 민병대원들도 섞여있었다. 이들은 길목을 봉쇄한 경찰과 대치한 채로 성난 구호와 욕설을 외쳐댔다.
경찰들의 긴장감은 화면 너머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아직 주방위군이 출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들은 시위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중국계 거주자들을 잠재적 용의자로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길목을 봉쇄한 이유부터가 검문검색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거주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의지 같은 게 있을 턱이 없었다.
결국 오후 2시 11분, 끝끝내 총격전이 시작되고 말았다. 중국계 시민들은 자기보호를 위해 총을 들고 자경단을 결성했다. 그러나 다수의 언론은 그들의 행동을 불공정한 태도로 다루었다.
「시청자 여러분! 보십시오! 그들이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여성 앵커가 경악한 음성으로 소식을 전한다.
화면에서 보여주는 건 매양 중국계 자경단이 거리를 향해 발포하는 광경이었다. 설령 자경단 쪽에서 먼저 발포했더라도 그들이 처한 상황을 감안해줘야 할 텐데, 자료화면이랍시고 경찰들이 몸을 피하는 모습들을 삽입하니 시청자 입장에선 왜곡된 인상을 받는 게 당연했다.
앵커는 중간 중간 이 사태와 전혀 무관한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작년의 통계에 따르면, 시민권을 보유한 차이나타운 거주자들의 평균 소득은 무려 6만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필라델피아 시민들의 평균 소득이 4만 달러에 불과한데도 말이죠. 저들은 그러한 부를 어떻게 손에 넣은 것일까요?」
교묘한 화법이었다. 중국계 시민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을 거라는 인상을 주는.
이는 또한 약탈을 조장하는 듯한 멘트였다.
이런 악의가 먹혔던 것일까?
폭동의 규모는 시시각각 커져만 갔다. 필라델피아가 치안이 마냥 좋은 도시는 아닐뿐더러, 같은 광역권 내에 미국 최악의 우범지대인 캠든(Camden)이 위치한 까닭이다. 이곳은 방역전쟁 이전부터 불법적인 무기거래와 마약밀수의 중심지로 악명이 높았다.
차이나타운과 캠든은 심지어 거리상으로도 가까웠다. 캠든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곧바로 차이나타운이었으니까. 넷 워리어 단말의 위성지도로 이를 확인한 겨울이 짧게 신음했다.
그리고 곧 다시 한 번 신음했다. TV 화면에 비친 시위대의 현수막을 보았기 때문이다.
「중령님! 우리의 영웅! 이번엔 우리가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맙소사.”
저기서 말하는 중령이 겨울 이외의 다른 사람일 가능성은 없었다.
주방위군 투입은 사태 발생 후 한 시간 만에 이루어졌다. 이는 이례적으로 빠른 결정이었으나, 도시의 나머지 구역 보호를 우선시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높은 등급의 비취인가를 보유한 겨울은 그 배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잘못되었다……고만은 할 수 없나.’
겨울은 이미 장교로서 군의 치안유지활동에 대한 교육을 받은 바 있다. 종말이 다가오는 시대엔 필수적인 사항이었다.
해당 교육에서 예로 든 사건 중의 하나가 92년에 일어난 LA 폭동이었다.
일단 도시적인 규모의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나면, 평소부터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던 소외계층 역시 각자의 동기로 무질서에 합류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도시의 나머지 영역을 먼저 진정시키겠다는 결정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화재를 진압할 때 불이 번질 방향의 나무를 미리 베어내는 이치와 같았다.
현 시점에서 투입된 군 병력이 고작 3개 대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했다. 광역권의 크기와 시위대의 무장 수준을 고려하면 1개 여단조차 부족할지 모른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겨울은 내일부터 보수교육이 재개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연락을 해온 사람은 육군 교육사령부의 어느 대령이었다.
“Sir. 지금은 다소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대학으로 복귀한 겨울은 이제 막 숙소를 옮긴 참이다. 전쟁대학 교정의 분위기는 뒤숭숭했고, 폭탄이 터진 자리엔 여전히 금줄이 쳐져 있었다. 추가 테러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이곳에도 주방위군 병력이 투입되어 경비를 서는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원래 경비를 맡고 있던 경찰과는 서로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끝을 흐리는 겨울에게, 대령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그렇다고 비상대응체계 구축을 늦출 순 없잖나. 백악관이 거기에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인데. 이것도 일종의 임무라고 생각하게.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도 명령을 받으면 수행해야 하는 게 우리들 군인 아니던가.」
“음,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서부지역 비상대응체계를 처음 제안한 사람이 바로 크레이머 대통령이었다. 쇼맨십이 원체 강한 사람이 아니다보니, 대응체계의 발효일자를 한참 전부터 확정지어놓은 상태. 그러니 본인의 체면 때문에라도 날짜를 늦추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었다.
「뭔가 곤란한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게. 내가 최선을 다해 편의를 봐주겠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무얼. 당연한 일이지.」
이후 대령은 전화를 바로 끊지 않고 이런저런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겨울은 대령이 자신의 식견을 어필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는 이 대령에게서 처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칼라일 주둔 병력이 속한 사단의 사단장도 점심 무렵 겨울을 찾아와 식사를 함께했던 것이다.
겨울로선 이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로저스 중장님의 진급 건이 대체 어느 선까지 알려진 거지?’
문민통제의 원칙이 여전히 지켜지는 미군이지만, 그럼에도 장군은 예전부터 실력만큼의 정치력으로 올라가는 자리였다.
게다가 최근의 미군은 급격한 팽창으로 말미암아 장교와 장교간의 스폰서 관행이 만연해진 상태였다. 이는 2차 대전 당시에도 있었던 일. 기존의 체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조직이 커졌을 때, 개개인이 혼란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
그러니 로저스의 중장 진급에 얽힌 비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겨울과의 인연을 만들어두고 싶어 할 법 했다.
중앙정보국이 일부러 정보를 퍼트렸을 가능성도 있겠다. 장차 겨울을 정보국과 군 사이의 확실한 연결망으로 삼기 위해서. 정보국의 직접적인 접촉엔 거부감을 보일 군 인사들도, 겨울을 매개로 한다면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줄 확률이 높으니까.
이러한 연상의 끝에서, 겨울은 갑작스러운 염증을 느꼈다.
이런 시국에서도 자기 잇속을 먼저 차리는 군상들과, 그 군상들의 표적이 된 자신. 저 밖에서 세차게 흐르는 탁류. 그로 인하여 아직도 멀기만 한 앤과의 생활.
‘이게, 내가 도달한 최선의 세상이라니.’
겨울의 속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