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86)
후일담 – 앤의 위시리스트 (13)
겨울과 앤의 결혼이 공표되면서 화제가 된 것 중의 하나는, 이른바 「마리 패터슨의 실연」이란 제목의 짧은 동영상 클립이었다.
독립대대의 마스코트 격이 된 닥스훈트에게 일찍이 스페인 국왕의 이름을 붙여주었고, 겨울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쓴 편지를 건네주며 사형수인 반-반 아저씨(fifty-fifty guy)를 살려달라고 부탁했던 소녀, 마리 패터슨. 마리와 겨울이 손가락 걸고 약속을 나누던 때에 헬기 조종사가 촬영했던 영상은 사람들로부터 훈훈한 반향을 이끌어냈다.
그것을 계기로 하여, 구조 이후의 마리는 인터넷상의 유명인사로서 자기만의 동영상 스트리밍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재정착 지역에서의 삶, 종교적 휴양지에서 영위했던 피난생활의 증언, 재난상황에서의 생존 노하우 공유하기, 마지막으로 소위 ‘한겨울 덕질’ 등이 해당 채널의 주요 컨텐츠였다. 그린베레마저 무안하게 만들었던 마리는 특유의 그 당돌함으로 꾸준한 인기를 구가해왔다.
겨울의 결혼 소식이 전해지자, 마리는 방송 도중 말을 잇지 못하고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백 밤 자고……어른이 되어서……결혼하러 가겠다고 했는데…….」
어찌나 본 때 있게 울던지, 적어도 구독자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우는 것 자체로 하나의 볼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폭소하는 사람이 반이고 폭소하며 위로하는 사람이 다시 반이었다. 마리는 눈물을 닦으며 끅끅거리면서도 투철한 프로의식으로 그들에게 답례했다.
「Alpha_team_1147님……히끅……10달러 후원……흑……감사합니다…….」
이를 접한 앤은 숨쉬기가 곤란할 지경으로 웃었다.
“겨울이 잘못했네요.”
겨울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그리고 오늘, 결혼식 당일, 전자 메일로 RSVP 카드를 받은 마리는 하객의 한 사람으로서 부모님의 손을 잡고 뾰로통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안녕? 그동안 잘 지냈니?”
친근한 인사를 건네는 겨울에게, 마리는 그래도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대령님. 오랜만에 뵙네요. 결혼 축하드려요.”
“고마워.”
“……약속을 지켜주신 것도 감사드리고요.”
“그래. 반반 아저씨랑은 아직도 연락하니?”
마리가 끄덕였다.
“우린 친구니까요.”
“아하.”
“시간 날 때 제가 자주 전화를 해요. 가끔은 라면도 사서 보내드리고요. 감옥에서라도 배고프지 않게 드시라고. 친구와 친구는 어려울 때 서로 도와줘야 하잖아요?”
“그렇구나.”
겨울이 쓴웃음을 지었다. 마누엘 헤이스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더 이상 사형수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겐 사형 이외에도 선고받은 형량이 남아있었기에, 군의 운영이 정상화된 지금은 감옥에 다시 재수감된 상태였다. 아마 죽는 날까지 교도소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혹시 통화해보셨어요? 결혼한다고?”
“응. 축하하고, 참석하지 못하는 몸이라 미안하다더라.”
마리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그 아저씨도 우울하겠어요. 친구라고는 저랑 대령님 빼면 엑셀이 유일한데. 여러 가지 의미로 죗값을 치르게 되네요. 뭐, 죽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죠.”
“그러게.”
거기까지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였다.
마리가 뒤에 줄을 선 사람들을 흘낏 훔쳐보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사진 찍을 때 불러주세요.”
겨울이 다과가 마련된 자리를 가리켰다.
“쿠키랑 케이크랑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으렴. 사람이 워낙 많아서 기념촬영에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아.”
“그건 괜찮아요. 저는 쿠키하고 케이크 배가 따로 있거든요.”
딸이 하는 귀여운 말에 부모님이 작은 소리로 웃는다. 겨울은 그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여보냈다.
하객들과의 기념 촬영시간은 예식이 거행되기 전으로 잡혀있었다. 이 시간 동안 겨울은 이제껏 인연을 맺어온 이들과의 재회를 즐겼다. 이를 위해 고용한 전문 사진사 두 명의 몸값만 3천 달러를 넘는다. 그 사진사 중 한 명이 실소를 터트렸다.
“아니, 지금 무슨 부대별로 편 갈라서 단체사진 찍습니까? 좀 자연스럽게들 서보세요.”
야외에서 촬영이 이루어지는 사이에 머리 위로는 고해상도 카메라가 달린 드론이 날아다녔다. 겨울은 하객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Sir.”
“오, 제프리! 이게 몇 년 만이죠?”
겨울은 제프리 브라운과 서로 어깨를 두드려주고서 떨어졌다.
“글쎄요. 거의 한 4년 만에 보는 거 아닙니까?”
목소리가 다르다. 대신 대답한 사람은 안토니오 긜레미였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만 해도 상병이었건만, 오늘 입고 온 육군 정복엔 상사 계급장이 붙어있었다. 2분대장이었던 데이브 윈슬로, 3분대장이었던 조엘 헤르난데스도 차례로 인사를 건네왔다.
“다들 바쁜 와중에 멀리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살아있는 모습들을 보니 안도감이 드네요.”
“당신께서 결혼을 하신다는데 탈영을 해서라도 와야죠.”
주머니에 손을 꽂고 가볍게 대꾸한 제프리가 주변을 돌아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런데, 와……. 이런 장소를 빌리려면 대체 얼마나 듭니까?”
앤과 겨울은 워싱턴 시내에 위치한 5성급 호텔의 예식장을 대여했다. 하객의 숫자가 숫자인지라 호텔쯤 되지 않고선 수용하기 힘들었던 까닭. 음식을 비롯해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는 면에서도 그러했다.
겨울이 어개를 으쓱이며 답했다.
“돈 안 들었어요.”
“예?”
“빌리는 데 돈 안 들었다고요.”
“엥.”
황망해하는 제프리.
“설마 공짭니까?”
“네. 어쩌다보니……. 앞으로 이곳에 붙을 프리미엄이면 충분하다고 하던데요?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돈을 내려고 했는데, 끝까지 안 받겠다는 걸 어쩌겠어요.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해야 광고효과가 더 높을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에요.”
“허. 그럼 식 전체에 한 푼도 들지 않은 겁니까?”
제프리가 물었으나, 착각이었다. 겨울이 해명했다.
“어디까지나 결혼 당일의 식장 대여료만 할인되었을 뿐이에요. 리허설 날의 대여료와 식비는 따로 계산했고, 오늘도 식비는 별도고, 사진사 고용비용에다가 화환과 부케를 비롯한 꽃들 값도 있었고, 식 진행 자체에 대한 컨설팅, 결혼반지 구입비, 하객 분들에게 나눠줄 선물들과 전문 메이크 업…….”
제프리는 지출항목이 이어질수록 질린 표정이 되어갔다.
“……이렇게 해서 총 3만 2천 달러 가량 썼나 봐요.”
“사, 삼만.”
“반응을 보니 제프리도 슬슬 캐슬린과의 결혼을 고려하고 있나 봐요?”
“……예.”
제프리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하는 말.
“세상도 불완전하게나마 평화로워졌으니 이제 나도 슬슬 가정을 꾸려봐야겠구나- 했죠. 캐시도 제가 언제쯤 결혼하자고 하려나 기대하고 있는 눈치고요. 근데 이런 곳에서는 힘들겠습니다. 식장 대여료까지 제값을 지불한다고 치면 거의 한 6만? 7만? 쯤 되지 않습니까?”
“맞아요.”
“작정하면 못 쓸 돈은 아닌데……. 으. 고민 좀 해봐야겠군요.”
겨울이 가까운 하객들을 살펴보았다.
“혹시 캐슬린도 같이 왔어요?”
“예. 저어기.”
제프리가 손끝으로 조금 떨어진 테이블을 가리켰다. 몰라볼 만큼 곱게 입고 앉아있던 헤이랜드 보안관은 애인과 은인이 자신을 보는 걸 깨닫곤 환히 웃으며 이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어 보인 제프리가 은근한 목소리를 냈다.
“혹시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이따가 그, 부케하고 가터 링 말입니다. 캐시하고 제가 받기 좋은 쪽으로 던져주시면 안 됩니까?”
겨울이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안 되겠는데요. 다른 사람도 비슷한 부탁을 했거든요.”
“아니, 어떤 놈이?”
“계급이 제프리보다 더 높아요.”
“……어떤 분으로 정정하겠습니다.”
제프리의 넉살이 겨울을 다시 웃도록 만들었다.
같은 청탁을 넣은 다른 이의 정체는 레인저 연대의 조지 팔머, 마리와 마찬가지로 러시안 강 인근의 종교적 휴양지에서 만난 사람이다. 방역전쟁이 끝나거든 결혼을 해서 아내와 함께 농장이나 하나 운영하겠다더니, 이제 그 계획을 실천으로 옮기려는 모양이었다. 그러자면 먼저 전역을 해야겠으나, 현재까지는 군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예비부부가 둘이니 가터 링과 부케를 하나씩 나눠서 받으면 이상적이겠네요. 그것도 제법 운이 따라줘야 할 테지만.”
제프리는 겨울이 제시한 타협안을 떨떠름하게 받아들였다.
“여하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당신께서 저보다 먼저 결혼하실 줄은 몰랐지 뭡니까.”
“하하. 그건 나도 몰랐어요.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죠.”
과거의 겨울이 자신의 미래를 알았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거 제법 볼 만 했겠지.’
겨울은 꽤나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 사람들과의 기념촬영이 끝나자 본격적인 식이 거행되었다. 부름에 따라 먼저 입장한 겨울은 사람들의 갈채를 받으며 주례를 맡은 목사 앞에 섰다.
목사가 주례인 것은 당사자들의 신앙 유무와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결혼서약을 주관할 자격 자체가 천주교 신부와 개신교 목사 등 성직자들에게 부여되어있는 까닭이다. 시청에 상주하는 혼인 담당 판사들에게도 자격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들을 이런 자리로 불러내지 않는다.
목사가 말했다.
“이어, 신부가 입장하겠습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앤이 아버지 스티브의 손을 잡고 식장으로 들어섰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어온다. 드레스 자락이 길다보니 버진 로드 위로 사락사락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시선을 짧게 들더니 기다리는 겨울을 보고 미소를 머금는다. 볼을 건드리면 톡 하고 웃음으로 된 꽃망울이 터질 것만 같다. 겨울은 그 화사한 자태에 새삼스럽게 사로잡혔다. 이대로 계속 바라보고만 있고 싶은 심정이었다.
스티브가 딸의 손을 겨울에게 넘겨주었다. 하얀 손은 그보다 하얀 면사 장갑에 감싸여 있었다. 가만히 감싸 쥐자 따뜻한 체온이 배어나온다.
이 순간 두 사람은 바깥세상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받아야 할 축복이 저편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콧등에 건 안경 너머로 신랑과 신부를 한 번씩 살핀 목사가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신랑, 신부. 준비 되었습니까?”
시선을 교환한 겨울과 앤이 동시에 대답했다.
“예.”
목사가 끄덕였다.
“그럼 이제 신랑과 신부의 서약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신랑, 한겨울은 조안나 깁슨을 합법적인 아내로서 받아들일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겨울은 앤이 자신을 조금 더 꼬옥 붙잡는 것을 느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아름다울 때나 아름답지 못할 때나, 죽음이 그대들을 갈라놓는 날까지 남편으로서 아내를 보듬고 지키고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대답을 들은 신부가 이번엔 앤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신부, 조안나 깁슨은 신랑인 한겨울을 합법적인 남편으로서 받아들일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죽음이 그대들을 갈라놓는 날까지 아내로서 남편을 보듬고 지키고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맹세합니다.”
“두 사람은 반지를 교환하십시오.”
겨울과 앤이 서로의 손가락에 서로를 위해 준비한 반지를 끼워주었다. 결혼반지는 봄날의 빛을 머금고 따뜻한 색감으로 반짝거렸다.
그것을 지켜본 목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은 맹세의 입맞춤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몸을 돌려 앤을 마주보는 겨울은, 그녀의 숨결이 떨리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해왔을지. 마침내 부부가 되는 것이다. 겨울도 기분 좋은 긴장감에 취해있었다. 겨울은 홀린 듯이 바라보던 앤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술을 겹쳤다.
겨울과 앤, 어느 쪽도 먼저 키스를 끝낼 생각은 없었다.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해야 정확할 터. 하객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더러는 장난스러운 야유를 섞어 갈수록 큰 갈채를 보내주었다.
기다리다 지친 목사가 식을 마무리 짓는다.
“신랑과 신부가 이토록 많은 증인들 앞에 서로에게 변치 않을 사랑을 약속한 바, 오늘 이 자리에서 새로운 부부가 탄생했음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이로써 식이 끝났으되 피로연은 밤까지 이어지도록 되어있었다. 이번 결혼식을 준비하며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간 부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