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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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자조달 (3), 샌 미구엘
미국의 국도변에 위치한 주유소 인근에는 대개 여관과 식당이 있게 마련이었다. 샌 미구엘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도로 맞은편에는 두 개의 식당이, 교차로 대각선 방향으로는 여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병사들이 사주경계에 임하는 동안, 방독면 쓴 난민들이 저마다 화기나 정글도, 도끼 따위를 단단히 쥐고 가까운 식당부터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면서 겨울에 태어나 겨울의 이름을 얻은 소년은 마을 주민 중 히스패닉계가 많지 않았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유소 맞은편 두 개의 식당 모두가 스페인 음식점이었기 때문이다. 한쪽은 「십 번가 바스크 카페」라는 간판을 달았고, 식당보다 술집에 가까울 남은 한 쪽은 또르따스와 브리또를 판다고 내걸었다.
난민들이 과하게 몰려갔다. 저러다가 감염변종 하나 나오면 서로 부딪혀서 제 역할 못할 것이 걱정될 정도였으므로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반면 사람들은 달랐다. 차량대열과 가까운 장소, 즉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에서 최대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점수를 딸 생각인가보다. 서로 다투는 소리까지 났다. 방독면을 끼고도 건물 밖까지 들릴 정도면 엄청나게 소리 지르는 셈이었다.
다행히 변종 하나 없이 비어있는 건물이었나 보다. 모두 멀쩡히 나왔다. 단, 정상적인 몰골은 아니었다. 서로 자기 더플 백에 식량을 채우려고 몸부림친 흔적이 역력했다. 찢어진 더플 백을 안고 울면서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방독면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몸싸움 하다가 벗겨진 모양인데, 감독자인 상사에게 욕을 먹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덩치 큰 난민 지원자 하나가 으스대며 트럭에 올라탔다. 더플 백이 한가득 차있었다. 부끄럽게도 한국인이었다. 게임인데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것이었다. 왜냐면, 과거를 배경으로 삼는 세계관 내 인물들의 성격은 해당 시대의 빅 데이터를 기초로 작성되기 때문이다. 이 남자가 소년에게 통역을 요구했다. 한심했지만 말을 옮겨주었다.
“난 내 몫 다 했습니다. 더는 나갈 생각 없습니다.”
옮겨놓은 말을 듣고서 병사들이나 부사관이나 장교나 표정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엘리엇 상병이 투덜거렸다. 짐작은 했지만 시작부터 이 모양이군. 트럭 탑승칸에 앉아서 더플 백을 꼭 끌어안고 있던 남자가 미군이 뭐라고 했느냐고 물었다. 소년은 무시했다.
소년을 합쳐 열 명의 난민들이 귈레미 일병과 엘리엇 상병의 지시에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제분소로 향하는 인력이었다. 주유소에서 동쪽으로 세 블록, 북쪽으로 네 블록을 움직여야 한다. 「모겔론스」 이전에는 그저 산책삼아 걸을 법한 짧은 거리였는데, 지금의 생존자들이 체감하기로는 너무나도 먼 거리다.
경험 많은 소년의 사정은 다르다. 모두가 앞장서기 싫어하는 시점에서 선도를 자처했다. 임시로 지급 받은 총도 등허리에 둘러메고서, 손에는 정글도를 하나 쥐었을 뿐이다. 9등급의 「근접격투」, 10등급의 「근접무기사용」 기술보정을 믿는 것이었다.
구획마다 자동차들이 엉망으로 엉켜있었다. 손짓으로 지원자들을 불러 차량들을 갓길로 밀어내며 나아갔다. 도중에 좌우의 주택가를 끊임없이 경계했다. 낮은 펜스나 나무 울타리 너머로 인기척 없는 단층주택들이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잠깐, 정지.”
엘리엇 상병이 주먹 쥔 손을 위로 올렸다. 난민들이 엎드리다시피 자세를 낮추었다. 모두 겁먹은 초식동물처럼 눈을 굴렸다. 다행스럽게도, 위협을 발견해서 정지신호를 보낸 건 아니었다. 상병이 바라보는 방향에 국기게양대가 있었다. 미국 국기는 익숙한데, 붉은 별과 그리즐리 베어가 그려진 깃발은 낯설다.
“저 깃발은 뭐죠?”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깃발이야. 소방서로군. 도상연습 당시엔 미처 확인하지 못했는데.”
귈레미 일병이 답했다. 과연, 곰 아래쪽을 보니 California Republic이라고 적혀있었다.
엘리엇 상병의 결정에 따라 소방서 건물을 탐색하기로 했다. 식량을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진통제와 항생제, 붕대 따위의 의약용품도 중요한 보급물자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방차도 중요했다. 혹시나 캠프를 벗어나게 될 경우 식수운반에 요긴하게 사용될 것이었다.
“5톤짜리 작은 소방차라도 3천 리터는 넉넉하게 담을 수 있다고.”
엘리엇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번에도 소년이 가장 앞서서 들어갔다. 순서를 정해서 돌아가며 해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두 미군 병사의 친애 호감도에 소폭의 상향보정이 발생했다는 알림이 떴다. 큰 의미는 없다. 변변치 않은 증감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었다.
마을 규모가 작은 만큼 소방서도 단층이었다. 차고 바로 옆에 사무실이 붙어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특수유리라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칼등으로 통통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는 충분히 들릴 것이고, 멀리까지는 닿지 않을 크기의 소음이었다. 그러나 심장이 오그라든 난민들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나보다. 미쳤냐고 소년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어이, 그쯤 해두지?”
귈레미가 총구를 겨누고서 좌우로 까딱거렸다. 물러나라는 의미다. 정말 위험했다면 미군이 소년을 막았을 것이다. 경고 받은 난민이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경기를 일으키며 주저앉았다. 탕탕, 안쪽에서 무언가가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문에 귀를 대보니 으어어 우는 소리가 났다. 사람이 낼 법한 소리가 아니었다. 감염변종이다.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문 앞에 서서 사격을 준비하는 두 병사에게 소년이 고개를 저어보였다. 문고리를 잡고, 다른 손에 정글도를 쥐었다.
“제가 처리할 게요.”
“배짱이 좋은 건지 제정신이 아닌 건지…….”
귈레미 일병이 고개를 젓는 사이 엘리엇 상병이 물었다. 괜찮겠느냐고. 고개를 끄덕이자 상병이 허가를 내주었다. 소년을 믿는다기 보다, 난민들에게 자극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도 소년이 잘못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역효과다. 방아쇠울에 넣은 손가락이 금방이라도 당겨질 것처럼 팽팽했다.
“좋아. 자신 있으면 해봐.”
겨울 소년은 문 너머에 있을 감염체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출동대기 중인 소방관이 감염된 경우라면 방화복에 방화모 차림일 테니 칼로 쳐도 좋을 약점이 얼마 없을 것이었다.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문고리를 비틀어 확 당기니, 문을 밀어대던 변종이 제 힘을 못 이겨 밖으로 나뒹굴었다. 소년은 넘어진 놈의 등을 밟고, 발로 차서 모자를 벗긴 뒤 머리 무거운 칼을 힘차게 내리찍었다. 콰직. 두개골을 깨고 푹 들어간 칼날. 갈라진 틈으로 피 섞인 뇌수가 끈적하게 흘러나왔다. 변종의 사체가 경련을 일으켰다.
사람 닮은 것이 죽어간다. 손잡이로부터 저릿한 전기가 흘러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이 감각 때문에 이런 어두운 세계관의 가상현실 타이틀을 골랐던 것이다. 소년은 그 느낌이 죽을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손목에 스냅을 주었다. 칼이 툭 튀어 오르듯이 빠져나온다.
“어이, 괜찮아?”
“괜찮습니다.
걱정을 보이는 귈레미에게 소년은 침착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일병은 거친 말로 감탄했다.
“하, 여기 상남자(Badass)가 있군.”
열린 문 안으로 가장 먼저 들어간 것도 소년이었다. 사소한 행동에서 사소한 이득이 있었다. 두 병사의 친애 호감도에 소폭 상승보정이 발생했다. 역시 큰 의미는 없었지만, 이렇게 작은 이득이 쌓이다보면 나중엔 좋은 결과로 보답 받을 것이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소방서는 관공서의 기능을 겸한다. 애당초 사무실 유리창 전면에도 Community services district 라고 적혀있었다. 출동할 일이 드문 소방관들은 행정사무를 돌보는 공무원 역할도 수행했던 것이다.
사무실은 앞뒤로 긴 구조였다. 안쪽에서 서류뭉치들 사이에 놓인 열쇠 꾸러미를 찾았다. 총이 두 자루 있기에 그것도 챙겼다. 뒤따라 들어온 사람들이 넋 놓고 있는 사이 벽면 보관함을 열고 약품을 쓸어 담는다. 소년 몫의 더플 백 1/3 정도가 채워졌다.
“저기…….”
중년인 하나가 말을 건다.
“공평하게 나누고 그래야지, 혼자 다 담아가면 어쩌자고…….”
소년은 말없이 돌아보았다. 상대가 움찔 물러났다. 소년이 단단히 쥔 정글도에서는 아직도 피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중이었다.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빤히 바라보자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소년은 시간을 끌지 않았다. 다른 벽면에 세 개의 개폐버튼이 달려있었다. 필시 차고의 셔터를 올리는 스위치일 것이다. 엘리엇은 소방차에 욕심을 냈었지. 문가에 그가 서있었다. 시선을 보내자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이지 않고 턱턱턱 눌러버린다.
과연, 위잉- 하는 모터 작동음이 들렸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미처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과 미군 병사 둘이 사방으로 총을 겨눈 상태였다. 소음을 듣고 감염변종이 떼로 나타날까 걱정하는 것이었다.
퍼억!
“뭐, 뭐야!”
화들짝 놀란 지원자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소방서 옆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그쪽에서 변종 하나가 기어 나오는 것을 보고 소년이 냅다 달려가서 칼로 찍어버렸던 것이다. 엉겁결에 누군가 방아쇠를 당겨 소년이 맞을 뻔 했다.
시청자 메시지 로그가 폭증했다. 잠깐 펼쳐보니 「어처구니없게 죽을 뻔 했네 ㅋㅋㅋ」 같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가서 저년 죽여 버리라는 말도 여럿 있었다.
“미, 미안! 결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아이 하나 있을 법한 여자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외모만 가지고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난민들 몰골이 하나같이 말이 아닌지라, 남자건 여자건 적어도 십년 이상 더 늙어 보이기 예사였기 때문이다. 소년이 손짓했다.
“괜찮으니까 목소리를 낮추세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를 보고 호감도 변화 알림이 여러 번 울었다. 엘리엇 상병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상남자인데? 겁이 없는 건지 무모한 건지…….”
“그게 중요한가요?”
가까워진 소년이 반문하자 상병이 피식 웃었다.
“이라크에서 빌빌거리던 레드넥 신병들에 비하면 훨씬 낫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감사합니다.”
열린 차고에서 구급차와 소방차 하나씩이 발견되었다. 세 개의 차고 중 하나는 비어있었다. 엘리엇 상병이 운전 가능한 지원자를 가려 주유소에 가져다두고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소년이 확보한 물자도 차량에 쏟아놓았다. 가방 하나 채우고 얼른 돌아가려는 다른 난민들과 확실하게 다른 태도를 보이니 병사들의 호의를 사기 쉬웠다.
다만 운전 담당의 두 사람은 내키지 않는 반응이었다.
“돌아와야 합니까?”
울상을 짓는 난민이 가소로웠던 모양인지 상병이 거칠게 떠밀었다.
“당연히 돌아오셔야지.”
그 말을 소년이 통역했다. 운전역으로 뽑힌 두 사람은 애꿎은 소년만 노려보다가 운전석에 올랐다. 차마 미군에게 미움 살 배짱은 없었던 모양이다.
엘리엇 상병이 본대에 무전을 넣었다. 차량 두 대 보냈으니 그 안의 물자와 함께 회수하고, 사람은 돌려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갈 길이 가로세로 합쳐 일곱 블록인지라 차량은 금방 도착할 터. 잠시 후 무전이 돌아왔다. 운전수 두 사람이 돌아올 필요 없다고 했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는 확인이었다. 엘리엇은 코웃음을 치고는 반드시 다시 돌려보내라고 답했다.
두 사람을 기다리는 사이에 주변을 추가로 수색했다. 마을 중심가에 가깝다보니 카페라던가 식당이라던가 눈에 띄는 건물들이 있었다. 이름도 없는 작은 식당이 하나, 잭슨의 옛 것과 새 것이라는 비슷한 크기의 식당이 하나. 멕시코 음식을 취급한다고 대놓고 써 붙인 The Ranch라는 식당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 이민자들이 주류인 마을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만 커피 하우스는 수색할 가치가 있을까 의문이었다.
“저거 봐. 입간판에 런치 스페셜이라고 적혀있지? 분명 식사도 취급했을 거야.”
엘리엇의 말. 과연, 통조림 햄과 밀가루 포대 따위가 발견되었다. 일곱 사람의 더플 백을 채우고도 남을 풍족한 양이었다. 캠프 사령관을 위해 진공 포장된 커피 원두도 챙겼다. 산화되어 본연의 맛이 아니겠으나, 지금은 그마저도 사치스럽다. 와중에 몇 개체의 변종을 추가로 처리해야 했지만 별다른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수색을 마치고도 시간이 남아 도로에 있는 차를 모두 치웠다. 소방차량을 몰고 갔던 두 사람이 터덜터덜 느린 걸음으로 돌아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배급표 안 줄 겁니다.”
엘리엇의 경고를 받고서야 걸음이 빨라졌다. 귈레미 일병이 작게 욕설을 뱉었다.
그들의 합류 이후 다시 두 블록을 나아갔다. 마침내 제분소가 보이는 교차로에 도달했다. 소년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제분소에 도달했을 때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더플 백만 채워서 돌아가는 것이 하나요, 도로를 정리하고 차량을 호출하는 것이 둘이다. 후자를 선택할 경우 경험치를 크게 얻을 수 있으나, 감염변종의 시간차 공격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전자만 하더라도 제분소 내부에 변종 다수가 있어, 처음 접하면 쉬운 난이도가 아니었다. 소년이 경험한 「종말 이후」 최초의 세계관은 바로 여기서 끝났다.
“어이, 쬐끄만 상남자.”
엘리엇 상병이 제법 살갑게 부른다.
“트럭을 불러도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일단 제분소 안쪽을 확보하고 나서 결정하는 게 어떨까요?”
당연한 제안이었고, 상병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