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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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83페이지, 캠프 로버츠
결국 제프리의 예측이 맞았다. 또다시 훈장을 받게 된 것. 어김없이 찾아온 공보처 블리스 소령은, ‘또 얘야?’ 싶은 표정이었다. 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에 받는 근무공로훈장(Distinguished Service Medal)은 무공훈장보다 격이 낮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전보다 더 많은 수가 몰려왔다. 블리스 소령이 통제하느라 애를 먹었다.
기자들이 내게 미국 시민들에 대한 격려의 한 마디를 부탁했다. 물론 대사는 준비되어있었다. 블리스 소령이 내가 해야 할 말들을 알려주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했다. 이런 낯부끄러운 대사조차도.
“여러분의 가족과 고향을 지키세요! 제가 돕겠습니다!”
웃는 얼굴 만들기가 고역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했는데, 기자들은 좋다고 촬영했다. 그들의 감성은 일반인과 다른 게 틀림없다. 아니면 세상이 미쳐서 그들도 미쳤거나.
시민 거주구역으로부터 초대장이 날아왔다. 하루하루가 무료하고 불안한 그들에게, 나는 축제를 벌일 좋은 명분이었다. 이미 컴뱃 카메라 영상이 뉴스를 탄 뒤였다. 전투교범으로 쓰겠다더니, 홍보자료 만들기가 우선이었다.
초대를 무시하긴 어려웠다.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해서, 구역 입구부터 화려하게 꾸며놓은 것이다. 내가 가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실망할 것이다. 미리 준비해놓은 많은 것들도 무용지물이 될 터였고.
참석한 뒤에도 편하지는 않았다. 추파를 던지는 사람들 탓이었다. 개인적인 차원도 있고, 좀 더 정치적인 차원도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의회 상원의원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기자들을 불러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 외엔, 하룻밤 어떠냐는 유혹이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위태로운 시대에, 강한 남성을 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니냐고.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서 다른 종류의 욕망을 느꼈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은 일종의 과시욕이었다.
사람으로서의 날 원하는 게 아니라는 느낌?
모르겠다. 성 관념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나라에선,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지도.
이런 일들이 꼭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쨌든 거절했다. 아직 미성년자라는 핑계가 그나마 쓸 만 했다. 대부분은 문화차이로 받아들여줬지만, 몇몇은 마구 웃기도 했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문제냐고.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영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당사자에게 결코 편치 않다는 사실을.
#저널, 84페이지, 캠프 로버츠
성탄절이 다가오면서, TV 방송의 분위기가 변화했다.
단순히 크리스마스 캐롤만 흘러나오는 게 아니었다. 재난방송과 뉴스 일색이었던 편성이, 토크 쇼나 스탠딩 코미디, 드라마 등의 일상적인 프로그램들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감염변종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영상물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폐쇄되었던 채널들도 속속들이 부활했다. TV 앞에 모이는 사람의 숫자가 급격히 늘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긍정적인 분위기를 확산시키려는 노력이기도 할 것이었다.
새로 편성된 프로그램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애국자들을 위한 두 잇 유어셀프(DIY)!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입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자, 장비를 개인 차원에서 만들어보자는 취지의 방송이다. 처음엔 별 거 아니겠지 싶었지만, 막상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전국의 애국적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된 만능 기술자, 맥칼리스터 가이버 존슨이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7주에 걸쳐, 애국자분들과 함께 나무를 깎을 거예요! 나무를 깎아서 무얼 만드느냐고요? 놀라지 마십시오. 구호물자 수송기입니다!」
순간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진행자가 한 번 더 강조했다.
「아, 의심할 필요 없어요. 당신이 상상한 바로 그것 맞습니다. 하늘을 나는 수송기를 만들 거라고요! 지레 겁먹을 필요 없어요. 여러분의 창고에 처박혀있는 평범한 도구들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요!」
평범한 도구는 어디까지나 미국 기준이었다. 어지간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거나, 혹은 수리하는 게 보편적인 문화였기에.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그래요! 나무로 만들어진 기적(Wooden Wonder)이라고 합시다! 역사를 잘 아는 애국자분들이 아하! 하실 이 이름!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치새끼들을 겁나게 패줄 때, 기행의 나라 영국에선 나무를 가지고 아주 훌륭한 폭격기를 만들었었죠! 저도 거기서 영감을 얻은 겁니다! 아, 물론 똑같은 물건은 아니에요!」
이윽고 화면은 도면을 보여주었다. 전화번호도 나왔다. 전화로 주문하면, 유료로 도면을 발송해주겠다고. 수익금 전액은 방위성금으로 기부된다는 메시지가 송출되었다.
「우리가 만들 비행기는 장갑도 필요 없고, 높이 날 필요도 없고, 속도가 빠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적에게는 대공포가 없거든요! 날개는 당연히 없죠! 우리의 희망, 「우든 원더」는 짐과 사람을 싣고 날아다닐 수만 있으면 됩니다!」
기술자 맥칼리스터는 완성품의 성능을 열거했다. 제대로만 만들면, 최대 2톤의 물자를 싣고 1,000km를 날아갈 수 있다던가.
방송을 종료하는 멘트는 이랬다.
「각 지역의 커뮤니티 센터에 자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완성된 파트는 규격 및 품질검사를 거쳐 국방부가 매입합니다! 애국자 여러분의 많은 호응을 부탁드립니다!」
말이 완성된 파트지, 개인에게 맡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초벌 제작이었다. 진행자도 자기가 만든 것을 가공선반에 넣어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동기부여였다.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건, 무력감을 덜어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같은 흐름으로, 모병광고도 전에 비해 많이 새로워졌다. 전쟁영웅들이 입대를 독려하는 건 예전과 같다. 다만 비장미가 퇴색하고, 그만큼의 유머로 물들었다.
먼저 등장한 것은, 그럼블의 시체 위에 걸터앉은 근육질의 백인 중사였다. 리포터가 그에게 물었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중사가 답했다.
「더 많은 무기, 더 많은 탄약, 그보다 더 많은 개자식들(Bastards)이오.」
그러자 리포터가 되물었다.
「개자식이라면, 여자는 제외인가요?」
그러자 중사가 인상을 쓴다.
「개자식이 되는 데 남녀가 무슨 상관이겠소?」
뒤바뀐 화면에서 리포터가 환하게 웃었다.
「그렇다는군요! God bless ‘Merica! Yeah! 당신도 개자식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전화하세요! 댈러스! 972-392-9158! 포트워스! 817-467-3266!…….」
이 광고는 최근에 개정된 징병법을 반영하고 있었다. 본래 18세에서 65세까지의 남성만이 징병대상이었으나, 이제 여성도 얼마든지 징병될 수 있다.
오늘, 12월 22일 기준으로, 미군 병력이 800만을 돌파했다. 난민지원병도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었다. 미군이 어디까지 팽창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TV에 내가 나왔다. 배경에 성조기가 펄럭이고, 쓸데없이 전투기가 날아다닌다. 그 가운데 내가 멋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여러분의 가족과 고향을 지키세요! 제가 돕겠습니다!」
이게 뭐야…….
#유소작위(有所作爲) (1), 캠프 로버츠
저널에서 나왔던 정보들은, 캠프 로버츠에서도 가시적인 변화로 나타났다. 미군이 난민 기능공들을 모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겨울동맹」에 대해서는 겨울이 모집관을 대신했다. 명부에 적힌 직업과 특기로 사람들을 가려냈다. 동맹의 규모가 규모인지라, 모아놓고 보니 텐트 하나를 꽉 채워서 앉았다.
“이번에 뽑히는 분들은 기지건설이나 시설복원에 우선적으로 투입됩니다. 그 외에 공장이나 발전소, 야전 정비창 같은 곳으로 파견될 수도 있고요. 사병 수준의 급여와 위험수당을 지급하겠대요. 혹시 희망자 있으세요?”
사람들은 위험수당이라는 부분에서 움찔거렸다.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기, 아직 지원하는 건 아니고, 질문이 있는데요.”
“하세요.”
“시민권은 안 주나요?”
겨울이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어냈다.
“아직 그 이야기는 없어요. 병력 충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나봐요.”
적잖은 사람들이 실망했다. 곧바로 다른 질문이 나왔다.
“사병 급여라구 허셨는디, 구체적으루는 을매나 준대유?”
겨울은 모집훈령 부록, 급여 테이블을 더듬었다.
“일단 월 1,756달러에서 시작하네요. 기술 수준이나 경력, 영어회화 가능여부에 따라 추가로 조정한다고 써 있어요. 그리고 위험수당은 기본 150달러인데, 캠프 밖에서 작업하는 거면 무조건 지급한대요. 작업 중 혹시 교전이 발생할 경우엔 225달러를 준다고 하고요.”
“그랴도 한 200만원 되겄네유. 여서 햘 것두 없구, 천상 가긴 가야할 것인디…….”
질문은 또 있었다.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무수한 손들. 겨울이 하나하나 지목해서 받았다. 대부분 안전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지원한 숫자가 17명이다. 반수 이상 몸을 사린 결과였다. 지원자가 많을수록 「겨울동맹」의 영향력이 강해지겠지만,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실적보다는 안정을 우선할 때였다.
지원자 가운데엔, 언어장애가 있는 용접기술자도 있었다. 그는 놀라운 기량을 선보였다. 미군 시험관이 감탄할 정도였다. 처음엔 영어도 못 하고,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힘들다는 데 난색을 표했었다. 다른 기술자들도 놀라워했다. 결과물 주위에 몰려든다.
“워메. 이 사람 비드 쳐놓은 것 보소? 장인이네, 장인이여.”
“용접을 하랬더니 용 비늘을 쌓아놓으셨네.”
“슬쩍 보니깐 운봉질이 아주 예술이더구만.”
문외한인 겨울이 보기에도, 이어붙인 자국이 정갈해 보였다. 꼭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의 비늘이 차곡차곡 겹쳐진 형상. 사실상 합격은 확정이고, 급여수준 조정이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은 박병후라고 했다.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겨울이 그를 따로 불렀다.
“정말 하시겠어요?”
박병후가 펜과 수첩을 꺼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혹시 제가 장애인이라서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차별하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병후 씨가 일을 해주면 저는 좋아요. 경제력 있는 동맹원이 늘어나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장애인 분들을 보는 시선도 달라질 거고요.”
숨을 돌리고, 겨울이 다시 말했다.
”다만 병후 씨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욱 나서야한다는 압박을 느끼시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그거야말로 차별이잖아요. 외부활동에서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위험한 것도 사실이고.”
「겨울동맹」엔 장애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겨울에게 대놓고 반항할 수 없어서, 겉으로만 잠잠한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은근한 멸시와 모욕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당장 겨울이 전달받은 이훈태의 메모만 봐도 그랬다. 청각장애인을 가장한 그를 두고, 어차피 듣지 못한다고, 바로 앞에서 욕을 하거나 비웃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분위기에 반쯤 떠밀린 것은 아닌가. 이것이 겨울의 진의였다.
또한 작업시의 위험도가 다른 것도 사실이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차별은 명백히 다른 개념이었다.
병후가 펜을 놀렸다.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의무감을 느끼긴 합니다만, 그게 꼭 싫은 것도 아닙니다. 위험하더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겨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럼 가보세요.”
미군 시험관이 합격자들을 부르고 있었다. 병후는 바쁜 걸음으로 합격자 대열에 합류했다. 지켜보는 겨울의 등 뒤로, 인기척이 여럿 다가왔다.
중국인들이었다. 겨울은 중심인물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요, 소저.”
리 아이링은 겨울에게 조용히 목례했다.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일부러, 과하게 꾸민 느낌이었다. 지금은 수수하다.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삼합회」의 사정을 감안할 때, 아마도 상복일 것이었다.
그녀가 겨울에게 물었다.
“일전에 선생께서 하셨던 말씀은, 아직 유효한 것인지요?”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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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 달아주신 댓글들은 잘 읽었습니다.
이 소설의 독자분들은 나이는 4만살을 넘었고 이족보행은 아무도 하지 않으시는군요.
두 발로 걷는 게 촌스럽다고 하시는 걸 보니 믿음이 갑니다.
어떤 작가도 이렇게 위대하고 모독적인 독자들을 확보하진 못했을 겁니다.
기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