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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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작위(有所作爲) (3), 캠프 로버츠
삼합회주가 말했다.
“아타스카데로에서는 신세를 졌소. 선생이 아니었다면, 유해 수습이 며칠 늦어졌겠지. 의롭게 죽은 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을 거요.”
며칠이라. 그 손실을 보고도 아직 보낼 사람이 남았다는 건가. 겨울은 리친젠의 허세를 모르는 척 받아주었다.
“당연한 노력이었습니다. 국적과 소속을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 안타까운 일이었거든요.”
“같은 인간이라……그것이 바로 의협이오. 「삼합회」의 정신이지. 선생은 비록 우리 형제가 아니지만, 그 어떤 형제보다도 뛰어난 자격을 지닌 셈이오.”
“높이 평가해주시니 부끄럽네요. 그저 사람의 도리일 뿐인데요.”
“선생, 그건 자랑스러워도 될 일이오. 그 도리를 모르는 자들이 너무도 많지 않소? 타인의 간난을 자신의 기회로 여기는 소인배들 말이오. 음험하고 간사한 자들이지.”
이게 범죄자가 하는 소리였다. 「삼합회」를 위시한 중국계 범죄조직은, 해외에서도 동포들을 잡아먹기로 악명 높다. 이젠 「삼합회」가 잡아먹힐 차례일 뿐.
‘하긴, 남이 하면 불륜이지.’
겨울은 속 다른 겉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저도 그런 사람들이 정말 싫습니다. 하지만 제 능력에 한계가 있으니, 이런저런 만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더군요. 가까운 사람들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겹습니다.”
소년이 거듭 겸양으로 회피하자, 이제껏 은유만 던지던 노인이 좀 더 직설적으로 나왔다.
“참 반가운 말이구려. 나 또한 그들에게 공분을 품고 있소. 선생과 나의 마음이 꼭 같으니, 우리가 가까워진다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거요.”
그렇게 단정 지어 놓고, 겨울이 아닌, 자신의 딸에게 묻는다.
“아이링,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몇 걸음 떨어져있던 그녀는, 자기 차례가 돌아오자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그러나 곧 차분하게 대답한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무언가를 할 필요도 없을 거예요. 덕이 있는 사람은,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이들을 다스린다고 하잖아요.”
안전보장 정도는 겨울의 이름값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쓸데없이 들락거리기만 해도, 다른 조직의 경계를 사기 충분할 것이다. 자기보전을 우선하고픈 「삼합회」의 처지를 반영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이 대화에, 이유 없이 딸을 끌어들이진 않았을 텐데.’
노인의 의도를 경계하면서, 겨울은 반론을 제기했다.
“제 의견은 조금 다릅니다. 관계를 과시하려면 그만한 사건이 있어야죠. 「삼합회」와 「겨울동맹」이, 실제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합니다. 세상에 이름뿐인 우정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세요.”
숨을 돌리고, 다시 잇는 말.
“또 한 가지. 「삼합회」와 「겨울동맹」 사람들을 위해서도 공동의 과제가 필요합니다. 한국인들은 이런 말을 해요. 자식 싸움이 부모 싸움 된다고. 제가 동맹원 분들의 부모씩이나 되진 않겠지만, 어쨌든 개인 사이의 갈등이 조직 사이의 분쟁이 될 수는 있잖아요.”
이것은 앞서 리아이링이 처음 찾아왔을 때도 지적한 바 있는 문제다.
겨울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즉, 「삼합회」와 「겨울동맹」이 연대감을 느끼려면, 서로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몸 사릴 생각 말고, 내놓을 건 내놓으라는 소리였다.
어쨌든 「삼합회」가 필요한 건 맞다. 중국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창구가 되어줘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식이면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오.”
리친젠은 의외로 간단히 긍정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허나 다른 방법도 있지.”
“다른 방법이요?”
“결속을 가장 확실하게 만드는 방법은, 한 가족이 되는 것 아니겠소?”
결국 나오는구나.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아이링이 제안했을 땐 「겨울동맹」의 종속이 조건이었다. 지금은 대등한 동맹이며, 「삼합회」가 더 아쉬운 처지다.
사실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결혼만큼 확실한 결합도 드물다. 외인이 아니기에, 「삼합회」에 대한 영향력 행사도 더욱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싫다.
‘왜 싫은 걸까.’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어렴풋이 알 것도 같은데, 길게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안 됩니다.”
반사적으로 거절하고서, 겨울이 곧바로 수습했다.
“불과 며칠 전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습니까. 대인께서 저를 보자고 하신 것도 사실 그 이유 때문이고요. 「삼합회」는 피를 나눈 형제들이잖아요. 한 집안에서 조사와 경사가 겹칠 수도 있나요? 죽은 분들을 추모해도 부족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피를 나눈 형제라는 게 농담이 아니다. 입단 의식에서, 술잔에 술 대신 피를 채워 돌리는 까닭이었다.
아이링은 안색이 조금 나빠졌다가, 겨울의 해명에 표정을 풀었다.
“맞는 말씀이에요. 아버님,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시는 게 좋겠어요.”
그러나 리친젠에겐 아직 다른 명분이 남아있었다.
“주자가 말하길 제사는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했소. 죽은 자를 기리는 의식은 사실 남은 사람을 북돋는 행사란 뜻이지. 죽음은 삶을 이길 수 없소. 선생. 우리는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은 시기에, 하루하루가 불안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거요.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생각하시오.”
뜻밖의 정론이다. 삼합회주가 남은 말을 풀었다.
“죽은 형제들은 의로운 자들이었지. 산 사람이 걱정이라 눈을 감지 못할 게요. 그들을 위해서라도 희사(喜事)가 있어야 하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진정한 희사 말이외다. 선생 정도 되는 사람을 형제로 받는다면, 그들도 안심하고 떠날 수 있겠지.”
범죄조직의 우두머리라도, 나이를 헛먹은 건 아니구나. 겨울은 삼합회주에 대한 평가를 조정했다. 좋은 의미라기보다, 얕보면 곤란하다는 의미로.
그러나 겨울에게도 시간이 있었다. 어렴풋했던 생각을 움켜쥘 만한 시간이. 이제 겨울은, 곧바로 들었던 거부감의 정체를 안다.
“사람은 상품이 아닙니다.”
“음?”
의아한 리친젠을 향해, 겨울이 침착하게 말했다.
“딸을 팔지 마세요. 자식은 부모의 권리가 아니고, 처분 가능한 재산도 아닙니다. 조직 운영에 필요한 소모품은 더더욱 아니고요. 결혼은 일생의 행복이 걸린 문제잖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는 결혼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선생. 사랑 없는 결혼이 싫다는 말을 너무 어렵게 하시는구려.”
“아뇨, 다릅니다. 대인께서는 그저 개인의 문제로 보고 계시고, 저는 사람의……좀 더 보편적인……보편적인 권리에 대해 말씀드리는 거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리친젠이 허허 웃었다.
“새삼 선생의 젊음이 느껴지는구려. 확실히 맞는 말이오. 하지만 세상살이가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지. 현실과의 타협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오. 결혼은 그 중 하나일 뿐이고.”
어린애 취급이었다. 겨울은 다시 지적했다.
“아뇨. 앞으로 태어날 자녀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는 안 됩니다. 사랑 없는 가정은 아이들의 지옥이거든요.”
“아무래도 선생 본인의 경험담인 모양이군.”
세월을 낭비하지 않은 노인에게는, 삶에서 비롯된 「통찰」이 있었다.
“사과하지. 아무래도 내가 경솔했던 것 같소. 그리고……선생 개인에 대해, 조금 더 신뢰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은 경각심을 키웠다. 저 말은 곧 이용해먹기 좋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못 믿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비난보다 칭찬을 더 경계해야 한다. 이 괜찮아 보이는 노인이 삼합회의 용두라는 사실을 잊어선 곤란했다.
“정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다른 방법을 논의해봅시다.”
이 말을 기점으로, 대화는 은유와 암시 투성이던 초기와 완전히 달라졌다. 체면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한계까지 질박해진 대화가 오갔다.
“한 선생이 지도하는 외부임무는 성공률 높고 안전하기로 정평이 났지. 「그럼블」이 등장했을 땐 위험을 무릅쓰고 미군을 구했고, 「트릭스터」와의 조우전에선 누구보다도 먼저 함정을 간파하지 않았소?”
요망은 분명했다. 「삼합회」의 미군 지원병들을 지켜주고, 그들 가운데 부사관이나 장교가 나오도록 도와달라는 것.
“그게 제 맘대로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아실 겁니다. 저한테는 작전편성 권한이 없어요. 건의를 할 순 있겠지만요.”
“좋소, 좋소. 그 정도면 충분하오. 나머지는 「삼합회」에 맡기시오. 우리에게도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소. 「삼합회」와의 협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생이 다양한 방식으로 깨닫게 해드리리다.”
하긴. 겨울은 납득했다. 아타스카데로에 단독으로 일백 가까운 인원을 보낼 정도면, 캠프 지도부에 청탁을 넣을 줄이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브라보 중대 쪽이겠는데…….’
병력손실이 10%만 넘어도 후방재편을 받아야 정상이다. 브라보 쪽은 당분간 외부작전을 뛰기 어려웠다. 그래도, 부대행정 쪽에서는 나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삼합회」가 그 윗선에 닿아있을 지도 모르고.
지금이야 위태로워도, 한 때 「흑사회」의 맹주였으니 이상할 게 없었다.
“무엇보다 훈련계획 정도는 제출할 수 있잖소. 「겨울동맹」 전투조가 샌 미구엘까지 다녀오는 걸 알고 있다오. 다른 조직이라면 어림없는 일이지. 캠프 지휘부도 한 선생을 신뢰하기에 허락해주는 일이라고 보오만……. 융통성을 조금만 발휘하면, 우리 형제들도 선생이 단련시켜줄 수 있을 것이오.”
“알겠습니다. 그래도 「겨울동맹」이 우선입니다. 우리도 이제 막 확충하는 단계라서, 쿼터를 많이 내드리긴 어렵습니다. 제가 통솔할 수 있는 병력은 제한적이에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해하오. 유감스럽게도, 한 선생의 몸은 하나뿐이잖소.”
협력이 구체화될수록 분위기는 더욱 원만해졌다. 리친젠이 좋소, 좋소(好好)를 외치는 빈도도 높아졌다.
이 시점에서, 겨울은 훈련에 투입할 인원을 소개해달라고 요구했다. 「삼합회」의 상황을 감안하면, 실전에서도 함께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작하기 전에 사람을 가려낼 필요가 있었다.
“상의, 벗으세요.”
불려온 남자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리친젠이 눈짓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차례로 흉부와 등판을 내보인다. 겨울은 살갗에 새겨진 범죄이력을 추궁했다.
“이 상징은 무슨 뜻이죠?”
그들의 대답은 대개 정직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인간의 한계 수준에 도달한 「통찰」과 「간파」로 진실을 가려냈다.
거의 성사되었던 협상이 여기서 깨질 위기였다. 겨울이 계속 퇴짜를 놓자, 리친젠은 결국 침착함을 잃어버렸다.
“선생이 거부한 자들은 「삼합회」 최고의 용사들이오. 저들을 다 버리고서 무슨 전력을 만들겠다는 거요? 이건 성의 있는 협력이라고 볼 수 없소!”
“대인. 아무래도 확실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겨울이, 그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소리로 못 박았다.
“「겨울동맹」과의 협력을 길게 이어가고 싶으시다면, 더 이상 부당한 이득을 좇지 마세요. 지금은 처지가 나빠져서 못하고 계시겠지만, 앞으로는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대인께서도 말씀하셨잖습니까. 의협이야말로 「삼합회」의 정신이라고.”
“으음…….”
리친젠이 화를 삭였다. 두 사람 다, 의협 운운하는 게 의미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먹힌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특성이었다.
물론 이래도 부당한 원한은 남을 것이다. 예방을 위해, 겨울이 성의 있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대인을 희롱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겨울동맹」에서도, 첫 전투조를 이렇게 뽑았습니다. 육체적으로는 부족하더라도 마음이 올바른 사람들 말입니다. 대인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소.”
“이게 제 방식이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말마치고 다시 고개 숙이는 겨울 앞에서, 삼합회주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부하들 보는 눈이 있으니 여기까지가 적정선이었다.
조직은 사람이 살아가는 도구다. 겨울이 고르고, 겨울이 키워낸 사람들이 영향력을 얻으면, 분위기는 많이 바뀔 것이었다.
검사를 진행하던 겨울을 난처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저도 상의를 벗을까요?”
“아뇨…….”
리아이링이었다.
겨울이 회주에게 물었다.
“진심으로 따님을 내보내실 작정이십니까?”
가족을 아끼라는 의미가 아니라, 리아이링이 전형적인 행정 간부로 보여서 하는 질문이었다. 유능한 행정가는 중요한 인적자원이다. 겨울이 부장 두 사람을 중시하는 것과 같다.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소.”
리친젠의 태연한 대답으로부터, 은연중에, 내키지 않는 기색이 포착된다. 회주의 직계존속이 모범을 보여야 할 분위기라는 뜻이었다.
회주가 한마디 덧붙였다.
“잘 단련시켜 주시오. 태극권 공부를 제법 쌓은 아이니 마냥 거치적거리진 않을 게요. 그러다가 마음에 들면 데려가시고.”
“선처하겠습니다.”
겨울은 대충 대답해놓고, 아이링의 지원을 인정했다.
마지막으로 할 일은 정보공유 요청이었다.
“대인께선 「흑사회」의 수장이셨죠. 아마 제게 필요한 정보를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냥은 내놓기 아쉬운 이야기들이요만…….”
“어차피 한동안은 「겨울동맹」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잖습니까.”
“그럼 선생이 내게 하나 빚진 걸로 해둡시다.”
굳이 구체적으로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회주는 겨울이 할 질문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링이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여 책자로 엮는 동안, 리친젠이 겨울에게 말했다.
“「순복음 성도회」를 경계하시오. 내부사정을 전혀 알 수 없었지. 어차피 한국계 거류구의 일이라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젠 「겨울동맹」과 한 배를 탄 입장이니 새삼스럽게 불길하군.”
“그렇잖아도 주의하고 있습니다.”
“믿겠소.”
잠시 후 완성된 책자가 겨울에게 주어졌다. 펼쳐본 겨울은, 「다물진흥회」의 마약 공급 루트 하나가 중국계 조직 「안량공상회(安良工商會)」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삼합회」의 반대편에 선 조직 중 하나였다.
소년은 「스미요시카이」에서 얻은 정보를 떠올렸다. 한국인 접선책 일부의 이름이 일치한다.
‘생산자를 밟아놓는 게 가장 확실할 것 같은데.’
「삼합회」 반대세력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도 될 것이다.
마커트 대위가 비호하는 세력이니, 제대로 칠 수 있으면 실보다 득이 많았다.
‘어떻게 할까…….’
겨울이 생각에 골몰했다.
============================ 작품 후기 ============================
삼합회 입단식에서 마시는 피는 수탉의 피를 섞는다고 합니다. 수탉은 태양이 뜰 때 울기 때문에 양기가 가득한 동물로 보는데, 마시는 자에게 투지(발톱에서 비롯된 상징)와 지혜(벼슬이 관의 모양이라서 붙은 상징)를 준다고 하네요. 진짜로 그렇게 믿고 마시는 건 아니겠죠. 전통이니까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