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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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자조달 (4), 샌 미구엘
샌 미구엘 제분소는 꽤 오래 전에 지어졌을 법한 목제 건축물이었으나, 면적이 굉장히 넓었다. 어지간한 가정집 서른 채를 집어넣어도 남을 만큼. 왼편으로 철길이 지나갔다. 덕분에 마을 중심부인데도 남북 방향으로는 시야가 탁 트여있었다. 건널목에서 경계를 맡을 사람을 뽑는다고 하니 더플 백을 적당히 채운 난민들이 앞 다퉈 지원했다. 위험한 건물 수색에 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대학생쯤 되었을 법한 건장한 청년 하나, 배 좀 나온 중년인 하나가 뽑혔다.
엘리엇 상병은 나머지를 이끌고 제분소 우측으로 돌았다. 문이 네 개나 된다. 사무실 입구 외에도 차량 적재용 화물출입구가 세 개. 화물 운송에 쓰였을 세미 트레일러 차량 하나가 방치되어있는 게 보였다. 겨울이 운전석 문을 당겼다. 잠겨있었다.
제분소의 모든 입구는 활짝 열린 채였다. 내부 조명이 없어, 각각의 문은 뻥 뚫린 어두운 구멍이었다. 난민들에게 지급된 장비 중엔 랜턴이 없었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계획 단계에서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물론 랜턴이 있었던들 누구도 먼저 들어가겠다고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겨울 소년을 제외하면.
앞서 소방서가 그랬던 것처럼, 사무실에 차량 열쇠가 있을지도 몰랐다. 망설이지 않고 들어가려는 겨울을 귈레미 일병이 붙들었다.
“이번에도 앞장서려고? 같이 들어갈까?”
“아뇨. 인솔자는 중요하니까요. 랜턴만 빌려주세요.”
“후-아.(Hoooah/HUA : Heard, Understood, Acknowledge.)
병사는 소년의 배짱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자신의 손전등을 내주었다. 직각으로 꺾인 전술 랜턴. 방탄복 겉면에 결속할 수 있다.
미군의 피해를 막아보겠다고 난민 지원자를 받긴 했으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난민 중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해도 좋을 것이 없다. 그러나 지원자들이 워낙 소극적이어야지. 병사들은 소년이 어디까지 해내는지 지켜볼 요량이었다.
겨울은 총을 여전히 등 뒤로 메고, 정글도 한 자루만 단단히 쥔 채 사무실 입구로 다가섰다. 들어서자마자 층계를 오르는 구조. 폭은 성인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이고, 서너 계단 위로는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심리를 자극하기 좋은 모습이었다.
소방서에서처럼, 소년은 정글도 칼등으로 벽을 통통 두드렸다. 소리에 반응하는 감염변종이 있다면 듣고 기어 나오라는 의도였다. 몇 차례 두들기니 과연, 위쪽에서 계단 밟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겹치지 않는 걸 보니 고작 하나. 겨울은 일부러 랜턴을 켜지 않고 층계를 올랐다. 냄새와 기척만 가지고 승부를 볼 셈이었다.
끼이익, 끼익. 계단 오르는 소리와 계단 내려오는 소리가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앞이 깜깜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조롭고 음산한 잡음이 깔렸다. 두렵지 않으나 심장이 뛴다. 뛴다고 느낀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감각. 시스템이 그래야 한다고 판단한 탓이다. 시청자 메시지 도착 알림이 폭증했다.
감염변종은 숨 쉬는 소리가 거칠었다. 악취는 썩은 피부에서 나는 것이었다. 정보에 의하면, 병원체가 숙주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면역체계 이상이 발생한다. 그 탓에 광범위한 염증이 생기고 썩거나 부풀어 오른다는 것이다. 기도(氣道)가 좁아져 숨소리도 날카롭게 변한다. 불쾌한 냄새와 소리가 다가왔다. 겨울은 어느 순간, 칼 없는 쪽 손을 대담하게 뻗었다.
뭔가 잡혔다.
“끄에에엑-!”
성대를 갈아대는 괴성. 소년은 몸을 낮춰 대상의 하체를 밀어 올렸다. 튀는 침 섞인 거친 숨이 목덜미 뒤로 넘어간다. 콰당탕! 「감각동기화」를 켜두고 있던 시청자들은 기가 질렸을 것이다. 의도한 바다. 랜턴을 켰다. 엎어져서 발광하던 변종이 눈살을 찌푸렸다. 변이되었다곤 해도 모체는 인간. 광적응 능력이 인간과 다르지 않았다. 크아아아 하는 입에 칼을 콱 쑤셔 박았다. 반사적으로 닫힌 입이 칼날을 딱딱 물어댔으나 개의치 않았다. 손잡이에 체중을 싣는다.
으직, 으지직-
이리저리 힘주어 비트는 칼끝에서 뇌줄기(腦幹)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명에 비춰진 변종의 사지가 발작을 일으키다가, 뻣뻣하게 굳었다가, 축 늘어져서 움찔거렸다. 그 와중에도 눈알이 굴러 소년을 노려본다. 그러나 이미 운동능력을 상실했으니 위협이 되지 않았다. 심장이 정지했으니 잠시 후면 죽을 것이었다.
늘어진 변종 다리를 붙잡아 질질 끌고 내려온다. 바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총을 겨누었지만, 쏘지 말라는 뜻으로 펼친 손 내민 소년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변종 사체를 입구 옆에 팽개쳐두고, 소년은 다시 층계를 올랐다.
이번엔 방해물이 없었다. 사무실 조명은 스위치가 듣지 않았다. 랜턴 조명에 의지해서 사무실을 뒤졌다. 역시 미국이라고 해야 할까, 서랍에서 낡은 권총 하나가 잡혔다. 포장지에 45 ACP FMJ라고 적힌 50발들이 작은 탄약 상자 두 개, 예비 탄창 하나가 같이 들어있었다.
그 외에 목표 삼았던 차량 열쇠와 곡물 사일로 열쇠를 찾았다. 궐련상자(휴미더)도 있었다. 혹시나 귈레미나 엘리엇이 좋아할까 싶어 같이 챙겼다.
계단을 내려오니 귈레미가 다가왔다.
“혹시 물린 곳 있나?”
방독면 전성판 너머로 전해지는 목소리는 답답한 느낌이었다. 소년은 고개를 젓고 두 팔을 벌려보였다. 직접 확인하라는 뜻이었다. 일병은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뒤를 향해 엄지를 세워보였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엘리엇 상병이 고개를 끄덕인다.
“귈레미, 담배 좋아해요?”
“물론. 오, 맙소사. 코히바 로부스토잖아?”
“엘리엇이랑 반씩 나누세요.”
소년은 기뻐하는 병사에게 상자 째로 넘겨주었다. 쿠바 산 수제 시가의 가격은 대당 10달러 이상이다. 그런 것을 뭉치로 받았으니 좋아할 법 했다. 일병은 당장 피우고 싶은 눈치였다.
“열쇠를 찾았는데, 차량을 확인해 봐도 될까요?”
사소한 일이지만 허락은 구해야 한다. 병사들이 서로를 보았다. 상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차량으로 가서 열쇠가 맞는지 확인해보았다. 문이 열린다. 운전석에 앉았다. 꽂고 돌리니 부드럽게 시동이 걸렸다. 바르르 떨리는 차체. 엔진소음이 발생하니, 경계를 맡은 사람들이 눈에 띄게 긴장했다.
연료 잔량은 충분했다. 운전하는 법은 대충 알고 있어서, 경험치를 운전기술에 투자하지 않아도 차를 움직일 순 있었다. 물론 시스템 보조를 받으면 보다 고난도의 주행이 가능했지만 당장 급한 건 아니었다.
차를 제분소 중간의 화물용 출입구(Loading Dock)에 대어놓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조명이 없어도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양철 슬레이트 지붕 틈새로 새어드는 햇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역시 어둡긴 매한가지로, 곳곳에 응달이 고였다. 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뒤따라 들어온 사람들이 뻣뻣하게 굳어 도통 움직이질 못했다.
패턴은 동일했다. 곡물 사일로를 탕탕 두들겨서 기척이 있는지 확인했다. 잠시 기다렸으나 조용했다. 겨울이 이리저리 빛을 비추고 다니며 안전을 확인했다. 정말 없네. 드문 일이다. 그래도 방심하긴 어렵다. 귀가 썩었거나 고막이 찢어진 변종도 있을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익. 이거 정말 엄청나군.”
엘리엇이 휘파람을 불었다. 제분된 밀과 옥수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여기 있는 것만 다 챙겨가도 당분간 식량 문제가 없을 수준이었다. 의례적인 위생검사는 거쳐야겠지만, 거의 의미가 없다. 쓰고 있는 방독면도 실은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만약 정말 병원체를 걱정했다면, 전신 방호복을 입었어야 한다. 사소한 위험은 무시할 만큼 미국 서부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증거였다.
겨울이 관심을 보인 것은 다른 방향에 있었다. 제분소에서는 종자거래도 이루어지는데, 여러 작물의 종자가 자루 단위로 포장되어 한 쪽에 쌓여있었던 것. 이런 종자를 가져다가 농사를 지으면 될 것 같지만, 여기에 굉장한 함정이 있었다. 모 종자회사 상표가 부착된 자루의 씨앗은 수확한 뒤 다시 파종하면 발아(發芽)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를 터미네이터 종자라고 한다. 종자회사는 우수한 품종의 씨앗을 팔아서 수익을 올리는데, 농부들이 매해 씨앗을 구입하지 않으면 회사 운영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예 유전자를 조작해서 수확한 작물을 다시 파종해도 싹이 트지 않도록 만들어두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겨울은 한 번의 배드 엔딩을 경험했었다. 관련 도전과제까지 있다.
「도전과제 : 안 돼, 내 작물이 고자라니!」
나름 안정된 기반의 공동체를 건설했던 소년에겐 날벼락 같은 파국이었다. 2년째의 수확이 제로에 가까웠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도자인 겨울을 규탄했고, 식량부족이 부른 공황으로 인해 공동체 자체가 붕괴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소년은 살해당했고.
그러고 보니 이걸 시청자들에게 말해줘야 할 것 같다. 소년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시청자 메시지 로그를 불러왔다. 이럴 때마다 세계관의 현실감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현실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몰입할 수가 없었다.
세계관을 일시 정지시켜둔 상태로 「텔레타이프」 기능을 활성화한다. 겨울이 집중하는 모든 생각이 즉각 문장으로 변환되었다.
「한겨울 : 종말 이후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이 실수하기 쉬운데, 이런 곳에서 발견되는 종자를 함부로 파종하면 안 됩니다. 종자 대부분은 유전자 조작이 되어있거든요. 수확량은 많지만 이듬해 다시 파종할 경우 싹이 나지 않아요. 실제로 당하면 공동체 안정성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게임을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상표가 없는 자루를 고르셔서 농사를 지으시거나, 아니면 이런 종자를 사전에 충분히 확보해두고 반복해서 쓰는 편이 나아요. 도전과제 「안 돼, 내 작물이 고자라니!」 달성을 원하신다면 한 번쯤 일부러 배드 엔딩을 봐도 괜찮겠지만, 도전과제의 효과는 작물재배시 병충해와 가뭄 저항력을 좀 올려주는 정도니까 그렇게 유용하지 않아요.」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ㄹㅇㅇㅈ : 쓸데없는데서 현실고증 끝내줌 ㅋㅋㅋ」
「이슬악어 : 고자 ㅋㅋㅋ 내 작물이 고자래 ㅋㅋㅋㅋㅋ 약맛 제대로넼ㅋㅋㅋ」
「제시카정규직 : 나도 이거 앎. 다국적 종자회사 씹새끼들이 후진국 털어먹는 수법임. 특히 몬X토 씨발 개씨발 새끼들임. 우리나라도 얘들한테 청양고추랑 시금치 종자 빼앗겼는데 종자 특허 아직 수십 년 남았음. 너네가 먹는 국산 시금치 사실 전부 미국 OEM 상품임. 아, 판사님. 이 글은 우리 집 고양이가 적었습니다.」
「반닼홈 : 지금 방송 진행자 보고 있는 거지? 야, 아까 개쩔었음ㅋ 좀비새끼 잡아서 목 뒤로 넘길 때 촉감 으아 씨발 지리겠더라 ㅋㅋ 별 받아라 임마」
[반닼홈님이 별 1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진한개 : 제시카 설명충 새끼 아는 거 나와서 좋겠다?」
「제시카정규직 : 왜 시비임 미친놈이.」
「눈밭여우 : 여러분 싸우지 마세요.」
[눈밭여우님이 별 1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팥고물 : 여우년 왜 말림? 재밌는데. 잘 한다, 더 해라.」
하나하나 눈여겨 읽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메시지들이 휙휙 올라가는 간다. 소년은 자신이 얻은 가상화폐 「별」의 개수를 헤아렸다. 원화로 환산하면 몇 만원 남짓할 금액이 쌓여있었다. 어째서인지 마음이 더욱 불편해졌다.
그는 로그를 닫고 일시정지를 풀었다.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사방에 수북한 식량을 확인하고 안색이 밝아진 엘리엇이 무전으로 본대와 교신하고 있었다. 도로를 치워두었으니 트럭을 가져오라는 내용이었다. 귈레미 일병은 난민들로 하여금 독(Dock)에 대어놓은 세미 트레일러에 식량을 싣도록 지시했다.
소년이 가세하려하자 귈레미가 한쪽 눈 찡긋 감으며 붙잡았다.
“용감한 친구는 잠시 쉬라고. 지금까지 혼자 고생 많았잖아?”
“…네.”
겨울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불편한 감정이 여백으로 드러났다.
바깥에서 차량 굴러오는 소리가 들렸다. 민간 차량과는 달리 전면이 각 지도록 튀어나온 군용 수송트럭 4대였다. 선임 탑승자는 하루 전 캠프에서 지원자들을 걸러내던 흑인 상사. 이름은 피어스라고 했다. 그는 트럭을 다 채우고도 남을 밀가루 등을 보고 크게 기꺼워했다.
“취사병 놈들을 더 부려먹을 수 있겠군.”
그러나 좋은 분위기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 북쪽 먼 곳에서 이상한 소음이 들려오더니, 그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흘렀다.
“이게 무슨 소리야? 확인해봐.”
상사의 지시에 따라 엘리엇 상병이 건널목에서 경계를 서고 있을 지원자들에게 무전을 넣었다. 혹시 북쪽에서 뭔가 보이는 게 있느냐고. 기차 화물칸 적재를 위해 열려있는 북쪽 출구는 곡물 사일로와 녹슨 급수탑, 크레인 따위가 널려있어서 시야확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가오는 재앙의 전조는 시야보다 소리로 먼저 명확해졌다. 철컹거리는 소음은 명백히 열차가 철궤를 짓밟는 소리였다. 열차운행이 이미 오래 전에 중지되었다고 알고 있는 병사들이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보다 더 당혹스러운 건, 마을 내로 들어오는 철길 중간에 방치되어있는 다수의 차량들이었다. 열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질주해왔다. 무전을 통해 이를 알게 된 상병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이런 염병할.”
그가 뒤돌아 달리며 마구 소리쳤다.
“모두 나가! 여긴 위험해!”
제분소 내부가 삽시간에 비명으로 가득 찼다.
모두가 열차의 접근을 느낄 수 있었다. 콰앙- 콰지직- 필시 열차가 버려진 차량을 들이받는 소리일 터. 혹여 차량이 바퀴 아래 깔리면 열차는 탈선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비뚤어진 기관차가 북쪽 벽을 박살내며 들어왔다. 불붙은 강철 덩어리는 기둥을 부수고 사일로를 밀면서 굴러온다.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기관차는 나무더미에 파묻히며 정지했지만, 여파로 건물이 붕괴할 조짐을 보였다. 겨울은 가까스로 바깥까지 달아났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이 잔해에 깔려버렸다.
“잔해를 들어내! 깔린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무사히 빠져나온 피어스 상사가 먼지와 파편을 뒤집어쓴 몰골로 목소리를 높였다. 목재로 지어진 건물이고, 단층이라 잔해에 깔린 사람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상사님! 저기 좀 보십시오!”
병사가 다급히 외치는 소리.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지그재그로 꺾이며 뒤집어진 객차들이 있었다. 문과 창문들로부터 사람처럼 보이는 것들이 기어 나왔다. 객차가 구를 때 바깥으로 퉁겨진 사람들도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병사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들이 거의 동시에 이쪽을 보았다.
“끄으어어어어!”
“씨발! 변종이잖아!”
한둘이 아니었다. 열차에 한가득 채워져 있었는지, 시체에서 기어 나오는 구더기처럼 꾸역꾸역 기어 나온다. 어딘가 부러지지 않은 것들은 이미 이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상태. 가장 빠른 놈은 벌써 트럭 후미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다 죽여!”
상사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난민 지원자들 대다수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두려움을 버티고 선 자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두두두두둑-
소음기 달린 총이 답답하게 울었다. 총탄을 아낀다는 개념은 없었다. 모두가 연사로 놓고 미친 듯이 갈겼다. 차량에 올라타려던 놈의 몸 곳곳이 마구 폭발했다. 머리가 터지고, 눈알이 깨지고, 가슴에서 퍽퍽 피가 튀었다. 분배되지 않은 화력은 명백한 낭비다.
소년에게도 배고픈 변종 다수가 달려들었다. 몸에 총알이 박혀도 아픈 줄 모르는 놈들이라, 겨울은 그들의 무릎 높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좌에서 우로, 툭툭 끊어가면서. 탄창 하나를 5초 만에 비웠다. 허벅지만 맞아도 좋았고, 무릎이나 정강이뼈가 부서지면 더더욱 좋았다.
“끄엑!”
넘어진 것들이 버둥거린다. 기어온다. 탄창을 갈면서 전진, 군홧발로 뒷목을 찍어 으스러뜨렸다. 총을 두 손으로 단단히 거머쥐었다. 뒤이어 달려오던 변종의 턱을 대각선으로 후려친다. 기술보정을 받아, 변종의 턱이 완전히 부서졌다. 홱 넘어가는 머리. 몸은 머리를 따른다. 바싹 붙어오던 다른 놈의 발이 엉켰다. 걷어차서 쓰러트렸다. 이어서 사격.
“수류탄! 있는 대로 다 던져!”
차량 방향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바라보니 몇 개의 수류탄이 이미 던져진 뒤였다. 소년은 급하게 물러나며 바닥에 몸을 던졌다.
쾅! 콰쾅! 콰앙!
엄청난 소음에 비해 폭발 자체는 작고 볼품없었다. 번쩍거리는 섬광 몇 번에 연기 조금 뿌려질 뿐. 영화처럼 엄청난 화염이 치솟고 그러지는 않았다.
그러나 소년이 수류탄에 맞아 죽어봐서 아는데, 겉으로 보이는 섬광은 수류탄의 진정한 살상범위에 비해 정말 별것 아니었다. 파편으로 사람을 찢어 죽이는 무기다. 동그란 껍데기 안에 코일이나 쇠구슬 따위를 우겨넣고 터트리는 폭탄이며, 직경 30미터의 원 안에 있는 인간은 절반 이상의 확률로 죽는다. 바깥이어도 절반 이하의 확률로 죽을 수 있다.
변종들이 태풍에 휩쓸린 잔가지처럼 마구 나뒹굴었다. 도로가 한 순간에 피바다로 변했다. 때맞춰 엎드린 사람들은 무사했다. 수류탄이 바닥에서 터지면, 충격파가 지면에 부딪혀 반사된다. 따라서 낮은 각도의 비살상영역이 만들어진다. 살상범위 이내에서라도, 바깥쪽이라면 엎드린 사람은 다칠 확률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하물며 겨울은 영향권 바깥에 있었다.
시차를 두고 던져진 수류탄이 연달아 폭발하는 중이다. 함부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데, 온 몸이 너덜거리는 감염체가 엉금엉금 기어왔다. 누운 자세로 배 위에 총을 얹고, 방아쇠를 당겼다. 불안정한 자세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조준 탓에, 초탄으로 머리를 맞추지 못했다. 어깨가 퍽 튀고 피로 물들었다. 두 번째 사격이 안구를 깨고 들어갔다. 머리가 툭 떨어진다. 담백한 죽음이었다.
죽은 변종에 올라타듯 새로운 놈이 나타났다. 앞서 오던 놈에 가려져서 거리가 가까웠다. 방아쇠를 당기는데 격발이 되지 않았다. 탄창이 비었을 리는 없고, 불발이거나 탄이 걸린 것 같았다. 소년은 몸을 옆으로 굴리며 대검을 뽑았다. 구르는 기세 그대로, 크악 입을 벌리는 놈의 정수리에 칼을 내리 찍는다. 죽은피가 찍 튀었다. 변종이 경련을 일으켰다.
수십 번의 폭발이 지나갔다. 몸을 가누어 일어서는 소년. 변종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파편 맞기 전까지는 어디 아프거나 미친 것처럼 보였어도 사람 같긴 했는데, 지금은 명백히 괴물 같은 몰골이었다. 내장을 줄줄 흘리는 놈, 부러진 다리로 걷는 놈, 피부가 벗겨져 근육이 드러난 놈. 피범벅이 되어 그냥 두어도 과다출혈로 죽을 것처럼 생겼다. 소년이 보기엔 경험치를 얻을 기회다. 일어설 수 있어도 눈이 파열되었거나, 고막이 찢어져 소리를 못 듣거나,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놈들 투성이었다.
스스로의 정신상태가 걱정스럽다. 소년은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이 아닌 이것들을 죽일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폭력, 그럼에도 마음이 묵직해지는 그 느낌이 좋았다. 총으로 쏘는 것도 좋다. 허나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냄새를 맡으면서, 칼로 찌르고 둔기로 짓뭉개는 쪽을 더 선호하게 된다.
칼로 머리를 찍을 때, 바각! 두개골 부서지는 소리를 손끝으로 듣는 그 순간, 가슴 속에 굴러다니던 모난 돌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탁 풀리는 해방감. 어딘가 서러운 충족감.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이 아닌 것을 살해하는 그 순간에, 소년은 스스로를 잊을 만큼 몰입할 수 있었다. 머리가 조금 멍해졌다.
겨울은 손목의 스냅으로 정글도를 한 바퀴 돌리며, 비척거리는 놈들에게 다가갔다. 미군이 총을 쏘아 정리하는 소리도 어딘가 먼 곳의 잔향처럼 느껴졌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그렇게 생각하며 날을 횡으로 그었다. 목 따인 감염체가 쓰러진다. 내장을 흘리며 기어오는 놈을 침착하게 찍어 침묵시킨다. 숨을 잊을 만큼 집중하게 된다. 한 놈 더 다가왔다. 빠악. 대각선으로 휘두른 칼이 관자놀이에서 뺨까지 찢어버린다. 충격으로 턱이 빠진 모양이다. 드러난 목구멍에 칼을 쑤셔 박았다. 늘어지기 전에 뽑는다. 걷어찬다. 단순한 작업의 반복이었다.
어느덧 소년은 감염변종들의 유해 수백 구 사이에 홀로 서있다. 난민 지원자 치고 끝까지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소년뿐이다. 무아지경. 워낙 무섭게 날뛰었다. 미군 병사들은 질린 기색이었다. 호감도가 조금 감소하는 병사도 있었고, 증가하는 병사도 있었다. 성향에 따라 가지각색의 반응들이 시스템 메시지 로그에 추가되었다.
겨울은 칼을 갈무리하고서 총을 점검했다. 탁탁 두들기고 노리쇠를 후퇴 전진시키니 걸려있던 탄이 툭 튀어나와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금속성 소음이 맑게 울린다. 노리쇠가 씹어서 못생겨진 불발탄이었다.
“뭘 그리 넋 놓고 있나! 매몰된 사람을 구해야 할 거 아냐! 작업 시작해! 라미레즈, 너네 애들 챙겨서 경계로 돌려!”
피어스 상사가 목청을 돋웠다. 새로운 차량들이 속속 도착했다. 교전사실을 알고 즉각 지원하겠다고 달려온 원군이었다. 반응속도는 빨랐는데, 수류탄을 동원한 교전이 그 이상으로 빠르게 끝나 무의미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