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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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린 뒤, 블랙 마운틴 (1)
미 정부는 캠프 로버츠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격상시켰다. 주둔 병력을 늘리고, 규모를 키우고, 시설을 개선하여 요새화 된 거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다보니 더 이상은 캠프(Camp)로 남아있기 어렵게 됐다. 이제는 포트(Fort) 로버츠다.
난민들의 처우도 달라졌다. 난민구역에서 연립주택 건설이 시작된 것. 공기단축을 위한 조립식 건물이었고, 미관을 고려하지 않은 효율 우선의 설계였으나, 그래도 텐트보다는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
건설현장에 투입된 난민들은 의욕이 드높았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손을 보탰다. 건축 경험자들이 그들을 가르쳤다. 밤낮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감독을 맡은 공병대에서 불만이 나올 정도였다. 예정 공사기간이 반 토막 났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감소하는 중이고.
겨울은 이렇게 논평했다.
“다들 행복할 거예요. 자기 손으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중이니까요.”
160연대 3대대장, 캡스턴 중령이 동의한다.
“희망은 삶의 필수품이지. 무기력을 학습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드물 거라고 생각하네. 물론 이 시대는 그 이상의 불행으로 가득하지만…….”
그는 말끝을 흐리며, 슬쩍 겨울을 쳐다보았다. 음? 의아하게 반응하는 겨울. 중령은 별 것 아니라고 얼버무리고 다른 화제를 꺼냈다.
“지난 크리스마스 사태 당시, 민간인 피해가 큰 폭으로 축소 발표되었다는 의혹이 있네. 혹시 알고 있었나?”
“짐작은 했죠. 주둔지 몇 개 지워진 것 치고 발표된 수가 너무 적었거든요.”
“역시나로군……. 난민들 분위기는 어떻지?”
“이 일로 미군에 대한 불신이 깊어 질까봐 걱정되시나요?”
“솔직히 그렇네. 이럴 때일수록 믿음이 중요한 법이니까. 지난 번 같은 사태가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를 일이기도 하고.”
확실히 믿음은 중요하다. 그날 밤, 겨울 또한 난민들이 공황에 빠질 가능성부터 경계했다. 그런 상황에서 혼란을 억누르는 힘이 바로 믿음이다. 통제에 따르면 안전할 것이라는 확신.
적어도 집단 생존의 효율 면에서는, 최악의 질서가 최선의 혼돈보다 낫다.
겨울이 옅은 미소를 곁들여 대답했다.
“염려 놓으세요. 당분간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할 이유도, 여유도 없을 테니까요.”
“여유가 없다는 건 알겠는데, 이유가 없다는 건 무슨 뜻인가?”
“그렇잖아요. 행복은 때때로 비교우위에서도 나오는걸요.”
중령은 아둔한 사람이 아니다. 핵심을 찌르는 한마디를 곧바로 이해했다.
캠프 시절부터 포트 로버츠에 있던 난민들은 이번 사태로 오히려 많이 안정화되었다. 다른 주둔지에 비해 위기를 워낙 잘 넘겼기 때문이다.
새로 유입된 난민과 시민들의 피폐한 모습이 결정적이었다. 그들을 견본삼아, 원래 있던 난민들은 자신들의 행운을 확인했다. 다른 곳에선 얼마가 죽었다더라, 어디는 아예 몰살을 당했다더라. 이런 수군거림들 사이에 동정하는 마음은 드물거나 없었다. 그나마 걱정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안위를 아끼는 것이었고.
“질이 나쁘죠. 남의 불행이 내 기쁨이면 안 되는 건데.”
이렇게 말하면서 겨울은 자연스레 누이를 떠올린다.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소년이 이곳에서 불행할 거라고 생각할 동안에는. 그래서 면회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을까봐 걱정된다.
소년 장교의 안색에 그늘이 지자, 오해한 캡스턴이 조용한 말로 격려했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너무 마음 쓰지 말게. 당장 내일도 살아있을지가 불확실한 시대 아닌가. 상황이 바뀌면 사람들도 차츰 나아질 거야.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겠지.”
겨울은 애써 대답을 빚지 않았다. 오해가 깊어질 것 같았다.
마침 근처에서 나무를 베는 요란한 소리가 대화의 맥을 끊었다. 벌목작업을 위해 만들어진 중장비가, 10초에 하나 꼴로 나무를 베고 가지까지 쳐낸다. 그것을 트레일러에 올려놓으면, 인력으로 고정시켜 제재소로 실어간다.
여기는 블랙 마운틴 기슭의 제재소였다. 포트 로버츠에서 샌 미구엘을 지나, 파소 로블레스 동남쪽으로 15킬로미터 정도를 달리면 크레스턴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그로부터 다시 9킬로미터를 남하해야 비로소 블랙 마운틴이다.
오늘의 임무는 수송호위(Convoy Escort)다. 사실 1월 들어 줄곧 같은 임무가 반복되는 중이었다. 항공수송만으로는 포트 로버츠의 물자소모를 감당하기가 불가능해서였다. 새로 부임한 캠프 사령관은 매우 의욕적이어서, 건설작업을 일부 미루는 대신 목재 정도는 직접 조달하겠다고 선언했다.
작업엔 난민 노무자들과 지원병들이 동원되었다. 버려진 시설을 재가동시키기가 쉽지 않았지만, 난민들 가운데엔 적합한 기술자들도 많았다. 전력공급이 해결된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누군가 한국어로 겨울을 불렀다.
“대장님! 잠시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겨울동맹」의 전투조원 중 한 사람이다. 뛰어왔는지 많이 헐떡이고 있었다. 겨울이 캡스턴 중령의 양해를 구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한별 씨? 왜 무전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그럴 수가 없는 일이라서요…….”
아무래도 변종이 나타났다거나 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맥락을 봐도 그렇고, 분위기를 봐도 그랬다. 숨을 헐떡일지언정 긴박함, 두려움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여러모로 곤란한 표정이었다.
한별은 주위를 살피더니 작게 속삭였다.
“유라 조장이랑 진석 조장이 다투고 있어서, 대장이 좀 말려주셨으면 하고 온 거예요.”
“싸워요? 두 분이?”
“네. 요즘 종종 말다툼을 하긴 했는데,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아서요. 아, 이거 제가 말씀드렸다는 건 비밀로 해주세요. 아셨죠?”
무전을 쓰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당사자들에게도 들릴 테니까. 본인들이야 자기들 알력을 겨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테고, 겨울에게 일러바치는 걸 좋아할 리 없을 것이다. 어쩌면 조원들에게 이미 당부해두었을지 모른다. 당장 눈앞에 있는 여성에게서 그런 기미가 보였다.
‘사이가 점점 나빠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장애인 공동체에서 전달받는 메모를 통해 분위기 정도는 읽고 있었다. 그러나 장애인들의 동태 파악에도 한계가 있다. 애초에 숫자부터 부족하다.
금방 끝날 싸움 같으면 이렇게 오지도 않았을 터. 겨울이 한별을 다독였다.
“잘 말해줬어요. 안심해요. 비밀은 지킬 테니.”
“하아, 다행이다.”
“먼저 가 계세요. 같이 나타나면 의심받을 테니까요.”
“네! 얼른 오세요!”
얼굴이 밝아진 그녀가 온 길을 되짚어 달려간다.
겨울은 조금 어긋난 방향으로 걸었다. 작업현장 외곽 경계를 서던 병사 및 지원병들이 조금 놀란 모습으로 눈인사를 보냈다.
“순찰이십니까?”
“비슷해요. 수고하세요.”
그렇게 가다보니 겨우 다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양쪽 다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었다. 벌목작업의 소음 때문에 멀리 들릴 리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겨울은 두 사람의 사각에서 다가갔다. 근처의 다른 조원들에겐 뻔히 보이는 위치다. 소년은 그들을 향해 모르는 척 조용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유라가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진석에게 따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까! 왜 남의 조에 신경을 쓰시냐고요!”
여기에 대답하는 진석은 답답함과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게 만듭니까?! 근무태도가 불량하면 지적할 수도 있죠! 군대가 원래 그런 겁니다!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데요? 경계 서고 있잖아요!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는 거라고요! 방심하고 있다가 변종이라도 나타나면 책임질 겁니까? 예?”
“대체 누가 방심을 했다고 그래요? 졸기를 했어요, 놀기를 했어요? 나무에 좀 기대거나 그루터기에 앉아있으면 어때요? 제대로 보고 있기만 하면 되지! 경계를 꼭 정자세로 서라는 법 있어요? 사람이 무슨 마네킹도 아니고!”
“정신상태가 문젭니다! 여긴 오염지역 한복판이에요!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정상 아닙니까? 자세가 흐트러지면 마음가짐도 해이해진다는 게 그렇게 이해가 안 돼요? 군대 경험이 처음이라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기강도 중요한 겁니다! 내가 지금 똥군기 잡는 게 아니에요!”
“체력 문제는 생각 안 하세요? 한두 시간이면 저도 그러려니 하겠어요. 그치만 하루 종일이잖아요! 낮 시간 내내 서 있으면 사람이 얼마나 지치는 데요! 만약 진짜로 싸우게 되면 체력이 조금이라도 많이 남아있어야 유리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집중력도 그래요! 몸이 편해야 오히려 더 오래 집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정신 따로 몸 따로 노는 건 아니잖아요!”
“하, 진짜! 사람들 보는 눈도 좀 생각하시죠! 여기 우리만 있습니까?”
“지금 겨우 체면 차리자는 거예요?”
“체면도 체면이지만, 일 하는 사람들 심리도 배려하자 이겁니다! 저기 나무 베는 분들, 우릴 믿고 작업하는 건데, 우리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퍽이나 마음이 놓이겠습니다! 저 분들을 안심시키는 것도 우리가 할 일 아닙니까!”
들어보니 참 사소한 문제이긴 한데, 그래도 각자 일리 있는 말을 하고 있었다. 유라는 효율을 중시한다. 진석은 규율과 역할을 강조했다. 애초부터 다른 사람에게 민폐 끼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겨울은 싸움의 내용보다 싸움이 성립한다는 사실 자체가 새롭게 느껴진다.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엄격한 진석 쪽은 이해가 가지만, 성격이 부드러운 유라 쪽에서 맞서 싸우는 건 뜻밖이었다.
유라의 성격이 아무리 좋아도, 매번 싫은 소리만 하는 진석과의 관계는 나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겨울 생각에, 유라 혼자였다면 싸움을 피했을 것이다.
‘책임감일지도.’
최초의 전투조장을 맡길 때, 그녀는 겨울이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었다. 그 말처럼, 이제 조원들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슬슬 싸움을 말릴까 하다가, 겨울은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어차피 두 사람 다 기분은 상할 만큼 상한 것 같고, 속에 있는 말이나 들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사람은 화가 나면 솔직해지게 마련이다.
물론 거기엔 악의에서 비롯된 왜곡이 들어가므로, 신중하게 걸러서 들어야 한다.
이어지는 싸움을 지켜보며, 겨울이 깨달은 사실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진석이 의외로 유라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 파소 로블레스의 첫인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으면, 아예 대화를 포기하거나 인신공격을 퍼부었을 것이다. 민폐나 끼치는 여자라고. 그런데 그러지 않는다. 화를 내면서도 끝까지 자기 입장을 전달하고 있었다.
둘째는 유라의 늘어난 자신감이었다. 예전에 곧잘 움츠러들던 건, 한 사람 몫을 못 한다는 자책 탓이 컸다. 지금은 다르다. 훈련을 시킨 보람이 있다.
“두 분 모두 그쯤 해두세요.”
겨울의 목소리에 진석과 유라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진석이 말을 더듬었다.
“어, 언제부터 거기 계셨습니까?”
“그게 중요한가요?”
간결한 반문에 다시 당황하는 진석. 소년은 미소로 그를 안심시켰다.
“조장님들 하시는 말씀을 진지하게 들어봤어요. 양쪽 다 어느 정도 맞는 의견이었다고 봐요.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죠. 진석 씨의 전투조는 진석 씨의 방식으로, 유라 씨의 전투조는 유라 씨의 방식으로 하세요.”
말은 둘 다 옳다고 해도, 결국 유라의 손을 들어주는 결론이었다. 진석은 납득하기 어려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 결정입니다.”
겨울의 한 마디에 진석이 입을 다물었다. 전처럼 따지고 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권위를 존중하는 태도였다. 겨울에겐 자신을 제지할 권리가 있고, 그 스스로는 거기에 따를 의무가 있다. 진석이 취한 부동자세는 명백히 그런 느낌이었다.
============================ 작품 후기 ============================
1. 나는 이 시간까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그헤헤…
2. 그런 경우가 거의 없긴 하지만, 소제목도 가끔은 소설 연출의 한 장치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놓치지 마세요. 작가가 언제 비열한 흉계를 꾸밀지 모르거든요.
3. 지난회 후기에서, 한국어로 서평 쓰기가 어려우면 영어로 써보라고 농담으로 말씀드렸더니…나사빠진님께서 정말로 영문 서평을 작성하셨더군요. 세상에.
다들 직접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4.
Q. Ca모 겨울이의 장미 인가요?? 그나저나 겨울이에게 불과 2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을 게임상에서 보낸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겨울이는 게임을 27번째로 하는 게 아닌가요? 게임에서 지나가는 시간이 현실세계의 시간과 같지 않은 건가요? 좋은 작품을 연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 소제목을 읽어보세요. #과거 (5), 심리치료 (1)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네,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시간상 오류는 없어요. 🙂
Q. 마스터칼솔럼님 : @한글로 쓰기 힘든 서평이라면 크툴루 문자나 산크리스트 어 같은 것도 혹시 받아주시나요?(농담) 여우와 왕자가 만났군요. 잘 보고 갑니다. 더위 조심하세요. 다리 익어서 오그라들지도 몰라요
A. 산스크리트어도 괜찮고 크툴루 문자는 더 괜찮습니다. 뒤쪽이 작가의 모국어라서요.
건강을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스믹 호러로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Q. 무플러님 : @작가님을 빨갛게 만들면 3배빨라지나요
A. 네, 빨라집니다. 노화 속도가 말이죠.
Q. 톰마님 : @노블의 질이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납골당은 한줄기 빛이죠. 그런 의미로 원고료쿠폰 투척. Q&A를 바라는 건 여기부턴데 쿠폰 하나에 작가는 얼마를 받나요?
A. 7월 이전에 결제하셨다면 250원을, 8월 이후 결제하셨다면 350원을 받습니다. 그 외 작가후원쿠폰은 70원을 받습니다.
Q. 도화원님 : @시계나 롤을 말한거였지만 뭐….. 은설이 박사였군요. 아버지가 공단 창업자중 하나고..
A. 은설이가 누구죠?! 서, 설마 작가가 까먹은 등장인물이 있는 것인가…
Q. ※빨간여우※님 : @ 손이 없다니! 글 쓸때는 발 몇개를 사용하시나요? 혹시 뇌도 여러개?
A. 다리는 전부 다 사용하고, 뇌는 반 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