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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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의 밤 (4)
밤이 깊어지면서 온도가 떨어졌다. 굵은 비에 눈발이 섞이기 시작한다. 닿는 즉시 녹아버리는, 날카롭고 강퍅한 진눈깨비였다. 이것도 눈이라고 자꾸만 렌즈에 들러붙는다. 겨울은 야간투시경을 벗어버릴까 고민했다. 하지만 사방이 검은 산맥이다. 소년의 안력이 보통은 아니더라도, 맨눈으로는 역시 한계가 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숨결은 하얗게 물들었다. 소년의 숨이 가쁜 것은 장시간 이어지는 달리기 탓이다. 가벼운 구보 정도의 속도라고 해도, 벌써 반시간을 달리는 중이었다. 그나마 산악도로의 난구간이 길지 않아, 반시간이 다시 지나기 전에 끝을 볼 것 같다.
폭우는 인간 아닌 것들에게도 재난이었다. 길가의 웅덩이에 떠서 물결에 들썩거리는 시체는, 사실 사람이 아니었다. 살이 하얗게 불어 오른 구울이다. 겨울은 잠시 다가가 살펴보기로 결심한다. 정보를 수집할 필요도 있고, 숨 돌릴 겨를도 있어야 했다. 차량에 정지신호를 보내고, 조심스럽게 고인 물로 들어간다.
철벅, 철벅.
도로 바깥이라 발아래가 미끌거렸다. 진흙이었다. 수위가 허리까지 올라왔다. 유속은 거의 없는 셈이되, 푹 패인 땅에서 두 개의 물줄기가 부딪혀 약간의 소용돌이가 있었다. 그래봐야 사람을 넘어뜨리기는 모자란 흡입력이다. 겨울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 무기를 교체했다. 근거리 전투를 대비한다면 아무래도 권총이 유리했다.
구울 머리통에 총구를 들이대고, 남은 손으로 조심스럽게 툭툭 건드려보았다. 움직이지 않는다. 정말로 죽은 건가? 겨울이 이번엔 권총 그립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콱! 뒤통수가 찢어질 정도의 힘이다. 떠있던 머리가 수면 밑으로 푹 꺼졌다가, 부력에 밀려 다시 튀어나왔다.
푸드드득!
회색 괴물이 발작 같은 경련을 일으킨다. 팔을 마구 휘둘러 수면을 때려댔다. 겨울이 몇 걸음 물러서며, 한 손을 들어 병사들의 사격을 막았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는 것 같다. 당황한 사람은 얕은 물에서도 빠져 죽는다. 대부분의 동물들과 달리, 인간에게 수영은 훈련으로 얻는 능력이었다. 호흡법을 모르면 물 위에 뜨지도 못 한다. 인간을 숙주로 삼은 다른 것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발을 헛디디고서 다시 일어서지 못했던 것이겠지. 죽을 위기에 처하니까 신체 기능을 정지시켰을 테고.’
감염변종은 스스로를 가사상태로 전환할 수 있다. 근육은 굳어지고, 호흡도 거의 없어진다. 그러다가 촉각이나 시각, 청각, 후각 등의 외부 자극을 받으면, 조금 전처럼 격렬하게 반응하며 깨어나는 것.
이번 세계관에서는 아타스카데로 주립병원에 갇힌 변종들에게서 처음 목격했었다. 본래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런데 이것이 산소를 아끼는 수단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겨울이 아는 한 그게 영원할 순 없다. 산소 소모가 줄어드는 것이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 구울도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결국은 죽었을 것이다.
허우적거리다가 겨울을 발견한 구울이 사납게 몸부림쳤다. 이빨을 따다다닥 부딪히면서, 갈수록 더 많은 물을 먹고 있다. 그 한심한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한 겨울은, 경험에 의거하여, 변종들이 당분간은 헤엄을 치지 못 할 거라고 재차 확신했다.
겨울이 구울의 머리에 대고 총탄 두 발을 박았다. 총성은 천둥에 파묻힌다. 구멍 뚫린 두상에서 묽은 핏물이 줄줄 흘러나오며, 잿빛 몸뚱이가 축 늘어졌다.
뭍으로 나오는 소년장교를 또 한 명의 장교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프리가 묻는다.
“방금 그건 뭐였습니까? 죽어있던 놈이 되살아나는 것 같던데요.”
“제프리, 아타스카데로에서 병실에 있던 놈들 생각나요?”
“아아……. 그거랑 이게 같은 거였군요. 허, 참. 좋은 거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물에 빠진 시체도 다시 봐야겠습니다. 괜히 건드렸다가 개죽음 당할지도 모르니까요.”
“맞아요. 같은 경고를 다른 기지에 전파해야겠죠. 특히 샌디에이고 노스 아일랜드에.”
겨울의 실험을 단순하게 받아들였던 제프리는, 마지막 말에 표정을 굳힌다. 사람이 경망스러워보여도, 제프리 또한 제대로 훈련 받은 미국의 장교였다.
“거기까지 바로 생각하시는 게 참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 중위님.”
북미 서해안의 마지막 군사거점인 샌디에이고 노스 아일랜드는, 만 안쪽의 바다를 자연장벽으로 삼아 방어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동안 변종이 물을 건너진 못 한다는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탓이었다. 선상으로 피난한 미국 시민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죽다 만 것들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닌다면, 그리고 누군가 멋모르고 그것을 건드린다면, 즉시 아비규환이 펼쳐질 것이었다. 해상난민들은 서로의 뱃전을 맞대고 생활하는 중이다. 감염이 시작될 경우, 역병의 전파속도는 육지와 다를 바 없을 터였다.
제프리는 자신이 깨달은 가능성에 무척 심란한 기색이다. 겨울이 그를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 말아요. 변종이 물을 무서워하는 건 이미 확인된 사실인걸요. 놈들이 이걸 계획적으로 이용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을 거예요.”
“비가 이렇게 쏟아지고 있잖습니까? 얼빠진 변종 새끼들이 몇 놈쯤 물에 빠져 떠다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벌써 사고가 터졌을까봐 두렵습니다만…….”
“그것까지 우리가 어떻게 할 순 없어요. 다른 누군가가 이미 경고했을지도 모르고요.”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변종을 경계하는 세계관이다. 소년이 깨달은 것을 달리 누가 먼저 깨달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국방부엔 그거 하라고 월급 받는 사람들도 있고.
겨울이 제프리를 떠밀었다.
“자, 시간낭비는 여기까지. 출발하죠.”
시간소요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재차 반시간이 흐르기 전에, 겨울은 산악도로가 왕복 2차선 고속도로와 교차하는 지점에 도달했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겨울이 앞장서서 길을 인도할 필요가 없었다. 비를 맞으며 거의 한 시간을 달린 셈이다.
겨울은 허리에 달아둔 윈치 고리를 풀었다. 차량으로 돌아오는 소년장교를 보고, 두 명의 병사가 복잡한 한숨을 내쉰다. 포탑 붙잡고 있던 상병이 겨울에게 휴식을 권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좀 쉬십시오.”
“쉬긴요. 작전 중이고, 내가 지휘관인데요. 사수좌에서 내려와요. 어차피 거기 앉아있으나 안에 있으나 큰 차이 없잖아요?”
“중위님. 거짓말로도 험비가 호텔 같다고는 못 하겠습니다만, 비 맞으면서 한 시간 내내 달린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따뜻하게 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에서 간단히 끼니라도 때우시죠. 중위님 달리시는 동안 다른 차량에서는 순번대로 식사를 마쳤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녁식사가 아직이었다. 차석 지휘관으로서 제프리가 알아서 식사를 지시한 모양이다. 사실 지시가 없더라도 병사들이 알아서 챙겨먹었겠지만.
겨울은 잠깐 망설이다가 응낙했다. 병사의 능력이 겨울보다는 못 하겠으나, 차내에 있어도 각종 감각 보정이 그렇게까지 감소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 잠깐 부탁하죠.”
상병이 또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부탁하셔도 됩니다. 제발 좀 거기 오래 앉아계십시오.”
운전병이 거들었다.
“병사는 앉아있고 장교가 뛰는 걸 보게 될 줄이야. 4년을 복무하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이야, 세상이 망해간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지더군요.”
겨울이 조용한 미소를 만들었다. 병사가 그것을 원하는 것 같았기에.
차량은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달렸다. 고작 왕복 2차선이지만, 명색이 고속도로인 만큼 잘 만들어진 것 같았다. 서해안에서 재앙이 일어나기 전까진 관리도 잘 받았으리라.
그래서 차내 취식도 용이한 편이었다. 적어도 물을 옮겨 담다가 쏟을 일은 없었다.
아타스카데로 주립병원 로비에서 먹었던 전투식량(FSR)은 많이 간소화된 것이었다. 지금 겨울이 뜯는 건 정식 전투식량(MRE : Meal, Ready to Eat)이다. 무릎 위에서 포장을 해체하는 겨울을 곁눈질하더니, 운전병이 또 한 마디 한다.
“맛없겠지만 맛있게 드십시오.”
“……노력할게요.”
겨울이 뜸을 들인 것은 병사에게 공감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전투식량이 맛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소년이 꼭 한 번씩 하는 생각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쁘지 않은 음식인데, 직장 대폭발(MRE : Massive Rectal Explosion)이란 별명은 너무하지 않나?’
어쨌든 생전에 많이 먹었던 에너지 겔보다는 낫다. 겨울은 그 인공적인 향과 화학적인 맛을 정말로 싫어했다. 그나마 누나인 한가을이 애를 쓴 덕분에, 이따금씩 진짜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가을의 남다른 노력이 아니었다면, 겨울은 먹는 즐거움을 모르고 자랐을 것이다. 남들 다 쓴다는 가상현실 계정 하나 없던 형편의 집안이었으니까.
‘또 모르지. 내가 몰랐을 뿐, 부모님 계정은 있었을지도.’
상념에 빠져있기도 잠시. 겨울은 자신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느꼈다. 무의미한 회상이었고, 무의미한 회한이었다. 가뜩이나 무거운 돌을 더 무겁게 만들 필요가 없다.
식사에 집중하기로 한다.
전투식량엔 발열 팩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 약간을 넣으면 온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이걸로 여러 가지 음식과 음료수를 데워먹는 것. 화상을 입기 쉬워 주의해야 할 과정이었으나, 손을 움직일 때도 겨울의 시선은 거의 전방에 가있었다.
발열 팩에 대어두었던 치즈 스프레드를 뜯자, 고소한 냄새와 함께, 반쯤 액화된 치즈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이것을 크래커 위에 적당히 얹어 수분과 유지방이 스며들기를 기다리고서, 한 입 깨물어 먹는다.
맛있다. 겨울은 꾸미지 않고 옅은 미소를 짓는다. 혀가 아릴 정도의 염분이 부담스럽긴 했으나, 추운 날씨에 따뜻한 식사라는 것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닭고기 스튜는 인공적인 향이 강했다. 그 점은 싫었다. 그래도 한없이 실제에 가까운 가슴살의 질감이 만족스러웠다. 몇 번 씹어서 혀끝으로 굴리면, 육수에 흠뻑 젖은 살결이 올올이 갈라진다. 뜨겁게 데워진 음료수의 싱거운 단맛도 입에 착 달라붙었다.
“어째 정말로 맛있게 드시는 것 같습니다?”
괴이쩍다는 듯 묻는 운전병에게, 겨울이 대답했다.
“그러게요. 옆에 제프리가 없네요.”
이 말을 들은 병사 두 명이 때 아닌 웃음을 참는다. 아무래도 제프리가 똥 이야기로 여러 사람의 식사를 망쳐놓은 것 같았다.
무전기에서 잡음과 함께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앞뒤가 맞지 않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들. 겪어봐서 익숙한 패턴이었다. 병사들이 숨을 죽였다. 긴장감이 느껴진다. 겨울이 차분한 목소리로 안정감을 담아 말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잡음 강도로 보니 거리가 꽤 머네요. 아마도 서쪽, 산타 마가리타 방면이겠죠. 이 근처에 아무 것도 없는 걸 놈들도 그동안 확인했을 테니까, 이제 와서, 그것도 이런 날씨에 쓸 데 없이 나와 보진 않을 거예요. 뒤쪽 차량에도 신경 쓰지 말라고 전달하세요.”
사수가 지시대로 수신호를 보낸다.
그 뒤로 잡음과 무의미한 송신이 잠시 지속되다가, 차량 대열이 고속도로를 벗어나 남하하기 무섭게 툭 끊어졌다. 지형 탓이다. 해발고도 1200미터의 봉우리가 전파를 차단했다.
식사를 마친 겨울이 지도를 펼쳤다. 「독도법」 보정이 있어도, 「암기」 수준이 낮아 지도를 자주 봐두는 게 좋았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거의 다 왔네요. 이제 더는 난구간도 없고. 앞으로 11킬로미터만 더 가면 돼요.”
병사가 지도를 슬쩍 곁눈질하더니, 묻는다.
“장애물 없이 쭉 평지로군요. 좀 더 속도를 내볼까요?”
“그래요.”
겨울의 허가를 받은 운전병이 슬며시 속도를 올렸다. 뒤따르는 차량들이 당황하지 않고 따라오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질주가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강가에 이르러 차량 대열이 속도를 줄인다. 다리가 있어야 할 곳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거칠게 흐르는 강물만이 보일 뿐. 강폭이 30미터가 넘는 것 같다. 전술지도엔 오래 전에 말라붙은 실개천으로만 표기된 곳이었다. 부리또라는, 묘하게 먹음직스러운 이름의 개천이었다. 실물은 전혀 아니지만.
다리가 수면 아래 잠겨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 정도의 물살이면 다리가 있어도 불안해.’
물에 잠긴 구조물은 내구도를 신뢰할 수 없다.
어떻게 한다. 겨울은 물가에 발을 얕게 담그고 서서, 강을 건널 방법을 모색했다.
============================ 작품 후기 ============================
#Q&A
Q. 淸流蓮님 :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추평 후 정독하는중인데 언제나 작가님 소설은 꿈 희망과 동심이 가득해서 좋네요. 요즘 인류를 리셋하겠습니다. 정주행중인데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이 글이 참 달달한 연애소설로 읽히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작가님 혹시 매직 앤 드래곤이나 마하나라카 읽어보신적 있으신가요? 십년 전 소설이지만 아직도 자주 정주행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글인것 같습니다. 특히 마하나라카 완결 후기는. . . 매직앤 드래곤은 여기서, 마하나라카는 문피아에서 완결났습니다. 작가님께도 추천드립니다
A. 시간이 나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아니면 연재를 쉬어서 시간을 만들거나…아니, 아닙니다. 하하하. 농담이에요.
Q. 도화원님 : @보통 틀니 딱딱 bj분들은 소드마스터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나요?
A. 대개 그렇습니다.
Q. Ghozt님 : @이쯤에서 꿈과 희망과 동심이 넘치는 게임소개나 갤러리 대화가 나와주면 좋겠네요.
A. 이번화까지 감안해도 고작 3회 전에 나왔는데, 또 나오긴 좀 이르지 않을까요?
Q. 호랭이사탕님 : 작가님은 동심이 충만하셔서 그런걸까요? 카톡내용을 보다보니 참 귀여우시단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좋은작품 잘 보고 갑니다. 겨울이는 여전히 능력있고 귀여워요. 병사들은 겨울이를 보며 마음을 졸이고있네요 요 몇화는 잔잔하게 흘러갔으니 조만간 또 피와 살이 튀는 전개가 다가오나요?
A. 정확한 시점은 알려드리기 어렵습니다만, 피와 살은 동심의 구성요소입니다.
Q. 섹갤님 : ㅆㅅㅌㅊ 좀비소설인데 한 300화 지나면 판타지도 나오고 무협도 나오고 할까여
A. 아닙니다. 그런 건 안 나옵니다.
Q. 14C2A58H2님 : 오늘후기를 보니까 그러면 변조이 진화해서 전략적으로행동하는것도 주인공이 그렇게 행동할것이라(또는 그럴수도있다) 예측해서 그런건가요?
A. 겨울과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변종의 행위는 겨울의 TOM 판독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TOM 판독 결과는 의식적인 예측과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