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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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 (1), 캠프 로버츠
슬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느 분기를 따를까, 소년이 고민하고 있는데, 퀘스트 마커 하나가 스스로 거리를 좁혀왔다. 사람이었다. 그는 왜소한 체구에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주변을 살피는 것이 꽤나 불안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저기, 어, 음……. 겨울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명백히 훨씬 연상인데도 함부로 말을 놓지 못하는 건 역시 소년에게 그만한 위신이나 두려움이 쌓였다는 증거였다. 미성년자는 대인관계 하향보정으로 무시당하기 십상인데도, 그런 기미를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소년에 대한 두려운 소문 탓도 있을 것이고, 기술보정에 의한 겨울의 존재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었다.
말을 놓으라고 해도 된다. 허나 굳이 상대를 편하게 해줄 필요가 있을까? 말이 편하면 마음도 편하고, 마음이 편하면 얕보기 쉽다. 소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세요?”
“난 장연철이라고 해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말하기 어렵지만, 겨울 씨가 만나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절대로 해를 끼치진 않을 거예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일 뿐이거든요. 괜찮다면 잠시만 시간을 내주지 않을래요?”
소년은 선선히 수락했다. 증강현실 인터페이스, 플레이어에게만 보이는 홀로그램. 임무일지가 갱신되었다. 환경과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은 관제 AI에 의해 실시간으로 평가되어, 그 중 명확한 인과관계를 갖춘 상호작용을 임무(퀘스트)로 등록하게 된다. 도식화된 전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치의 하나다.
능력이 부족할 때, 내용이 파악되지 않은 임무는 ???로만 표시된다. 지금 소년이 대략적인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건, 기술 「통찰」과 「간파」 덕분이다. 전회, 물자조달에서 얻은 경험치 일부를 리더십 계열에 투자했다. 이로써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대한 단서를 보다 정확하게 얻을 수 있다. 접속자에게 주어진 이점이었다.
‘조직……파벌인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년은 일단 따르기로 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연철이라는 사내는 연신 주위를 경계했다. 여러 조직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무익한 노력으로 생각된다. 여긴 난민구역. 계급장이 없을지언정, 겨울의 미군 전투복은 지나치게 눈에 띈다. 이미 꼬리가 붙었다. 여럿. 주요 조직들의 행동대 소속이겠지. 눈매가 더럽다. 타고난 인상은 아니다. 마음이 더러워 눈도 더러운 얼굴들이었다.
“잠시 기다리세요.”
“예?”
연철을 불러서 세워놓고, 소년은 뒤돌아서 미행하던 사람들을 지목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미처 몸을 숨기지 못한 자들이 많았고, 숨었어도 부족했다. 「생존감각」과 「전투감각」, 「위기감지」의 도움을 받는 소년은 그들의 은근한 적의를 놓치지 않았다.
“당신들, 나오세요.”
모르는 척 해도 소용없었다. 손끝으로 일일이 가리켰으니까. 많기도 하다. 사정 어려운 사람들이 무슨 조직을 이렇게 많이 만들었는지.
그러나 데이터 마이닝으로 만들어진 세계관이었다. 마이닝(Mining), 광산에서 자원을 캐내듯이, 광대한 온라인, 오랜 시간 누적된 정보의 광맥, 빅 데이터로부터 인간의 역사와 행동을 채굴한다는 뜻. 그러므로 가상현실 속 난민들의 생활은, 실존하는 난민촌의 생활에 기초하여 재구성된 것이다.
결국 열 한 개 조직의 행동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서로에게 으르렁대는 동시에 소년에게도 기 싸움을 걸어온다.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특히 소년의 존재감, 기술보정으로 발생하는 위협성에 대항하려고 힘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연철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니가 뭔데 오라가라냐.”
누군가 내뱉는 순간, 질 수 없다는 듯 여러 입이 한꺼번에 열렸다.
“어린노무 새끼가 뒤질라고…어디서 어른한테 함부로 손가락질이야?”
“하, 씨발. 어이가 없어서. 그래. 불러서 왔다. 어쩔 건데?”
그 외에도 험한 말이 왁자지껄 시끄럽다. 그러나 소년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수그러들었다. 긴장하고 있다. 숨기려고 했으나 소년의 「통찰」은 그것을 「간파」했다. 관제 AI의 도움말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대화의 키워드, 권장행동, 전투력 평가, 조언 등.
캠프에 소문이 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난 물자조달 임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곳에서 소년이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소문은 사람을 건널수록 커지는 법이었다. 개중에는 대책 없는 사이코패스라던가, 인간백정, 살인마라는 악명도 섞여 있었다. 사내들의 눈에 엿보이는 두려움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다니지 마세요. 기분 나쁘니까.”
짧게 끊어 강하게 하는 요구. 저릿한 느낌이 골수를 긁는다. 가상현실은, 화를 참을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니가 뭔데……”
“그 말씀은 이미 들었고요.”
뭐라 하려는 것을 바로 끊고 들어간다.
“아니면 공평하게, 제가 여러분께 관심 가지고 따라다녀 볼까요? 저는 기억력이 좋습니다. 나중에라도 여기 있는 분들을 몰라보는 일은 없을 걸요?”
읽지 않은 메시지가 빠르게 늘어났다. 지금 이 상황이 다른 사람 보기에 흥미로운 모양이다. 관심 없다. 당장은. 소년은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 몰입하고 있었다. 어떤 모습을 연기해야할지 알고 있었다.
“……네까짓 게, 협박이냐?”
“받을 짓을 하고 계신다면야, 협박일지도 모르겠네요.”
“하, 이거……. 좀 유명해지더니 정신이 나갔군. 꼬마야, 전투복 입더니 뭐라도 된 줄 아는가본데…….”
“이 옷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거듭 상대의 말을 끊어도 폭발하지 않음은, 짜증보다 큰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소년이 조금이라도 위축되거나, 과민반응을 보였다면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었다. 그러나 겨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침착하고 담담한 어조였다.
겨울은 강조하듯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 옷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
“날 옷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바라지도 않아요. 당신들은 내가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지고 날 판단해야 할 거예요.”
이 말은 시스템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고, 소년 스스로 완성한 문장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 오랫동안 굳어진 응어리가 심장 근처에서 끓어오르며,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목구멍으로 넘치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의 일방적인 평가와 요구는 지긋지긋해. 나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 외엔 아무것도 아니야……. 여긴 그 외에 아무 것도 없는 세상이지만.’
소년은 요대에 걸어둔 대검을 잡았다. 뽑지는 않는다. 한 걸음 나아갔다.
“쓸 데 없이 따라다니진 않을 테니, 내가 이제껏 무엇을 해왔는지는 알고 계시겠네요. 그럼 이제, 당신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것인지……직접 확인해보시겠어요?”
“쓰벌. 어린놈이 벌써부터 미쳐가지고…….”
소년과 남자들은 같은 극의 자석이었다. 한 걸음 다가가면 한 걸음 물러난다. 그러나 체면이 있는 만큼, 눈이 많은 자리에서 꼬리를 내리는 꼴은 곧 죽어도 보이기 싫은 모양이다. 몇몇은 자리를 지키려 애썼다. 다들 소년보다 덩치가 컸으나, 담이 덩치를 따르지 않아 손이 가늘게 떨리는 자도 있다. 자연히 나오는 말도 떨린다.
“내가 「한인애국회」 소속이라는 걸 알고 이렇게 까부는 거냐?”
“제 옷은 무시하고서, 자기 소속은 중요한 모양이네요?”
“윽…….”
“만약 제가 여기서 여러분을 끝내면 과연 여러분의 조직이 보복에 나설까요? 정말로? 어른 열 한 명과 소년 하나가 붙은 사건을, 미군은 또 어떻게 생각할까요? 저는 궁금한데. 여러분도 궁금하시다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니 실제로 해보는 건 어때요?”
정말 미치광이 같은 소리였다. 스스로 말해놓고도 잘도 이렇게 질러대는구나 싶을 정도로. 내 안에 이런 말들이 있었나? 소년은 왠지 유쾌해졌다.
그 마음이 드러났나 보다. 깨닫고 보니 웃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불식간의 미소가 상대에겐 더욱 큰 공포였다. 꾸미지 않은 광기 같다. 이들은 서로 소속이 다르기도 하여 다수의 힘을 내기 어렵다. 사내들은 더 이상 말 붙이지 못했다. 뒷걸음질 치더니, 적당히 멀어지자 아예 등 돌려 급하게 떠났다.
고작 대화였을 뿐이지만, NPC 또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실시간으로 평가하는 관제 AI가 성과를 분석하여 경험치로 환산하는 것이 보였다. 시청자 메시지 로그에서도 누군가 「별」을 선물했을 때에만 강조되는 축약 표시가 반짝거린다. 겨울은 시간흐름을 잠시 정지시킨 뒤, 마음을 가라앉힐 겸 하여 로그를 열어보았다.
「칠리콩까네 : 엌ㅋㅋㅋ 연기력 쩔엌ㅋㅋㅋㅋ 와 씨발 시스템 어시스트 키워드랑 문장을 하나도 안 쓰고 저렇게 유창할 수가 있냐? 즉흥적으로? 난 NPC 상대로 저렇게 못 하겠던뎈ㅋㅋㅋㅋ」
[칠리콩까네님이 별 2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닉으로드립치지마라 : 방송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는 걸 느낀다. 이 진행자 이번 방송이 처음인거 맞냐? 유명한 BJ가 닉변하고 얼굴 고쳐서 관심 끄는 거 아니고? 딱 봐도 TOM 등급 높아 보이는데?」
「액티브X좆까 : 유명 BJ이면 어떻고 초짜면 어때? 재밌으면 됐지. 시원해서 좋다.」
「하드게이 : 그래,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때?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캐쉬미어 : BJ는 틀린 표현입니다. 스트리머라고 합시다.」
「빌리해링턴 : Fuck↗You↘」
[캐쉬미어님이 별 5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눈밭여우님이 별 2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려권내라우 : 용돈벌이에 눈이 벌개진 별창늙은이들 발연기하고는 정말 끕이 다르다 이기야! 국어책 읽기 아니라서 좋다 씨발.」
[갤럭시SS505님이 별 1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소년은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짤막하게 답례했다.
「한겨울 : 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뭔가 더 길게 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원해서 하는 방송도 아니었고, 내키지도 않았고, 뭐라고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조금 전 말이 스스로 끓어 넘치던 것과 너무도 달랐다. 생각 같아선 방송을 중단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별이 필요했다.
「하드게이 : 진행자 쿨한 거 보소. 별창늙은이들은 주는 사람 닉 일일이 언급하면서 별 좀 더 받으려고 눈치 보는데.」
그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로그를 닫았다. 별창늙은이들이라……. 그 사람들과 자신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달궈졌던 심장이 나쁜 의미로 식었다. 불쾌한 담금질. 시간의 흐름이 재개되었다.
연철이라 했던 사내는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압도당한 모양이다. 관련 스테이터스 갱신 메시지도 다양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애 호감도의 증가분이었다. 친애, 경애, 연애로 분화되는 호감도 중에서, 집단 내 지도자로 인정받으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경애 호감도였다. 특히 +3 불변보정이 이채로웠다. 보통은 +1 뜨기도 어려운 건데.
겨울이 물었다.
“계속 서계실 건가요?”
“어? 아, 아닙니다. 가시죠.”
실수인지 일부러인지, 존칭이 한 단계 올라갔다. 두려워하는 기색이 절반, 탄복하는 기색이 절반. 아마 무의식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관제 AI의 조언이 이를 뒷받침했다.
「심리파악 (통찰 6등급/간파 6등급) : 연철은 저 일을 치르고도 동요하지 않는 당신에게 감탄하고 있습니다.(오차가 있을 가능성 35% / 오차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통찰 및 간파 기술과 능력보정이 필요합니다.)」
그의 안내를 따라 간 곳은 24인을 수용하도록 되어있는 대형 텐트였다.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창문으로 먼저 안쪽을 살폈다. 조명은 가운데 매달린 백열전구 하나뿐이었다. 어두운 가운데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들. 시선이 마주쳤다. 경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