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want to play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어리둥절해하는 필리프에게 아드린느 백작 부인이 이유를 밝혔다.
“오라버니는 좀, 아니, 많이 괴짜거든요. 아니다. 어쩌면 두 사람 죽이 잘 맞을 것 같네요. 오라버니도 백작과 비슷한 구석이 있거든요.”
정치보다는 영지를 개발하거나, 사교 활동보다 연구에 공을 들이는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그랬다.
‘호호, 슬슬 기회를 보다 조카 아이와 결혼도 추진해야지.’
사실 이번 동맹은 몽세나 자작이 아닌 아드린느 백작 부인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녀는 이미 이전부터 두 영지 간에 보다 돈독한 관계를 맺을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필리프가 순식간에 미라보 자작령을 삼키는 것을 보고는 바로 오라버니를 설득한 것이다.
재력에 군사력은 물론, 왕실에 뒷배를 둔 필리프와 확실한 동맹을 맺어두어야 한다고.
마침 몽세나 자작도 필리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내 야망도 달려 있어!’
그녀는 오래전부터 왕국 사교계 최고의 귀부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교계의 중심에 우뚝 서야 했는데, 왕도에는 경쟁자들이 많았다.
카를 국왕의 누나인 세렌티아 왕녀, 근위 기사 단장 마르켈 백작의 부인 히메나, 왕립 마탑주 글란 파드 후작의 장녀 제시카 등등.
‘하지만 새로운 사교계의 중심이 서부에 생긴다면 어떨까?’
마침 브란델 남작령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다.
각종 기물을 팔아 막대한 부를 쓸어 담더니 이제는 영지까지 배로 넓어졌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이곳에 오면서 본 영주성만 봐도 그렇다.
1년 전에 방문했을 때는 전형적인 시골 영지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구도 많이 늘었고, 번듯한 건물들도 세워졌다.
거기다 온천 유람객들이 많이 왕래하게 되자, 영주와 주민들이 상하수도 시설이나 도로, 숙박 시설 등에도 신경을 쓴 상황.
그 덕분에 비록 규모는 작아도 어지간한 도시들보다도 깔끔하고 번화한 곳으로 발전해 있었다.
‘1년 만에 이 정도로 발전했는데, 10년, 20년 후에는?’
서부 최대, 아니, 왕국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이렇게 예상하며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을 때, 필리프가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군요. 아니, 좋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이죠?”
“동맹을 맺겠지만, 결혼 동맹은 거절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드린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 우리 가문에는 꽤 어여쁘고 똑똑한 여식들이 있는데도요?”
“아직 전 결혼할 생각이 없거든요.”
“그렇군요. 아직 결혼하지 않고 미녀들과 풍류를 즐기고 싶은 모양이군요.”
아드린느가 은근한 눈길로 바라보자, 필리프는 황당해했다.
“풍류라뇨?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호호, 양손에 꽃을 쥐고 있으면서 시치미 떼긴.”
프란체스카와 리베르타.
아드린느는 이 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프란체스카 상단주는 바쁜 와중에도 자주 브란델 영지에 찾아왔다.
사업상 논의할 게 있기 때문이라는데, 굳이 부하 직원을 보내도 될 일에 그녀가 직접 오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리베르타라는 견습 신관도 실은 푸른 수염 제독 에스테 백작의 딸이랬지.’
병자와 빈민을 구제하는데 열심인 리베르타는 주민들에게 두터운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었다.
브란델 영지의 가신들도 그녀가 영주의 반려가 될 거라 보고 깍듯이 대하고 있었고.
‘둘 다 빼어난 미인에 남다른 능력이 있지. 거기다 한쪽은 대륙에서 손꼽히는 칼리스토 상단의 주인에, 다른 한쪽은 막강한 사략 함대를 거느린 부친이 있고.’
외모와 능력을 접어두더라도 이 정도 조건이면 필리프가 둘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할 만했다.
그리 생각하니 아드린느는 걱정이 되었다.
저 둘에 비하면 자신의 조카들은 외모와 귀족가의 영애란 점을 빼면 대단한 점이 없으니까.
‘어쩌면 백작이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아직 만들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아서 결혼하고 싶지 않은 건데, 이 아줌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성가신 물음이나 제안은 피하고 싶었던 필리프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제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결혼 동맹을 내세우면, 없던 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휴, 오라버니는 꽤 기대하고 있는데 실망하시겠군요. 좋아요. 대신 왕도에서의 승작식이 끝나면 몽세나 자작령에서 축하 연회를 열 테니 거절하지 말고 찾아오세요. 백작은 앞으로 최대한 많은 친구를 사귈 필요가 있어요.”
“충고 감사합니다.”
필리프는 연회라면 귀찮기 짝이 없었지만, 더 이상 그녀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
아드린느 백작 부인이 떠난 후.
“영주님, 백작 부인은 왜 찾아왔습니까?”
“그게, 내가 백작이 된다네.”
“네? 정말입니까?”
“어전 회의에서 결정 났다고 해.”
“와! 영주님 만세! 백작 각하 만세!”
필리프가 승작되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자 영주관이 가신들과 고용인들의 만세 소리로 들썩였다.
다들 기뻐했고, 특히 가신들은 자신의 일인 양 뿌듯해했다.
테리와 호위 업무를 교대하기 위해 찾아온 앤디가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영주님, 백작이 된 기념으로 논공행상하시는 건 어떤지?”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
그동안 열심히 일 한 가신들이다.
비록 최대 남작까지지만, 작위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생겼으니 현재 준남작인 카펜터를 비롯해 몇몇 가신들의 작위를 올려주거나 새로 내려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앞으로도 더 열심히 일할 거 아냐. 열심히 놀아야 할 날 대신해서 말이지, 크크크!’
이런 주군의 속내도 모르고 앤디는 기대감이 어린 표정으로 필리프에게 아양을 떨었다.
“헤헤, 영주님. 저 왕도에서 영주님을 지키려고 싸우다 죽을 뻔한 거 아시죠? 드워프 왕국에서도 함께 사선을 넘나들었는데…….”
“훗, 내가 어찌 앤디 경의 공훈을 잊겠나. 자네에게도 준남작 작위를 주지.”
“감사합니다, 영주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충성! 충성!”
들떠 까불거리는 앤디를 보며 필리프는 내심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공훈이나 재주는 충분하지만, 깐죽이는 성격이 문제란 말이야. 애간장 좀 태운 후에 줘야지.’
앤디는 가르쳐 주지도 않은 탭 로딩 장전법을 습득했을 정도로 사격에 뛰어난 인재였다.
거기다 시모 해위해 급의 저격 능력을 가진 스나이퍼인 데다, 차후 총병 부대장을 염두에 두고 있을 정도로 총병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최근에 몇몇 젊은 기사들이 총기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그의 권유나 설득 덕분이었다.
‘이렇게 애쓰는데 준남작쯤이야. 대신 오래오래 부려 먹어야지. 크크크!’
필리프가 내심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쾅!
갑자기 문이 열리지 필리프는 깜짝 놀랐다.
준남작 나리라고 불리는 자신을 떠올리며 헤벌레하던 앤디도 황급히 문 쪽을 향해 돌아섰다.
“시리아?”
“영주님, 백작 되셨다면서요! 그 기념으로 상을 주세요!”
투우장의 소처럼 다짜고짜 돌진해 온 시리아가 우격다짐의 요청을 해 왔다.
“뭐? 너도 작위 달라고?”
“그딴 건 필요 없고 테리랑 결혼하게 해줘요! 테리에게 당장 결혼하라고 명령해 달라고요!”
“그건 사적인 일이라…….”
“어휴! 영주님이 그러시니까 테리도 계속 딴청 부리잖아요!”
시리아가 졸라대고 있을 때, 농업관 보리스에게 서류를 전달하러 갔던 비서 헬렌이 돌아왔다.
“안 됩니다, 영주님! 들어 주지 마세요!”
냉큼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언성을 높이자, 시리아가 눈을 부라렸다.
“뭐야? 너 테리를 노총각으로 늙어 죽게 할 생각이야?”
“그게 아니라 당신은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뭐 어때서?”
“그야 품위도 없는 천둥벌거숭이니까 그렇죠!”
“그러는 넌? 내숭쟁이 홍당무 계집애잖아!”
영주의 면전이라는 사실도 잊고 다투는 두 여자.
이 막장 드라마의 볼륨이 계속 높아지자, 필리프가 보다 못해 나섰다.
“둘 다 그만해. 너희가 이렇게 싸우니까 테리가 학을 떼는 거 몰라?”
“그치만 영주님…….”
“진짜 테리를 사랑하면 그 녀석을 편하게 해줘. 폭풍처럼 몰아친다고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게 아니야. 태양처럼 따스하게 보듬어 줘야 알아서 열리는 거지.”
방금 말은 지구에서 봤던 로맨스 드라마의 대사를 빌려온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시리아와 헬렌은 필리프의 그럴 듯한 말에 감탄하여 자신들의 언행을 반성했다.
“죄송해요, 영주님.”
“실례를 끼쳤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
물러나는 둘을 바라보던 앤디는 금방 상황을 종료시킨 필리프의 수완에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십니다, 영주님. 마치 현자나 대신관이 하는 말씀 같았어요.”
“훗,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긴 신의 사도셨지요. 근데 혹시 영주님도 테리 경 같은 고민이 있으신 겁니까?”
“뭐?”
“흐흐흐, 뭐긴요. 이미 다 압니다.”
은근한 미소를 짓는 앤디의 표정이 지난번에 만났던 아드린느 백작 부인과 닮아 있었다.
아무래도 이놈도 비슷한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긴요. 제가 영주님이면 말입니다, 무뚝뚝한 리베르타 아가씨보다 돈도 팍팍 뿌려주고 사근사근하게 대해주는 프란체스카 상단주 쪽이…….”
계속 나불대며 참견하는 앤디에게 필리프가 굵게 한 방 날렸다.
“준남작 되기 싫어?”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영주님. 부디 하늘처럼 높고 바다같이 넓은 마음으로 너그러이…….”
필리프는 다짐했다.
스나이퍼 치고 말 많은 이 자식이 나중에 은퇴한다고 해도 세종대왕님처럼 윤허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사골처럼 우려먹고 뼛가루까지 갈아먹을 것이다.
***
얼마 후, 왕도에서 전령이 왔다.
정식으로 백작으로 승작이 되었음을 알리러 온 이 전령은 카바니 준남작이었다.
“오랜만이오, 카바니 준남작.”
“네,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남작입니다.”
“아, 그대도 승작이 된 모양이군. 하긴 폐하의 등극에 힘쓴 공신이니…….”
“과분한 성은이었지요. 자, 아무튼 폐하의 칙령을 받으시죠.”
카바니가 칙령서를 펼치자, 필리프는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주변에 모인 가신들 역시 영주를 따라 몸을 굽혔다.
“필리프 드 브란델은 들으라. 그대는 아르트리아의 충성스런 대검귀족으로 대대로 왕실에 충성을 다하여…….”
‘아오, 뭐가 이렇게 길어.’
고딩 국어 시간 때 배운 관동별곡에 비견 될 정도.
지루해서 하마터면 하품이 나올 뻔했지만, 필리프는 미소 띤 얼굴로 끝까지 참아냈다.
“축하드립니다, 백작 각하!”
“와아아!”
“영주님 만세!”
칙령서를 다 읊은 카바니가 경하의 인사를 건네자, 가신들이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거나 박수를 쳤다.
이제 진짜 백작이 된 거다.
“고맙소, 남작.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승작하게 된 자세한 사정이 궁금했던 필리프가 물었다.
“그게…… 국왕 폐하께서 각하를 위해 떼를 좀 쓰셨습니다.”
카바니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필리프는 입을 쩍 벌렸다.
‘헐, 후작까지 될 뻔했단 말인가.’
지금 왕도 사교계에서는 그의 승작을 두고 꽤 많은 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질투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일을 키운 아멜리아 공주와 볼자드 후작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고.
그리고 당사자인 필리프는 이번 일에 대해 진지한 의심을 하였다.
‘카를 녀석, 날 왕도로 불러올리려고 빌드업하고 있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