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want to play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펑!
요란한 폭음과 함께 표적으로 세워둔 합판이 산산조각났다.
Y튜브에 올려진 강현수의 승자총통 시험 사격 영상을 본 형사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강현수 씨,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든 겁니까?”
“누굴 해칠 의도는 없었고요,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무기의 재현 목적으로…….”
“이거 총포화약류 관리법 위반입니다. 관련 기관 허가 없이 이런 거 만들면 최대 징역 5년까지 받을 수 있어요!”
형사의 호통에 현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별풍선 1000만원 어치에 혹하기도 했지만, 임진왜란 때 조선군의 병기를 재현해 보자는 개인적인 욕망도 컸기 때문.
그래서 저질렀던 것이지만…….
‘뭔가 좀 이상한데? 난 만들지 않았다고.’
분명히 라테란 차원으로 끌려가는 꿈(?) 속에서 그는 승자총통을 만들었다가 경찰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 사실을 떠올린 현수는 꿈에서와 똑같은 제안을 큰손에게 받았지만, 만들기는커녕 시골집 대장간 화로에 불도 붙이지 않았다.
그런데 불법무기를 만들었다고 경찰에 체포되었고, 찍지도 않은 시험 사격 영상이 자신의 Y튜브 계정에 올려져 있는 게 아닌가.
“이봐요, 강현수 씨! 내 말을 듣고 있기나 합니까?”
현수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자 형사가 버럭 고함을 지르더니 현수의 앞에 한 장의 서류를 내놓았다.
“뭡니까, 이건?”
“서약서입니다. 불법인 거 인정하겠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 벌금 지불하겠다는 내용에 동의하고 사인하면 구속을 면할 수 있어요.”
형사의 말에 현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징역 5년까지 받을 수 있는 범죄라면서요? 그만한 일을 형사님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겁니까?”
“나참, 봐주려고 해도 불만이네. 싫으면 그냥 유치장에 들어가던가.”
유치장에 들어가기 싫었던 현수.
그는 서류에 사인하려다가 멈칫했다.
빽빽하게 적힌 글자가 흐릿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머릿속으로 낯익은 음성이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어?’
“뭐 하는 겁니까? 사인 안 할 거요?”
결단을 내린 현수는 볼펜을 내려놓았다.
이를 본 형사가 사납게 눈을 부라렸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누군가와 겹쳐 보였다.
“어이, 강현수!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너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는 거라고!”
귀청 따갑게 고함을 지르는 형사의 얼굴이 마신 아즈라와 닮아 있었다.
“그렇게 감옥에 들어가고 싶어? 거기 가면 컴퓨터도 못 하고 스마트폰도 못 쓰고, 여름에는 에어컨도 없어! 지금까지 네가 편하게 누리던 모든 것이 사라진단 말이야!”
“그게 어쨌다는 건데?”
“뭐? 야! 강현수 너…….”
“난 이제 강현수가 아니야.”
보란 듯이 서류를 찢어버리며 일어선 현수는 당당하게 외쳤다.
“나는 필리프 드 브란델이다.”
***
순식간에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경찰서 조사실에서 기간트의 조종석으로.
그리고 눈앞에 가슴에 칼을 찔린 마신 아즈라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입에서 핏물을 뚝뚝 흘리는 마신이 으르렁대며 말했다.
“멍청한 놈……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마지막 기회였거늘…….”
“진짜 기회였던 거 맞아? 네 영능으로 멋대로 남의 기억을 훔쳐서 조작한 건 아니고?”
필리프가 정곡을 찔렀는지, 마신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어차피 진짜 돌아갈 수 있어도 안 간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맘껏 할 수 있는 세계에서 살 거야. 그리고…….”
“크아아악! 빌어먹을 인간 놈!”
“나는 날 아껴주는 사람들과 날 사랑하는 이가 있는 세상을 구할 것이다!”
푸우욱―!
기간트의 거검이 마신의 심장을 완전히 꿰뚫었다.
필리프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대로 밀어붙여 마신을 검은 불꽃에 불타고 있는 세계수에 꽂아 넣었다.
“젠…… 장…… 내가 여기서…….”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는지 마지막으로 발버둥 치려던 마신의 몸이 축 늘어졌다.
“히이익! 마신 님이 돌아가셨다!”
“모두 도망쳐!”
마신의 죽음을 목도한 지하 마족들과 마수들은 충격을 받고 멍한 표정을 짓거나, 대열에서 이탈해 허둥지둥 달아났다.
그들과 달리 천계의 신들과 지상의 종족들은 승리의 함성을 터트렸다.
“만세! 우리가 이겼다!”
하지만 승리의 함성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엄청난 진동이 천지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우르르르릉!
“으아악! 세상이 망하는 건가?”
“우리가 이겼는데 어째서……?”
공포에 질린 이들은 하늘의 신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신들은 말없이 세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천지를 진동시키고 있는 것은 세계수였기 때문.
마신 아즈라가 죽으면서 세계수를 태우던 검은 불꽃은 사라졌다.
그리고 아즈라에서 흘러나온 피가,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의 영능을 담고 있는 피가 세계수로 흘러들면서 대격변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콰드득! 뿌드드드득!
아즈라의 피와 육체를 흡수한 세계수의 기둥이 다시 굵어지더니, 잘려 나간 가지에서 새로운 가지와 잎이 생겨났다.
그렇게 생겨난 가지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뻗어가며, 하늘 위로 높게 치솟아 올랐다.
땅으로는 굵은 뿌리가 멀리까지 뻗어나갔는데, 중간중간마다 마치 세계수의 자식과 같은 작은 산만 한 크기의 나무들이 자라났다.
신들은 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세계수가 드디어 영성을 되찾은 모양이군!”
“세계수의 뿌리가 지하 마계까지 뻗어가고 있습니다!”
“남대륙의 대사막도 초록빛을 되찾고 있어요!”
아즈라의 피를 흡수한 세계수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세계수는 워낙 오랫동안 영성이 죽어 있었기 때문.
하지만 세계수의 뿌리가 지하 마계까지 뻗어가면서 뒤틀린 용맥이 바로잡히고, 붕괴하던 대지가 안정을 되찾자 신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영성을 되찾은 세계수는 황폐해진 지상의 불모지도 다시 되살렸다.
그야말로 기적이라 할만한 상황.
이를 이뤄낸 필리프는 기간트 밖으로 나와 흐뭇하게 달라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이, 마우. 이제 다 끝난 거 맞지?”
필리프가 어디론가 달려가자, 마우는 그가 도망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리베르타나 다른 가신들과 재회해서 부둥켜안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마신 아즈라가 죽고 세계수가 영성을 되찾았다.
하지만 서대륙 왕국군이나 신성 의용군들은 바로 해산하지 않았다.
패잔병이 된 지하 마족과 마수들을 토벌하는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붉은 방패 기사단은 지하 마족 잔당의 토벌에 전념할 것이다. 너희도 협조하도록.”
단장 클로드의 말에 마하트바탄 대표로 나선 카라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길, 당신들이 똑바로 활동하지 못하면 박살 내겠다고 하셨어요.”
“흥, 못미더우면 직접 나서라고 해.”
붉은 방패 기사단은 물론, 서대륙 각국도 마하트바탄과의 대립을 잠정 중단하게 되었다.
그들이 마신이 불러낸 지하 마족 세력과 맞서 싸우는 것을 보기도 했고, 또 천계의 신들이 그들을 ‘지상의 일부’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하트바탄이 천계로부터 인정받게 되자, 곤란해진 것은 리벨리온이었다.
엘프들의 고토인 낙원의 땅을 되찾을 명분이 사실상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마왕이 엘프들의 출입을 자유롭게 허가하면서 더 의미 없게 되어 버렸죠.”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를 들은 필리프가 말했다.
“그래도 납득하지 못할 이들은 상당히 많을 텐데요?”
“그렇죠. 지금까지 해방군으로 활동하던 이들이나, 리벨리온의 일부 가문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입장이에요.”
“한동안은 분란이 계속되겠군요.”
오랜 세월 쌓인 앙금이 한 번에 씻겨 나갈리 만무하다.
천계의 신들도 그걸 알기에 리베르타를 통해 대안을 제시했다.
“세계수의 영성이 부활하면서 남대륙의 사막도 녹음을 되찾았다. 곳곳에 세계수의 묘목이 자라나 낙원의 땅 못지않게 기름지고 아름다운 땅이 되었지.”
“신들께서 그 땅을 우리 엘프들에게 약속하신다는 건가요?”
“애초에 사막이라 살던 이들도 무척이나 적은 곳이었다. 너희 엘프들이 이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
더구나 남대륙 주민들 입장에선 돈 많고, 무력도 강력한 리벨리온의 엘프들을 쌍수를 들고 반길 수밖에 없었다.
악시움 제국이 붕괴된 후, 아직까지 남대륙의 혼란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약속의 땅이라…… 신세대들 입장에선 확실히 솔깃하겠네요.”
“낯선 곳이니 여러모로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을 것이다.”
“그건 지금부터 부지런히 해 나갈 일이죠. 후작님이나 성녀님께서도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네요.”
프란체스카의 말에 필리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우리 브란델 가문과 칼리스토 상단은 한배를 탄 동지니까요.”
“네, 많은 도움 기대하고 있을게요.”
프란체스카는 필리프, 리베르타와 대화를 끝낸 후, 곧장 남대륙으로 떠났다.
앞으로 이주 계획을 세우려면 새로운 땅이 어떤지 직접 살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베크 항구에서 프란체스카를 배웅한 필리프는 라테라이나 대륙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어.”
“돌아가서 할 일이 있는 가 보구나.”
“암, 당연히 있지.”
리베르타의 말에 그녀의 손을 잡은 필리프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가서 실컷 놀아야지. 마신 잡는다고 못 했던 덕질까지 합쳐서 말이야!’
Epilogue.
마신이 소멸하고 60여년이 지났다.
오랜 세월 서대륙에서 이어졌던 마족과 인간, 엘프들의 분쟁은 오래 전 진정되었다.
서대륙에 숨어든 마족 잔당들은 오래 전 소탕되었고, 악시움 제국의 붕괴로 혼란에 빠졌던 남대륙에는 리벨리온이 세운 엘프들의 나라 ‘리벨리아’가 들어서 대륙의 혼란을 수습했다.
라테라니아 대륙도 이렇다 할 분쟁 없이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이어졌다.
고대 제국의 마법을 계승한 카시우스는 엘카노스의 이름을 딴 마탑을 세워 많은 후진을 양성했고, 브란델 마탑의 초대 마이스터 마이런 펠은 그와 협력하여 새로운 마도 공학의 기틀을 잡았다.
한편으로 인간에게 기술의 문호를 열어젖힌 드워프 왕국의 빌레펠트 왕은 마법이 필요 없는 내연기관이라는 새로운 동력 기계를 발명,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 모든 발전과 번영은 브란델 영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브란델 공작은 대륙을 관통하는 강철의 길을 닦았고, 그로 인해 대륙의 모든 길은 아르트리아 왕국을 통하게 되었지요.”
덕분에 라테라니아 대륙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한 나라가 된 아르트리아.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설하는 장년의 군주는 카를 국왕의 아들 로테르였다.
그는 슬픈 눈빛으로 대리석 석관을 바라보았다.
“아르트리아에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엘디르의 사도이자, 브란델의 영주이자, 아르트리아에 번영을 안겨준 나의 대부이신 필리프 드 브란델 공작이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허나 그가 남긴 업적은 영원토록…….”
줄줄 이어지는 국왕의 장례식 연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오늘 이 장례식을 치르는 필리프의 영혼이었다.
“어휴, 로테르 저 녀석은 누굴 닮아서 투머치 토커가 된 거야?”
“늙어서 말이 많아진 누구 때문이 아니겠느냐.”
필리프는 자신에게 핀잔을 건네는 광휘에 휩싸인 여신을 바라보았다.
10년 전, 천계로 가 물의 여신 아르키나의 자리로 되돌아간 리베르타였다.
필리프는 그녀를 보고 딱히 기쁨의 눈물을 흘리거나 반가워하지는 않았다.
천계로 돌아간 뒤에도 종종 필리프나 자식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타인에게 빙의해서 잔소리를 하곤 했으니까.
심지어 일주일 전에도 곧 수명을 다하니 주변 정리를 하라고 일러주기도 했다.
“그나저나 로테르가 너무 금칠을 해주는구나. 내 낭군은 그리 성실한 자는 아니었거늘.”
옛 기억을 떠올린 리베르타는 살며시 필리프를 째려보았다.
마신이 소멸한 후, 영지로 돌아온 필리프는 탱자탱자 놀기만 했다.
한동안 푹 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빌레펠트와 짝짜꿍이 되어 대장간에 틀어박혀 온갖 잡다한 것들을 만드는 데만 매진했던 것.
본인은 그것이 연구이자 일이라고 했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취미 생활이란 걸 다 알았다.
덕분에 영지 살림을 돌보느라 가신들과 리베르타만 고생했다.
대륙에 철도를 부설한 것도 가신과 드워프들이지 필리프가 직접 맡은 것은 아니었다.
“왕실에서 공작으로 승작해 준 것도 업적을 기려서가 아니라 일 좀 해달라는 의미였거늘…… 아무튼 앞으로는 일만 할 것이니 각오를 다지도록 하여라, 낭군이여.”
“웅? 그게 무슨 말이야?”
“노망이 든 척해도 소용없노라. 오래전에 카루스 님과도 약속하지 않았더냐.”
필리프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리베르타를 하계에 남겨주는 조건으로 카루스와 두 가지 약속을 했다.
하나는 세계수의 영성을 되살리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천계의 신명부(神名簿)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었다.
즉, 사후에 천계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는데, 이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낭군이여, 앞으로 그대는 엘디르의 보좌로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엘디르가 그대에게 드넓은 별의 세계를 연결할 은하철도를 만드는 일을 맡길 것이라 하였다.”
“아니, 쓸데없이 그건 왜……? 더구나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라테란도 아니고 행성을 잇는 철도를 만들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까.
기겁을 하는 필리프를 향해 리베르타가 당연하단 듯 말했다.
“그대는 철도의 아비, 철도의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더냐. 앞으로 놀 틈은 전혀 없을 것이다.”
순간 리베르타의 미소가 마신보다도 더 사악해 보인 필리프.
저도 모르게 오한을 느낀 그는 황급히 줄행랑을 놓았다.
“안 해! 전지전능한 신이란 작자들이 은하철도 따위 왜 필요한데?”
“게 섰거라, 낭군이여. 너는 이제 자유의 몸이 아니니라. 천계의 일원으로 사명을 다해야 하느니라!”
지상에서 엄숙한 장례식이 진행되는 사이, 하늘에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변함없이 놀고 싶었던 영주님은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나 돌아갈래! 지구로 돌아가서 환생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