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09
1008화
고대의 코페이 왕국의 수호신에서 미친 드래곤이 되었다, 이후 엘리시아 화원의 수호신 겸 재호의 펫이 되었던 알드리온.
하지만 이클립스 방문을 기점으로 자신의 힘을 완전히 회복한 녀석은 세상을 구경하겠다고 떠났었다.
그리고 재호도 알드리온의 여행을 응원해 주었다.
그 이후로 소식은 없었지만, 재호는 당연히 잘 지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볼품없이 쭈그리고 있는 것일까.
“알드리온?”
재호는 가까이 다가가 툭툭 찔러 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죽진 않았어.
눈으로도 숨을 쉬는 게 보이긴 했지만, 꼰대가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해 주었다.
“대체 이게 뭔 일이냐.”
너무 당황스러웠다.
게임을 하면서 이번만큼 놀란 적은 거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보다 이것들…….
여기저기 살펴보던 징징이는 알드리온의 몸과 이어진 붉은 줄기들을 가리켰다.
-낯익지 않아?
“…그렇네.”
인간 여과기.
인간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힘을 얻는 끔찍한 장치와 많이 닮아 있었다.
다만 이번엔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붉은 줄기들이 흡성 큐브와 이어져 있었다.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뭐, 애초에 많이 본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쪽에 다른 사체들도 있어!
꼰대의 외침에 재호가 가 보니 바짝 말라 죽은 수인들의 사체가 쌓여 있었다.
이들이 아코아 섬에서 살던 수인들이란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숨어서 수인들의 생명력을 쪽쪽 빨아먹고 있었던 모양이네.”
아마 시간이 더 흘렀다면 오는 길에 봤던 감옥의 수인들도 같은 처지가 되었을 터.
“거기에다 이제는 알드리온의 힘까지 빨아들이는 중이고…….”
저 위에서 옵티마 교단의 사람들이 시간을 끌어야 하네 뭐네 하던 이유가 이것인 모양이었다.
드래곤의 힘을 완벽하게 흡수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럼 이 힘을 원하는 놈은 어디 있는 거지? 여긴 없는 거 같은데…….”
늘 궁금해 마지않던 흑막은 어디 있을까?
포르퐁 대주교가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했던 말을 곱씹어 보면 자리를 비우긴 한 모양인데…….
-느긋하게 고민하는 것보단 일단 저 덩치부터 어떻게 깨우는 게 좋지 않을까?
“아, 그래.‘
징징이의 말에 재호는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흡성 큐브만 챙기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 알드리온도 깨어나겠지.”
하지만 흡성 큐브에 손을 대는 순간 재호의 눈앞에 알림이 떴다.
[으로 입장하시겠습니까?]“탐욕의 상념?”
[경고! 으로 입장할 시, 탈출 조건을 달성 또는 사망 외에 나올 방법은 없습니다.] [사망 시 대량의 레벨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뭐 이런 조건이 다 있어?”
탈출 방법이 극단적인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망으로 인한 레벨 하락이 크다?
두루뭉술하지만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경고였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레벨이 하락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흡성 큐브니까… 오래 머물수록 레벨 다운 패널티가 커지는 거려나.”
어쨌든 이 안에 무언가 엄청난 게 숨겨져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막대한 보상이지만, 퀘스트 보상에서 몇 번 뒤통수를 맞아 본 재호는 생각을 달리했다.
이 안에 들어간다고 해서 딱히 엄청난 보상이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고생한 것과 보상이 항상 정비례하지 않는단 걸 몇 번이나 경험하지 않았던가.
결국 결정하는 건 호기심의 승패에 달려 있다.
딱 봐도 잃을 게 많아 보이는 조건인데, 게이머로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진입을 해야 하는가?
거기에 재호 입장에서 또 하나 조건이 붙는 건…….
‘…역시 가야겠지.’
알드리온을 슬쩍 쳐다본 뒤, 재호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도 제법 오랜 시간 함께 여행했던 동료이거늘, 이대로 외면할 순 없었다.
[으로 입장합니다.]* * *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더니 이윽고 온통 회색밖에 존재하지 않는 무한한 공간이 나타났다.
인간의 오감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공간.
하지만 재호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몇 번 해 본 적이 있었다.
죽은 오기크의 사념과 싸울 때, 그리고 마크베이를 만날 때 등.
그래서 아주 낯선 느낌은 아니었다.
콰아앙-!!
꽈르르릉-
세상을 뒤흔드는 굉음과 진동.
눈이 멀 정도로 번쩍이는 섬광이 멀지 않은 곳에서 포착되었다.
그 중심에 있는 건 커다란 고릴라.
“알드리온!!”
“음?”
재호의 외침에 한참 전투를 벌이던 알드리온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너 여기서 뭐하던 거냐?”
“난… 커헉!”
콰앙!!!
재호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그의 가슴팍에 적중한 붉은 기운이 거대한 몸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누군가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모양.
‘누구…….’
재호의 시선이 알드리온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거기엔 형체가 불분명한 존재가 있었다.
마치 연기처럼 흐물거리고 있었는데 크기나 실루엣을 보면 사람의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누구라고 특정 짓기는 어려웠다.
“저거랑 싸우고 있던 거야?”
쿠웅-
튕겨 나갔던 알드리온이 어느새 재호 옆에 내려앉았다.
“할 말이 많지만, 일단은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 보여.”
재호는 무기를 꺼내 들며 준비했다.
“네가 쩔쩔맬 정도면 상대가 엄청 강한 모양이야?”
“강하다. 아니, 강할 수밖에. 모르겠나?”
“뭘?”
“저놈의 정체를.”
“얼굴도 안 보이는데 뭘 어떻게 알아?”
그때, 그 연기 같은 적이 흐물거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알시아…….
공간 전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상대가 날 아는 건 확실하네.”
자신을 보자마자 전투를 멈추고 부르는 걸 보면 구면이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에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놈만 아니었다면… 이토록 귀찮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인데……. 이미 난 마계의 지배자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었을 것인데……!
“어… 어?”
저런 소리를 할 만한 놈은 하나밖에 없었다.
재호 겜생을 통틀어 손꼽힐 정도로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녀석…….
-이런 식의 재회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상관없다. 이 자리에서 너와 드래곤의 힘까지 모두 내 것으로 만들겠다.
[*돌발 퀘스트*] [칼리토의 파편을 상대로 살아남으십시오.] [실패 시, 레벨 150 감소.]“망할……. 탐욕의 상념이라고 할 때 알아봤어야 했네.”
마계에서 죽은 전 탐욕의 대공이 뜬금없이 등장했다.
하지만 예상 못한 존재의 등장에 당황한 건 잠시.
재호는 바로 움직였다.
궁금한 건 많지만, 그보다 상대가 당장 때려잡아야 할 만큼 위험한 적이란 게 더 중요했다.
특히나 자신에게 지독한 원한을 품고 있는 자라면 말이다.
콰아앙-!!
재호가 서 있던 곳에서 발생한 폭발.
이미 그것을 감지하고 움직였기에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폭발 지점에서 솟구친 폭발력이 응집되어 재차 재호를 노렸다.
마치 폭발 자체가 의지를 가진 듯한 움직임.
그걸 알드리온이 두꺼운 팔로 막아 다시 터트렸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에너지를 두 팔로 찢어발기듯 흐트러트리자 그제야 사라지는 후폭풍.
“이 공간은 칼리토의 탐욕이 빚어낸 장소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모든 에너지는 곧 저 녀석의 의지 하에 통제받는다고 생각해라!”
“그게 무슨 말인데?”
그렇게 물었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바로 알게 되었다.
반사적으로 내던진 화염창.
파이라의 무기인 만큼 악마를 상대로 상성은 썩 좋지 않지만, 강한 폭발력은 저 연기처럼 흐물거리는 목표에 어느 정도 피해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화염창이 만들어 낸 폭발은 곧 칼리토에게 잠식당해 버렸다.
그리곤 고스란히 재호에게 도로 쏘아졌다.
쐐애액-
가까스로 피한 공격.
이렇듯 칼리토를 노린 공격들은 칼리토의 힘으로 치환되어 날아들었다.
‘젠장. 보통 성가신 게 아니네.’
재호는 저 공격을 무효화시킬 능력이 없었다.
탱커 클래스라면 몰라도 재호는 맷집으로 때우는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최전방 전투에서 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압도적인 회피력.
그런데 지금 칼리토의 공격은 폭발한 곳에서 연이어 공격이 쏘아졌기에 회피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얻어맞든 흡수하든 그 공격을 중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알드리온이 있으니 망정이지…….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칼리토의 실체가 아니란 거다.”
알드리온이 더 기운 빠지는 이야기를 꺼냈다.
“난 몇 번이나 저걸 공격했지만, 놈을 잠시 멈춰 세울 수 있었을 뿐, 금방 멀쩡한 상태로 회복하더군.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저것 또한 녀석의 의지로 빚어낸 힘의 흔적일 뿐이란 걸.”
“…….”
눈앞이 깜깜해졌다.
차라리 밖에서 흡성 큐브를 깨부숴 버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실체가 없다고 해도 이 공간을 유지하는 핵은 어딘가 있을 것이다. 그걸 찾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알드리온은 포효하며 칼리토의 보이지 않는 공격을 무력화시키며 말했다.
“내가 시간을 끌겠다! 혼자일 땐 불가능했지만 둘이라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말하며 다시 칼리토를 향해 달려드는 알드리온.
하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알드리온은 정상이 아니었다.
온몸에 새겨진 자잘한 상처들이 똑똑히 보였다.
‘쯧! 핵을 찾으라지만…….’
솔직히 비관적이었다.
온통 회색빛으로 가득한 공허한 장소.
끝이 어딘지도 알 수 없었고 단서가 될 만한 것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 : 사각에서 오는 공격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쐐애액-
보이지 않는 공격이 또 한 번 재호를 스치고 지나갔다.
‘알드리온이 칼리토의 어그로를 끈다고 했지만, 그게 딱히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아.’
특히나 이 공간 전체가 칼리토 그 자체라면 재호가 전장을 벗어나도 계속 견제가 들어올 것이다.
수색이 어려운 것은 물론, 알드리온이 버틸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이미 오랜 시간 쉬지 않고 싸움을 해 온 듯, 상당히 지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대신…….’
재호는 발상을 바꿔 보았다.
‘이곳 전체가 칼리토 그 자체라면 칼리토의 머릿속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재호는 극복하기 힘든 적과 싸울 때, 상대의 몸속으로 들어가 난장판을 벌이는 짓을 몇 번이나 해 보았다.
그때마다 큰 재미를 보기도 했고.
콰아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알드리온.
“뭐하는 거냐! 빨리 움직여라!!”
다 죽어 가는 얼굴로 그리 말해 봐야 마음이 불편해서 불가능했다.
그래서 재호는 결정했다.
‘내 스킬을 함부로 쓰는 건 불가능해.’
제어가 불가능한 에너지의 폭발은 여지없이 칼리토의 힘으로 바뀔 것이다.
그럼 그 폭발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존재를 불러낸다면?
재호를 매개로 차원을 넘나드는 존재라면 여기서도 분명 불러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부족한 정령 교감력을 마나로 대체합니다.] [소환에 필요한 마나가 부족하여 생명력이 소모됩니다.]여전히 재호가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위대한 존재.
[를 소환합니다.]거대한 불꽃과 함께 불의 정령왕이 등장했다.
거대한 화염의 정령은 이 회색빛 공간과 제법 어울렸다.
마치 종말 후 잿더미만 남은 세상의 주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