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14
1013화
우람은 재호를 한쪽 구석으로 데려가 다시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다 스팅을 위한 거야. 녀석을 위해서 일부러 내가 한 것처럼 꾸민 거다.”
우람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스팅이 이 일을 주동한 것처럼 알려지면 저 녀석의 죄책감만 더 커지겠지. 그래서 네 엄마가 보란 듯이 날 쿡쿡 찔러 대는 거고.”
의외의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재호는 우람이 무작정 돌진하면서 벌어진 사태라고 알고 있었다.
“말했다시피 스팅은 불운을 몰고 다니는 걸로 유명해. 아니지. 그걸 유명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그런데 그거 진짜 근거 있긴 한 거예요?”
재호의 의문에 우람은 피식 웃었다.
“뭐, 그런 건 각자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냐? 그렇게 믿으면 그런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스팅의 경우엔 이제 완전히 믿고 있는 쪽이고.”
항해하는 내내 있었던 사건들을 나열했다.
“고개를 들다 배 천장을 부셔 먹은 게 셀 수 없고 돛을 찢은 게 한 50번은 되나? 그리고 잠입하다 들통나기 일쑤였고 누워 있던 녀석 목에 걸려 넘어져 다친 수인도 많지. 또…….”
줄줄 나오는 온갖 사건들.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재호는 곧 하나를 깨달았다.
“그런데 그거 전부… 그냥 스팅 목이 길어서 생긴 일들 아니에요?”
“그렇지.”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걸 단순히 불운으로 귀결 짓긴 어려웠다.
그냥 상황에 따라서 어쩔 수 없었거나 조심성이 좀 없기에 발생한 작은 사고 정도.
딱 그 수준이었다.
“나야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 어쩌겠냐? 한 번 피해 의식을 갖기 시작하니 끝도 없더구나.”
“뭐, 그렇다고 치고… 아코아 섬의 일이 자기 잘못이라는 건 뭘 근거로 그러는 거예요?”
“앞에서 말한 소소한 사건들 때문에 우리 항해가 지연된 게 마음에 걸렸던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항해 일정은 더 빨라졌을 테고, 어쩌면 아코아 섬에 일이 벌어지기 전에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
지나친 확대 해석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쩌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긴 했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굳이 연관 짓지 않을 인과관계지만, 징크스에 매몰되어 자신감을 잃은 이라면 충분히 할 만한 생각이었다.
“쌓이고 쌓인 게 이곳에서 폭발한 거지. 어떻게든 자신이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나 보더라.”
그렇게 스팅은 눈이 뒤집혀 뛰어들었고, 그대로 둘 수 없었던 우람은 스스로 총대를 멨다.
“…진짜예요?”
의심 가득한 재호의 눈초리에 우람이 발끈했다.
“이놈아! 애비 말을 못 믿어서 눈을 그렇게 흘기냐!”
“흠흠…….”
처음 이 사태에 관해 물었을 때 우람이 숨겼던 걸 생각하면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흠! 그야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더 추하지 않냐? 막말로 내가 이 이야기하면 네가 ‘아, 그렇군요.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이해했습니다.’ 했겠냐? ‘아무리 그래도 동료를 팔아먹는 건 좀 추합니다, 아버지.’라고 했겠지.”
“어… 그건 그렇네요.”
오랜만에 아들을 정확히 파악한 우람에게서 오랜만에 아버지다움을 느낀 재호.
“썩을 놈. 아니라곤 안 하네.”
“하하하-”
재호는 멋쩍게 웃었다.
“그럼 정령탑주님도…….”
캐스트가 우람 옆에 껴 있는 게 이상하다 싶더라니 이제 이해되었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 그렇게 무대포 돌진을 할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이유 있는 돌진…….
“아, 그 영감은 그냥 신나서 따라왔지. 대체 뭔 늦바람이 든 건지 겁이 없더라. 붙잡혀 놓고도 내내 껄껄대는데 난 노망난 줄 알았다.”
“…….”
재호는 저 멀리 알로에올리오와 대화를 나누는 캐스트를 쳐다봤다.
다시 보니 어째 기억보다 좀 더 젊어진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결과는 알다시피 별로 안 좋았지. 우린 다 잡혔고 그 탓에 스팅은 더 의기소침해졌지. 사실 이러나저러나 달라지는 건 없는데도 말이야.”
모든 것이 자신의 불운 탓에 망쳤다고 생각을 하는 스팅.
그렇기에 다친 이들에게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살펴보다 갑자기 상태가 나빠질지도 모를 테니까.
“웃긴 소리지. 그게 말이나 되냐?”
우람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고 재호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아코아 섬의 문제는 스팅과 아예 관련이 없었고 항해 중에 발생한 일들은 어디까지나 조심성의 부재로밖에 안 보였으니까.
하지만 또 마냥 그렇게 치부하고 넘길 순 없는 점도 있었다.
‘단순히 조심성이 모자란 거라면 그 오랜 세월 동안 위스트넌에서 낙인이 찍히지도 않았겠지.’
게다가 이 세상은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란 게 중요했다.
혹시 모를 일이었다.
스팅에겐 ‘재수 없음’이라는 시스템적 특성이 있을지도.
“사실 그래서 고민은 고민이다. 갇혀 있을 때, 스팅 녀석이 말하더라고. 여기 일이 잘 마무리된다면 자기는 이 섬에 남겠다고.”
“혼자요?”
“모르지. 저놈이 남겠다면 혹시 따라서 남겠단 녀석이 또 있을지. 하지만 난 고작 재수 좀 없는 걸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우람은 딱하단 얼굴로 스팅을 다시 쳐다봤다.
위스트넌에서 오랜 세월 동안 홀로 살았던 스팅은 우람과 함께 항해하며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걸 바로 옆에서 본 우람.
하지만 점점 늘어난 자신의 불운함의 증거들이 급속도로 스팅을 위축시켰다.
교류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런 일들도 많아지는 건 필연적이었다.
그걸 스팅도 알기 때문에 그냥 혼자 남겠다는 소릴 한 것일 터.
우람은 그걸 그냥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재호 네가 한번 저 녀석을 데리고 다녀 볼 생각은 없냐?”
“예? 왜 이야기가 갑자기 그리로 흘러요?”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이야기에 재호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전에 기사 하나 봤다. 너 게임 운이 말도 안 된다며? 그러면 재수 좀 없는 녀석 데리고 다녀도 괜찮지 않겠냐?”
“어… 어떤 정신 나간 기자가 그런 헛소리를 써 놨대요? 아니, 그리고 사실 아버지도 스팅을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재호가 운이 좋은 편이긴 했고 스스로도 어느 정도 운이 꽤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다곤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걸 빼먹었다.
운이 좋으려면 결국 사전에 불운 혹은 곤란한 상황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운이 찾아온들 그게 운이란 걸 알 수 있을까?
“뭐 기자야 그렇다고 쳐도 댓글들 반응도 비슷하더구먼. 게임 시작부터 좋은 클래스 얻고 시작했다고.”
“아니, 아직도 그런 케케묵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요?”
정령화장이 되기 위해 재호가 몇 달 동안 꽃을 봤단 건 다 어디로 치우고?
그리고 분명 비웃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리고 만약 스팅이 정말로 시스템상으로 불운한 캐릭터로 설정되어있으면 상대 운은 상관없잖아요.”
“에이, 설마 그렇겠어? 그리고 내가 말했다시피 심각한 상황은 딱히 없었어. 그냥 네가 데리고 다니면서 스스로 딱히 운 없는 녀석은 아니란 걸 증명해 주면 충분해.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거지.”
앞서 우람의 한 이야기들이 묘하게 앞뒤가 어긋난 터라 별로 설득력은 없었다.
그리고 왠지 직접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좀…….
“안 그래도 앞으로 골치 아픈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찝찝한 일을 만드는 건…….”
“뭐냐? 설마 너도 스팅이 정말로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우람의 꾸짖음에 재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니, 말이 그렇단 거죠. 그러는 아버지도 똑같은 생각이잖아요.”
“어허! 전부 스팅을 위해서지!”
두 부자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은혜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스팅의 불운함을 인정하고 있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 * *
결론적으로 재호는 스팅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스팅의 의사를 확인한 뒤의 일.
만약 재수 없다는 게 단순히 기우에 불과하다면 수인 한 명 정도 데리고 다니는 건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을 때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심지어 그냥 수인도 아니고 삼대장 중 하나니까.
우람과의 대화는 그걸로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이제 정말로 중요한 게 남았다.
바로 칼리토에 대한 것.
알드리온과 아코아 섬 생존자 대표 그리고 재호가 마주 앉았다.
프티머스는 힘을 무리하게 쓴 탓에 천계로 돌아갔지만, 재호의 의식을 통해 대화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 와중에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떠나기 전에 합의하고 간 프티머스.
보상이야 당연히 천과였다.
“흠흠. 내가 먼저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덩치를 줄인 알드리온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별로 특별한 것 없는 이야기다.”
이미 여기서 알드리온이 튀어나온 것부터 특이했지만, 재호는 일단은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난 대륙 곳곳을 여행했다. 그리고 나중엔 바다에도 관심을 두었지. 아무래도 대륙 바깥의 세계는 드래곤들에게도 낯설었고 너와 함께 가끔 바다로 나왔던 경험들도 제법 즐거웠으니 말이야.”
그러다 알드리온은 몇몇 생명과 친구가 되었다.
“물고기들이랑?”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와 친구가 될 만큼 외롭진 않았다.”
“이성이 존재하는 바다 생명체라면…….”
인어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게 아니라면…….
“그래. 예전에 이야기했던 고대어의 후손들. 개중에도 특별한 녀석들이 몇몇 있었다.”
그 말에 재호가 번뜩 떠오른 건 용왕 서루발의 퀘스트였다.
[*퀘스트*] [서루발 용왕은 그간 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힘의 유출이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그러나 오늘 당신의 친구를 만난 후,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또 하나 심각한 걱정거리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바로 다른 확인되지 않은 힘의 유출이지요.
이제 서루발 용왕은 그것이 다른 고대어 후손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해 걱정을 덜고자 합니다.] [퀘스트 목표 : 고대어 장군들의 후손들 확인. (0/4)]
사실상 손 놓고 있는 퀘스트.
그리고 알드리온도 이 퀘스트의 존재는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내가 만난 녀석들이 고대어 장군들의 후손이 맞을 거다. 다른 고대어의 후손들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거든.”
재호는 알드리온의 이야기에 내심 이 막막하던 퀘스트를 털어 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알드리온의 말이 이어질수록 그 기대는 사라져 갔다.
“그런데 한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사라져?”
“그래.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걸로 봐선 죽은 게 아닐까 싶더군.”
그 생명체들이 강하긴 하지만 절대 죽이지 못할 만큼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다.
역시나 고대어 장군의 후손 중 하나인 심악이만 봐도 그랬다.
“그래. 운 나쁘게 바다를 모험하던 인간, 또는 미지의 바다 생명체에게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다른 녀석도, 또 다른 녀석도 사라지자 나는 이것이 목적이 있는 사냥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녀석을 찾아갔고 정체를 알 수 있었지.”
“설마 고대어 후손들을 죽이고 다니던 게…….”
“그래. 바로 칼리토였다. 아니, 정확히는 어느 틈엔가 남은 녀석의 몸을 빼앗은 칼리토였지.”
처음엔 그 사실을 모른 채 접근했다가 기습을 당한 알드리온은 결국 전투 끝에 붙잡히고 말았다.
“칼리토가 강대한 생명체의 힘을 흡수하고 있었으며 고대어의 후손들을 노린 것도 그 때문임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제물이 되리란 것도.”
재호는 자신이 적기에 나타나 끔찍한 미래를 막아 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알드리온의 힘까지 완전히 흡수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 퀘스트 날렸네.’
재호는 이제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린 퀘스트창은 치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