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28
1027화
정령탑을 습격한 이들의 수준은 딱히 대단하지 않았다.
계획도 없어 보이고 손발도 하나도 안 맞는, 정말 남보다 못한 궁합을 선보인 것이다.
함께 온 티나와 다른 엘프들과 함께 그들을 신나게 패던 재호는 몇 명을 생포했다.
“아… 알시아 님!! 살려 주세요! 전 알시아 님이랑 싸우고 싶지 않아요!!”
“저 일성 플라워즈 팬입니다! 팬클럽 1기인데… 으흑…….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단순히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발버둥이라기엔 그들의 표정이 너무 절절했다.
그래서 투항한 이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나 들어 보았다.
자유 해방 연합.
이미 내부자를 통해 대충 알고 있는 이야기.
그런데 자세히 들어 보니 생각보다 더 악랄한 방식으로 가디언 길드가 이들을 압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불쌍하네.’
하지만 딱 그 정도 감상.
그들을 위해 재호가 딱히 해 줄 건 없었다.
게임에 죽자고 달려들며 사방팔방 협박을 일삼는 가디언 길드.
솔직히 이렇게까지 하는 그들을 어떻게 해야 멈춰 세울 수 있을지 감도 안 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하나는 새로 알게 되었네.’
가디언 길드의 목적은 이제 단순히 재호의 파멸만을 바라고 있진 않다는 것.
‘뉴월드 자체를 박살 내려고 한다라…….’
그리고 그걸 위한 첫 단추가 바로 재호가 게임을 접게 만드는 것.
‘게임을 접으면…….’
딱히 생각해 보지 않은 상상이었다.
시작은 겜알못 그 자체였지만, 어느덧 재호는 어지간한 고인물 이상으로 뉴월드의 세계와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만큼 완벽하게 즐기고 있다는 뜻.
그런데 타의에 의해 게임을 접게 된다면 확실히 씁쓸함을 많이 느끼긴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날 접게 만드는 걸로 게임이 망치겠다는 건 좀…….’
물론 재호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현재 뉴월드에서 자신의 입지는 상당히 거대했다.
다른 거 다 제쳐 두고 제국과 혈맹 관계인 것만 봐도 그랬다.
이 넓은 판타지 세계는 모두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비밀이 있다.
하지만 대륙의 정세는 엄연히 제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즉, 재호도 이 세계를 움직이는 거인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재호가 당장 게임을 접겠다?
지금까지 구축된 뉴월드 세계관은 확실히 크게 휘청일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게임 속 역사의 일부분으로 누군가 재호의 빈자리를 채우거나, 혹은 그 혼란 자체가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될 터.
쉽게 말해 재호 한 명이 접는다고 해서 뉴월드가 망할 가능성은 없었다.
‘뭐, 그만큼 중국 내부 사정이 생각보다 많이 안 좋은 모양이지.’
재호도 뉴스를 보긴 했기에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이해 못할 수작이 성공하도록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럼 지금 게임 중인 사람들은 다 국외에서 사는 사람들인가?”
재호의 물음에 잡힌 이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그래서 뉴월드도 가능한 거죠.”
“그럼 꼭 그 명령에 따라야 하는 거야?”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긴 합니다만…….”
아예 다른 나라의 국적을 얻은 이민자들이야 문제가 없었다.
그런 이들은 그저 쏠쏠한 돈벌이다 싶어서 따르고 있을 뿐, 아마 오늘 재호에게 된통 당한 이상 대부분이 다시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반면 잠시 나와 있는, 결국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솔직히 게임을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을까 싶긴 하다만…….
“솔직히 겁이 나서…….”
이미 가디언 길드의 존재가, 아직 그 망령이 남아 게임 밖에서 간섭하는 이 상황이 이들이 지닌 일말의 불안함이었다.
“뭐…….”
굳이 이들의 사정을 헤아려 줄 필요는 없었다.
저들 사정일 뿐, 재호는 그냥 이렇게 쫓아내는 걸로 충분했다.
“이야기는 잘 들었고 알아서들 해. 다음에 만날 땐 봐주는 거 없을 거란 것만 명심해.”
그들을 쫓아 낸 뒤, 이제 정령탑을 향한 공치사를 늘어놓는 것만 남았다.
그리고 미래를 위한 사전 작업 또한.
다행히 재호가 민망한 이야기들을 먼저 시작할 필요는 없었다.
정령탑 쪽에서도 최소한의 체면은 있는지 재호를 향해 먼저 감사를 표했던 것이다.
그래서 재호는 자연스럽게 알로에올리오 이야기도 꺼낼 수 있었다.
“그놈은……!”
뿌득- 하고 이 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내심 배신감을 크게 느끼고 있는 모양.
‘하긴 이 난리가 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럴 만해.’
특히 한때는 정령탑의 기대주로서 온갖 지원은 다 받아 놓곤 엘리시아 화원에서 땅을 파고 있기도 했으니…….
재호 앞이라 차마 그 일까지 끄집어내진 못하는 정령사들의 표정이 볼만했다.
재호에게 감사는 표하지만, 여전히 미운 마음이 공존하고 있음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래도 알로에리오도 나름대로 정령탑을 위해 헌신하고 있으니 믿어 보시죠.”
재호는 알로에올리오를 위해 대신해 변호해 주었다.
“이번에 제가 온 것도 그의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죠.”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를 토하는 상대.
“…정령탑의 제자이면서 어찌 저…어기 외부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단 말입니까?”
무심코 ‘적’이라고 말하려다 급히 입을 다문 그가 재호의 눈치를 살폈다.
“이해합니다. 정령탑이 큰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니 말이죠.”
재호는 못 들은 척 답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정령탑주님과 함께 수행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지만, 지금 상황에선 조금 미묘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
“저, 정령탑주님과 말입니까?”
“그렇다면 탑주님도 정령탑을…….”
이번에는 실망 보다는 충격이 큰 그들.
재호의 말대로면 캐스트마저 이 사태를 외면한 것이니까.
그리고 사실 재호가 어느 정도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뭐, 인생 말년을 화려하게 불태우는 중이니 이 정도 장난은 받아 주시겠지.’
결과적으론 이게 정령탑을 위한 일이라고 재호는 생각했다.
“정령탑주님은 속세를 완전히 떠났습니다. 그리고 정령탑의 이번 위기도 스스로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믿으셨죠.”
‘아마도’라는 말은 삼켰다.
“하지만 실패했고.”
재호의 냉담한 한 마디에 다들 할 말이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어느 순간부터 정령탑이 변했다는 건 여러분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겁니다.”
역시 어떻게 변했는지 재호는 모른다.
그냥 대충 그렇겠거니 하고 대리 호통만 칠 뿐이었다.
‘정령탑주님도 성격이 좋아서 그렇지, 사실 욕하고 싶었을 거야.’
“지금 알르에롤리오가 정령탑주님과 함께 있는 것도 그래서죠. 여러분들이 믿음직스럽지 않기 때문에!”
“……!”
“그렇다면 설마 탑주님은…….”
무언가를 짐작한 그들이 신음을 흘렸다.
“맞습니다.”
무겁게 위아래로 끄덕이는 재호의 고개.
“알로아를 다음 정령탑주로 점찍어 두었습니다.”
재호는 제멋대로 저질러 버렸다.
알로에올리오도 이 정도는 예상하고 부탁했을 것이라 믿었다.
적들의 공격뿐 아니라 어지러운 정령탑의 내부 상황도 정리 좀 해 달라고 말이다.
‘아니, 솔직히 나 싫어하는 곳에 보낼 생각을 했으면 이 정도 각오는 당연히 해야지.’
어쨌든 알로에올리오도 정령탑주가 되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고 재호 또한 그를 정령탑주로 밀고 있으니 상관없었다.
* * *
알로에올리오의 부탁을 200% 완벽하게 처리한 뒤, 엘리시아 화원으로 복귀했다.
“침입자는 다 처리했어. 몇 명은 대화로 설득해 놓았으니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다시 정령탑을 노리진 않을 거야.”
결과에 대한 간단한 보고도 그에게 전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한시름 덜었어! 나중에 보답할게!
“하하, 뭐 친구 사이에 돕고 돕는 거지.”
정령탑에 무슨 폭탄을 심어 놓고 온지도 모른 채 감사를 표하는 알로에올리오.
재호는 귓속말을 마친 후, 곧장 아나볼릭 교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스트로앤 교황에게 상황을 전달받은 뒤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아나볼릭 교단의 감옥은 풍경만 보면 생각보다 따스한 장소였다.
밝은 조명과 쾌적한 환경.
죄수를 가두어 두기엔 지나치게 친절해 보이는 장소.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절대 친절한 곳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여러 감옥을 투어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아나볼릭 교단의 감옥이 최악이라는 것을.
끄으으…….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타고 누군가의 신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신음 끝에는 거대한 돌덩이에 짓눌린 채 스쿼트 중인 호그나이트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무너져 내린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
후들거리는 다리를 보면 당장이라도 아래에 깔려 버리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위태로운 광경이었다.
차라리 그렇게 된다면 편해질 수 있을 터였다.
이 감옥의 잔혹함은 절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단 점이니까.
상대를 짜부라뜨릴 정도로 누르지만, 정말 못 버티고 쓰러질 땐 귀신같이 그 무게감이 사라진다.
즉, 대상에게 극한의 근육통을 안겨 주기 위한 최적의, 최악의 감옥이 바로 이곳!
칼리토의 권능으로 늘어난 힘 능력치로도 감당할 수 없는 신의 징벌이었다.
“호그나이트.”
스르르-
재호가 감옥 앞에 서자 그를 짓누르던 돌덩이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일그러졌던 그의 표정에도 찰나의 순간에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접속하지 않았다는 듯.
“표정 다 봤어.”
“……놀리려고 온 거냐?”
으르렁거리듯 입을 연 호그나이트가 재호를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쇠창살을 찢고 전력으로 달려들고 싶었다.
“치사한 놈. 이길 자신이 없어서 사기 NPC 뒤에 숨기나 하는 놈.”
타격감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유치한 항의.
그리고 무엇보다.
“무슨 소리야? 너 나한테 털렸잖아. 나 대 전적 100%라고.”
1전 1승의 압도적인 전적.
“개소리하지 마! 한 번밖에 안 싸웠잖아!! 다시 붙어! 제대로 붙자고!”
어쨌든 승률 100%였다.
쿠웅-
자존심이 상한 호그나이트가 발작을 일으키자 그를 누르던 돌덩이가 다시 묵직해졌다.
“그리고 솔직히 따지면 한 14전 14승이지.”
“끄으으……?”
말은 못하고 눈빛으로 의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건 또 무슨 미친 소리냐고.
“네가 날 피해 도망 다니면서 학살을 벌인 횟수가 13번이거든. 다시 말해 기권패라는 뜻이지. 아! 혹시 내가 모르는 사건이 또 있으면 말해. 전적에 추가해 줄 테니까.”
호그나이트의 얼굴이 돌덩이에 짓눌릴 때보다 더 시뻘게졌다.
그만큼 재호의 도발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뜻.
“이… 개새ㄲ…….”
숨이 넘어갈 듯 헐떡대는 그를 가만 보던 재호가 털썩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칼리토 어디 있냐?”
“?”
구구구-
재호의 질문에 반응한 듯, 거대한 돌덩이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마치 대답할 정도의 여유는 주겠다는 듯.
“…무슨 소리냐?”
일단 모른 척 잡아뗐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 아무도 안 믿을 헛소리는 치우고 말해 봐. 지금도 칼리토랑 같이 있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호그나이트는 여전히 칼리토와 함께 있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호의 생각은 달랐다.
전부터 계속 의심하던 점이 있었는데, 마침 내려오기 전에 만난 스트로앤 교황과 대화하면서 더 구체적인 의심이 든 것이 있었다.
“확인해 봐.”
“뭐, 뭘 말이냐?”
“칼리토가 도망치지 않고 남아 있는지.”
“…….”
그 순간, 호그나이트는 생각했다.
지금도… 이전에도… 칼리토가 힘을 주긴 했지만 어쩐지 항상 자신에게 붙어 있는 것 같진 않았다는 것을.
특히 자신의 원수나 다름없는 스트로앤 교황과 재호가 앞에 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칼리토! 칼리토!!’
애써 당혹감을 감춘 채 칼리토를 불렀지만, 이번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