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37
1036화
오랜만에 신목과 마주한 재호.
대화는 꽃집에 머물 때마다 겸사겸사하긴 했지만,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코아 섬? 그리 들어선 거기가 어디인지 모르겠구나.]먼저 아코아 섬을 직접 이야기해 봤지만, 신목은 알아듣지 못했다.
“혹시 리젤란 숲 이전에 살던……? 심겨 있던? 아무튼. 다른 곳에 있었던 적이 없나 싶어서요.”
잠시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표현이지만 어쨌든 의미는 제대로 전달되었다.
[글쎄. 나는 태초부터 리젤란 숲에 있었다. 네가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다오.]신목의 이야기에 재호는 아코아 섬에서 발견된 생령과 차원의 흔적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알드리온은 그것이 세계수의 흔적으로 추측된다고 말한 것도.
[아하- 그 이야기였구나.]그제야 신목은 재호가 말하는 아코아 섬이 무엇인지 알아들었다.
[아마 그 또한 나의 일부였을 거다. 정확하게는 뿌리였겠구나.]“뿌리……?”
그러고 보니 재호는 아코아 섬의 위치가 미묘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리젤란 숲이 있는 곳과 거의 정반대 쪽이었지.’
그럼 본래 세계수는 이 세계를 완전히 가로지르고 있었단 뜻.
“엄청 거대했군요.”
크기부터 세계의 기둥이라고 불릴 만했다.
[그리 단순히 생각하지 말거라. 뿌리가 반대편에 있다고 해서 실제 크기가 그만하다는 게 아니니.]재호의 일차원적인 상상에 신목이 정정했다.
[모든 생명을 위한 힘이 세상의 중심에 뭉쳐져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힘의 순환을 위한 길을 만들어 주었지. 그 흔적이 바로 세상 반대편의 뿌리이다. 사실 뿌리라고 말했지만, 보통의 나무와 같은 형태는 아니다. 하나의 뿌리로 이어진 너른 풀밭이 대지에 펼쳐져 있었으니까.]길게 설명했지만, 역시 쉽게 이해되는 형태는 아니었다.
이해한 대로 정리해 보자면 리젤란 숲과 아코아 섬에 각기 별개 개체가 있었지만, 결국 정신은 이어진 하나의 신목이자 일부였다는 말.
“그럼 지금도 반대편에 뿌리가 있어요?”
[그렇지는 않다. 아직 나는 성장하는 중이며 과거의 수준을 되찾으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하긴 따지고 보면 신목이 부활한 건 생각처럼 그리 오래된 게 아니었다.
그러니 세상 반대편까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도 이해되었다.
“어쨌든 리젤란 숲에선 떠났지만, 아코아 섬에는 그 흔적이 남았을 수 있다는 거군요.”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악마가 그곳에서도 자리 잡고 일을 꾸미고 있었다니…….]거기까지 말한 신목은 잠깐 침묵하며 골똘히 상념에 빠졌다.
재호도 집중에 빠진 신목을 방해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그 말 많은 신목이 갑자기 침묵하는 건 뭔가 이유가 있다는 것.
[혹시 말이다.]제법 시간이 흐른 뒤 이야기를 꺼낸 신목.
[네가 가지고 있던 수상한 지팡이를 지금 가지고 있느냐?]“수상한 지팡이?”
뭘 말하는지 바로 이해한 재호는 저번부터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무무만의 스태프를 꺼냈다.
[그것을 내 앞의 대지에 꽂아 보렴.]목적을 알 수 없는 요구지만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그대로 따랐다.
사아아-
신목에서 흘러나온 초록빛 기운이 대지를 타고 흐르며 지팡이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지팡이도 그 기운과 공명하더니 희미하게 떨며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건 신목의 기운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그걸 본 재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 내가 여태 몰랐구나.]신목이 탄식을 흘리며 기운을 거두었다.
“혹시 신목님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
질문이지만 이미 확신을 담고 있었다.
[그래. 이 지팡이는 나의 일부로 만들어졌구나. 아주 오래전에 남겨진 흔적으로.]신목으로 만들어졌다는 무무만의 스태프.
이 안에 강대한 힘이 담겼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알 것도 같았다.
[혹시 네가 보았던 아코아 섬 말이다. 혹시 그곳에 내 뿌리의 흔적이 있더냐?]“자세히 본 건 아니긴 한데…….”
기억을 가만 더듬어 보는 재호.
시커먼 구덩이밖에 기억이 안 났지만, 그 아래에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알드리온이 말하기로도 본래 수인들의 성소였으나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거 내가 틴라이트의 도움을 받아 리젤란 숲을 떠난 후, 그곳에 남은 뿌리를 재료로 만든 것 같구나. 내 일부를 누군가에게 빼앗긴 기억은 없으니 말이야.]“이게 아코아 섬에서 만들어졌다는 말이군요.”
재호는 무무만의 스태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리젤란 숲에서는 틴라이트와 엘프들이 깔끔히 처리했을 테니까. 그 외에 내 흔적 일부를 얻을 만한 곳은 없지.]지금으로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지팡이와 가장 관련이 있는 건 칼리토인데…….
그렇다면 칼리토는 대체 언제부터 이 만일의 사태를 준비했던 것일까?
‘아니지. 만일의 사태를 준비했다기보다는…….’
더 큰 미래를 그렸던 것에 가까울 듯싶었다.
당시 칼리토의 탐욕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향했다.
하지만 그 무한한 탐욕이 결코 거기에서 멈출 리가 없었고, 그걸 칼리토 스스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참… 이걸 얻은 지 한참 되었는데 이제야…….”
뭔가 비밀이 있지 않을까 계속 생각은 했는데, 그 정답을 바로 앞에 두고 참 멀리도 돌아왔구나 싶었다.
신목 앞에 그냥 꽂아 넣는 걸로 이 지팡이의 정체를 바로 알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누가 알았겠느냐? 설마 악마의 손에 나의 일부가 들어가 위험한 물건이 되었을지.]신목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사실 신목 역시 줄곧 자신의 주변에서 기이한 느낌을 받고 있었는데, 그것이 알고 보니 과거 자신의 일부였던 것으로 만든 물건이라니.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이 안에 담긴 힘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봉인한 것 같다. 나조차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봉인이라……. 하지만 정작 칼리토도 이걸 어쩌지 못한 것 같던데요?”
[그 존재가 한 봉인이 아니니까. 이것이 스스로 자신을 봉인한 게야. 그릇된 방식으로 이 힘이 사용되는 걸 막기 위해. 조화란 그런 것이지.]그럼 칼리토는 이 안에 든 힘을 얻는 걸 포기한 걸까?
아니면 방법을 찾을 때까지 세상에 떠돌도록 내버려 둔 것일까?
“어쨌든 언젠가는 칼리토가 이걸 되찾으려 하긴 했겠죠.”
[이제 와서 의도를 생각한들 의미가 있겠느냐? 중요한 것은 그것이 네 손에 있다는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쓰는가 아니겠느냐.]신목의 말이 맞았다.
중요한 건 아직 칼리토의 손에 넘어가지 않고 재호에게 있다는 것.
‘정리하자면 고대 신목의 힘이 봉인된 지팡이란 건데…….’
재호는 당장은 딱딱한 몽둥이일 뿐인 이 지팡이를 어디에 쓰면 좋을지 떠올랐다.
‘로두카의 계획에 대신 쓸 수 있겠는데?’
사실 제일 골치 아프던 문제였다.
로두카의 계획을 위해 필요한 네 가지는 각각 천계, 중간계, 마계로 대표되는 힘과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세계수의 힘.
재호는 가능하면 일을 마계에서 하고 싶고 프티머스도 그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제일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신목을 뽑아 마계로 가져오라는 로두카의 망언이었다.
솔직히 그게 가능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고 할 생각도 없었다.
대신 다른 방법이 없을지 신목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디노스 섬에서 했던 것처럼 신목 일부를 가지고서 모조품(?)을 키워 내는 방식으로 때울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비밀을 알게 된 무무만의 스태프라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신목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신목 역시 해당 계획을 듣더니 긍정적으로 답했다.
[나쁘지 않은 발상이다. 어차피 내가 다시 세상에 자리 잡은 이상, 그것은 과거의 잔재일 뿐. 진작 자연과 동화되어 사라졌어야 했음에도 억지로 붙들려 있을 뿐이니. 다만 나는 그 일을 마계가 아닌 중간계에서 했으면 싶구나.]“예? 그럼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 일을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며 잘 풀리더라도 향후 대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그래서 대륙에서 하는 건 피하려 했다.
[네 걱정은 나도 안다. 하지만 중간계가 왜 달리 중간계겠느냐? 이곳은 모든 차원의 완충 지역. 그 계획이 시작되면 발생할 막대한 힘은 묶여 있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질 텐데, 그것이 마계에 스며드는 게 더 좋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마계는 불안정한 상태지 않더냐.]그러고 보니 이클립스에서 다크사이더의 죽음 이후 마계의 힘이 조금씩 들끓는 중이라고 스트로앤 교황에게 들었었다.
그 상황에서 프티머스나 알드리온, 거기다 신목의 힘까지 보태어지면 도리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중간계가 낫다. 아니, 좋다. 다른 두 세계보다 이곳은 훨씬 강하고 안정된 세상이니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파괴적인 상황이 걱정된다면 아예 아코아 섬이란 곳에서 일을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아! 그것도 괜찮네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장소니까.”
재호는 꽤 괜찮은 생각이다 싶었다.
모든 게 잘 해결이 된다면 말이다.
* * *
변경된 계획을 먼저 스트로앤 교황에게 전하자 그는 다른 말 없이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신목이 직접 제안한 것이기에 스트로앤 교황도 딱히 반박할 이유가 없었던 모양.
프티머스 또한 신목의 제안이라고 하자 군말이 없이 따랐다.
다른 것보다 프티머스가 잠자코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새삼 신목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 말 많고 입맛 까다로운 나무라고만 생각했던 재호였기에 아주 약간의 반성 시간을 가진 것은 덤.
마지막으로 마계의 로두카에게도 해당 소식을 전해 줘야 했다.
아마 그녀 또한 별다른 반대 없이 받아들이리라 예상했다.
애초에 로두카는 장소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마계로 향하기 직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키스트의 귓속말이 도착했다.
-알시아! 마계 갈 거지?!
“뭐야? 어디서 보고 있는 건데?”
재호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며 물었다.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나한테 퀘스트가 떴어! 같이 가자!
“퀘스트?”
순간 번쩍 떠오르는 건 키노.
흑탑주였던 그녀는 마계에서 차기 색욕의 대공이 되기 위한 과정을 진행 중이었다.
그러니 다키스트가 퀘스트를 받아 마계로 간다고 하면 보나 마나 그와 관련된 것일 터.
“혹시 퀘스트 내용이 뭔데?”
-탑주님이 마계에 있다네? 그런데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고 있나 봐. 가서 도와주래.
이미 짐작한 내용이었다.
“그럼 나 먼저 가 볼게. 너도 쫓아와!”
-뭐? 야! 같이 가! 아니면 또 골……!
끝까지 듣지 않고 바로 마계로 넘어간 재호.
그리곤 티나와 함께 로두카의 영역으로 달렸다.
최대한 빨리 가려고 해도 제법 시간이 걸리는 거리.
‘지금 로두카한테 퀘스트가 뜬 걸 보면 벌써 상황이 끝나진 않았을 거야.’
그러니 절대 늦을 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구체적인 상황인지는 가 봐야 알겠지만…….
그렇게 한참을 달려 골짜기 너머 저 멀리 색욕의 대공 영역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쿠르르-
하늘을 뒤덮은 보랏빛 구름.
원래 마계 하늘이 창창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지금 보이는 풍경은 특히나 기괴했다.
구름 사이로 번쩍이는 검은 번개까지…….
뭔가 일이 터진 게 분명했다.
아마 그건 칼리토가 벌인 짓일 테고.
“알시아 님! 저길 보세요!”
엘프의 눈으로 한참 먼 곳을 살핀 티나가 외쳤다.
‘뭘 보라는 거지?’
물론 너무 멀어 재호 눈엔 보이지 않았기에 망원경을 사용했다.
어렴풋이 보이는 로두카 성.
곳곳이 무너지고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주변에선 몬스터인지 악마인지 모를 것들이 마구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유달리 존재감을 뿜어내는 목이 긴 짐승이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