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38
1037화
‘외성이 안 뚫린 걸 보면 아직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 같네.’
그 아래 바글바글한 숫자들로 들이받듯 달려드는 걸 보면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효율적인 공성 작전이 진행 중인 건 아닌 것으로 보였다.
무너진 것 같던 성벽들도 다시 보니 외벽이 떨어져 나간 것일 뿐.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확인되는 적들의 흔적들에서 새로운 의문이 들었다.
“쟤들 계획이라곤 전혀 없이 무작정 돌진만 한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네.”
흔적을 확인한 티나의 말에 재호도 동의했다.
눈앞에 보이는 걸 모조리 부수며 전진할 정도로 저돌적인 집단.
적들이 더 자세히 보일 만큼 접근하니 그 저돌성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수들이구나.”
로두카의 성을 공격 중인 적들은 악마가 아닌 마수들.
그러니 저런 무식한 공성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짐승들에게 공성 개념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마수들의 움직임을 순수한 짐승의 본능이라고 할 수도 없긴 했다.
어쨌든 특정 장소로 몰려들어 공성을 벌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니까.
‘마수가 조직적으로 날뛴다라…….’
비정상적인 일이기에 배후에 칼리토가 있음이 뻔히 예상되었다.
파앗-
재호와 티나는 미리 확인했던 스팅이 있는 위치로 조용히 접근했다.
‘칼리토의 능력 일부를 지닌 수인이라…….’
도대체 얼마나 강할지 걱정되었다.
‘운이 좋으면 스팅도 호그나이트처럼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고.’
사실 마수들을 이끌고 여기 나타난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낫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스으-
후방의 마수들 사이에서 호위를 받듯 서 있는 스팅.
길쭉한 모가지는 마수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오히려 주변 마수들이 평범한 판타지 속 야생 동물처럼 보였다.
“뒤통수부터 까 버릴까요?”
적극적인 티나의 의견에 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 스팅 정도 되면 그걸로 죽진 않겠지.”
일단 가벼운 뇌진탕으로 시작하는 게 여러모로 나을 터.
싸우지 않더라도, 혹여 싸우게 되더라도 말이다.
타닷-
티나는 재호와 멀어져 아래가 적당해 내려다보이는 높은 장소로 향했다.
그사이 재호는 기회를 살피기 위해 를 두르고 좀 더 가까이 접근했다.
‘그러고 보니 망토가 냄새도 막아 주던가?’
가 소리는 못 막는다는 걸 생각하면 왠지 냄새도 노출될 것 같았다.
마수 중, 후각이 발달한 녀석이라면 재호의 접근을 알아차릴지도 몰랐다.
킁킁-
‘역시…….’
아니라 다를까, 가장 가까이 있던 몇몇 마수가 코를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지워진 재호의 존재감 탓에 녀석들은 곧 관심을 끊었다.
접근하는 생명체에게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주변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인식한 모양.
재호는 안심하고 스팅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위치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딱 좋은 타이밍에 티나가 활시위를 당겼다 놓았다.
피잉-
마나로 이루어진 화살이 빛의 꼬리를 그리며 스팅의 뒤통수로 쏘아졌다.
꽈아앙-!!
폭탄이 터진 것 같은 굉음과 함께 크게 꺾이는 스팅의 머리.
하필 목도 긴 탓에 ‘∩’ 형태로 휘어 버리자 재호는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약하게 쏜 거 맞나?’
반쯤 의심이 담긴 시선으로 티나를 잠시 흘깃한 재호.
크르륵?!
그래도 방금 일격으로 티나는 마수들의 어그로를 확실히 끌게 되었고 재호는 숨을 죽인 채 마수들이 티나를 향해 달려들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저런 마수들이 아무리 달려든다고 한들 티나에겐 상처 하나도 못 낼 것이다.
그러면 재호는 스팅에게 접근해 상태를 확인하고…….
“음?”
그런데 마수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스팅이 공격을 받았음에도 그르렁거리기만 할 뿐, 꿈쩍이지도 않는 마수들.
‘뭐지?’
생각한 것과 다른 상황에 재호는 멈칫했다.
‘완벽하게 통제를 받고 있어서 그런가?’
하지만 자기들 대장-으로 추측 중이지만-의 뒤통수에 구멍이 날 뻔했는데 가만있는 건 좀 이상했다.
그리고 얻어맞은 스팅도 비틀거리고 일어나더니 티나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는 상황.
“…티나?!”
“?”
이윽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익숙한 목소리.
“티나! 혹시 알시아도 여기 있어?”
“스팅! 멀쩡한 건가?”
친근하게 말하는 스팅의 모습에 티나도 잠시 당황하곤 큰소리로 되물었다.
“당연히 멀쩡하지!”
대답은 그렇지만 진실은 알 수 없었다.
스팅인 척하는 칼리토일지, 아니면 칼리토를 품은 스팅인지… 그도 아니면 진짜 멀쩡한 스팅인지…….
‘마지막 경우는 아니겠지.’
그러면 저기 서서 마수들의 주인인 척하고 있을 리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
어쩌면 재호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일지도 모르기에 티나는 계속 대화를 이끌었다.
티나가 혼자 이곳에 나타날 리는 없다는 걸 스팅도, 칼리토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뜻을 파악한 재호도 계속 모습을 숨긴 채 상황을 주시했다.
스팅에게서 수상한 행동이나 반응이 있는 건 아닐지.
“난 동족들의 복수를 하는 중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너도 봤지? 아코아 섬에 살던 우리 동족들이 악마에게 처참히 당했던 것. 그리고 이곳에 악마들의 우두머리가 있다는 말에 찾아왔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물론 로두카를 생각하면 진정한 악마들의 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수인족의 복수의 대상이 될 순 없었다.
‘칼리토가 중간에서 장난을 친 모양이네.’
재호는 지금 벌어지는 전투 현장을 다시 살폈다.
‘그러고 보면 이상하네. 로두카 쪽이 아무리 사정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성벽 뒤에서만 사리고 있는 건 이상해. 그렇게 약한 세력이 아닌데.’
물론 수성 입장에선 적들의 진입을 막고만 있어도 목표는 달성한 셈이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스팅이 만약 칼리토의 조종을 받거나, 혹은 칼리토가 장악한 상태라면 이런 비효율적이고 요란한 공성을 벌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좀 더 은밀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목표를 위해 치명적인 한 수를 준비할 터.
그런 의심들이 정리되고 지금 스팅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자 확신이 들었다.
‘저건 진짜 스팅이다.’
그리고 마침 티나가 스팅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검증법을 시도했다.
“스팅! ‘칼리토는 XXX다!!’ 이걸 네 입으로 말해 봐!”
“?”
당황한 스팅이 티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갑자기 그건 왜…….”
“말해! 칼리토는 XXX다!!”
티나의 단호한 외침에 어리둥절한 표정의 스팅이 입을 열었다.
“칼리토는 XXX다!”
“음. 진짜 스팅이 맞군.”
결심을 내린 재호가 그리 말하며 망토를 벗었다.
화들짝!
바로 옆에서 갑자기 나타난 재호 탓에 놀란 마수들이 눈이 똥그래지더니 곧 그르렁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무작정 달려들지 않고 재호를 노려보기만 했다.
“알시아!!”
스팅은 얼른 주변의 마수들을 진정시키며 뒤로 물렸다.
“스팅.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티나에게 말한 대로인데? 여기가 마계라며? 그리고 아코아 섬의 우리 동족을 그렇게 처참히 짓밟은 자도 대악마라고 들었어.”
교묘한 말이었다.
마계 전체의 연대 책임을 들먹이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애초에 칼리토는 마계에서도 축출된 존재였기에 역시 억지스럽긴 마찬가지.
“아니지, 상황 파악 이전에 일단… 이 마수들은 전부 네 통제를 받는 건가?”
“맞아. 이곳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이지.”
“그렇다면 일단은 전투를 멈추고 모두 물러나라고 전해 줘.”
“응? 왜 그래야 하지? 악마라면 당연히 쓰러트리는 게 좋은 일 아닌가?”
스팅의 순수하고 원론적인 질문.
“그렇긴 한데…….”
‘착한 악마도 있다!’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거만큼 설득력 떨어지는 주장도 없었다.
“그리고 저쪽은 아직 제대로 된 반격도 못하고 있어. 처음 봤을 때부터 이 세계의 동물들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대단한 전투력이야. 아마 얼마 가지 않아 성벽을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아!”
스팅은 기뻐하며 말했지만, 재호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처지.
“저 안에 있는 악마가 내 친구거든. 그리고 그 악마는 아코아 섬의 사태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
“뭐? 하지만…….”
“네게 그런 이야기를 해 준 게 누구야? 아마 그런 정보를 그냥 얻었을 리는 없을 텐데?”
“그건…….”
잠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기억을 더듬어 보던 스팅은 이내 알 수 없단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그런 확신이 강하게 들었어.”
“갑자기 확신이 들어서 여기까지 쳐들어온 거다?”
“그러게? 이상하네. 나는 당연하게 느끼고 있는데, 듣고 보면 당연한 게 아니잖아?”
칼리토가 수작을 부리긴 했지만, 스팅의 정신을 완전히 장악한 게 아닌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이상한 걸 느꼈으면 어서 싸움을 멈춰! 지금 왜 저쪽이 잠잠한지 모르겠는데, 만약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서기 시작하면 네 친구라는 애들이 다 죽을지도 모르거든?”
뭔지 모를 사정으로 인해 지금은 두들겨 맞고 있지만, 로두카든 키노든 누군가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끼이이이-
그 순간, 로두카의 성 쪽에서 소름 끼치는 굉음이 들려왔다.
소음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상황은 벌어진 이후였다.
꾸에에엑-!!
끄르륵!!
성을 공격하던 많은 수많은 마수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검은 광선에 닿는 순간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안 돼!”
경악하는 스팅과 이마를 짚는 재호.
“내, 내 친구들이……!!”
압도적인 무력 앞에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마수들의 모습에 분노가 끓어오른 스팅이 뛰쳐나가려 했다.
텁-
하지만 재호와 어느새 다가온 티나가 그를 붙잡았다.
“싸우는 게 능사가 아니야! 일단은 마수들을 물리라니까!!”
“알시아! 너는 우리의 형제야! 그럼 저기서 죽어 가는 녀석들은 곧 네 친구이기도 하단 말이야!!”
이글거리는 스팅의 눈을 본 재호는 그가 선택을 종용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아니, 형제를 언급한 이상 사실상 강요였다.
너 내 편이냐, 아니냐?
이 유치하고 극단적인 상황 속, 재호는 고민도 하지 않았다.
“말이라고 해? 당연히 저쪽 편이지.”
“?”
재호가 아무런 미련도 없이 손을 떼고 물러나자 티나도 떨어졌다.
“…알시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마계로 건너와 이 사태를 일으킨 건 너야. 그러니 네가 책임져.”
재호는 저 멀리 성벽 위, 머리칼을 휘날리며 선 색욕의 대공 키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난 빠질게.”
“어, 어찌 형제이면서…….”
재호의 선택에 큰 실망과 분노고 뒤섞여 복잡한 얼굴이 된 스팅.
하지만 이내 이를 꽉 물곤 단호히 고개를 돌렸다.
“네 결정에 대해선 저 악마를 제압한 뒤 이야기하도록 하겠어.”
말투도 바뀐 걸 보면 단단히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재호는 바보 같은 선택으로 키노 손에 스스로 죽을 생각은 없었다.
저 난리가 나기 전에 전투를 멈추라고 몇 번이나 경고도 했다.
따르지 않은 건 엄연히 스팅이니, 책임도 그가 책임을 져야 했다.
‘그리고 직접 얻어맞아 봐야 내가 한 말을 이해하겠지.’
스팅은 분명 강하다.
하지만 지금 키노가 나서 가볍게 마수들을 지워 버리는 걸 보니 알 수 있었다.
‘사정이 있어서 바로 대응을 못했을 뿐, 역시 마수들의 공격은 별문제도 아니었던 거야.’
혹여 휩쓸릴까 싶었던 재호와 티나는 멀찍이 물러나 팝콘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