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39
1038화
사건은 시시하게 끝났다.
키노의 손짓 몇 번에 성벽을 두드리던 마수들은 증발했고 스팅은 뺨을 후려갈기는 로두카의 일격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팝콘을 뜯을 겨를도 없었다.
‘새, 생각보다 더 강해진 거 같은데.’
키노야 원래부터 드래곤을 상대로도 비등하게 싸울 수 있을 정도의 괴물이었다.
그런데 대악마로 다시 태어난 그녀는 그때보다 월등히 강해 보였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냅다 주먹질하는 건 어디서 배운 예절이냐?”
키노는 다소곳이 무릎을 꿇은 스팅을 쳐다보며 말했다.
목이 너무 길어 꿇었음에도 한참 높은 곳에 위치한 스팅의 머리.
그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키노는 검지로 가리키더니 까닥거렸다.
“고개 좀 숙이련? 내가 계속 너를 올려다봐야겠느냐?”
그 말에 쭈뼛거리며 구부정하게 고개를 내린 스팅.
하지만 차마 키노를 쳐다보지는 못하고 눈을 땅으로 향했다.
분명 스팅의 전투력은 대단히 강할 것이다.
직접 맞붙어 본 적은 없지만, 티나와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추측했다.
아무리 전력을 다한 공격이 아니었다지만, 그래도 무방비한 상태에서 티나의 공격을 맞고도 멀쩡한 것으로도 대단한 수준.
그런데도 느긋하게 다가온 키노가 후려갈긴 따귀 한 번에 저럴 정도면…….
‘그러게 물리라니까.’
재호는 스팅의 처량한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나는 7장로를 불렀는데 어째서 네가 먼저 여기 온 것이냐?”
키노는 재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마침 올 일도 있었고 도움도 필요한 것 같길래 서둘러 왔지. 다키스트에게 들었어. 어떻게 된 일이야?”
“별다른 일은 아니었지. 나는 이제 대륙으로 돌아갈 일이 없기에 임모탈리언인 7장로에게 내 의지를 흑탑으로 전달할 계획이었단다.”
“도와달라는 거 아니었어?”
다키스트는 분명 도움을 바라는 퀘스트라고 말했었다.
뭐, 지금 키노가 직접 상황을 수습한 걸 보면 역시 급한 게 아니긴 했던 모양이지만.
‘생각해 보니 진짜 급했으면 로두카가 나한테 직접 이야기를 전했을 수도 있겠구나. 아니, 이제는 키노가 색욕의 대공이니 키노와 내가 이어진 건가?’
아무튼 다키스트의 귓속말은 역시나 호들갑이었다.
생각해보면 ‘도움 요청’은 퀘스트 창에서 흔히 쓰이는 상투적 표현이었다.
그리고 타이밍이 워낙 절묘하다 보니 다키스트의 귓속말을 받은 재호도 확대해석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평소라면 항상 그랬듯이 다키스트를 먼저 의심(?)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재호의 잘못이었다.
“아니다. 그래도 내가 좀 늦었으면 스팅은 이미 죽었을 수도 있겠다.”
“후후, 날 너무 잔혹하게 바라보는 것 같구나. 저 안에서도 이 녀석의 기다란 목이 눈에 띄더구나. 그래서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느니라.”
다행히 키노는 재호의 부탁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야기나 한번 들어 보자꾸나. 힘의 전수를 마치고 쉬고 있거늘,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소란을 일으켰는지.”
키노의 말에 재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과정을 거쳐 스팅이 여기까지 온 건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스팅에게 숨어들었을 거라 짐작했던 칼리토의 파편은 어찌 되었는지도.
* * *
얌전해진 스팅은 모든 걸 털어놓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별것 없었다.
자신의 내면에서 갑자기 속삭임이 들려왔는데, 그건 마치 찰나의 깨달음과 같았다.
그리고 그 속삭임은 아코아 섬에서의 참상을 배후에서 조종한 자가 있다고 말했다.
바로 색욕의 대공 로두카.
그래서 스팅은 복수를 위해 다짜고짜 마계로 뛰어들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마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스팅이 마수들까지 우르르 끌고서.
“뭔가 많이 생략된 것 같데?”
재호의 물음에 스팅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나, 나도 이유를 모르겠어! 그땐 그게 아주 당연히 진실이라고 생각했고 극심한 분노가 끓었어!”
그러면서 슬쩍 키노의 눈치를 살폈다.
“아마 칼리토에게 미약한 암시가 걸린 모양이구나. 멍청한 표정을 보니 정신을 완전히 장악당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뒤늦게 그 밑도 끝도 없는 믿음에 의문을 가지는 걸 보면.”
“그럼 스팅 안에 칼리토는 확실히 없는 건가?”
“참 애매하구나. 그렇다고 완벽히 사라졌다고 할 순 없으니. 칼리토는 이 녀석을 자신의 숙주로 삼고자 한 게 분명하다. 이 종족의 타고난 강함이 탐이 났겠지. 하지만 완전히 장악하는 데 실패하고 도리어 흡수당한 것 같은데…….”
“뭐? 칼리토가 도로 흡수당했다고?”
“수인족의 특징인지, 아니면 이 녀석만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보이는 결과는 그렇구나.”
“그럴 수가 있어?”
“세상일이란 것이 어찌 우리 생각의 범주에서만 벌어지겠느냐? 일어났으니 그뿐. 너는 운이 좋았고 칼리토는 운이 나빴구나.”
스팅을 향한 키노의 이야기.
재호는 문득 스팅의 ‘불운함’이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 결과는 그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럼 마수들을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칼리토가 흡수되면서 벌어진 현상일까?”
“단순하게 생각하거라. 악마의 힘을 흡수하며 이젠 악마가 된 거다. 수인종이 악마가 되었으니 마수인이라고 해야 할까?”
“마수인…….”
직관적인 표현이었다.
“축하해-”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오랜 세월이 지나 정말 오랜만에 마수들의 지배자 등장했구나.”
그리 말하는 이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아름다운 중년 여성이었다.
어쩐지 낯익은 그 얼굴을 가만 보던 재호가 겨우 입을 열었다.
“……로두카?”
“호호호,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니? 부끄럽게.”
“아니… 그야…….”
전에 본 것과 노화 상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안색은 그때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그럼에도 재호가 한참을 쳐다봐야 했던 건 눈부실 정도로 새하얗게 탈색된 머리카락 때문.
“머리카락 색이 왜 그래? 머리카락 혼자 노화를 앞서나가기라도 한 거야?”
“재밌는 농담이야-”
어쨌든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니 확실히 예전의 로두카가 아님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방금 한 말은 무슨 뜻이야? 마수의 지배자?”
“마계의 역사 속에서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거든. 가장 최근에는 리스피롤의 울트모스가 가능성이 있었지만, 알다시피 네 손에 죽임을 당했으니까.”
재호는 과거 마계 최강의 마수라던 녀석을 잡은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살아 있었다면 마수들의 지배자 되었을지 모른다고 하니 새삼 얼마나 강한 존재였는지 알 것 같았다.
“오랜 시간 마수들은 지배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왔지. 하지만 그 탓에 그들 다수는 악마들의 사냥감 또는 장난감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야. 하지만 마침내 마수들의 지배자가 등장했으니, 마수들의 복이자 마계의 복이구나.”
본능적으로만 날뛰는 마계의 짐승들.
그 짐승들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짐승들의 왕.
재호는 스팅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과연 당사자는 갑작스러운 이 변화를 어떻게 생각할지…….
“마수왕……. 멋진데?”
“어?”
“맞아. 돌이켜 보면 이상했어. 난 동족들과 어딘가 다르다고 늘 생각했거든. 특히 나를 따라다니는 불운함.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 사실 나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지.”
“어… 음…….”
재호는 딴지 걸고 싶은 욕구가 솟아났다.
불운함이 마계와 무슨 상관이며, 애초에 지금 사태는 칼리토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하지만 스팅이 너무 진지한 얼굴이라 차마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난 마수왕이 될…….”
“그런데 뺨 한 대 맞고 기절한 놈을 왕이라고 할 수가 있어?”
티나의 순수한 의문에 스팅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목이 길어서인지 유난히 꿀렁거리는 게 잘 보였다.
“호호- 그야 당연한 결과지. 이제 갓 자격을 얻은 꼬맹이가 시작부터 완성된 대악마를 상대로 뭘 알겠니? 지금은 그저 말이 통하는 마수라 봐야지. 아니다. 다짜고짜 마음의 소리에 따라 무식하게 달려드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가?”
비웃음인지 뭔지 모를 로두카의 말에 스팅이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네가 선택하렴. 앞으로 마계에 머물며 운 좋게 얻은 그 힘을 완전히 소화할 것인지, 아니면 중간계로 돌아가 애매한 삶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인지.”
“…결국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는 것처럼 들리는데…….”
스팅의 대답대로였다.
결국은 전자를 택해야만 스팅 또한 안전할 테니까.
“마계에 남겠다. 어차피 나는 저쪽 세계에서도 혼자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으니까.”
말미에 우람과 함께 여행을 다니긴 했지만, 자신을 향한 의심의 눈빛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나 짧은 시간 교류한 마수들은 어떤가?
자신을 보자마자 먼저 다가와 호감을 표현해 주었다.
마치 오랜 시간 알고 있었던 것처럼…….
“흐음- 가만 보니 짐승들의 수호신에게 보살핌을 받았었나 보네? 그러면 마수들의 반응도 이해가 돼.”
그때, 스팅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로두카가 말했다.
그러자 재호의 머릿속에 바로 떠오른 건 사사.
실제로 수인들은 사사의 사랑을 듬뿍 받던 존재였으니 아마 로두카의 분석이 정확할 것이다.
“아무튼 스팅은 그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그 또한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니겠니? 그래도 꽤 유능한 대악마가 탄생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내 기대보다도 대단할 테니까.”
로두카는 애정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키노를 돌아보며 말했다.
재호의 눈엔 그 모습이 마치 자랑스러운 딸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좀 더 악마답게 생각한다면…….
‘오랜 세월 끝에 완성한 자신의 음모에 만족하는 것 같기도.’
진실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슬슬 네 방문 목적도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
재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칼리토를 잡기 위해 천사 및 신목과 합의된 내용을 전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로두카는 변경된 계획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대악마가 아닌 네가 이번 일을 할 순 있는 거야?”
색욕의 대공이 지닌 권능은 모두 키노에게 전수해 준 로두카.
그럼 예전과 같은 능력은 당연히 보여 줄 수 없을 터였다.
“힘만 세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거든. 연륜이 뭔지 한번 느껴 보렴.”
로두카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그리고 지금이 오히려 최적이라 할 수 있지. 대악마의 격을 지닌 채 차원을 넘는 것보단 훨씬 부담이 덜하니까.”
로두카가 그렇다면 그런 것.
“알았어. 그럼 나도 돌아가서 준비를…….”
쾅!!
그때, 바깥에서 들려오는 난데없는 굉음.
그리고 재호가 얼굴을 굳히려는 순간.
“탑주님!! 제가 왔습니다!!”
한참 늦게 등장한 바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멍청아! 기껏 조용히 들어왔는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
그리고 따라서 소리 지르는 또 다른 바보도 있었다.
* * *
바보 자매 두 사람은 자기들이 파괴한 로두카 성의 내부 복구 작업에 붙잡혔다.
재호는 그 어처구니없는 듀오를 보며 혀를 찬 뒤, 티나와 마계에서 복귀했다.
스팅 또한 마계에 남았고 이젠 그곳에서 새 출발을 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진 모르지만…….
‘본인이 행복하다면야.’
그리고 칼리토의 헛짓거리가 저지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그쪽은 신경 끄고 눈앞에 닥친 일에 집중할 시기.
재호는 로두카가 중간계로 넘어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아무리 로두카의 격이 하락했다고 하더라도 전 대악마였다.
그것도 고대부터 존재해 온, 현 마왕보다 위대한 존재.
플레이어들처럼 불쑥 넘어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반발 작용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최대한 주의해야 했다.
특히 중요한 건…….
“절대로 화원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됩니다!”
[알았다고 몇 번을 말하느냐!!]로두카의 강력한 마기가 꽃들에 영향을 미치는 건 반드시 막아야 했다.
재호에게 있어 그것만큼 민감한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