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78
177화
균열 마석은 약 2미터 정도 되는 보라색 크리스탈로, 내부는 들여다보고 있으니 마치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걸 부수기만 하면 된다 이거군…….”
“그런데 알시아님. 뭔가 수상합니다.”
“왜 주변을 지키는 악마가 전혀 없을까요?”
엘프들의 의심에 패로우는 펄쩍 뛰며 손을 저었다.
―마계에서도 서로 다른 세력들이 치고받고 싸우긴 하지만, 중간계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목적만큼은 동일하다. 게다가 최근 들어 가장 먼저 균열을 뚫는 데 성공한 마석이 이곳이라 디아키님께선 한창 협상으로 바쁘시지.
이야기를 듣던 재호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리젤란 숲은 마계와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나? 그런데 굳이 이곳을 고집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곳은 마왕께서 직접 뚫으신 곳인 데다 지리적으로 불리하기도 하다. 바로 사방이 바다기 때문이지.
“뭐?”
지금까지 대륙 구석에 박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리젤란 숲.
헌데 섬이라고?
“맞습니다. 리젤란 숲은 대륙 북서쪽에 위치한 거대한 섬입니다.”
설명을 요구하는 재호의 표정에 엘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 신목을 수호하고 있었지요.”
“전혀…… 몰랐네.”
그제야 악마들이 제대로 대륙 진출을 하지 못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또 하나 의문이 들었으니.
“그럼 푸른산호 섬에 뚫은 균열도 별로 의미 없지 않아?”
―음?
당황한 패로우의 의문.
―이 균열이…… 섬과 이어진 것이냐?
패로우는 전혀 몰랐다는 듯한 방응이었다.
“뭐야? 진짜 몰랐어?”
재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이때까지 꾸준히 공격해 왔으면서 왜 그런 것도 몰라?”
―그, 그야 공격에 나선 건 하급 악마들밖에 없었으니…….
게다가 본능적으로 강렬한 신성력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곳을 목표로 무식하게 돌진한 탓도 컸다.
―그렇다면… 우리가 승리하더라도 결국엔 또…….
“바다를 건너야 하지.”
충격적인 사실에 패로우가 크게 휘청거렸다.
자신의 주군은 과연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
하지만 이제 와서 이걸 전할 방법은 없었다.
이미 그는 균열 마석까지 재호와 엘프들을 끌고 왔고,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대가리가 되기로 택했으니까.
“아, 패로우. 또 궁금한 게 있어.”
균열 마석을 부수기 전, 재호는 혹시나 싶어 그에게 질문했다.
“혹시 푸른산호 섬의 사람들에게 내려진 저주를 풀 방법은 없나?”
―저주라면 디아키님께서 직접 내린 것 말이냐?
“응. 그것까지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불가능하다. 그건 디아키님의 권능. 나 같은 중하위 악마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혹시 대화로 부탁해서 해결될 가능성은 없을까?”
―…….
“그건 좀…….”
“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차라리 그 녀석을 죽이러 가죠?”
엘프만 제외하면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뭐, 나도 기대는 안 했어.”
재호는 깔끔하게 미련을 접었다.
푸른산호 섬의 사람들의 처지는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혹시 파이라나 칼리토에 대해서 알고 있나?”
―……물론이다. 내 주군이신 디아키님과 같은 악마 귀족. 그중에서도 최상위 계급인 악마 대공이라 불리는 분들이다.
당연하게도 악마 귀족들 사이에도 계급이 나뉘어졌다.
대륙의 귀족 계급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으레 말하는 대악마들은 전부 악마 대공을 지칭했다.
그리고 모든 악마들의 왕인 마왕이 존재했고.
―하지만 마왕께서는 과거, 신목과의 전투로 심대한 타격을 받으신 뒤,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즉, 현재 마계를 지탱하는 최고 권력자들은 대공들.
―내 주군은 나태의 대공, 칼리토 대공은 탐욕, 파이라 대공은 교만. 그리고…….
“네 명이 더 있겠네.”
재호는 뻔히 예상된다는 듯 말했다.
―정확히 맞췄다.
그리고 패로우 역시 인정했고.
“근데 대체 나태가 지금 섬의 사람들에게 사용한 저주와 무슨 상관이야?”
생명력을 갉아 먹는 저주는 나태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음? 얼마나 끔찍한 나태인가? 일찍 죽일 수도 있는 것을 천천히 말라 죽게 만드는데.
“???”
인간의 기준으론 전혀 공감되지 않는 소리였다.
―게다가 사실 지금 뚫린 균열에 대해서도…… 주군께서는 큰 관심이 없으신 걸로 안다. 그저 장사하기에 좋다고 생각할 뿐.
“뭐? 근데 왜 이렇게 미친 듯이 병력을 갈아 넣어서 공격해대는데?”
―……그건…… 흠흠……. 주군이 아무래도… 나태의 대공이시다 보니… 사고를 안 치셔서 너무 심심했다…….
“……응?”
―그래서 장군들이 주군께 허락을 구한 뒤… 그저 유희거리로 즐기고 있을 뿐…….
“……뭐, 어… 그래. 알았어.”
하긴 중간계로 넘어와 죽은 악마들은 다시 부활할 테니까.
“뭐, 디아키에 대해선 거기까지만 하고… 혹시 칼리토나 파이라. 특히 파이라가 사는 곳은 여기서 멀어? 내가 그 양반하고 관계가 조금 안 좋거든.”
―대륙에 진출해 있는 대공이 몇 없는데, 그중에서 가장 잘나가던 게 파이라 대공이었지. 헌데 너를 만나 아주 탈탈 털리곤…… 기반을 몽땅 잃어버렸다고 들었다.
생각만 해도 우스운지 패로우는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기까지.
―파이라 대공의 영지는 이곳에서 가장 가깝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마계로 넘어왔다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테니까.
“무기를 찾으러 온다고 경고하던데?”
―무기?
패로우의 의문에 재호는 파이라의 화염장창을 꺼내 보여줬다.
그러자 순식간에 핼쑥해진 패로우의 얼굴.
―그,그,그,그,그,그,그건!!
그는 갑자기 자기 무기를 꺼내더니 냅다 눈앞의 균열 마석을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
―뿌, 뿌셔!!! 빨랑 뿌시라고!!!
“뭐야? 왜 그래?”
―이 미친 새끼야!! 그딴 걸 들고 있었으면 진작 말해야지!!! 빨리 부수고 튀자고!!! 안 그러면 파이라가 나타날 거야!!
이 정도로 다급한 걸 보면 어지간히 가까운 곳에 있는 모양이었다.
“야, 잠깐, 잠깐! 부수는 건 좋은데 이거 먼저 부수면 우리 탈출은 가능해?”
빠그작―
패로우의 맹공에 미세하게 갈라진 균열 마석.
―아.
그리고 한발 늦게 패로우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 * *
다행히 균열 마석은 완전히 깨지지 않았다.
다만 누가 톡 손만 대면 깨질 정도로 약화된 상황.
“거참… 힘 하나는 장사네.”
패로우를 향해 눈을 흘긴 재호는 빠르게 의논을 시작했다.
언제 파이라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
지난번, 무리해서 중간계에 자신의 본체를 강림시키려다 재호에게 당한 그는 힘이 굉장히 약화된 상태였다.
그렇지만 패로우는 말했다.
그 아무리 약화되었다 해도 대공이란 작위는 괜히 얻은 게 아니라고…….
마계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힘을 휘두르는 파이라가 그때보다는 훨씬 강할 거란 게 그의 추측이었다.
재호 역시 일리가 있다 생각되었다.
‘사실상 마계의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인데 벌써부터 잡힐 리가 없지.’
하지만 균열 마석을 처리할 방법은…… 결국 하나였다.
누군가 남아 희생을 해야 한다!
스으―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된 이는 패로우.
―?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대꾸했다.
―여기서 영원히 고문당하라고? 애초에 내가 마석을 파괴할 것이라 신뢰할 수는 있어?
“쳇.”
그렇다면 재호의 일행 중, 임모탈리언 중에서 누군가 희생을 해야 했다.
마계에서 사망을 할 경우엔 부활 포인트가 어떻게 될지 모르긴 했지만.
‘그래도 엘프들을 희생시키는 것보단 낫지.’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탕―
바닥에 방패를 찧으며 스트로앤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곳은 우리 아나볼릭 교단이 남겠습니다.”
“?!!”
한 명도 아니고 교단 전체가?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이야기들을 종합해 봤을 때, 푸른산호 섬의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려면 디아키와 담판을 내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설마……?”
당황한 재호를 향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그들.
“그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데요?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는데다 이곳은 대륙이 아니라 마계라 온통 적이고!”
재호의 만류에도 그들은 단호했다.
“누군가는 해야만 할 일입니다!”
“아니… 갑자기 댁들이 이렇게 나서면 우리는 뭐가 되냐고…….”
“후훗. 죄책감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가 원한 일이고, 대륙은 아직 알시아 폐하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가십시오!”
결의에 찬 목소리.
척― 척―
아나볼릭 교단 사제들은 일제히 재호로부터 등을 돌렸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듣지 않겠다는 단호한 뒷모습.
“……가자.”
재호는 결국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리고 그들의 뛰어난 희생정신과 의지력에 대한 보답을 약속했다.
“엘리시아 화원에 들어설 첫 번째 교단은…… 꼭 아나볼릭으로 하겠습니다.”
* * *
재호 일행은 최대한 빠르게 달렸다.
균열을 나가기 직전에 신호를 보내면 남은 아나볼릭 교단이 균열 마석을 부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구구구구―
“음? 무슨 소리 들리지 않냐?”
땅이 우는 듯한 소리.
힐끔 고개를 돌렸던 재호는 저 멀리 지평선 너머, 거대한 화염 거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쩐지 낯이 익은 것이…….
―아알 시이 아아아!!!!
재호는 고개를 돌리곤 다시는 쳐다보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자식!! 다 봤어!! 눈 마주친 거 다 봤다고!!!
“쟤 엄청 애타게 부르는데?”
“못 들은 척해.”
다키스트의 말에 재호가 답했다.
어차피 거리는 엄청나게 멀었고, 어지간해선 별다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파이라의 거대한 분노가 대지를 뒤흔듭니다.] [당신은 현재 마계에 있습니다.] [파이라의 영향력이 10배 증가합니다.]‘여, 열 배?!’
어마어마한 수준의 뻥튀기.
작정하고 싸우면 무조건 탈탈 털릴 거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뛰어!!”
저 멀리 보이는 균열.
쿠르르르―
“알시아님!!!”
“?!!”
갑자기 주변이 밝아졌고, 엘프들이 재호를 부르며 경고했다.
더 이상 외면하면 안 된다고.
“헉?!!”
파이라의 머리 위에서 만들어진, 마치 태양처럼 보이는 화염구.
그것이 재호 일행을 향해 막 내던져진 참이었다.
‘막는 건 말이 안 돼! 피하는 건? 그러기에도 너무 큰데……!’
엘프들조차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하고 멈칫하는 그 순간!
아아아아―
갑자기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고 고귀한 멜로디.
“아, 아나볼릭 교단……!!”
그들이 남아 지키고 있는 곳.
그곳에서 시작된 강한 빛은 거의 파이라만큼 거대한 거인의 형상이 되었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근육질 상체!
얼굴 없는 그 빛의 거인은 자신의 이두박근을 뽐내더니 파이라의 화염구에 손을 뻗었다.
“화신?!”
뭔진 몰라도 엄청 대단한 건 알겠다.
파이라가 던진 거대한 화염구과 맞서던 빛의 거인은 한참 씨름하더니 번쩍 들어 찢어 버렸다.
―이, 이 기운은……?! 아나볼릭!!! 아나볼릭 네놈이냐!!! 여기가 어딘지 알고 감히!!!
“알시아님! 가야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엘프들의 재촉에 재호는 결국 고개를 돌리고 균열로 몸을 내던졌다.
―크아아아아!!! 이 빌어먹을 자식들!!!
삐이이이―
그리고 마지막 엘프가 신호탄을 쏜 뒤, 마계를 떠났다.
* * *
파아아앗―!!!!
다시 변한 주변 풍경.
재호는 무사히 푸른산호 섬으로 돌아왔음을 확인했다.
파지지지직―!!
곧이어 균열도 마구 뒤틀리더니 사라져 버렸고.
“…….”
진짜로…… 아나볼릭 교단은 마계에 남았다.
그들이 과연 그곳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탈출 직전에 봤던 장면은 분명 경이로웠으나, 그것이 내내 가능한 건 아닐 게 분명했다.
‘그래도…….’
재호는 눈을 가만히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한 나름의 행동.
팀원들은 물론, 인간이라면 이를 가는 엘프들까지 묵념을 했다.
[아나볼릭 교단에서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그렇게 아나볼릭 교단의 마지막 알람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가자.”
이젠 다시 항구로 돌아가 곧장 출항을 할 생각이었다.
재호와 메이가 모두 자리를 비운 화원이기에 최대한 빨리 복귀하는 게 좋았다.
―완식. 여기 다 처리됐어.
―어? 벌써 돌아왔냐? 균열 닫았다고?
―응. 넌 아직 항구 쪽이지?
―어…… 그렇긴 한데…….
뭔가 찝찝한 대답.
―여기 사고 좀 터졌어.
―사고?
―지금… 푸독이랑 레니움 그 인간들 미쳐서 날뛰고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