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23
222화
라셀 왕국으로 향하는 길에 불현듯 테일러를 떠올린 재호.
필요할 때 아니면 머릿속에 조금도 떠오르지 않던 그를 찾은 이유?
그야 당연히 필요해졌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개도 영주니까 돈 많지 않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게다가 테일러가 보상으로 받아간 영지는 아리프 대공으로 변장한 대악마가 수십 년 키워 온 노른자 땅이었다.
아무리 폭발로 저택 부지가 깡그리 날아갔다고 하지만, 드넓은 영지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은가?
줄칸에게 상담을 해 본 결과, 엘리시아 화원에서 거두어들이는 세금보다 몇 배는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해 준 게 얼만데. 좀 도와줄 수도 있겠지.’
해서 귓속말을 했더니 마침 테일러가 도리오 도움을 요청했다.
‘딱 좋네.’
그래서 영지로 직접 찾아간 재호.
테일러는 추레한 몰골로 재호를 맞이했다.
“그래서 뭐 어떻게 된 건데?”
재호의 물음에 테일러는 한숨부터 푹 내쉬었다.
“불곰 길드 터지기 직전인 건 알지?”
“응. 그건 들었어.”
“걔들 지금 갈 곳 없어지더니 여길 눈독 들이고 있거든.”
“뭐?”
테일러의 말에 재호가 놀라 물었다.
“멍청이야?”
“내 말이…….”
“아니, 너 말이야.”
“…….”
“그걸 왜 당하고 있어?”
“아직 안 당했거든.”
“그럼 말만 한 거야?”
“아니. 이쪽으로 오는 중이야.”
“결국 그게 그거 아냐?”
“엄연히 달라! 난 분명 답을 안 했는데 저 녀석들이 멋대로 밀고 오는 거라고!”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재호의 물음에 테일러는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고개를 푹 떨궜다.
“당연히 그 녀석들하곤 안 엮였으면 하지.”
“그런 것치곤 너 나랑 처음 만났을 땐 되게 열심히 했잖아.”
게다가 망한 길드에서 아직 탈퇴도 안 했고.
“그건…….”
초기의 활동이야 그렇다고 쳐도, 아직 탈퇴를 못 하고 있는 건 현실적인 사정이 있었다.
크로킹을 비롯한 핵심 간부들은 진성 스킨헤드.
게임뿐 아니라 현실에서 난폭한 그들이니, 자칫 보복을 당할까 두려웠다.
“흠. 그런 거라면야…….”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 차이를 쉽게 단정 지을 순 없었으니.
“문화 차이라고 하지 말아줄래? 러시아 사람이 죄다 그렇진 않아.”
“어쨌든 넌 이제 불곰 길드랑 손절하고 싶은 건 확실하잖아.”
“그렇지.”
뒤탈 없이 깔끔하게 처리할 만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이민?”
“……너무 극단적이잖아.”
“보통 일이 아니네.”
현실의 위협을 감안하고 일을 처리해야 하다 보니, 지금까지 게임에서 해 온 것처럼 막 할 순 없었다.
그랬다간 테일러가 정말로 위험해질 수도 있을 테니까.
“고, 고맙다…….”
테일러는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 주는 재호에게 감사를 표했다.
“뭘 이런 걸로. ‘서로’ 돕고 사는 거지.”
재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네 도움이 필요하거든.”
“응? 뭔데? 도와줄게!”
“일단은 네 문제부터 해결하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미리 이야기했다가 혹여나 테일러가 변심하면?
일단 발 못 빼도록 못부터 박아 버려야 했다.
* * *
재호는 테일러를 데리고 라셀 왕국 수도로 향했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내몰아 쉬는 테일러의 모습에 재호는 얼굴을 찌푸리며 거리를 벌렸다.
“응? 왜 그래?”
“너 혹시 뭐… 어린애들한테 이상한 감정 느끼거나 그러냐?”
“……미쳤- 헉!”
티나의 검이 뽑혀 올라오는 소리에 테일러는 얼른 입을 막았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억울했으니.
“읍읍읍!”
‘저 녀석이 먼저 욕했다고!’라 말하는 듯한 표정.
“아니면 미안하고. 라셀 왕 찾아간다고 하니 네가 이상한 소리 내면서 숨을 쉬니까. 쓰레기 새끼인줄 알았지.”
“마, 말이 심하잖아! 그냥 긴장해서 그런 거라고!”
재호 인맥으로 얻은 작위였고, 사실 라셀 국왕과는 직접 만날 일이 거의 없었던 테일러.
너무 오랜만에 왕실로 찾아가다 보니 괜히 긴장했던 것이다.
“국왕 폐하 들어오십니다!”
왕성의 접견실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자, 곧 나타난 라셀 국왕.
“오랜만이구나!”
라셀 국왕은 재호를 보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 지냈어요?”
“하……. 그렇지 못하다. 이 피부를 봐라. 제대로 왕 노릇 좀 해 보려 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스트레스구나. 매일매일 늙고 있으니…….”
“그런 소리를 하기엔 폐하 나이가 한참 모자란 것 같은데요?”
“무슨 소리. 벌써부터 지방 귀족들이 백성과 나라의 안정을 위해 혼인을 올려야 한다고 난리인데. 귀족가 아들들이 매일 인사를 하겠다고 찾아와 귀찮을 지경이야.”
“…….”
이 미친놈들.
아마 귀족들이야 권력의 정점을 향한 황금 동아줄을 잡으려고 아들들을 팔아대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라셀 국왕은 너무 어렸다.
‘그게 이 세계에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재호는 혀를 내두르곤 인벤토리에서 안전하게 포장한 불로장생초를 꺼냈다.
“오! 이것이……!”
눈을 반짝이며 슬금슬금 불로장생초에 손을 뻗는 라셀.
스으-
재호는 슬그머니 당겨 라셀의 손을 피했다.
“그 전에 이야기 좀 하죠.”
“응? 무슨 이야기 말이냐?”
“내 옆에 테일러 있는 건 알고 있죠?”
“테일러? 누구… 아! 테일러 백작이었느냐? 호위 기사인 줄 알았네.”
“…….”
애초에 호위로 온 티나는 함께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슬쩍 보니 테일러의 표정은 우중충함 그 자체.
‘그러게 얼굴 좀 자주 비추지.’
일단 재호는 라셀에게 현재 테일러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불곰국에서 침공해 오고 있어요.”
약간의 날조가 있긴 했지만.
“불곰국? 최근에 망한 곳 아니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불곰국.
이제 그곳엔 룬가 왕국의 깃발이 꽂혀 있었고, 그 소식은 라셀 왕국에도 진작 전해진 상태였다.
“사실 이 친구가 그 불곰국 소속이었거든요.”
“아, 그러하느냐? ……어?”
아무렇지도 않게 밝힌 이적 사실에 라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야?!”
깜짝 놀란 테일러도 재호를 노려봤고.
“왜?”
“그걸 말하면 어떡해!”
“지금 네가 한 소리 때문에 더 이상해진 거 알아?”
테일러의 발언으로 인해 도리어 속이고 있었던 것처럼 표현이 되어 버렸다.
“아, 아닙니다. 폐하! 지금은 절대 아닙니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테일러는 라셀을 향해 허겁지겁 외쳤다.
“흐음…….”
하지만 이미 그녀의 시선엔 의심이 한가득.
“내가 하려던 말도 그겁니다. 이 녀석 불곰국에선 손 털고 나왔는데, 아직 저쪽에선 그걸 모르거든요.”
“……?”
재호의 요상한 설명에 테일러는 또다시 원망스런 눈길을 보냈다.
도와주는 건지 망치려는 건지.
“그게 무슨 말이냐?”
라셀 역시 재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테일러는 지금까지 불곰국 내에서 첩자로도 활동해 왔거든요. 그걸 모르는 녀석들이 나라 날려 먹곤 이젠 테일러한테 좀 빌붙어 보겠답시고 오는 중이죠.”
그리고 그런 행동을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본다면…….
“불곰국이 라셀 왕국을 노리고 온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굉장히 극단적인 해석이었으나… 틀린 말이 아니긴 했다.
크로킹은 어쨌든 망국의 왕.
그런 존재가 라셀 왕국의 왕에게도 일언반구도 없이 타국 영지에 발을 들인다?
“그렇다면……. 테일러 백작 그대는 내 도움이 필요해서 온 것인가?”
눈치 빠르게 읽어낸 라셀의 물음에 테일러는 쭈뼛거리다 인정했다.
“맞습니다. 저는 보른 영지는 물론, 라셀 왕국의 백작으로서의 삶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불곰국의 잔당들과 연을 끊으면 되는 것 아닌가?”
라셀의 의문에 테일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말을 못했다.
현실에서의 보복이 두려워 그러지 못한다는 걸 NPC에게 어떻게 말해야 한단 말인가?
“이건 라셀 왕국 전체를 위한 일이에요.”
“응?”
고민하던 테일러는 그게 무슨 소리냔 표정으로 재호를 바라봤다.
“뭐 뻔하지 않겠어? 불곰국을 날려 버린 게 나인데.”
설령 보른 영지에 자리를 잡는다고 하더라도 머리 위에 엘리시아 화원이 있는 이상, 그들은 결코 편할 수 없었다.
또한 재호와 라셀 국왕이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곤 있으나, 외부에서 보기에 이 관계가 정상적이라 하긴 어려웠다.
현재의 라셀 국왕이 왕권을 되찾는 데 있어 재호의 역할은 어마어마하게 컸고, 타 귀족들 입장에선 재호가 마치 비선실세와 같은 존재로 보였으니까.
왕국 내의 귀족보다 더 강한 존재감을 가진 타국의 왕!
게다가 외모적으로도 그런 이미지를 만들기에 적절했다.
어린 여왕과 사막의 야만 왕이라는…….
그런 사실을 만약 불곰 길드가 알고 있다면 충분히 이용해 먹으려 할 터.
귀족들 역시 왕이 아닌 공작을 떠받들었던 과거가 있지 않는가!
“흠……. 과연 일리 있는 말이로구나.”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한 채, 자리만 지키던 때의 무력함을 잘 알고 있는 라셀 국왕.
재호는 그녀의 아픈 부분을 절묘하게 찌르고 들어갔다.
그 귀신같은 화법에 테일러는 감탄했으나…….
-나한텐 미리 좀 말해주고 하면 안 되냐? 자꾸 나만 바보처럼 보이잖아!
테일러는 라셀의 눈치를 살피며 귓속말을 보냈다.
-차라리 그게 낫지. 네가 좀 모자라 보이는 게 라셀 입장에선 마음이 놓인다고.
-뭐, 뭐……?!
“좋다, 알시아 왕. 그대의 뜻은 잘 알겠다.”
작은 손으로 턱을 두드리며 고민하던 라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명분 또한 충분하다. 망국의 왕가가 감히 타국에 사전 요청도 없이 멋대로 들어오는 무례함을 인정할 수 없지.”
“아, 그리고 그 명분 말인데요, 몇 개 더 추가해서…….”
* * *
[1. 불곰국은 룬가 왕국에 대한 끔찍하고도 기습적인 침략 행위를 벌인 범죄 국가이다. 라셀 왕국은 평화를 수호하는 나라로서, 불곰국의 행위를 강력 지탄한다.] [2. 이미 불곰국은 과거, 이웃 국가인 엘리시아 화원에 대해서도 침략을 한 바 있었다. 라셀 왕국은 엘리시아 화원의 동맹으로서, 여전히 그 행위를 용서하지 않고 있음이다.] [3. 전쟁 패망 이후, 라셀 왕국으로의 일방적인 도주 행위는 주변국으로부터 불필요한 항의를 받을 수 있는 일. 그렇기에 불곰국의 라셀 왕국 입국을 허락하지 않는다.]그렇게 완성된 명분은 다음 날, 라셀 국왕의 이름으로 공표되었다.
“그럼 난 이제 뭘 하면 돼?”
테일러의 물음에 재호는 간단하게 답했다.
“어쩌긴. 좋은 핑계거리 생겼으니 이걸로 거절해. 그래도 밀고 들어온다? 그땐 왕국 기사단에 고발해 버려.”
어차피 이젠 왕실 쪽에서 정보 수집을 통해 그들을 계속 감시할 테니 마냥 테일러를 탓할 수도 없을 것이다.
“후……. 그래. 아무튼 고맙다.”
테일러의 말에 재호는 씩 웃었다.
“뭘. 돕고 돕는 거지. 그리고 이젠 네가 날 도와줘야 할 차례고.”
“아, 맞아.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테일러는 왕국 수도로 오기 전에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대답했다.
“그래서 내 도움이 필요한 게 뭔데?”
하지만 이어진 재호의 말에 표정이 팍 식어 버렸으니.
“나 돈 좀 ‘많이’ 빌려주라.”
* * *
테일러와 잠시 소동이 있었으나, 결국은 적절한(?) 합의를 이루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가 떠나고 난 뒤, 재호는 라셀과 독대했다.
“자, 이제 되었지 않느냐?”
잔뜩 애가 달은 라셀.
“어서 불로장생초를 다오!”
“…….”
아무리 봐도 꼬맹이라고 생각하기엔 어려운 모습이었다.
“근데 이거 제대로 쓸 줄은 알아요?”
“응? 그냥 씹어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
“뭐… 그렇게 하면 건강에야 좋겠지만…….”
불로장생초에 숨겨진 효과까지 보려면 특수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마 왕궁 내에서도 먼 과거, 정령화장으로부터 전승되어 오던 어떠한 방법이 있을 테지만…….
“내가 직접 해 줄게요.”
‘관찰률 100%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재호는 라셀에게 정제를 위한 작업을 허락받은 뒤, 인벤토리에서 장비들을 꺼내 놓았다.
“후- 그럼 시작해 볼까?”
“고작 그걸로 끝인 것이냐?”
작은 화로와 단지만을 내놓자 라셀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재호를 바라보았다.
“어허- 모르면 말을 마세요.”
화르르-
화로에 불을 지핀 뒤.
“꼰대야. 일하자.”
재호는 생기의 정령인 꼰대를 불렀고.
“징징아. 어디 멀리 바람이나 쐬고 와라.”
징징이는 내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