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44
243화
황제와의 첫 만남은 긴장과 불편함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옷의 영향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호감, 또는 패자로서의 자신감인지 모를 황제의 태도에 재호도 편안해졌던 것이다.
“짐이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곤 하나, 바다 위 황제를 자청하던 건방진 녀석을 처리해 준 것은 고맙게 생각하네. 괘씸한 녀석들이지만 사실 대륙에서 직접 나서기엔 아무래도 손해가 컸을 거거든.”
황제는 재호의 업적에 대해서도 충분히 감사를 표했다.
“나 프라푸치노의 이름을 걸고 엘리시아 화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 주겠네.”
아마 그 보상은 금전적인 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나저나…….’
재호가 황제에게서 얻어내야 할 것은 명확했다.
바로 5황자 젠트르노를 후계자로 확정 짓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답을 얻는 것.
그걸 위해 불로장생초를 준비했는데…….
‘아픈 사람 맞아?’
음식을 먹는 것도, 안색도, 어디 하나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설마 황자들이 그 노인을 아버지라고 지금까지 착각했던 건가?’
대체 왜?
‘어리석다고 말한 걸 보면… 황제가 스스로 아들들을 테스트하기라도 한 건가?’
차기 황제 자리를 놓고 아들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추측은 무성했으나, 정확한 사정을 알 순 없었다.
외부인인데다 황제와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으니.
‘그래도 어쩌면…….’
재호는 한 가지 가능성을 품었다.
“궁금증이 많은 표정이군.”
재호의 분위기를 읽은 황제가 그리 말했다.
“뭐,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보아하니 황자들도 몰랐던 것 같은데.”
“허허, 제 아비도 몰라보는 한심한 것들이라 창피하기 짝이 없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그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제법 대어를 물어 온 녀석이 있긴 한 것 같아 기분이 조금은 낫군.”
“?”
“알시아 왕 그대가 오지 않았나?”
“?!”
그 한 마디에 재호는 솔깃했다.
저 말은 곧 젠트르노에 대한 긍정적 평가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론 아쉬운데.’
황제의 모호한 답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원래 계획은 오락가락하는 황제를 살려주는 것으로 젠트르노의 입지를 확 끌어올리는 것이었으니까.
“흠흠… 폐하. 혹시 최근 어디 건강이 불편하다거나 몸이 좋지 않다거나 하는…….”
일단 입질을 넣어 본 재호.
그러면서도 음식을 챙겨 넣는 건 멈추지 않았다.
“후후, 하긴. 5황자와 손을 잡았으니 이 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긴 했겠군.”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허나 들은 것과는 내 모습이 상당히 다를 텐데?”
농담처럼 웃으며 되묻는 황제.
“그래 보이긴 합니다만… 사실은 정말 황제 폐하의 건강 상태가 나쁜 것 아닙니까?”
사아아-
순식간에 얼어붙는 분위기.
공기가 얼어붙는 게 소리로 들릴 정도로 황제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황제 푸라푸치노의 위압적인 시선이 당신을 짓누릅니다.] [당신의 모든 능력치가 80% 감소합니다.]“…….”
작정하고 기세를 뿜어내자 과연 황제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디버프가 발생했다.
저주도 아니기에 당연히 면역 또한 불가능했다.
“그 누구도 짐의 건강에 대해서 함부로 논할 수 없다.”
단호하며 강압적이지만, 마치 당연하게 느껴지는 황제의 한 마디.
하지만 시스템의 경고에 물러설 정도로 재호는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왜 굳이 다 죽어가는 대역을 세웠던 겁니까?”
건강 이상설이 그냥 나오지는 않았을 터.
굳이 대역까지 내세워 황자와 주변인들에 대한 무리한 시험을 시도한 이유가 무엇이며, 또한 왜 하필 재호가 찾아온 이 순간에 오랜 비밀을 깨트리며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고얀…….”
불쾌한 듯, 미간을 좁힌 황제는 재호를 한참 노려봤다.
하지만 곧 놀라운 반응을 보였으니.
“하긴, 그렇기 때문에 엘프들을 통합하고 빠르게 대륙 내 영향력을 키워낼 수 있었던 것이겠지.”
스으-
팔짱을 낀 채, 등받이에 기댄 황제.
[황제 푸라푸치노의 위압적인 시선이 거두어집니다.]그리고 재호를 향해 집중했던 자신의 기세를 거두었다.
“죽음에서 벗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본래 그대의 성격인가? 내 아들들이 그대의 반이라도 닮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는 재호를 보며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알시아 왕. 내가 하나 묻지.”
목소리를 한껏 낮춘 황제가 재호에게 물었다.
“그대가 보이는 거침없는 행보의 끝엔 무엇이 있지?”
* * *
황제와의 대담을 마치고 나온 재호.
그리곤 황명에 따라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밀키웨이 정원 관람을 허락받았다.
그 탓에 당장 재호를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난 황자들조차 근처로 다가오지 못했으니.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그저 황제의 특별대우에 신이 난 일행들은 밀키웨이 정원을 구경했다.
하지만 특별대우에 대한 흥분, 딱 그 정도였을 뿐, 밀키웨이 정원 자체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엘리시아 화원보다 한참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에휴, 뭐 배울 만한 것도 없네.”
메이의 입에서조차 그런 냉정한 평가가 나올 정도.
한편, 다른 일행과 조금 거리를 두고 천천히 걷는 재호는 황제와의 만남을 곱씹고 있었다.
‘내 행보의 끝에 무엇이 있냐고?’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 은 개뿔.
재호는 확실히 답했었다.
꽃집을 할 거라고.
게다가 최근 새로이 목표로 삼은 것 중 하나가 바로 대륙 전체에 체인점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한 이야기를 했지만, 문제는 황제가 그걸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그는 재호의 말을 그저 헛소리로 치부했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재호가 나와 있는 것이었고.
준비가 된다면, 황제는 재호에게 얼마든지 동업자로서 손을 내밀어 주겠다고 했다.
즉, 황제는 재호가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공유해도 될 만한 인물인지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긍정적 신호이긴 한데……. 황제가 원하는 답이 뭔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지.’
패자로서 대륙을 호령해 온 양반이니 꽃집을 할 거란 재호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꽃집을 할 거라는 인간이 대악마 잡고 용 잡고 해적왕 잡고 하진 않을 테니까.
‘흠, 뭔가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한 건 분명해 보이는데…….’
하지만 애초에 꽃집을 하려고 게임을 시작한 재호에게 다른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어설픈 거짓말을 해 봐야 황제의 눈은 속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어쩌면!’
그 순간,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
거짓말도 아니면서 굉장한 명분.
재호에겐 하나가 있었다.
* * *
“전 엘프들의 고향을 되찾을 겁니다.”
다시 만난 황제에게 재호는 말했다.
“엘프의 고향이라 함은… 리젤란 숲을 말하는 것인가.”
그곳이 어떤 상황인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륙에서 가장 잘 아는 이들 중 한 명인 황제.
그는 재호의 대답에 충분히 납득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엘프들의 왕. 고향을 잃은 그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겠지.”
‘역시 먹히는군.’
황제가 순순히 받아들이자 재호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사실 재호는 리젤란 숲을 다시 되찾고 어쩌고 할 생각은 없었다.
엘프들도 딱히 재호에게 그런 부탁이나 압박을 해 오지도 않았고.
물론 리젤란 숲 탈환에 나선다면 잔뜩 신이 나 칼을 갈겠지만.
하지만 이 발언이 거짓말이 아닌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천계로 가기 위한 길이 그곳에 있었고, 좋든 싫든 재호는 리젤란 숲으로 향해야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리젤란 숲 토벌은 어쩔 수 없을 테고.
다행히 그 교묘한 진실을 황제가 정확히 간파한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허나 그 전에, 그대라면 충분히 대륙을 노려볼 수 있을 텐데?”
황제는 다시 물었다.
“그대의 행보에 긴장하고 떠는 수많은 왕국들이 떨고 있는 것을 아는가?”
“글쎄요. 본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엘리시아 화원을 보고 긴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후후, 아주 비겁하고 위험한 대답이로군.”
황제는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왜 5황자와 손을 잡은 것인가? 무언가 원하는 게 있기 때문 아니었나?”
역시나 재호와 젠트르노가 밀약을 맺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야 당연히 꽃집 홍보를 위해서죠.’
이렇게 말해 봐야 믿지도 않을 테고.
“미드스트 제국의 힘을 빌렸으면 합니다.”
재호가 떠올린 또 다른 그럴듯한 거짓말.
애초에 고려 사안이 아니었으나, 이렇게 된 이상 빨아먹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빨아먹는 게 나았다.
제국의 지원을 받으면 리젤란 숲 토벌이 확실히 훨씬 쉬워질 것이니.
‘그리고 내가 권력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어필도 해야 하고.’
제국의 적이 아닌 동맹이라는 것을.
“제국의 힘을 빌리고 싶다라…….”
“리젤란 숲도 중간계의 일부분. 그리고 황제 폐하라면 아시겠지요. 리젤란 숲이 빼앗기게 된 이유.”
인간들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엘프들의 뒤통수를 쳤다는 것을.
“지금까지 이어지는 엘프들의 인간을 향한 분노를 조금이라도 잠재우려면, 그것이 선행되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감히 짐을 협박하는 것인가?”
황제의 발언 자체만 보면 굉장히 위협적이었으나, 그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해볼 거면 더 해보란 것 같았으니.
이 정도의 관대함을 보이는 것 자체가 재호에게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소름다움이 제대로 효과를 보고 있나 보네.’
확신을 가진 재호는 쐐기를 박았다.
“협박이 아니라 제안이라고 해 주십시오. 어제 말했듯, 저는 폐하의 건강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또 그 이야기로군.”
“애초에 제가 황궁까지 찾아온 이유가 그것이니 말입니다.”
적어도 NPC들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겁이라곤 상실한 이들도 몇몇 있긴 했지만.’
황제도 그럴 가능성이 높긴 했지만, 정말로 병을 지니고 있다면 재호의 말에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제겐 폐하께서 어떤 병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니, 거스를 수 없는 세월조차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주는 비약이 있습니다.”
“불로장생초인가?”
“?!”
대역 황제를 알아봤을 때보다 더 놀랐다.
하지만 곧 재호는 침착함을 되찾았다.
‘생각해 보면 모를 것도 없어.’
그 촌동네 꼬맹이 왕(?)도 알고 있는 불로장생초인데, 황제라면 당연히 알고 있지 않을까?
“그래, 그대 말대로 나는 보기와 달리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마침내 황제는 재호 앞에서 진실을 말했다.
황제의 자신이 가진 민감한 사실을 밝혔다는 건, 여차하면 재호를 죽여 입을 막을 수도 있다는 뜻.
아무리 임모탈리언이라 해도 제국에게 찍혀 좋을 건 하나도 없었기에 재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귀를 열었다.
“짐은 황제다. 대륙에서 내가 원한다면 그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런 내가 불로장생초를 통해 다가오는 죽음을 극복해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을 것 같은가? 아니, 애초에 선대의 모든 황제가, 역사 속 수많은 지배자들이 그것을 욕심내지 않았을까?”
“…….”
그렇다면 불로장생초를 따로 구해서 이미 복용했다고?
‘이게… 그렇게 흔한 거였나?’
하지만 황제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
“불로장생초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음?”
“역사가 증명해 왔다. 불로장생초라고 불리었던 것들 중, 무엇 하나도 영생을 장담하지 못했으며 도리어 지독한 중독성과 부작용으로 생을 마감했었다. 대륙 구석 어딘가의 나라에서 진짜 불로장생초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으나, 짐은 그리 어리석지 않다.”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황제에게서 재호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아닌 제국의 영원불멸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음을.
“왜 기껏 숨기고 있던 나를 그대의 방문에 맞춰 드러냈냐고 물었었지.”
황제는 잠시 뜸을 들이며 숨을 골랐다.
“그대가 5황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만약 그대가 제국 위에 존재하길 바라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내 죽음 이전에 기필코 처리해야 할 적일 테니.”
꿀꺽-
쉽게 말해 여차하면 엘리시아 화원을 싹 밀어 버리겠단 소리였다.
아직은 조금 모자란 황자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제국의 쇠약을 대비…….
“어쨌든 불로장생초는 안 먹었단 거죠?”
“음?”
실컷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했더니 또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재호.
하지만 재호의 솔직한 심정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였다.
제국이 어떻든 간에, 중요한 사실은 황제가 불로장생초를 먹었냐, 아니냐였다.
역사 속 불로장생초를 탐한 이들이 죽은 이유?
‘보나마나 고기 쌈 싸 먹듯이 먹었겠지.’
불로장생초에는 확실히 경고가 되어 있었다.
중복 섭취 시에 부작용 100%라고.
그리고 황제의 건강 상태가 여전히 나쁜 걸 보면 진짜 불로장생초는 먹지 않았으리라.
“어때요? 한번 저를 믿어 보시겠습니까?”
재호는 좀 더 과감해졌다.
이제 주도권은 자신에게 넘어왔고, 남은 건 확실히 약을 파는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