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64
263화 [외전]
고잉헬 호 선미에 선 재호는 복잡한 표정으로 뒤를 살폈다.
저 멀리 보이는 고잉헬 호를 따라오는 대형 선단들.
속도 차이 때문에 조금만 가면 그들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고잉헬 호의 선체에 작살을 박아 놓고 행글라이더를 타는 사람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른 것일까?
“다들 창의력도 좋아.”
어쨌든 저들의 아이디어는 칭찬해 줄 만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줄 끊어 버릴까요?”
재호의 곁에 있던 티나가 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언제든 줄을 끊어 버리면 끝이란 게 약점!
그건 수면 아래의 용궁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커먼 실루엣이 훤히 보여 진작부터 용궁호의 존재를 모두가 눈치채고 있었다.
아래에 열심히 물을 퍼내는 우람이나 와띠스는 전혀 알 수가 없겠지만.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역시 옆에 있던 완식의 핀잔을 주었다.
“뭐야? 나 때문이라고?”
“그러면?”
“난데없이 난 왜 잡고 늘어지냐?”
“이 게임이 온갖 미친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걸 네가 증명해 보였잖아. 저런 정신 나간 짓들은 결국 다 널 보고 따라하는 거라고.”
행글라이더와 용궁호, 그리고 저 멀리서 불타고 있을 적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흠흠.”
듣고 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기에 재호는 대꾸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정통적인 RPG 플레이 방식에서 벗어난 짓을 어마어마하게 해 왔다는 걸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긴 했으니.
“어쨌든 저 사람들도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해서 저런 것 같은데…….”
대체 저 커다란 잠수정을 언제 준비해서 이런 과감한 시도를 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선체와 이어진 연결부를 끊어 버리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건 행글라이더와 마찬가지.
“…그냥 내버려두자.”
“응? 그냥 달고 가게?”
완식이 놀라 재차 물었다.
“뭐 상관없지 않겠어?”
재호는 저들의 노력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
시간과 비용으로 빚은 희망의 동아줄을 툭 끊어 버리려니 너무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저들의 희망에 찬 미소를 지켜 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차피 저러다 스스로 자멸하지 않을까? 항해가 얼마나 이어질지 알고?”
바다 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걸,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게 더 잔인한 거 아니냐?”
무서운 재호의 배려심에 완식은 혀를 내둘렀다.
“저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티나. 부탁이 있어.”
“넵! 하겠습니다!”
내용은 듣지도 않고 대답하는 그녀.
“뭔지 알고?”
“뭐든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나 풀피리 연주 좀 가르쳐 줘.”
“앗?! 푸, 풀피리 연주 말입니까?”
“응?”
예상 밖에도 크게 당황하는 티나.
“왜 그래?”
“어… 그, 그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사실… 저는 풀피리 연주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아, 그래?”
의외긴 했다.
엘프라면 다 할 수 있는 줄 알았더니.
‘하긴 티나의 집안 내력을 생각해 보면 풀피리랑 관련이 없어 보이긴 하지.’
목에 걸고 있는 오기크의 뼈 목걸이만 해도…….
“죄송합니다…….”
“아니야. 전혀 미안해할 일은 아닌데.”
그냥 다른 엘프에게 배우면 될 일이었다.
꾸욱-
하지만 티나는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엘프가 재호의 옆에서 하하호호 하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것이……!
* * *
“영광입니다, 알시아 님. 저는 디오니소스입니다.”
티나가 데리고 온 남성 엘프가 재호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름이… 디오니소스……?”
하필이면 왜 디오니소스일까?
“풀피리의 심화 과정을 배우고자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응. 어차피 항해를 하는 동안 시간도 남을 것 같으니.”
“후후,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알시아 님의 연주를 한번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부탁에 재호는 풀피리를 꺼냈다.
휘이이-
제목도 모르는 유일하게 연주할 수 있는 음악.
그것만으로 스킬 레벨 99가 될 정도였으니 완벽에 가까운 연주가 가능했다.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디오니소스는 감상에 집중했다.
잠시 후 연주가 끝나고.
짝짝짝-
디오니소스가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흠잡을 곳 없는 멋진 연주였습니다. 신목께서 그토록 좋아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군요.”
“그, 그래?”
조금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예전부터 엘프들은 신목에 대해 약간의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본기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확실히 알시아 님께선 심화 과정으로 넘어갈 준비가 모두 되셨습니다.”
스으-
디오니소스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풀피리를 꺼냈다.
“마침 알시아 님께 딱 어울리는 곡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제가 먼저 들려드리지요.”
부드럽게 파지한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연주를 시작했다.
사아아아-
주변으로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멜로디.
귀를 유혹하는 부드러운 음악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달콤한 음률이 당신의 시선을 통제합니다.] [보이지 않는 온기가 생령을 자극합니다.] [당신의 체력이 50% 증가합니다.]“?!”
전체 체력의 50%가 증가하는 어마어마한 버프.
‘물론 이건 디오니소스의 스킬 레벨이 높기 때문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대단한 음악인 건 분명했다.
홀린 듯이 감상하는 그때.
삐릭-
갑자기 연주가 급변했다.
방금까지 흘러나오던 부드러운 음률이 아닌, 심장이 뛰게 만들 정도로 격렬하게.
[추가 체력이 사라집니다.] [당신의 민첩성이 30% 증가합니다.]급변한 음악을 따라 효과도 바뀌었다.
‘음악에 따라 다른 버프가 생겨날 수도 있구나.’
단순히 꽃의 성장을 돕기만 하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전투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만한 옵션.
물론 언제나 전투의 최전선에 나서는 재호가 활용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지만.
약 5분간 이어진 연주가 끝났다.
“후우……. 어떠셨습니까?”
“좋은데? 풀피리가 식물들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었구나.”
음악 관련 클래스를 가진 사람들도 많긴 했다.
그저 자신의 풀피리 연주도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단 걸 처음 알게 되어 놀랐을 뿐.
“후후, 음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답니다.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지요. 또한 같은 연주라도 누구를 위한 것이냐에 따라 달라지지요. 음악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렇군.”
…은 잘 모르겠고.
이미 말했듯, 어차피 자신이 전투에서 그걸 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스킬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선 20개의 악보를 얻어야 한다는 거지.’
하지만 디오니소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나름 음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진 바, 그런 날림 전수를 해 줄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알시아 님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안 될 일입니다. 욕심을 내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바. 우선은 이 [오 아름다운 어머니]를 완벽히 익히신 다음에 새로운 곡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뭐 알았어.”
재호는 아쉬워하며 대답했다.
단호하게 반대를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
한번 고집을 세운 엘프를 꺾는 건 아무리 재호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 * *
뉴월드 세계의 바다는 아직 밝혀진 게 많지 않는 미지의 공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재호에게 정체가 까발려지고 죽임 당한 해적왕과 대해적들.
게다가 리젤란 숲 상륙 작전 당시, 재호가 을 사용하면서 다섯 개의 도 흩어져 버린 상황.
이후, 그것을 찾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바다로 나서며 열린 대항해시대.
공백이 된 바다의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바다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착각한 것이 있었다.
해적왕과 대해적들이 몽땅 죽었으니 바다에는 오합지졸만 남았을 거란 착각.
뉴월드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바다는 넓었고 신대륙까지 나온 마당에 그들이 바다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권좌에 앉지 않았을 뿐, 그들 못지않게 강력한 해적은 많았다.
그런 알려지지 않은 해적들도 증표를 찾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제대로 된 항해 기술이나 배를 가지고 있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그 점은 간과했다가 큰 손해를 보았고, 결국 바다를 떠났다.
포기하지 않고 남은 플레이어들은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바다에서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플레이어들만이라도 힘을 합치기로.
[운슬라 해양단]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조직.
가입 제한은 없으며 바다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한다.
단, 우리들의 바다를 위협하는 자가 있으면 무조건적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
운슬라 해양단의 행동 강령.
육지에서 외면 받던 많은 이들이 바다로 나와 운슬라 해양단에 합류했고, 이제는 당당히 바다 위 최강 플레이어 단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아직 대해적의 증표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고, 신대륙 흔적 또한 본 적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재호가 고잉헬 호를 이끌고 다시 바다로 나와 버렸다.
그 탓에 운슬라 해양단이 느끼는 위기감은 커졌다.
겨우 바다 위 최고 단체로 인정받나 싶었던 운슬라 해양단인데, 바다엔 관심도 두지 않던 재호가 모든 이목을 빼앗아 가고 있었으니.
만약 재호가 신대륙에 도달한다면 운슬라 해양단의 체면은 말이 아니가 될 것이다.
오죽하면 벌써부터 커뮤니티에선 ‘물곰 길드’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으니.
대륙을 주도하던 초거대 불곰 길드의 몰락에 빗대어서…….
“하지만 아무도 모를 거다.”
운슬라 해양단의 단장 사번타자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물곰이라고 조롱 받고 있는다는 것, 잘 알았다.
하지만 냉정히 본다면 반박할 수 없는 소리였다.
넓은 바다만큼이나 규모는 거대하지만 내실은 영 형편없었으니까.
길마인 자신만 하더라도 200 중반의 레벨에 유니크 클래스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번타자는 지금이야말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낼 때라고 판단했다.
설혹 패배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바다를 향한 우리들의 진지함만 확실히 보여 줄 수 있다면……!
“쉽사리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운슬라 해양단은 물곰이라는 별명대로, 불곰 길드의 전철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 * *
순탄한 항해가 이어진 지 3일째.
선미에 테이블을 펼치고 앉아 바캉스를 즐기는 고잉헬 호.
워낙 평온한 탓에 오늘은 엔진룸의 선원들도 선상에 모여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쟤들 대단하다.”
파도 소리 속에서 열심히 풀피리를 연습하던 재호가 완식의 말에 연주를 멈췄다.
“용케 아직도 버티고 있네.”
그가 말하는 대상은 바로 아직도 하늘을 나는 행글라이더맨들.
지금 하늘에 떠 있는 행글라이더는 총 다섯.
처음에는 여덟이었으나 셋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추락해 버렸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 그들은 이 상황을 효율적으로 버티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 있었다.
바로 로그아웃과 접속 타이밍 조절을 통해 제대로 체력 관리가 능숙했던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 플레이어가 접속을 종료하면 캐릭터는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사라져선 안 되는 예외적인 경우엔 시스템이 대리해서 움직이게 설정되어 있는데, 바로 그 점을 이용해 비행을 지속하고 있었다.
물론 시스템을 통한 캐릭터 조작엔 치명적인 한계도 분명 존재했다.
바로 수치화할 수 없는, 인간이 가진 정신력과 본연의 육체 능력을 시스템은 발휘할 수 없다는 점.
로그아웃 상태에서의 캐릭터는 가진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살려 행글라이더를 탔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를 경우, 그들은 포기하고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되기 전에 플레이어들은 재접속해 포션 등을 이용해 떨어진 스태미나를 회복시켰다.
그리고 접속 시간 동안 직접 행글라이더를 타다가 적당할 때 다시 종료.
엄청나게 귀찮지만 장시간 비행을 위한 제법 영리한 방법이기도 했다.
미리 연습을 해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절묘한 전략.
요즘 고잉헬 호에서는 그걸 가지고 내기를 하는 게 유행이었다.
과연 오늘은 몇 명이 떨어질 것인가?
“근데 쟤들도 쟤들이지만 저 아래는 괜찮은 건가?”
쿠키를 씹어 먹으며 배 아래를 내려다보던 다키스트가 물었다.
상공엔 행글라이더가 날고 있다면 수중에선 용궁호도 아직 따라오고 있었다.
“저건 대체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기에 아직도 버티는 거지?”
행글라이더는 몰라도 용궁호에는 재호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뉴월드에 잠수정이라니.
어쩌면 고블린들에게 부탁하면 저것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의 진짜 잠수정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