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86
285화
버섯처럼 커다란 모자를 가진 산호 선착장에 정박한 고잉헬 호.
“수중 정박이라…….”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만남은 온몸으로 느껴지는 이질감만큼이나 이상했다.
‘꼭 무중력 같네.’
재호 일행은 갑판 위로 둥실 떠올라 배에서 내렸다.
딱히 몸을 쓰지 않아도 몸이 가볍게 쑥 나아가니 동작이 영 어설펐으나, 금방 적응이 되자 인어들과 비슷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엘프들도 처음엔 과할 정도로 허우적거렸지만 곧 이 환경에 적응하더니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태생적으로 가진 거부감은 어쩔 수가 없는지, 표정이 마냥 밝진 않았다.
“자! 이쪽으로 오게나!”
아이쉬의 안내를 따라 선착장을 벗어난 그들은 아트리우스와 이어지는 기다란 대로를 나아갔다.
길 양쪽으론 인어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는데, 오랜만에 방문한 인간들을 보곤 잔뜩 들떠 수군거렸다.
“와, 진짜 아래에도 팔이 달렸네?”
“멍청아! 팔이 아니라 저건 다리라는 거야.”
“제일 앞엔 뭐지? 조금 다른 종족 같은데.”
“나 알아! 저건 트롤이라는 거야.”
엘프들에게 함부로 주먹 휘두르지 말라고 단단히 교육시켜 놓은 게 다행이었다.
또한 그들의 폭력성은 주로 인간에게 분출된다는 점 역시…….
“근데 왜 굳이 저렇게 줄지어 서 있는 거야? 답답하게.”
구경하는 인어들은 전부 바닥에 내려와 있었고, 위로 조금만 헤엄쳐 올라가면 쉽게 볼 수 있음에도 굳이 머리 사이로 힘겹게 보고 있었다.
“아, 그걸 알려 주지 않았군. 아트리우스는 최대 수심 제한이 있지. 지표면으로부터 3미터 이상 헤엄쳐 올라가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네. 참고로 헤엄 속도에도 제한이 있지.”
“응?”
왜 굳이 그런 이상한 짓을 하나 싶었으나, 이어진 설명에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생각해 보게나. 수백, 수천 명의 인어들이 질서 없이 마구 돌아다니는 무법지대를. 충돌 사고가 끊이지 않을 것이고, 수심 제한이 없으면 범죄자들도 활개를 치겠지.”
쉽게 말해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개발된 지 10년이나 지났음에도 상용화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유.
“하긴… 자유로이 헤엄치는 바다 도시는 동화 속 선입견이구나.”
만약 지금 당장 머리 위에서 몸을 뒤집은 인어들이 있었다면 조금 공포였을지도 몰랐다.
“자, 여기 타게.”
아이쉬가 멈추어 선 곳은 수중 마차 정류장.
바다거북의 등에 고정된 마차에 네 명씩 올라탔고, 곧 거북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북마차는 수심 제한 없이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아트리우스의 대표 이동 수단으로 모두가 이용 중이라네. 그렇기에 인어들의 수심 제한이 더 필요하지. 안 그러면 충돌 사고가 빈번히 일어날 테니까.”
맞은편에 탄 아이쉬의 설명.
가만 생각해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분명 뉴월드는 판타지 세계인데, 아트리우스는 현대 세계와 묘하게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근데 어디로 가는 거야?”
재호의 물음에 아이쉬는 아트리우스 반대편, 높게 솟아오른 성을 가리켰다.
“우선 폐하를 뵈어 ‘바다의 의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지.”
“바다의 의지?”
“세계 모든 바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아트리우스 최고의 힘이라네.”
“그걸 이용하면 모든 대륙의 정보도 얻을 수 있는 건가?”
“아마 그럴 게야. 물론 해당 육지가 어떤 곳인지는 알 수 없고 바다에 관해서만 알 수 있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사아아-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거북마차.
그리고 아트리우스의 심장이자 왕성, 오션타워에 도착했다.
뿌우웅-
재호 일행이 내려서는 동시에 시작된 악대의 연주.
그리고 화려한 물고기 떼가 불꽃처럼 헤엄치며 그들을 환영했다.
“이, 이 정도로 환대를 해 준다고?”
“하하, 부담가지지 말게나! 오션타워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이 정도 환영은 기본이니.”
외부인의 방문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즐긴다던 아이쉬의 말은 사실이었다.
뿌뿌뿡…….
소라고둥 나팔의 특이한 소리는 오션타워 안으로 들어서자 희미해졌다.
몇 개의 문을 통과하자 탁 트인 대전에 도착했고 마침내 아트리우스의 왕과 마주했다.
[바다와 아트리우스의 제왕, 용왕 서루발을 만났습니다.] [명성이 크게 증가합니다.]우람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외모.
비늘 망토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아래에 보이는 탄탄한 근육과 크고 작은 상처들은 그가 결코 쉽게 왕의 자리에 오른 게 아니라는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
‘용왕?’
용왕이라는 단어는 간과할 수 없었다.
‘혹시 용… 인가? 아니면 그냥 상징적 의미로 용왕이란 단어를 쓴 건가?’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긴 했지만 외모는 분명 인어.
“용왕 폐하를 뵙습니다.”
아이쉬가 허리를 굽히며 서루발에게 예를 갖추었고, 재호 일행도 고개를 숙였다.
“아이쉬, 저들이 그대가 말한 지상의 존재들인가?”
“맞습니다. 곰덫 아귀의 습격으로 고립되었던 저희를 구해 준 은인 알시아입니다.”
“알시아…….”
턱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재호를 응시하는 서루발.
블루홀처럼 깊고 새파란 눈동자는 재호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었다.
[용왕 서루발의 이 당신을 꿰뚫어 봅니다.] [당신의 모든 업적이 상대에게 공개됩니다.]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현상이었다.
5황자 젠트르노나 황제 말칸트 등, 왕의 자격을 가진 이들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으니.
하지만 이후 서루발의 반응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후후……. 괴물을 데리고 왔구나, 아이쉬.”
“예?”
“내가 모르는 사이, 지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모양이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서루발이 팔을 들어 올렸다.
“모두들 물러가도록. 나는 알시아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보통 재호와 둘이 대화를 나누겠다면 주변 이들이 필사적으로 뜯어말리곤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서루발의 발언에 토를 달지 않고 모두 물러났다.
재호 일행 역시 아이쉬의 안내에 따라 대전을 빠져나갔고, 넓은 홀에 완벽히 둘만 남게 되었다.
“알시아. 아니, 알시아 대왕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군. 그대 또한 지상의 패자 중 한 명이니.”
역시 모든 걸 꿰뚫어 본 서루발.
“특별히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재호는 정중히 물었다.
‘조용히 보자는 건 분명 퀘스트 때문이겠지.’
지금까지 전설급 NPC와의 독대에서 퀘스트가 나오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서루발에게서 나온 이야기는 좀 더 흥미로웠다.
“그대에게서 의 흔적이 느껴지는군.”
“그게 뭐죠?”
“바다가 만들어 낸 위대한 힘의 증거 중 하나이지. 과거 그대는 바다의 의지와 직접 이어진 적이 있다. 잘 기억해 보라.”
“…아!”
문득 떠오른 기억.
과거 리젤란 숲 상륙 작전 당시, 재호는 해안의 악마와 마수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특수한 아이템 하나를 쓴 적이 있었다.
짧은 시간, 주변 바다를 자신의 의지로 컨트롤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 [등급 : 신화] [최초의 해적왕 앙굴라의 깨달음이 담긴 귀물입니다.대양에 뿌린 대해적 증표가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소환됩니다.] [ : 1분 간, 반경 100미터 내의 바다와 의지가 이어집니다.] [사용 시, 아이템이 사라지며 다섯 개의 증표는 바다 깊은 곳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사용하면서 아이템은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기록은 있었다.
“설마… 여기에서 말하는 바다의 의지가…….”
“실제로 같은 것이다. 그 당사자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
퀘스트가 아니라 칼부림이 벌어지진 않을지 살짝 걱정이 되었으니.
“본디 바다의 부름은 아트리우스의 성물 중 하나. 하지만 과거 스스로를 왕이라 지칭하던 한 멍청이에게 도둑을 맞았었지.”
“설마 앙굴라?”
“그런 비슷한 이름이었던 것 같군.”
하지만 여전히 남는 의문 하나.
분명 은 대해적의 증표를 모두 모았을 때, 획득이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처음에 멀쩡한 을 훔쳐 갔다면 굳이 왜 여러 개로 쪼개 힘을 분산시킨 것인가?
“바다의 부름은 본디 그러하다. 남용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힘이기 때문에 고대에 만들어진 안전장치이지. 또한 애초에 평범한 인간은 그 힘을 쓸 수도 없다. 그랬다간 바다의 의지에 잡아먹혀 영원히 고통을 받을 테니. 그래도 제법 재주는 있는지, 이지를 잃지 않고 힘을 쓰는 법을 터득한 것 같더군.”
“아…….”
“우리가 손을 쓰려고 해도 지상에 처박혀 절대 나오지 않더군. 게다가 흩어진 바다의 부름 파편을 자신의 수족에게 맡겨 놓아 찾는 것도 불가능했고. 아주 머리를 잘 굴렸어.”
거기까지 들은 재호는 당시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대해적들에게 파편을 넘겨줄 때, 바다의 부름이 가진 진짜 힘을 숨기기 위해 증표라고 이름을 붙인 거였군.’
만약 진실을 알았더라면 진작 자기들끼리 싸움이 났을지도 몰랐다.
“헌데 그대는 바다의 부름을 사용하고도 저주를 받지 않았군. 그건 바다에게 최소한의 인정은 받았다는 뜻.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대의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응?”
전래동화처럼 듣고 있던 재호는 갑자기 책임이 튀어나오자 흠칫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대가 도둑맞은 아트리우스의 성물을 사용한 것은 사실. 파편이 되어 전 바다에 흩어진 현재, 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퀘스트*] [과거 앙굴라가 훔쳐 간 은 당신이 재사용한 뒤, 다섯 개의 파편이 되어 대양으로 흩어졌습니다.비록 지금 당장은 위험성이 없다고 하지만,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가 을 사용하게 될 순간은 올 것입니다.
용왕 서루발은 그 걱정을 덜기 원하며, 마지막 사용자인 당신에겐 그 책임이 있습니다.] [성공 조건 : 해적의 증표로 알려진 파편 수집(0/5)] [보상 : 용왕 서루발의 신뢰] [거부 시, 용왕 서루발과 적대]
다짜고짜 퀘스트를 밀어 넣는 시스템.
“물론 바다의 부름은 아주 제한적인 힘만 발휘할 수 있도록 조치가 되어 있지만 세상일이란 어찌 될지 모르니 말이야. 또한 바다의 의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이 오는 것도 사실이고. 그러니 자네가 그것을 수습해 주었으면 좋겠군.”
“…….”
아이쉬가 말하길 인어들은 외부인을 배척하지 않으며 방문을 진심으로 즐긴다고 했다.
단, 쉽게 마음을 열어 주는 만큼 마음을 닫는 것도 극단적인 모양이었다.
‘완료하면 호감도 상승 과정 없이 바로 신뢰인데… 거절하면 바로 적대하게 된다라…….’
사실상 답정너였고, 살아 돌아가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뭐… 알겠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찾는 건 어렵습니다.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다짜고짜 밀어붙인다고 해서 무력하게 받아들일 순 없는 노릇.
얻을 수 있는 건 얻어 내야 일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저희가 이곳을 찾아온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바다의 의지 때문이라고 했지.”
“맞습니다. 아직 인간들은 바다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바다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저는 원활한 항해를 위한 도움이 필요해 찾아왔으며, 용왕님의 도움이 있다면 바다의 부름 파편 수색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거래를 하자는 것이군.”
“서로 돕는 거죠. 뭐, 앙굴라처럼 속 좁은 사기꾼은 아니니 믿으셔도 됩니다.”
이미 자신의 모든 걸 꿰뚫어 보았을 테니 재호는 자신감을 갖고 말했다.
지금까지 쌓아 온 명성을 생각한다면…….
‘악명이 더 높긴 하지만.’
하지만 앙굴라 같은 놈도 초대를 했었다는 걸 보면 생각 이상으로 편견이 없는 종족이거나, 호구거나 둘 중 하나.
“뭐, 좋다. 바다의 부름을 사용하고도 저주를 받지 않은 그대는 자격이 있다.”
“?!”
걱정보다 더 시원하게 떨어진 승낙에 재호가 반색했다.
“그러니 저런 괴물도 끌고 다니는 것이겠지.”
“괴물?”
“그대가 타고 온 배.”
고잉헬 호를 말하는 것일 터.
“그것은 바다에 분노에 당한 생명들의 원념으로 만들어진 죽음의 배다. 설마 모르고 있던 건 아니겠지?”
“아아, 저거요? 당연히 알죠!”
당연히 몰랐다.
‘저주받은 배라는 건 알았지만 그런 끔찍한 사연이 있는지는 몰랐지!’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걸 안다고 한들, 딱히 달라질 건 없었다.
“어쨌든 좋다!”
서루발이 팔을 쭉 뻗으며 소리쳤다.
“아트리우스를 방문한 모든 존재들은 귀한 손님들! 또한 그대처럼 특별한 존재는 정말 오랜만인 만큼, 용왕 서루발의 이름을 걸고 아트리우스 내 모든 시설의 이용 권한을 주겠다!”
“헉?! 감사합니다!”
통 큰 결정에 재호의 허리가 팍 접혔다.
인어들의 왕답게, 바다처럼 배포가 커다란 서루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