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85
384화
크로킹은 며칠 동안 차분하게 생각했다.
자신이 이 막장까지 오게 한 것이 무엇인가?
승승장구하던 불곰 길드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자신과 알시아는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결론은 나왔다.
‘주변에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는 놈들이 없어서다!’
재호 주변에 모인 수많은 실력자.
그리고 그들 모두는 재호에게 완벽히 충성한다고 크로킹은 생각했다.
만약 자신에게도 그 정도의 충절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면 결코 이 꼴이 나지 않았으리라.
‘주변에 온통 배신자들뿐이었지.’
길드에서 떵떵거리며 단물을 빨아먹던 놈들이, 불곰국이 망하자마자 돌아서 버렸다.
주변에 그런 믿지 못할 놈들밖에 없었던 게 원인이었다.
이런 고찰을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테일러였다.
길드원에게 전해 들은 테일러의 배신 행위.
솔직히 그간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다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불곰국을 위해 테일러가 해 온 그 대단한 업적들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그걸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하자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 수 있었다.
테일러는 진작부터 배신했다.
‘테일러 네가 그럴 줄은 몰랐다.’
진심으로 실망한 크로킹.
‘그리고… 날 배신한 걸 영원히 후회하게 해 주마.’
끼이익-
어느 빌라 앞에 멈추어 선 차량들.
거기서 크로킹이 다른 남자들과 우르르 내렸다.
뚜루루루-
함께 내린 한 사람은 굳은 얼굴로 테일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참 흘러도 받지 않는 테일러.
“역시 무응답입니다.”
그의 말에 크로킹은 물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내던졌다.
“싹 다 뒤져.”
그 한마디에 함께 온 모든 이들 전원이 빌라로 돌진했다.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만 알지, 정확한 호수는 몰랐기에 집집마다 문을 두들겨 대며 찾아야 했다.
말도 안 되는 민폐 행위였지만,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쓰는 이들이 아니었다.
“뭐하는 거야?!”
“나가! 내 집에서 나가라고!!”
거세게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크로킹 일당의 무차별 폭력.
게임과 달리 현실에서 이런 행위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었으나, 크로킹은 걱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요즘 같은 시대에도 인종차별과 폭력 등, 멋대로 살 수 있었던 것엔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었으니까.
러시아 최대 갱단 레드건 두목의 수많은 사생아 중 한 명인 크로킹.
간신히 이어진 그 가느다란 핏줄은 그를 지역 경찰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레드건의 두목은 설혹 자신이 이름조차 모르더라도, 피가 섞여 있다면 그 자체가 권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었기 때문.
같은 지역에 살았던 테일러가 괜히 그의 눈치를 본 게 아니었다.
약 한 시간에 걸쳐 빌라를 몽땅 뒤졌다.
하지만 테일러는 없었다.
“이곳에 사는 놈들 말론 바로 어제, 이곳에 살던 젊은 남자 밤에 도망치듯 떠났다고 합니다.”
보나 마나 테일러였다.
“이 새끼 어디로 튀었는지 찾아내.”
크로킹은 콧방귀를 뀌며 지시를 내렸다.
“웃긴 놈이군. 어차피 네놈이 살아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어딜 가든 우리가 찾아낼 순 있단 걸 몰라?”
이걸로 테일러의 배신은 명백해졌다.
자신이 잘못 안 것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었지만, 사라진 테일러는 그것을 모두 무너트려 버렸다.
“죽인다.”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그런 말을 뱉는 크로킹은 몇 배나 더 무섭게 보였다.
* * *
두근- 두근-
요동치는 심장.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에 푹 젖은 테일러는 불안한 얼굴로 입국장으로 향했다.
‘지, 진짜 와 버렸다……!’
생각 없이 뱉은 재호의 한 마디에 무턱대고 저질러 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으나, 내심 자신 또한 영원히 그렇게 불안한 생활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큰 변화가 필요했던 것은 사실.
드르르-
작은 캐리어를 끌고 입국장을 나선 테일러.
부모님도 없고 외톨이로 살아왔기에 짐도 얼마 없었다.
다만 최정상급 플레이어인 만큼 돈은 많았으니 지금부터 살 곳을 알아보면 될 터였다.
다행히 전 세계는 과거보다 이민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었으니 충분히 준비해 이민자 심사를 준비하면 되리라.
‘아직 새로운 정착지로 한국을 선택한 게 잘한 선택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홀린 듯이 한국행을 택한 자신이 바보가 아니었기를…….
“어?”
한데 막 공항을 떠나려던 순간, 테일러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저, 저건……?”
도저히 몰라볼 수 없는 엄청난 존재감의 남자.
게임 속에서 본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패왕이 그곳에 있었다.
“아, 알시아?!”
놀랍게도 재호가 테일러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응? 테일러?!”
흠칫하며 놀란 재호의 모습에 테일러는 주춤했다.
“네가 왜 여기 있냐?”
“…….”
말문이 막힌 테일러는 이내 재호가 자신을 마중 나왔을 리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한국에 온다는 걸 미리 알 수 없을 테니…….
“…푸하하! 농담이야.”
그때,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테일러의 어깨를 두드리는 재호.
“으응? 무슨 소리야?”
“이야기 들었어. 한국에 이민 온 거라며?”
그 말에 테일러는 다시 울컥했다.
정말로 자신을 마중 나왔단 말인가?!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내가 오는 걸 어떻게 안 거야?”
“버팔로가 알고 있던데?”
“아…….”
버팔로에게 자신의 한국행을 알리긴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정확한 시간에 맞춰 재호가 나와 있는 건 이해되지 않는 일.
버팔로에게 비행시간까지 말하진 않았었다.
“크로킹이 눈 뒤집혀서 너 찾았다더라. 수소문하다 비행기 시간도 알아내서 쫙 뿌린 모양이던데? 너 조금만 늦었어도 걔네한테 잡혔겠더라.”
“헉?!”
비행하는 동안엔 알 수 없었던 러시아 내 소식에 테일러의 전신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 그게 정말이야?”
“당연하지. 아니면 내가 어떻게 네가 올 시간에 맞춰서 딱 나왔겠어? 게다가 혹시나 비행기에 불곰 녀석들이 같이 따라왔을까 봐 일부러 나온 거야. 한국 첨 와 봤다고 어버버 대다가 도로 잡혀갈 것 같아서.”
“날 너무 바보 취급하는 것 아니냐……?”
말은 그렇게 하지만 크로킹이라면 정말 그랬을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자신의 비행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더더욱…….
“…고맙다.”
“오글거리는 소리는 됐고. 근데 너 혼자 온 거야? 가족은?”
“어…….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나 혼자다.”
“아… 몰랐네. 미안하다.”
“괜찮아. 어차피 오래되어서 아무 느낌도 없으니까.”
테일러는 정말로 괜찮았다.
“지낼 곳은 있어?”
“아니. 이제 알아볼 참이었지.”
“잘됐네. 그럼 우리 팀원들 머무는 호텔에 갈래? 어차피 너 돈은 있을 테니 거기 머물면서 집이나 알아보든가.”
재호의 제안에 테일러는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간신히 참았다.
뉴월드의 속 외딴 장소에 갔을 땐 아무 느낌도 없이 무덤덤했던 테일러.
하지만 현실에선 난생처음 와 본 외국에 잔뜩 긴장한 청년에 불과했다.
그런 와중에 재호가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을 써 주니 감격하는 게 당연한 일.
그렇게 공항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한 외국인이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다른 이들도 재호를 구경하는 건 마찬가지였기에 그 행동이 별로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다.
뚜루루-
곧 어디론가 전화를 건 그.
“놓쳤습니다, 크로킹.”
재호가 나온 것이 정말로 다행이란 것을 테일러는 알 수 없었다.
또한, 아직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 * *
-테일러 한국 입국! 알시아가 마중까지 나왔음!
└엥? 뭐지? 테일러랑 알시아랑 무슨 관계임?
└원래 서로 되게 친했잖아.
└그게 친한 거야? 그냥 호구 잡혀서 노예 생활하던 거 아냐?
-내가 알기로 테일러 아직 불곰 길드 소속인 걸로 아는데.
└그래서 테일러 어느 편인데? 불곰이야 알시아야?
└당연히 불곰이지.
└당연히 황재호지.
└누구 하나 제대로 아는 놈이 없네.
└근데 답 나온 거 아닌가? 황재호가 마중까지 나올 정도면 둘이 엄청 친하다는 거 아냐?
-근데 둘이 친하다고 해도 그 상황이 설명되는 건 아님. 대체 왜 만났는지 감도 안 오니까.
└혹시 일성 플라워즈 선수로 영입한 거 아냐?
└띠용? 테일러까지 거기 가면 플라워즈 화력 괴물 되는 거 아냐?
└에이, 겨우 테일러 하나로 그 정도는 아니지.
└알못이 또 나대네. 테일러가 그냥 호구 등신으로 보이지?
└ㅇㅇ호구등신 맞음.
모두의 주목을 받은 두 사람의 만남.
테일러가 일성 플라워즈의 새로운 선수로 들어오는 것 아니냐는 루머는 실제 팀원들이 머무는 호텔로 향하자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게다가 다음 날 있던 일성 플라워즈 리그 경기도 직관을 하면서 소문은 사실처럼 굳어졌다.
테일러 또한 자신을 향한 그런 폭발적인 관심을 알고 있었다.
러시아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관중석 1열에 앉은 테일러는 늘 방구석에서 홀로 보던 재호의 경기를 마침내 직관하게 되었음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저기…….”
그때 조심스레 테일러에게 말을 걸어오는 옆자리의 관중.
꿀꺽-
테일러는 잔뜩 긴장한 채 고개를 돌렸다.
혹시나 소문과 관련된 이상한 질문을 들으면 어떡할지 걱정이 한가득하였으나…….
“패, 팬입니다!”
“……네?!”
소스라치게 놀란 테일러는 혹시 자신의 뒤에 다른 유명 플레이어가 있나 돌아보았다.
하지만 상대는 분명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 저요?”
“네! 테일러 님 아닌가요? 알시아 님 영상 단골이잖아요! 실제로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진짜 팬이었다!
“사인이랑 사진 좀 찍을 수 있을까요?!”
“아… 끄읍……! 네!”
목구멍이 뜨끈뜨끈해져선 겨우 대답하는 테일러.
러시아에선 이런 따스한 관심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개인 방송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을 하긴 했지만, 불곰 길드에 속한 암살자란 특징 탓에 주변에서 먼저 다가와 주는 경우가 잘 없었다.
평소 칙칙하게 다니기도 했었고…….
하지만 한국인들이 보기에 테일러의 이미지는 조금 달랐다.
재호의 영상에서 나올 때마다 보인 친근한(?) 이미지들 덕분에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했던 것이다.
테일러가 그렇게 원했던 사람들의 순수한 관심.
밝고 따스한 에너지가 충만한 환경…….
주르륵-
테일러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찰칵-
“감사합… 어?”
기분 좋게 사진을 찍고 고개를 돌렸던 관중은 테일러의 모습에 흠칫했다.
“왜, 왜 그러세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아, 아닙니다. 눈이 갑자기 습해져서…….”
대충 핑계를 댄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모습을 자신과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 이들에게 보여 줄 순 없었다.
“잠시 화장실 좀…….”
“아… 네…….”
다음 경기가 시작되려면 시간이 좀 있었기에 테일러는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쏴아아아-
화장실에서 세수하며 눈물을 닦아 낸 테일러.
새삼 자신이 다른 세상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얼굴 좋군.”
“?!!”
어느새 자신의 뒤에 선 붉은 머리의 서양인.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테일러는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이곳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이었으니까.
“드, 드미트리!!”
그는 불곰 길드의 간부이자, 테일러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절대 이 장소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이었고.
‘설마… 내가 탔던 비행기를 정말로 쫓아왔던 거야?!’
테일러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특히나 그의 뒷주머니에서 슬그머니 나온 작은 단검을 본 뒤로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