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405
404화
줄칸이 대체 무엇이라고 서한을 보낸 것인지 재호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어느 정도 형식적인 행사가 있을지도 모른다곤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요란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황성 외성에서부터 대기하고 있는 화려하고 거대한 꽃마차.
그 마차는 제국의 뛰어난 정원사들의 손길이 닿았음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었다.
지붕도 없어서 주변이 훤히 보이는 오픈 마차에 오른 재호는 민망할 정도로 요란한 환영에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빨리라도 가면 좋을 텐데…….’
하늘과 땅을 수놓는 화사한 꽃들… 과 대조되는 짜증 가득한 사람들의 표정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
‘사단장 부대 격려 방문 때 표정……!’
직접 경험해 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그런 민폐 덩어리가 되었음을…….
하지만 재호의 그런 불편한 마음이 모두에게 잘 전해지는 건 아니었다.
모르는 이들이 보기엔 그저 근엄하며 위엄 넘치는 패자의 모습으로만 보였으니까.
“와… 진짜 너무 부럽다…….”
“황재호 저 즐기는 얼굴 봐. 나도 저런 대접 받아 보고 싶다.”
“게임 열심히 하면 언젠가 되지 않으려나?”
“지금까진 빡세게 안 한 척하네. 너 전에 레이드 보스 막타 힐러가 쳤다고 지랄 발광했던 거 기억 안 나냐?”
“나지. 그거 때문에 내가 여기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거 아냐.”
“지랄. 근데 황재호가 막타 하나는 기가 막힌 건 인정.”
“그러니까. 저 새끼 막타충이라니까? 영상 보면 항상 막타야.”
그런 부러움과 질투 섞인 반응들이 플레이어들에게서 쏟아져 나왔고, 재호는 등에 멘 활을 만지작거리는 티나에게 계속 눈치를 줘야 했다.
쿠궁-
황성 내성으로 향하는 거대한 성문이 꽃마차의 접근에 맞춰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양옆으로 쫙 늘어선 제국의 대신들 앞에서 마차는 멈추었고, 그 사이의 붉은 카펫을 따라 대전까지 걸음을 옮겨 황제를 마주했다.
“엘리시아 화원의 알시아가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재호는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고개를 들라.”
힘이 느껴지는 묵직한 음성.
게다가 불로장생초 덕분에 10년은 더 젊어진 황제가 형형한 눈빛으로 재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에선 말할 필요 없이 진득한 호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도다. 제국의 영원한 동맹, 알시아 대왕이여.”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굳이 다시금 각인시키는 동맹 관계.
‘진짜 왜 이렇게 요란하게 하는 거지?’
재호로선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단순 방문에 불구에도 이토록 공들인 행사가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고 있었다.
‘뭔가 있다……. 나한테 바라는 게 있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대륙 내 최고 권력자가 이렇게까지 해 줄 리 없었다.
“허허, 일어나도록. 그대를 찬 바닥에 오랫동안 내버려둘 순 없으니, 어서 안으로 들어 만찬을 즐기도록 하지.”
재호를 향한 황제의 태도에 아래쪽 자리에 앉아 있던 황자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이젠 그들 전부 재호가 5황자를 황태자로 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경쟁자 처지에선 황제의 저런 모습이 결코 좋게 보일 수가 없었던 것.
오직 젠트르노 황자만이 흐뭇한 표정으로 재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황제와 가지는 둘만의 식사 자리.
호위 기사도 한 명 없었으니, 그가 재호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 수 있었다.
“허허, 얼마 전에 갑자기 황녀가 찾아가는 바람에 많이 놀랐을 테지.”
게다가 공식 석상에서 보이던 위엄조차 거둔 그는 그저 온화한 아저씨처럼 느껴지기까지.
만약 황제의 이런 모습을 황자들이 봤다면 질투심에 거품을 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황자들에겐 단 한 번도 이런 표정을 보여 준 적 없는 황제였으니까.
“아닙니다. 그래도 황녀께서 미리 언질을 주긴 하셨습니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군. 1황녀가 워낙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면이 있다 보니 그대에게 민폐를 끼친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국보다 엘리시아 화원의 여러 편의 시설들이 뒤떨어지다 보니 불편하시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었습니다.”
황제의 배려 넘치는 말에도 재호는 그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 없이 좋다고 고개를 끄덕여 댈 순 없었으니…….
“아니야 아니야. 내가 하는 말을 그저 형식적인 인사치레로만 받아들이지 말게나.”
그리 말해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재호는 군 생활을 통해 충분히 배웠다.
하지만 황제의 말은 진심이었다.
“알시아 대왕.”
“말씀하십시오.”
“고맙네.”
“…예?”
이젠 무서워지고 있었다.
물론 생명의 은인인 재호에게 감사 인사를 얼마든지 할 순 있겠지만, 왜 하필 한참 지난 지금에 와서 또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황녀의 이야기가 나온 직후에…….
“자세히 설명해 줄 순 없지만… 루로아 황녀는 황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네. 감히 말하자면 황태자가 누가 되는가는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 이유를 재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내가 알고 있는지 모르지.’
황제로선 절대 밝히고 싶지 않을 이야기.
그럼에도 황제는 그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재호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 중압감 탓인지, 루로아 황녀는 어린 시절부터 늘 외롭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 왔지. 대륙의 황제이기 이전에 아버지로서 늘 걱정해 왔다네.”
아무것도 몰랐다면 황제의 반전 부성애에 재호가 감동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명백히 목적이 있으며, 제국의 안위를 위함이 1순위라는 걸 알기에 재호는 그가 말하는 걸 냉정히 들을 수 있었다.
“한데 엘리시아 화원을 다녀온 루로아 황녀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나는 그 이유가 알고 싶었다네.”
그래서 루로아 황녀와 동행했던 수행원들과 기사들을 통해 확인한 황제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알시아 대왕 그대가 루로아 황녀의 변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그… 그렇습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할 수 있었다.
재호로 인해 그녀에게 변화가 일어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변화는 결코 황제가 좋아할 만한 게 아니었다.
만약 진실을 알게 되면 지금 재호가 먹는 음식에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몰랐다.
“흠흠,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재호는 발뺌했다.
듣기 좋은 이야기에 헤벌쭉한 모습을 보여 봐야 별로 좋게 보이지는 않을 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조금 분위기가 바뀌긴 했지만, 그게 이 정도 리액션을 보일 정도야?’
그 사소한 변화조차 정말 대단한 것이라 그런지, 아니면 돌아온 루로아 황녀가 정말 돌변해 악어가족 노래라도 부르고 다녔을지 알 길이 없었다.
“허허허. 그대라면 그렇게 말할 거라 생각했네. 하지만 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자 한다네.”
역시 예상한 대로 황제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대가 루로아 황녀의 벗이 되어 주게나.”
[*퀘스트*] [프라푸치노 황제는 제국 무한한 영광과 안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루로아 황녀가 늘 걱정입니다.하지만 엘리시아 화원을 방문하고 돌아온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전에 없던 생명력에 황제는 크게 감동했으며, 새로운 기대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황제는 이 긍정적인 변화가 계속 유지되는 건 물론, 제국의 발전을 위해 루로아 황녀가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길 바랍니다.
하지만 황제는 당신과 루로아 황녀 사이에 밀약이 맺어져 있을 것이라곤 조금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퀘스트 목적 : 루로아 황녀의 국정 참여.] [보상 : 칭호 획득.]
참 아이러니한 퀘스트였다.
황제가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 퀘스트.
오히려 재호가 루로아 황녀 근처에 얼씬도 못 하도록 만들어야 했지만…….
‘오히려 나한테는 잘된 것 같네.’
황제가 아예 대놓고 루로아 황녀와 만날 수 있는 판을 깔아 준다면 그녀의 퀘스트를 진행하는 데 장애물이 하나 사라지는 격이었다.
문제가 될 만한 것이라고 하면 실제로 재호가 루로아 황녀의 저주를 해결할 경우인데, 조금 위험하긴 해도 방법이 없진 않았다.
‘굳이 그 사실을 드러내지만 않으면 되겠지.’
여전히 미래를 볼 수 있는 척, 국정에 참여만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황제 퀘스트도 클리어 가능!
단, 들키면…….
척-!
“사실 폐하께서 그렇게까지 제게 기대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재호는 무릎을 꿇으며 호기롭게 외쳤다.
“껄껄껄- 역시 알시아 대왕이로다!”
재호의 호언에 황제도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이면에 숨은 음흉한 속내는 알지 못한 채.
* * *
황제와의 만남을 마친 뒤, 다음으로 재호는 루로아 황녀와 만났다.
그녀의 장원 내 조성된 정원을 산책하며 두 사람은 근황을 나누었다.
“뭐… 그렇다고 해 봐야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진 않았네요.”
황녀의 말에 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황제 폐하와 대화를… 아, 여기서 아무 이야기를 해도 됩니까?”
재호는 정원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황실에서 황제의 거처만큼이나 안전에 신경 쓸 장소이니,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주변에 있을지도 몰랐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변엔 아무도 없습니다.”
미래를 볼 수 있으므로 루로아 황녀는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 편히 이야기하죠.”
그녀의 말에 재호는 안심하며 본론을 꺼냈다.
“전달은 받으셨겠지만 황제 폐하는 제가 황녀님과 친구가 되길 바라고 계시더군요. 황제 폐하는 제 덕분에 황녀님이 변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폐하께서 잔뜩 기대하는 것 같더군요. 저로선 대체 갑자기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도 당황스럽다는 듯 말했지만…….
“음?”
문득 그녀가 입고 있는 로브의 틈으로 무언가를 발견한 재호.
다름 아닌 악어가족 응원봉.
“아… 보셨군요.”
재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알아챈 그녀는 민망하다는 듯, 응원봉을 살짝 꺼내 보였다.
“이걸 지니고 있으면 엘리시아 화원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지곤 하지요. 해서 늘 이렇게 품에 넣고 다니곤 합니다.”
“마음에 드시니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저런 모습이 황제로선 너무나 신선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대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를 친구로 생각하십니까?”
“뭐, 안 될 건 없겠죠.”
재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세계의 구성원인 NPC와 달리, 플레이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도 대왕을 친구로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담담히 대답한 황녀.
하지만 서로 친구가 되기로 했다고 한들, 지금의 관계에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친구랍시고 완식에게 하는 것처럼 루로아 황녀를 대할 순 없는 일이었으니까.
“자, 이쪽으로.”
루로아 황녀는 작은 호수 정도는 되어 보이는 곳 옆의 정자로 재호를 안내했다.
그곳엔 이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와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주 앉은 뒤, 그녀는 묘한 기대감을 품은 채 재호를 쳐다봤다.
“대왕께서 먼저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미 재호가 제국을 방문한 이유가 자신임을 알고 있는 그녀.
‘표정을 보니 이미 대충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
재호가 찾은 건 두 가지 이유.
“일단 먼저 말씀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다름 아니라 악어가족의 추가 공연이 잡혔다는 걸 알려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역시 눈에 띄는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모습.
확실히 악어가족이 그녀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은 모양이었다.
허나 진짜 본론은 따로 있었다.
“최근 여러 곳에서 정보를 모았고, 이비우스의 저주에 대해 알아낸 것들이 좀 있습니다.”
“…….”
다시금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루로아 황녀는 한참 침묵했고, 재호는 그녀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렇다면… 이 저주를 해결할 수 있는……?”
마침내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그 순간,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깜짝 놀랄 정도로 급격히 어두워졌다.
“대왕님.”
“네?”
돌변한 그녀의 분위기에 재호는 혹시 자신이 말실수한 게 있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잔뜩 구겨진 것은 다른 이유였다.
그것도 아주 난감한…….
“암살자가 침입했네요.”
“…네?”
황궁 내, 가장 깊고 중요한 장소를 노리고 누군가 침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