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451
450화
일행이 별장으로 간 사이, 재호는 안정을 되찾은 파이라와 향후 대책 논의를 시작했다.
핵심 사안은 총 세 가지였는데, 마계에서 탈출할 방법, 칼리토의 음모를 어떻게 저지하고 엿 먹이나, 페르마 사막의 저주 문제 등이었다.
“돌아갈 방법이야 명백하다. 내가 너희들을 불러들일 때 썼던 마법을 이용하면 되지.”
파이라는 정체 모를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양피지를 꺼내 보여 주었다.
그것엔 알아볼 수 없는 복잡한 그림과 글자들이 적혀 있었는데, 파이라는 여기에 마력을 주입하면 대륙과 이어지는 균열을 열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당장은 못 쓰는 건가?”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파이라에게 양피지를 받은 재호는 자세히 살펴보았다.
[] [등급 : 희귀] [마계의 이름 모를 악마 마법사가 만든 불법 균열 생성 주문서입니다.일정량 이상의 마나를 주입하면 누구나 중간계의 대륙과 이어지는 균열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좌표를 특정할 수 있으나 정확도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마나량으로는 활성화가 불가능합니다.]
“…….”
재호는 가늘어진 눈으로 파이라를 노려봤다.
“이런 허접한 걸로 잘도 우릴 불러들였네.”
“무슨 소리냐? 그것만 해도 마계에선 굉장히 구하기 힘든 것이다. 그나마 믿을 만한 제품이거늘.”
“아무것도 장담 못 하는 위험한 물건이 어떻게 믿을 만하단 거냐? 그리고 꼭 이런 걸 쓸 수밖에 없는 거야? 써야 한다면 차라리 네가 좀 만들어 주지 그러냐?”
“난 그런 이론 마법은 모른다. 또한 나와 같은 대악마들은 굳이 그런 어설픈 주문서에 의지하는 것보다 직접 힘으로 균열을 찢는 게 더 나으니 말이다.”
방금 믿을 만한 물건이라고 해 놓곤 아무렇지도 않게 어설픈 주문서라고 깎아 버리는 쿨함.
“그리고 지금의 나 또한 그걸 쓸 수 없다. 애초에 극도로 효율이 나쁜 물건이기에 마왕의 힘을 이용하는 걸 제안한 거다. 그런 위험한 물건을 쓰는데 내가 목숨을 걸 순 없지 않나?”
“…….”
점점 신뢰도는 뚝뚝 떨어졌지만 돌아가려면 이걸 사용하긴 해야 했다.
“결국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네.”
전형적인 허위광고라 할 수 있었다.
“그게 정말 제대로 될 것인지 걱정하는 건 나중 문제다. 당장 너희들은 마왕성으로 가는 것도 난처한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빠져나왔던 곳으로 몰래 들어가면 안 되려나? 어쨌든 안식처까지만 들어가면 이걸 이용해 빠져나갈 수 있다는 뜻이잖아.”
“하지만 아마 마왕성 쪽은 충분히 대비되어 있을 거다. 특히 마왕성의 장군들이 경계 수준을 더 높였을 테니 어렵다. 녀석들은 무력도 뛰어나긴 하나, 마왕성을 지키는 놈들답게 온갖 귀찮은 능력들을 갖추고 있거든.”
처음부터 들키지 않았다면 몰라도 이젠 절대 마왕성으로 잠입할 수 없다고 파이라는 말했다.
“적어도 안식처를 향한 장군들의 시선을 잠시라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밖으로 유인하는 게 제일 확실하겠네.”
“그렇지. 최소 한 녀석 정도는 남겠지만 너희들 수준이라면 그럭저럭 괜찮을 거다.”
“흠……. 불러낼 만한 방법이 없을까?”
가장 먼저 단순히 떠오르는 건 역시 고의적인 소란을 일으키는 것.
단, 너무 노골적이면 오히려 그들의 경계만 강화하는 결과를 불러올 터였다.
“그런데 칼리토는 어떻게 하는 게 좋지? 다른 대공들에게 해당 문제를 제기하는 걸 네놈이 반대하니 해결책을 내놓아 봐라.”
파이라의 물음에 재호는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빠졌다.
사실 멀리 내다본다면 그게 재호 입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긴 했다.
재호가 현재 받아 놓은 칼리토의 퀘스트는 절대 완료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칼리토를 그냥 족칠 순 없어?”
“아무리 칼리토가 자신들을 노렸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이상, 그런 무식한 일에 동참해 주진 않을 거다. 접경 지역에선 늘 전쟁을 벌이는 우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직접 노리진 않거든.”
“치사하게 자기들은 안전한데 숨어 있는다는 거군. 이유라도 있나?”
“…크흠. 마왕이 마계를 대변한다면 일곱 대공은 그런 마계를 받치는 기둥이자 균형추이다.”
민망한 헛기침과 함께 파이라는 설명해 주었다.
“마왕이 버젓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계를 무너트릴 수도 있는 위험한 짓을 하는 멍청한 놈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칼리토가 최대한 대공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거다.”
하지만 파이라는 칼리토라면 거기서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아마 그 탐욕스러운 놈이라면 좀 더 큰 꿈을 꾸고 있을 거다. 당장은 마왕의 힘을 노리지만, 그다음은 다른 대공들을 모조리 잡아먹으려고 하겠지.”
“굳이? 마왕이 되면 어차피 마계의 모든 권력을 쥐게 되는 것 아냐?”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언뜻 마계는 마왕의 것으로 보이지만, 그건 일곱 대공이 있기 때문이지. 생명체의 본능과 관련된 각각의 욕망을 담당하는 대공들의 존재는 결코 사라져선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마계의 붕괴는 다른 차원까지 영향을 미칠 테니 말이다.”
“…그래? 근데 프티머스는 마계를 그냥 조져 버리길 바라던데?”
“프티머스? 그 정의병자 말이냐? 그 정신 나간 녀석은 그럴만하지. 정의만 있어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고 믿는 놈이니까. 하지만 다른 대천사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대륙을 향한 악마들의 지속적인 침략에도 천계가 침묵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결국 그것이 세상의 순환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본능적인 욕망을 관장하는 악마.
그에 반해 이상향을 위한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는 천사.
그 두 세계가 추구하는 가치가 모여드는 곳이 바로 중간계에 있는 대륙이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다른 대공들이 사라지면 그 순환의 고리가 파괴되는 것. 현실적으로 프티머스가 말하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
재호는 프티머스의 퀘스트가 생각보다 더 골치 아픈 것임을 깨달았다.
하면 안 되는 일을 하자고 조르는 대천사…….
“아무튼 아까 하던 말을 계속하자면, 칼리토가 정말 마왕의 자리를 빼앗았을 때, 그는 두 가지의 상징성을 지니게 된다.”
바로 마계 최고 권력자인 마왕과 탐욕의 대공.
“정상적인 순환대로면 무너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새로운 탐욕의 대공이 나타나야겠지만… 과연 그놈이 자신이 가진 걸 내려놓을까? 그럴 바엔 차라리 모든 대공을 자신이 먹어 치워 하나의 거대 권력을 가지려 할 것이다.”
“어… 그건 딱 듣기에도 위험하게 느껴지네.”
현 마왕이 마계 그 자체의 존재라곤 하지만, 모든 대공의 힘과 권능을 흡수한 절대자와는 비교 불가일 터.
“그 말대로다. 아마 그렇게 되면 너희들의 대륙은 물론, 천계조차도 위험해질 수 있겠지.”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안위를 위해선 칼리토도 살리고 마왕도 살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때 문득, 재호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근데 네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기존 대공이 아닌 새로운 대공이 나올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그렇다.”
“그러면 우리가 새로운 탐욕의 대공을 만들 순 없어?”
“뭐……?”
“칼리토를 쫓아내고 우리와 우호적인 새로운 대악마를 만들어 낸 뒤, 저주를 받아 낼 순 없는… 아……. 그런데 애초에 칼리토가 저주를 후계자에게 넘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건가?”
“아니, 꽤 괜찮은 생각이다.”
하지만 칼리토는 재호의 아이디어가 그럴싸하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칼리토가 저질러 놓은 모든 행위는 탐욕의 대공으로서 한 것들. 그 모든 업적은 새로운 탐욕의 대공이 물려받게 될 것이며 페르마 사막의 저주 또한 마찬가지일 거다. 그대로만 된다면 저주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겠지.”
“오, 그래?! 그래서 새로운 탐욕의 대공은 어떻게 만들지?”
“탐욕의 신 투플러스의 시험을 통과한 뒤, 칼리토를 소멸시켜야…….”
쿠웅-
“음?”
“??”
그때,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파이라의 성이 크게 흔들렸다.
“뭐야? 마계에도 지진이 나?”
“아니… 이건…….”
쿠웅-!
파이라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지는 걸 보면 보통 일이 아닌 듯싶었다.
“빌어먹을 솔아이가 찾아온 거다.”
그의 얼굴이 똥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 * *
거대한 파이라의 성채를 빙 둘러싼 드넓은 해자.
그 해자 건너편엔 거의 10미터에 육박하는 헬트리버가 다리를 모은 채 앉아 있었고, 커다란 머리 옆에는 한 악마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저놈이 시기의 대공 솔아이다.”
파이라는 창을 통해 내려다보며 말했다.
“시기의 대공이라면 너랑 같은 대악마?”
“그래. 내 영토와 붙어 있다 보니 종종 저렇게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이번엔 시기가 좋지 않군.”
재호 일행이 와 있는 상황이니 괜히 쓸데없는 일에 휘말릴까 걱정이 된 것.
하지만 그 이전에 재호는 의문이 들었다.
“접경 지역에선 계속 전쟁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무리 대공들이 서로의 목숨은 노리지 않는다고 해도 저렇게 대놓고 올 수가 있어?”
“안 될 건 뭐지? 어차피 전쟁은 우리가 아니라 접경 지역의 하급 악마와 귀족들이 하는 것인데?”
도무지 기존의 상식을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악마식 가치관.
“아… 그래…….”
재호는 굳이 더 의문을 가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넌 여기서 계속 지켜만 보고 있어도 되는 거야?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냐?”
“…그럴 필요는 없다.”
뿌드득-
오늘 유난히 많이 듣는 파이라의 이 가는 소리.
“어차피 저놈의 목적은 저걸 자랑하는 거니 말이다.”
파이라가 가리키는 건 거대한 헬트리버.
“…아!”
재호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헬트리버는 마계에선 권위와 부를 상징하는 애완동물.
그리고 저렇게 크고 활활 타오르는 화염을 만들어 남들에게 과시하는 것이다.
“설마하니 생명력을 먹여서 저만큼 키우진 않았을 거고……. 테라핀을 이용했겠지?”
“당연한 소리. 물론 그걸 대놓고 인정하진 않겠지만.”
실제로 망원경을 통해 살펴본 결과, 솔아이가 데려온 헬트리버는 그 어떤 목줄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이번에 네놈에게 줄 테라핀을 구하면서… 저 자식의 조롱을 얼마나 들었는지 넌 모를 거다…….”
“그걸 왜 또 갑자기 나한테 그래?”
“빌어먹을! 무식하게 테라핀을 긁어모으니 마계에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다!! 힘도 잃어버린 주제에 내세울 게 없으니 이젠 헬트리버를 가지고서라도 어떻게 해 보겠다고 말이다!!”
“앗…….”
어떤 오해를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솔아이 저놈은 줄곧 저렇게 헬트리버를 데려와 도발하는 거다. 망할 것이… 감히 이 교만의 대공을 뭐로 보고…….”
재호는 이 상황이 파이라에게 있어선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울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교만의 대공인데 교만을 부릴 수가 없으니…….’
동시에 그런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칼리토보다 먼저 갈아 치워지는 거 아닌지 몰라.’
지금 상태의 파이라를 과연 교만의 대공이라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의문이 든 것이다.
물론 파이라에게 그런 속마음은 절대 들켜선 안 될 일이었다.
“네놈 그 눈빛은 뭐지? 마치 내가 교만의 대공이란 게 우습다는 것 같은 그 표정 말이다!”
“으응?! 무슨 소리야. 그런 식으로 남의 속마음을 디테일하게 의심하는 버릇 안 좋아.”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추측에 재호는 소름이 쫙 돋았다.
“젠장! 미안하군. 솔아이 저 자식만 나타나면 이렇게 예민해지곤 하니…….”
“괜찮아, 괜찮아. 우린 동맹이잖아?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다고.”
재호는 파이라를 위로해 주었다.
“…알시아 님. 수상한데요?”
그때, 잠자코 있던 티나가 재호의 귀에 대고 속닥였다.
“아무래도 저 녀석 상대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
다행히 파이라는 솔아이를 더는 보지 않으려고 창에서 멀어졌기에 티나의 말은 듣지 못했다.